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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산행 일기/사진 스크랩 청산도 여행 ① : 느림의 풍경을 한눈에 담아보고파 보적산에 오르다.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290 17.06.13 18: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청산도(靑山島) 여행 #1 : 보적산(寶積山, 330m) 산행

 

산행일 : ‘17. 4. 22()

소재지 : 전남 완도군 청산면

산행코스 : 도청항당리읍리 큰재보적산(331m)범바위(238m)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청산도는 전남 완도에서 19.2km 떨어진 다도해 최남단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경관이 유난히 아름다워 예로부터 청산여수(靑山麗水) 또는 신선들이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 하여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청산도는 1993년 영화 '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섬이다. 하지만 2006'봄의 왈츠'라는 드라마의 아름다운 화면으로 접하기 전까지는 낚시꾼들이나 찾는 외진 섬이었다. 드라마 촬영 이후 한국관광공사에서 대대적인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 사전답사 여행)를 시작했고, 각종 매체를 통해 청산도의 유채꽃 사진이 널리 퍼지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섬은 아시아 최초(2007)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바 있다. 이를 계기로 2009년 부터는 '느림은 행복이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세계 슬로우 걷기 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빠른 변화가 오히려 느림이 행복인 세상을 만든 셈이다. 섬에는 남쪽 최고봉인 매봉산(鷹峰山, 385m)과 보적산(寶積山, 321m), 북쪽에는 대봉산(大鳳山, 334m)이 솟아 있다. 이 셋에다 오산(烏山, 333.5m)과 대성산(大成山, 343m), 대선산(大仙山, 311m) 등을 포함해 청산기맥(靑山岐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C’자 형으로 생긴 기맥 전체를 종주해 보는 게 옳겠지만 오늘은 읍리큰재에서 산행을 시작해 본다. 주어진 시간이 적은 관계로 그중 경관이 가장 뛰어나다는 보적산과 범바위 일대만 한정해서이다.

 

오는 길 : 청산도로 들어가려면 먼저 한반도(韓半島)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완도까지 와야만 한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배가 완도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남해(영암-순천)고속도로 강진무위사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를 이용해서 완도까지 오면 된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배편은 완도항에서 아침 6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주중 하루 8, 주말엔 하루 12회 왕복 운항한다. 배시간은 대략 50분 정도 걸리는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4월을 제외하고는 운항횟수가 줄어든다고 하니 참고할 것이다.

 

트레킹의 시작은 도청항(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완도에서 청산도는 남쪽으로 19, 완도항을 출발한 배는 50분이 지나면 청산도의 관문인 도청항에 도착한다. 청산면의 소재지로 면사무소는 물론 파출소와 우체국, 금융기관 등 모든 편의시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뱃길로는 50여분 거리다.




배에서 내리면 예쁘게 생긴 조형물 하나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달팽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가운데에 두고 느림보의 섬청산도라고 적은 두 개의 기둥을 양편에 세웠다. 이곳 청산도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선정된 '슬로시티(Slow City)'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슬로시티는 치타슬로(Cittaslow)‘, 즉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이탈리아어이다. 출발은 느리게, 먹는 것도 느리게, 모든 것을 '느리게 살기' 운동이다. 빠르게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삶에 반대되는 운동이이라고 보면 되겠다.



청산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차량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 섬내 주요 관광지들을 편안히 둘러볼 수 있는 순환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이다. 당일 승차권(1일권)을 한 번 구입하면 자신이 원하는 관광지와 슬로길을 걷고 체험하면서 버스시간표에 맞추어 몇 번이고 탈 수 있다. 순환버스의 이용요금은 1일권으로 성인 5,000, 학생과 할인 대상자는 3,000원이며, 45인승 대형버스 2대가 110(주말 12) 30분 간격으로 주요 관광지를 순환 운행한다. 이때 문화관광해설사가 함께 탑승하여 청산도의 자연경관과 문화를 자세히 안내한다.



길가에 시간으로 보는 청산도라는 거대한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지정(1981)‘, ’아시아최초 슬로시티 선정(2007)‘, ’구들장논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2014) 등 기원전(청동기시대)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시간대별로 적어 내려간 다음, 맨 아래에다 올해의 행사인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4.1~4.30)‘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축제기간이었던 모양이다. ’느림은 행복이란 주제로 노란 유채와 청보리 물결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매년 4월마다 열린다는 그 축제 말이다. ’세계 슬로우 걷기 축제라는 이름으로 2009년부터 열었다고 하니 벌써 9회 째가 되었나 보다.



