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은연중에 장애인을 장애우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애우란 용어가 장애인 다음으로 나온 신조어쯤 생각하고 마치 장애우라는 표현이 장애인을 더욱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장애우란 용어가 개념의 타당성이나 적용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 없이 무분별하게 법정공식용어인 장애인과 혼용되어 쓰여지고 있는 배경은 한 장애인 단체가 단체를 설립하면서 그들의 이름에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였다.
이 단체가 장애우를 불구자, 병신 등 차별적이고 업신여기는 명칭의 대안 용어로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갖기 않은 사람 모두가 친구라는 의미의 문화적 운동차원에서 장애우를 사용하면서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장애우라는 용어는 한 집단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용어이다.
왜 장애우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가?
일반적으로 한 집단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가 가능한 표현으로써 객관적이고 주체적이며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 여성, 정치인의 경우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도 노동자, 여성, 정치인이란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장애우는 타인이 나(장애인)를 지칭할 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나를 지칭할 때는 쓸 수 없는 용어다.
즉, 장애우라는 표현은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비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장애인을 사회집단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의 우(友)의 의미가 장애인을 주체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비장애인 중심의 시각으로 장애인도 우리의 친구 또는 이웃으로 함께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대상화 시켜 결국 장애인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즉 장애인을 당당한 인권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그 중심에 있지 못한 주변부의 베품의 존재로 동정과 사랑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장애인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왜곡된 장애인관을 형성시킨다.
용어는 사회적, 시대적 상황에 의해 변화합니다.
80년대말 사용하기 시작한 장애우라는 표현이 그 시대에 사회적 삶의 수준과 환경에서 문화적 운동차원에서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한 단체의 운동적 차원에서 표현한 장애우라는 용어가 장애인에 대하여 왜곡된 장애인관을 심어주고, 장애인 인권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와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장애우란 표현대신 법률용어로 확정된 장애인을 사용하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을 지칭하는 올바른 표현으로 동정적이고 주관적이며 비주체적인 인식을 가져다 줄 우려가 있는 장애우의 사용을 자제하고 인권적이고 객관적이며 주체적인 장애인으로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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