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전례음악봉사자 대회
주제 : 전례음악으로서 CCM과 국악의 가능성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성음악분과위원회
기조강연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위한
성음악의 역할
이 한 택(주교․전례위원장)
1. 들어가는 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이후로 교회는 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전례 개혁에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적응(aggiornamento)과 쇄신(rinnovamento)을 기치로 하여 교회는 전승되어온 소중한 보화를 발굴하여 시대에 더 적합한 새 예식서를 제정하고 온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왔습니다. 1967년에 시작된 이러한 예식서의 편찬 작업은 현재까지 지속되어, 2002년에는 공의회 이후 세 번째로 미사전례서(Missale Romanum)가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급속도로 변화되고 있는 현대세계 안에서 더 바람직하고 적합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교회의 노력 안에서 우리는 전례 예식서가 지속적으로 개정되고 출간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가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이므로1) 이 귀중한 전례에 보다 더 능동적으로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다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2)
전례의 토착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음악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음악은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이끌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음악 안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문화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음악은 더 거룩하게 예식에 참여하도록 신자들을 북돋아 주고 이끌어 줌으로써 전례를 풍요롭게 꾸며준다고 공의회는 말하고 있습니다.3)
20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 가톨릭 교회는 값진 음악적 유산들을 보존 육성하여 왔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그 가치를 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러한 교회의 모범에 따라서 전통음악의 유산을 보존하고 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는 전례음악을 창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성음악을 위한 한국천주교회의 노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성음악의 중요성과 가치를 거듭 강조하면서 지역교회가 이를 보존 육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을 공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오로지 선교에만 온 관심과 힘을 기울여야 했던 탓으로 성음악 분야에서 커다란 진척을 이루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지난 30여 년을 돌아볼 때, 보편교회의 풍부한 음악적 유산을 상속하기 위한 역량도, 새로운 전례음악을 개발하기 위한 역량도 우리 한국 교회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공의회 이후 한국교회는 전례서를 출판하고 미사를 위한 단순한 성가집을 발간해 내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신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하게 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인적 자원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음악 분야에서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이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2005년에 처음으로 전국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를 개최하여 오늘 그 세 번째 대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대회에서는 한국의 전례음악을 위한 세 가지 주요 과제를 찾았는데 그것은 ‘전례음악 지침서 제정’, ‘전례 성가집의 발행’, ‘전례교육 체제 구축’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한국 천주교회 미사 전례음악 지침을 주제로 하여 두 번째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 대회 이후에 곧바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산하에 성음악분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위원들의 열의에 찬 활동에 의하여 가시적으로 많은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 성음악 분야의 주요 과제인 <한국천주교회 성음악지침>은 성음악분과위원회가 지난 1년 반 동안 힘을 모아 노력한 결과 초안을 거의 완성시켜가고 있습니다. 또한 성음악분과위원회는 성가집 간행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첫 작업으로서 한국천주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성가를 이미 자료화(data base)하였습니다. 이제 자료화된 곡을 선별하고 부족한 성가를 공모하여 전통과 현대, 교회음악과 우리의 고유음악이 아우러진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가집을 주교회의의 인준을 거쳐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출간할 예정이라니 저도 거기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큽니다. 성가집과 성음악 지침이 완성되면 앞으로 새롭게 작곡되는 노래도 전례성가로 필요에 따라 인준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한국의 가톨릭 성가는 정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3. 전례음악으로서의 CCM과 국악의 가능성 모색
올해 세 번째로 열리는 전국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는 시야를 더욱 넓혀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음악들 안에서 그 주제를 찾아내었습니다. ‘전례음악으로서 CCM과 국악의 가능성 모색’이라는 주제를 올해의 대회 주제로 선정한 것입니다. 이 주제는 다소 논쟁적이기도 하고 또 그 안에는 오해를 살 여지가 다분히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전통 전례음악으로부터 CCM이나 국악을 구별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례음악 안으로 그것들을 불러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시도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기여한다면 어떤 종류의 음악도, 그것이 전례의식의 정신과 각 부분의 성격에 부합하여 회중들이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금지하지 않는다”4)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여러 성당에서 전례용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는 CCM과 국악을 효과적으로 전례음악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이 주제가 선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성가를 통한 찬양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란 이 시대에 통용되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현대음악 양식을 지칭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발전하여 널리 퍼진 교회음악 개념으로서 우리에게는 생활성가, 복음성가, 청소년성가, 테제성가, 젠성가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이 유형의 음악은 이미 전례 거행의 안팎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재즈 악기를 통하여 다양한 비트의 리듬을 사용하며 자유로운 선법으로 노래되는 CCM은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이들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례음악으로 지녀야할 숭고함과 가치는 CCM 안에서도 잘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전례 텍스트의 역할을 성가의 가사가 담당한다고 할 때, 복음과 신앙의 내용과 상관없는 노랫말로 작곡된 CCM 노래들이 전례성가로 사용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례의 집전은 가장 중요한 교회의 사목활동입니다. 이러한 전례가 갖는 사목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교회 안의 다양한 계층을 전례 안에서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인 이 CCM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음악 전문가들은 CCM 분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며, 또한 CCM에 기여하는 음악인들도 교회의 전통음악과 전례에 대해서 연구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완성된 형태의 성가를 제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국악을 통한 전례와 성음악의 토착화
