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回還
(안사돈과 3泊 4日)
- 떠나며
옛말에 사돈을 ‘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라 했거늘......
우리 속담에서도 ‘사돈 모시듯 하다’, ‘사돈네 음식은 저울로 단다.’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와 같은 속담이 떠오른다.
한자어로는 ‘서로 등걸나무에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의 ‘사돈(査頓)’이라고 한다지만 어원이 정확히 고증된 것은 아닌 듯하고, 중국에서는 사돈을 ‘친가(親家)’라고 부른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사돈이란 어휘가 중국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어에서 장모에 해당하는 말은 ‘mother-in-law’라니 일종의 법적계약에 의해 맺어진 어머니라는 것이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편치 않은 관계는 고금이 동일할진데, 한 끼 외식도 아니고 안사돈끼리 3박4일간 12끼니를 함께 하기로 하니 즐거움에 앞서 한편 걱정도 된다.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면 당장 그것이 흉이 되어 자식들 혼인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도 앞서진다. 하지만 사돈을 초월하여 한 여인으로 그리고, 자식을 나누어 가진 어미의 입장에서 서로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며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마무리하는 동반자로서의 좋은 추억과 깊은 이해의 장이 되리라 생각하며 초대에 응했다.
- 제주에서의 첫 날 (5월 4일 수요일, 맑음)
2016年 5月 5日(목), 6日(금), 7日(토), 8日(일) 모처럼의 황금연휴! 가운데 끼어있는 샌드위치 데이 6日(금)을 불과 열흘 쯤 남겨 놓고 급작스레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니 한편에선 신나라 하고, 또 다른 한편의 제조업체 등 납기일로 시간을 다투는 공단과 일용근로자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이미 약속해 놓은 일정이 임시공휴일이 되어 싸지 않은 비행기 표를 구했고, 제주로 가는 항공편은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겸한 가족 여행객들로 적잖이 매우 복잡했다. 날씨까지 불순하여 여름에나 나타나는 때 이른 강풍으로 출항마저 지연됐다.
김포공항에서 하도 복잡하여 2시간 동안이나 자리도 없이 서서 기다린 끝에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공항에서 5000원을 내고 600번 리무진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1시간쯤 걸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하니 안사돈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귀포 E-마트 옆 골목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성게미역국과 고등어구이를 게 눈 감추듯 먹고, 5분쯤 걸어서 사돈이 1년간 빌려놓은 <하와이 빌>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자마자 택시를 불러 올레길 7코스로 갔다. 서귀포 70리의 멋진 바닷가를 달리니 싱그런 바다 냄새가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삼다도의 거센 바람은 머리카락을 휘
집어 헝클어 놓았지만 머릿속만은 더 없이 상쾌해졌다.
시원한 과일주스로 에너지 보충을
하고, 다시 택시를 불러 서귀포의
로컬 횟집에서 싱싱한 고등어회와
복분자 1병으로
“양가의 행복을~ 위하여!!!”
축배를 들고 빌라로 돌아와
긴 하루를 마감했다.
- 둘쨋 날 (5월 5일 목요일, 맑은 오전과 비오는 오후)
업어 가도 모를 만큼 단잠을 자고 창문을 여니 귤꽃 향기가 진동한다.
킁~ 킁~ 코로 제주의 첫 아침을 달콤하게 맞이했다.
아침은 토스트, 요쿠르트, 과일, 커피로 하고 5분쯤 걸어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귀양살이 고달파 한탄하며 “몹쓸 포구라서 모슬포냐?”라고 했다는 모슬포 항으로 약 1시간가량 이동하는 동안 머릿속은 추사와 동행했다.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니 ‘세상에 이렇게 원시적일 수가?’ 기다리는 번호표도 없고 줄줄이 여객 터미널을 빙글빙글 돌아 줄을 서서 무려 3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집에서 9시에 출발해서 오후 1시에 배를 타고 가파도에 도착했다. 상동, 하동으로 된 작은 섬인데,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중간에 가오리를 닮은 섬이라고 한다. 청보리 축제는 막바지에 이르러 어느새 보리는 누런 황색을 띄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파도 보리밭 전경>
- 逍遙加波島 (가파도를 거닐며)
靈壯漢拏吐萬洲 (영장한라토만주) 신령스런 한라산 뭇 섬들 바다 위 뿌려놓고
䱋形加島挽孤舟 (공형가도만고주) 가오리모양 加波島 굶주린 고깃배들 모은다.
