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영화계를 술렁이게 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천만배우 마동석이 주연한 ‘황야’가 극장 개봉 없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로 직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냥의 시간’ㆍ‘콜’(2020)ㆍ‘승리호’(2021)ㆍ‘20세기 소녀’(2022) 등이 극장을 거치지 않고 OTT로 공개한 적은 있으나 모두 코로나19 시기에 일어난 고육지책(苦肉之策) 선택이었다.
‘황야’는, 이를테면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후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로 직행한 첫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획할 때부터 OTT 직행까지 염두에 두고 영화를 준비해 왔다”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과 동시에 만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한국일보, 2023.11.8.)고 말했다.
‘황야’는 ‘헌트’와 ‘범죄도시’ 시리즈 등의 무술감독이던 허명행의 연출 데뷔작이다. 허 감독은 ‘범죄도시4’의 메가폰도 잡아 내년 개봉할 예정이다. ‘황야’의 제작비는 100억 원대로 추산된다. 넷플릭스는 보통 이 제작비에 10~20% 정도를 더 얹어주고 영화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안전빵’을 택한 ‘황야’의 넷플릭스 직행인 셈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내린 결단이겠지만, ‘황야’의 넷플릭스 직행은 씁쓰름한 뒷맛을 남긴다. 코로나19가 채 가시지 않은 와중에 개봉한 ‘범죄도시2’와 그보다 조금 나아진 환경에서 선보인 ‘범죄도시3’이 각각 천만영화에 등극한 바 있다. 그렇게 주연과 제작을 겸한 ‘천하의’ 마동석도 극장 흥행을 담보할 수 없어 넷플릭스 직행을 택한 듯해서다.
하긴 최근 한국영화는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맞고 있다. ‘어쩌나 한국영화’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듯 여름 대목과 추석 명절 시장에 내건 한국형 블록버스터, 그러니까 대작 7편중 ‘밀수’만 514만 관객으로 확실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겨 흥행성공했을 정도다. 384만 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비는 200억대지만, 전 세계 152개국에 선판매돼 손익분기점을 대폭 낮출 수 있어 본전은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멀티플렉스체인 관계자는 “관객이 극장에서 ‘황야’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아쉽다. … 비슷한 사례가 더 생길지 우려된다”(앞의 한국일보)고 말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바로 ‘독전2’다. 11월 14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제작발표회까지 해놓고 정작 영화는 넷플릭스로 직행해 11월 17일 공개했다.
‘독전2’의 넷플릭스 직행은 ‘황야’보다 더 유감스럽다. 시리즈 2라서다. 당시 내가 쓴 글을 보면 ‘독전’은 2018 상반기(1~6월)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선 작품이다. 관객 수는 506만 3,684명이다. 손익분기점이 280만 명쯤이니 대박영화이기도 하다. ‘독전’의 또 다른 의미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데드풀2’까지 6주간 이어졌던 ‘마블 천하’를 종식시킨 점이다.
당시 쓴 글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독전’은 개봉일 하루에만 37만 6,543명을 동원, 1주 앞서 개봉한 ‘데드풀2’의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범죄오락영화 흥행작들인 ‘내부자들’(707만 명, 2015년), ‘범죄도시’(688만 명, 2017년), ‘신세계’(468만 명, 2012년)의 개봉일 관객 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한 마디로 ‘독전’은 마약조직의 우두머리 이선생을 잡으려는 형사 원호(조진웅)의 이야기다. 우선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로 데뷔해 ‘페스티발’(2010)ㆍ‘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의 범죄오락영화 도전 및 성공이 놀랍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뜬 배우 김주혁(진하림 역)의 유작중 유일하게 대박인 점도 기억해둘만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일반대중의 반응이다. 워낙 범죄오락영화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DNA를 감안하더라도 500만 넘게 볼 만큼 무슨 카타르시스나 가슴을 쿵하게 하는 감동의 ‘독전’은 아니어서다. 신선함으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긴 하다. 가령 보령(진서연)의 혓바닥에 묻은 마약을 진하림이 혀로 빨아드리는 감별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이런 ‘독전’의 2편이 5년 만에 돌아오는 것도 아쉬워할 관객이 많을텐데, 그나마 누구나 가서 볼 수 있는 극장이 아니라 회원 가입이 된 특정 OTT를 통해 관람할 수 있게돼 유감스러운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한국영화 부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게 아니어도 시즌 2가 전편의 흥행을 보장하리란 법도 없다. 오히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전편을 능가한 영화도 많지 않다.
그런데 11월 17일 공개후 관객평가 사이트 왓챠피디아를 보면 ‘독전2’는 1편만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023.11.21.)에 따르면 11월 19일까지 4,620명이 매긴 별점 평균은 5점 만점에 1.8점. 네이버 평점 역시 10점 만점에 2.09점이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국내 많이 본 영화 1위에 올랐음에도 그같은 평점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독전2’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경쟁과 반전 매력, 감각적인 연출 등 1편에서 관객들이 열광했던 장점들을 속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탓이”(앞의 한겨레)란 평과 함께 “전작에 대한 예우가 없다”(스포츠서울, 2023.11.22.)는 혹평까지 받았다. “넷플릭스 글로벌 탑3에 오르는 등 해외 반응이 뜨겁다”(앞의 스포츠서울)지만, 글쎄, 전편의 인기를 되찾을지는 미지수다.
혹 그런 영화라 안전을 보장한 넷플릭스 직행을 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독전2’는 전편의 흥행대박을 일궈준 많은 관객들에 대한 예의도 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영화를 보는 매체와 환경이 많이 변했다. OTT 가입을 해야 하나 하는 유혹이 따라붙지만, 그러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지’ 하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