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눈 내리는 수유 중앙 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묽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竹簡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계家系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며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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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요릿집에서 이름도 거창하게 달아 파는 궁중떡볶이와 시장 한구석에서 이름도 소박하게 붙여 파는 밀가루떡볶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무조건 후자입니다. 식재료 원산지 꼼꼼하게 따지라는데 내 여동생만 해도 어릴 적 불량식품 혀처럼 달고 살았어도 키만 쑥쑥, 1m76㎝까지 잘도 자란 걸요. 김밥도 그래요. 유명 체인점의 김밥보다 내키는 대로 간판 내건 구석진 동네의 좁아터진 분식집 김밥을 나는 더 선호합니다. 테이블에 가만 앉아 있으면 김밥을 마는 주름지고 투박한 손이 여지없이 보이거든요. 재료 몇 가지 없으면서도 김발에 힘 꼭꼭 주느라 길쭉길쭉 참 날씬했던 소풍날 아침 엄마의 김밥. 들판에 화단에 핀 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컬러감을 자랑하던 끈적끈적한 밥알 속 색색의 꽃들. 그래서 김밥은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걸까요. 영양만점 컬러만점 엄마손 김밥 한 줄, 아직 엄마가 못 되어봐서 그런가, 여하튼 제 특기는 모두가 김밥 말 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나 해대는 겁니다.
/ 김민정 시인
이 시에서 김은 한 가정의 울타리가 되는 남자라고 할 수 있고 그 안의 밥은 한 가정의 모태가 되는 여자라 할 수 있다. 삼색은 김밥 안에 양념으로 넣는 노란 단무지와 초록의 시금치 그리고 갈색의 우엉뿌리로서 한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자식들 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일. 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 정 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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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