薰風海霧藏玄岸 (훈풍해무장현안) 첫 여름 바다 안개 검돌해안 감싸안고
熟麥金波喚白鷗 (숙맥김파환백구) 잘 익은 보리 너울 기러기떼 부르도다.
石堵舊砦陳黃野 (석도구채진황야) 아주 오랜 돌담은 황금 벌판에 구불구불
風車緩翼轉天遊 (풍차완익전천유) 풍차의 느린 날개 하늘 높이 빙글빙글.
姻親相合唱和樂 (인친상합창화락) 양가사돈 주고받는 화합노래 즐거우니
大舶遲來豈促猷 (대박지래기촉유) 대박이 늦게 온다고 어찌 재촉 하오리까.
* 唱和: 한쪽에서 시나 노래를 부르고 다른 쪽에서 화답함.
제주도로 회항하는 배를 타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많이 쏟아졌다. 모슬포항으로 돌아와 택시로 산방산 부근 탄산온천에 들렸다. 비오는 날에 한증막에 몸을 맡기니 그것 또한 색 다른 멋진 풍취로다. 찜질도 하고, 탄산수에 몸을 담구기도 하고, 발 맛사지도 받고 제대로 피로를 풀었다. 온천 앞 식당에서 문어 국수로 저녁을 먹고 귀가하니 오늘도 멋진 하루였다.
- 셋째 날 (5월 6일 금요일, 비 개인 후 맑음)
밤사이 비가 내리고 아침이 되니 다행히 비는 그치고 안개는 자욱하고 조금 흐렸다.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더니 안사돈이 이것도 큰 복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했더니 엉또 폭포가 있는데 평상시에는 낭떨어지 절벽인데 비가 와야 폭포가 된다고 한다.
비온 다음 날에만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비의 양에 따라 폭포의 양이 정해지는데 떨어지는 물의 양을 보니 어젯밤 비가 제법 많이 왔나보다.
무인 셀프 엉또 카페에서 대추차를 한 잔 마시고 근처의 本態박물관으로 갔다.
「안도 타다 오」라는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다.
박물관 중앙에 우리 전통의 한옥 담장이 기와를 머리에 얹고 소박하게 이어져 현대와 전통의 어우러짐이 절묘하다. 박물관 담장과 담장 사이의 바닥에 물을 깔아 물에 비치는 담장의 그림자와 빛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다.
박물관 안에는 갖가지 의상, 목 가구, 보자기, 소반 등 우리 옛 여인들의 손끝에서 나왔거나 혹은 손때가 묻어 있는 전통 공예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단순함과 정교함, 소박함과 화려함이 대비되는 동양의 美를 감상하며, 일상생활에서 조차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 경계하는 중용의 한 가지 지혜였을까? 음양의 조화를 엿본 듯 했다.
건물을 옮겨 빨간 머리 「쿠사마 야요이」의 황금 호박 모형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천연색 화려한 물방울 모양 속에 숨어 담긴 그녀의 병적 정신 상태를 슬퍼해야할지? 독특한 예술 세계를 이루어냄을 축하해야 할지?’ 머리를 갸우뚱해본다.
병적인 증세를 넘어 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삶이 진정 극복과 승화라는 인간 승리인 것일까?
물과 거울과 빛과 색이 변하는 점들로 된 작은 방에서 황홀함을 체험하고, 잘 가꾸어진 후원으로 나오니 16,000원이나 받는 입장료가 이해가 된다.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박물관 가까이에 있는 노아의 방주를 상상한 물위에 지은 방주교회를 한 바퀴 천천히 걸어 돌아보았다.
서귀포 시내에 네거리 식당이라는 곳에서 제주산 소주를 반주하여 싱싱한 갈치국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동쪽으로 이동하며 제주 신공항 부지라는 곳을 지나 섭지코지(涉地岬)로 갔다.
제주말로 “좁은땅”이라는 뜻이란다.
절벽을 따라 기암괴석들이 마치 수석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해변을 걸어 과자의 집으로 변해 있는 영화 ‘올인’의 성당을 지났다.
아이들처럼 즐겁게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다는 봉화대를 지나 등대 전망대에 올라갔다. 하늘과 이어진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바라보니 어찌 이리도 아름다울까?
마음 역시 아름다워지는 듯했다.
다시 대절한 택시(종일 13만원)로 성산 일출봉으로 향했다.
일출봉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독특한 바위를 만나면 잠시 서서
감상하며, 숨도 고르고......