화장실마저도 달팽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래 이 섬은 모든 개념을 '슬로시티(Slow City)'에서 찾아보려는 모양이다. 이 운동의 목적은 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전통문화의 보호, 사람이 사는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처럼 찾아온 청산도, 그들이 내걸고 있는 목적을 가슴에 새기고 청산도판 둘레길인 슬로길을 걸어보자.



느림의 종도 보인다. 여행객들에게 슬로길 걷기의 시작을 알리고 느림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위해 설치하였다는 종이다. 센스(sense)가 넘치는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슬로걷기를 시작하겠다면서 종을 울리고 있다. ’느림보의 미학을 추구라도 하려는 양 최대한 여리게, 동작 또한 최대한으로 늦추어보려는 낌새가 역력하다. 저런 여유와 낭만‘, 내가 그녀를 선택했던 이유이다.



슬로길 안내판을 따라 도청항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임권택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년 작)‘에의 촬영지로 유명한 당리마을 방향이다. 축제기간이어선지 여행객들의 숫자가 여느 유명관광지에 못지않게 많다. 그런데 그들의 발걸음은 결코 느리지 않은 것 같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선정된 청산도에서, 그것도 슬로걷기 축제에 기간에 슬로길을 걸으면서도 말이다. 한꺼번에 청산도의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패스트(fast), 패스트'로 나서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슬로길의 첫 번째 구간은 미항길과 동구정길, 그리고 서편제길, 화랑포길로 나뉜다. 하지만 당리로 들어가는 길목은 갤러리길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도로가에다 청산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한 사진들을 게시해 놓은 것이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닷가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도락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U’자 모양 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닷가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앞바다에는 전복양식장이 가득한데 그림 속의 또 다른 비경으로 나타난다. 하긴 SBS-TV에서 피노키오(2014.11.12.~2015.01.15.)’의 촬영지로 삼았을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당시 드라마에서 이곳은 향리도로 등장하는데 성장과정의 두 주인공 달포(이종석)와 인하(박신혜)가 풋풋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곳으로 그려졌다.



슬로길 주변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 조그만 틈이라도 날라치면 작은 공원(公園)으로 꾸며놓았다. 야자수 등의 열대성 식물들을 심어 남국의 풍취(風趣)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벤치와 전망대를 배치하고 가끔은 정자(亭子)도 들어앉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데크길에는 시판(詩板)들을 부착해 여행객들의 감성을 자극해준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에 푹 빠져들면서 서정적인 시들을 익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러니 걸음에 속도를 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슬로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꾸밈이 아닐까 싶다.



20분쯤 걸었을까 당리마을 앞에서 길은 두 갈래 나뉜다. 오른편은 서편제촬영지와 봄의 왈츠촬영지를 거쳐 화랑포로 연결된다. 이따가 둘레길 답사 때 들를 예정이므로 이번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잠시 후 골목 안에 서편제세트장이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초가집 한 채가 나타난다. 안에는 유봉과 송화가 마루에서 창 연습을 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동호는 토방(방에 들어가는 문 앞에다 약간 높고 편평하게 다져 놓은 흙바닥을 이르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 서편제는 판소리라는 한국 전통 예술의 놀라운 정서적 감화력과 한국 민중의 뿌리 뽑힌 삶, 그리고 고립되어가는 한 예술가의 광기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녹아든 슬프고도 잔혹한 작품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어른의 키로 한 길쯤 되게 쌓아 놓은 담벼락을 만난다. 최근에 복원된 청산진성(靑山鎭城)이라는데 성벽치고는 너무 낮은 것 같다. 청산도에는 조선 숙종 때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되었다. 그 후 1866년에 청산진이 설치되어 강진, 해남, 완도 일대를 관장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는 관망대와 봉화대를 설치하고 외곽에 성을 쌓아 각각 동문, 서문, 남문을 두었다고 한다. 1895년에 진이 없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성곽은 2010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른다. 잠시 후 읍리마을 입구에 이르니 버스정류장이 눈길을 끈다. 정면 벽면에는 '태고의 신비 읍리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읍리마을의 오랜 숨결을 한 마디로 표현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벽화(壁?)도 그려져 있다. 2010년에 김상일 화백과 청산회원들이 그렸다고 한다. 벽화에는 이 마을을 대표하여 모델이 된 주민 양문수 할아버지도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렸던 2010년 당시에 90세의 양문수 할아버지보다 더 연세 드신 분이 있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가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청산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김상일 화백은 청산도의 이곳저곳을 틈틈이 다니며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물론 하나 같이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에는 고인돌(支石墓)과 하마비(下馬碑)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둘을 함께 묶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6호로 지정한 소중한 문화재이다. 하마비는 민간 신앙과 불교가 결합한 것으로 자연석에 부처를 새겼는데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이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으로서 겸허함을 생활로 삼았던 섬사람들이 빚어낸 소중한 보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마비의 뒷면에는 마애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민속 신앙과 불교가 하나로 어우러진 형태라고 한다. 혹자는 이 하마비를 선사 시대 때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선돌'로 보기도 한다니 참조한다. 참고로 하마비는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 놓은 비로, 누구든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표시다. 왕릉을 비롯한 사찰, 향교 등에 하마비가 있었다.




