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라는 무휼의 능력을 신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낮추었다. 그의 용은 비류수를 타고 올라왔다는 말로만 나타날 뿐..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류도 마찬가지이다. 세류의 주작은 날개를 펴지 않고.. 기산의 주작의 이야기로만 나타난다.... 남조역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짐작컨대.. 김진님은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신기속에 가려졌던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humanity)라기 보다는 초능력자로서의 모습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 그래서.. 무휼은 태자로서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해색주는 왕제로서의 모습으로, 세류는 공주로서의 지위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연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연의 모습은 철저하게 연의 유모인 부자에 의해서 연의 결혼의 정략적 배경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도 철저히 정치적으로 대접받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묘사로 나타난다. 물론 무휼에 대한 묘사도.. 세류에 대한 묘사도..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작가로부터 이야기를 넘겨받은 작중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설명된다. 물론 이 작중 인물들은 왕궁 내에서 각각의 위치를 차지하고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고로 그들은 자기와 같은 보통사람으로 무휼을, 세류를 재단한다.. 가끔씩 등장해 걱정섞인 얼굴만 비춰주던 송씨 부인도 소설 속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드러낸다. 정치의 한가운데에 놓여있으면서도 혼자인 듯 하던 무휼도 파벌을 형성한다.. 바람의 나라른 이렇게 소설로 훨씬 치밀한 사실성을 엮어낸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사실성이 아닌 소설내에서 구조적인 사실성이다.)
반대로 만화에서 늙어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린 모습으로 살다가 죽어버린 유리야말로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진정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물론 이것은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아버지의 나라’라는 부제는 유리의 입장에서 본 주몽의 나라라는 의미와 무휼의 입장에서 본 유리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라는 두 의미를 모두 담고 있겠지만.. 전자의 성격이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 신의 나라를 지탱해 나가야하는 가련한 인간, 의지의 부족이 아닌 능력의 부족 때문에 좌절하는 가엾은 인간 유리의 모습을 작가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옹호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리의 콤플렉스는 삐딱하게라도 표출되지 않고.. 계속 술주정으로만 맴돈다.. 그게 안타깝고 보는 나도 답답하다.. 차라리 취한 유리가 술잔을 집어던져 누군가의 머리라도 맞추었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거다.. 그 콤플렉스는 여진이 죽어도 나아가지도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제자리다.. ‘네가 유리더냐’라는 그 혼잣말은 이제 지루하기까지 하려 한다. 이 소설에 2% 부족함이 있다면..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다뤘을 유리의 콤플렉스가.. 그럼에도 충분히 심도있게 묘사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이기는 하다.. 그리고 내 안타까움은 역설적으로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바에 내가 철저하게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 또 하나는 역시 무휼이다. 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는 왕이 되었고 어느새 왕의 얼굴로 변해버려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나는 변한게 아니라 내 얼굴에 걸맞는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네가 기억하는 애기무휼은 이미 그 시점에는 더 이상 애기무휼은 아니었다’고.. 나는 무휼의 신기를 볼 수 없고, 무휼의 어린 모습도 볼 수 없다. 그의 능력은 철저하게 신의 방식이 아닌 인간의 방식, 즉 태자의 지위를 이용한 정치적 힘을 통해 나타나고 그 방식은 신기의 방식보다 더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무휼은 우리에게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만화 속에서 여진에게 민들레 홀씨를 잡아 건네주던 무휼은 소설 속에는 없다. 여진은 끝내 무휼에게 속말을 건네지도 대답을 듣지도 못한다. 대신 들어주게 된 세류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여진의 말을 귓속에 담지 않는다.. 여진의 죽음은 도대체 소설에서 무엇인가.. 무휼에게 희궁과 대소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고, 해색주가 왕실의 질서 속에 새로이 편입되는 기회일 뿐일까.. 무휼과 세류도.. 무휼과 연도.. 서로 속말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보통의 대화마저도 흐르지 않는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만화속의 주인공들은 마음을 이야기할줄 아는데.. 인간의 굴레를 쓴 주인공들은 왜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걸까.. 그게 보통 사람 살아가는 모양이더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일까..
소설 바람의 나라는 만화보다 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쓰여 졌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진지하게 읽었고 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나는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실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작품을 더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리의 아들은 도대체 몇 명일까? 다섯일까 여섯일까.. 가계도에는 여섯인데.. 유리는 끊임없이 내 아들은 다섯이란다.. 글쎄... 도절-해명-무휼-해색주-여진.. 그럼 태조 궁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첫댓글 재사지요... 이 인물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태조대왕대에 이르러서 왕위찬탈이 있었는데 그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재사라는 인물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죠.
해오녀님의 설 무척 그럴 듯 하게 들려요. ^ ^% 역사서를 보다보면 재사는 좀 어디서 엉뚱하게 튀어나온 듯 유리왕 아들 리스트의 마지막에 붙어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긴했거든요...
제가 봤을때, 여진의 장례로 소담부인이 방문했을때 한동안 유리왕이 소담부인과 해색주만을 찾는다고 하였지요. 아마 소설에서는 이때 소담부인이 재사를 가지는 것으로 처리할거 같습니다. 즉, 호동보다 늦게 태어날듯 싶습니다.
음...그렇구나. 소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유리왕 이야기가 많아서...아뭏든 종종 <바람의 나라>는 어려워서 한번 읽고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는데 소설로 나오니 좋았다. 근데 소설로 나와도 그 양이 만만치 않을 듯~
<무휼 이야기> <세류 이야기> <연 이야기> <호동 이야기> <해명 이야기> <용 이야기> <대소 이야기> <사비 이야기> <운 이야기> 등 바람의 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연이 길어 책이 나와도 대하소설같겠다...ㅋ
그러면 정말 파산신이 강림하실 겁니다ㅠㅋ
만화책에 의하면 해색주가 입궁했을때 돌아와보니 임신을 했더라는 말이 어디 나와 있습니다. 세류가 자화궁 찾아왔을 때 나온 이야기였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