교회는 성음악 분야에 있어서 지역의 전통음악을 배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민족 전통음악을 학교에서나 거룩한 예식에서 장려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배려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5) 실제로 한국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전교와 신자들의 교리교육을 위하여 민족의 음율과 문학유형을 빈번하게 활용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주가사(天主歌辭)’를 만들어 교리교육과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였고 ‘사말(四末)의 노래’를 지어 신자들을 훈육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고유의 가사문학(歌辭文學)이라는 전통에 따라 천주교회 교리를 시조 읊듯이 낭송하였던 훌륭한 토착화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연도(煉禱)는 현재까지도 위령기도로서 전국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은 우리 민족의 얼(魂)과 한(恨)이 녹아든 것으로서 민족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대에 와서 서양음악 중심의 교육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조금 유리된 듯도 보이지만 우리 민족의 감성의 뿌리를 이 국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국악에도 다양한 양식의 음악유형이 있으므로 어떤 곡조와 악기가 보다 더 전례음악과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깊고 진지한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에서 볼 때, 로마 전례의 토착화는 성음악 부문에서 가장 뚜렷한 업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전통의 음악인 국악의 장단과 운율을 성음악 훈령이 제시하는 범위 안에서 적절하게 교회의 전례에 접목시킬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전례 토착화 작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성음악의 중요성
전례 안에서 성음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만큼 성음악은 신자들을 전례 안으로 몰입시킬 수 있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음악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공통된 의무요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목자들은 성가대를 육성하고 성음악 전문가들을 적절하게 기용하는 등, 성음악을 전례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합니다. 사목자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개인적 취향만을 강조하여 전례음악을 구성한다든지, 교회의 전통 선율만을 강조하여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봉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이와 반대로, 회중들이 교회의 전통적인 가치인 그레고리안 성가나 전통 라틴어 성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전례음악에 대하여 언급할 때마다 언제나 그레고리안 성가와 전통 라틴어 성가를 표본과 모범으로 지칭하여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6)
성음악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을 위한 음악봉사에 불림 받았으므로 바람직한 성음악의 창출과 교육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성음악이 전문가 집단을 위한 특수음악이 아니라 회중과 교회를 위한 살아있는 전례음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회중과 전례를 위해 봉사하기에 합당한 품위가 있다면 어떤 유형의 음악이든지 성음악 안으로 초대할 수 있는 개방성과 유연성 또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생활성가나 복음성가로 총칭되는 CCM의 담당자들과 봉사자들은 교회의 전통을 배격하거나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회중을 하느님 나라의 잔치로 보다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작곡하고, 또 필요하다면 진지한 자세로 교회의 풍요로운 성음악 전통을 연구하여 회중이 모두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성음악의 작곡과 보급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리고 전례는 이러한 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을 예배하는 최고의 경신 행위입니다. 공의회는 이러한 이유에서 전례를 하느님 백성을 하나로 모으는 깃발과도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7) 우리가 하나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례 안에서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과 가장 경건한 마음과 가장 사랑스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전례음악 봉사자들은 이러한 정신으로 성음악의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받은 사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5. 나오는 말
한국 천주교회는 2006년 말 현재 11%의 복음화율을 달성하였습니다. 선교 300주년을 앞두고 앞으로 이를 20%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화를 위한 수단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음악입니다. 과거 서양의 음악사가 교회의 음악사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정서에 맞는 전례음악을 창출해 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음악이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위로와 기쁨의 복음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우리도 이 시대에 복음 선포의 한 축을 당당하게 담당해내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전국의 전례음악 봉사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구와 본당의 차원을 넘어서 전국적인 규모로 함께 모여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교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이 밑받침이 되어야 하는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전례에 봉사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시는 성가대원, 반주자, 지휘자 그리고 성음악 봉사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봉사에 대해 하느님께서 넘치는 자애로우심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비록 환경이 조금 어렵더라도 신앙 안에서 그 아름다운 화음의 봉사를 계속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며 여러분들을 하느님께서 평화와 축복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끝으로 이 대회를 준비해 주신 성음악분과위원회 위원들과 이 대회를 빛내주실 발제자, 논평자와 토론자,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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