안사돈 신혼여행 때 구두를 신고
올라갔다는 풋풋한 신혼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우리 아이들이 그 신혼이니 세월이 언제 어디로 갔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일출봉 정상에 올라 웨딩드레스의 레이스 자락 같은 흰 파도를 바라보며 땀을 식혀 내려왔다. 돌아오는 길에 쇠소깍이라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안개에 젖은 전설의 물가에 들렸는데 안개속이라 희미하니 오히려 신비로웠다.
빌라 근처에서 택시를 돌려보내니 어느새 6시30분이 되었다.
이른 듯 한 저녁식사를 제주산 흑돼지 5겹살 식당에서 점심에 반주하고 남긴 소주로 다시 반주하니 둘이 하루 종일 소주 한 병을 비우는 주력에 마주보고 씨~익 웃고 말았다. 역시 육지에서 먹는 고기맛과는 또 다른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니 어김없이 과식으로 이어지고, 숙소로 바로 가기에는 위에 부담이 된다는 핑계로 근처 노래방에서 목청 높여 창가를 읊어대니 이것이야 말로 “둘이서도 잘 놀아요!”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어느새 마지막 밤이......
- 마지막 날 (5월 7일 토요일, 맑음)
오후 2시에 예약된 김포 행 비행기를 타려면, 이른 점심 후 출발해야 하는데 제주의 이곳저곳을 더 보고 떠나게 하고 싶은 안사돈의 마음은 바쁘고, 그 마음에 나는 더욱 감사했다. 다시 반나절 대절 택시를 불러 이중섭 거리로 갔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선생의 <붉은 소> 작품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제주의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 기념관으로 가니 [笑啞山寶] 간찰 5770점을 帖으로 만든 편지글 전시회가 있어 제주여행의 畵龍點睛같은 시간을 보냈다.
眺帆山房은 유족의 기증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는데, 1층의 생활공간은 유품 전시실로 구조 변경하였다 하고, 2층은 선생님께서 글씨 쓰시는 생전의 모습으로 된 인형이 창작공간을 지키고 계셨다.
안사돈은 올레 시장에 들려 옥돔과 민어를 한 상자 크게 만들어 내 손에 들려주었다. 시장 안 식당에서 오분자기 뚝배기로 점심식사를 하고, 왈종 미술관 앞 카페에서 왈종선생의 복사 작품과 작품을 이용한 다양한 소품을 보며 가격에 놀라 하나도 사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정방폭포의 물줄기를 추억으로
보다가 제주 공항으로 이동했다.
- 다녀와서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내겐 너무나 아파서
생각조차 두려워 덮어둔 시간이 있다.
그때의 절망과 지금의 희망이 담긴
회환의 정방폭포에서 안사돈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의 감회를 담아본다.
<정방폭포>
나는 맑은 샘 !
늘 시원하고 맑아 수초와 물고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시냇물.
유유자적 흐르다 갑자기 벼랑을 만나 호수가 아닌 바다에 빠졌다.
짜거워! 거칠어! 무서워! 싫어싫어!
외치는 파도.
나는 농공용수 !
논에서 벼 자라나게 하고,
공장에서 열 식히던 물.
갑자기 벼랑을 만나 수직으로 낙하해 강이 아닌 바다에 빠졌다.
시원해! 재미있어! 부딪쳐라! 깨져라!
정화되는 파도.
들을 만나 흐르는 것도, 낮은 곳에 고이는 것도 내가 원한 것 아니고,
졸지에 벼랑을 만나 민물이 짠물에 섞임 또한 내가 원한 것 아니지.
나는 샘물이 아니고 용폐수라 생각하기로 한 그때부터 살 수 있었고,
정화되어 더 큰 물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살아낼 희망이 되었다.
안사돈 이숙이씨 !
그때 우리를 잘 봐줘서 정말 고맙고,
사돈하자고 손 내밀어 줘서 더욱 고맙습니다.
- 2016.05.20.- 如賢 황선희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작년에 제주도를 다녀왔지만
또 연상케 됩니다
못 간 곳을 여기서나마
간접적으로 보니 또 다시
살펴보아 집니다
"다녀와서" 문단은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와 닿기도하고 , 제 삶을 비추는 듯
전환점이자 낙천적으로 승화되어가는
현실에 만족하며 안빈낙도 의 생활에
위로가 됩니다
저도 미래에 멀고도 가까운 사돈지간의 여정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