고인돌은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괴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고인돌은 밑에 기둥이 있는 북방식 고인돌과 기둥이 없는 남방식 지석묘로 나뉜다. 읍리 고인돌은 남방식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독배기'라 부르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선사시대의 석기(石器) 유적이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청산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원래는 16기가 있었지만 20여 년 전 도로공사 때 흐트러져 지금은 3기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는 읍리마을 앞을 지나면서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이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에는 고갯마루에다 올려놓는다. ’읍리큰재(이정표 : 보적산 1.9Km, 범바위 3.0Km, 말탄바위 3.7Km, 권덕리마을 4.8Km)이다. 큰재는 청산도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이다.



산속으로 들어선다. 널따란 길은 걷기에 딱 좋을 만큼 가파르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마침 주어진 시간까지도 느긋하다. 모처럼 느림의 미학을 ?아볼 요량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힐링느림이란 단어가 가장 한 유행어가 되는 시대가 됐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유행의 물결 속에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대신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거니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느리다는 것은 속도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여유이다. 바쁜 도심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청산도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여행자들 중의 한명이 되어있다.




널찍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르면 풀내음과 바다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이래서 청산도를 일컬어 하늘과 땅, 바다가 푸른 섬이라 하는가 보다. 그렇게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넘으면 20분 후 청계?구장마을 분기점’(이정표 : 보적산0.8Km/ 구장리 보적산장1.6Km/ 청계리 장기미2.7Km)을 만난다. 청계리와 구장리가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 근처는 편백나무 숲을 조성했다. 그다지 굵지는 않지만 숲을 거쳐 오는 바람결에는 편백향이 가득 담겨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하지만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길이 너른데다 계단을 놓아 속도만 내지 않는다면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전위봉이라 할 수 있는 바위봉우리에 올라선다. 청산기맥의 힘찬 줄기와 청산도의 동?서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고성산에서 대선산과 대성산을 거쳐 대봉산으로 이어지며 섬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가 섬 북쪽을 가로막은 채 기운차게 솟아올라 있고, 동쪽으로는 청산도의 최고봉인 매봉산이 암팡진 형상으로 솟아 있다. 그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역시 바다가 아닐까 싶다. 바다 건너에 육지가 보이는가 하면 남쪽으로는 망망대해(茫茫大海)가 끝없이 펼쳐진다.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으로 향한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보적산(寶積山) 정상에 올라선다. 읍리큰재에서 50분 정도 결렸다. 물론 느림보 걸음으로 걸어서이다. 보적산은 온전한 흙산은 아니다. 그렇다고 바위산이라고 볼 수도 없다. 바위와 흙이 어정쩡하게 섞여있다고 보면 되겠다. 정상에는 각진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 말고도 서툴게 쌓아올린 케언(cairn)이 하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쌓인 돌들마다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들이 알알이 영글어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섬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다. 잠시 후에 들르게 될 범봉과 전망대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섬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볼 수가 있다. 둥글둥글한 산은 부드럽게 구릉(丘陵)으로 내려오고, 포근한 그곳에는 어김없이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청산도란 이름처럼 하늘과 바다, 심지어는 들판까지도 온통 푸른빛이다. 참으로 고요하면서도 평화롭고, 그리고 아름답다. 그래서 보적산(寶積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청산도가 빚어놓은 보물창고라는 의미로 말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어온다.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슬로시티가 추구하고 있는 모토(motto)에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들의 한가함에 동화라도 된 듯, 우리부부도 다른 편에 있는 바위에 자리를 잡는다. 준비해 온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시간을 죽여 볼 요량이다. 그러다 취기(醉氣)라도 돌라치면 창()이라도 한 곡조 구성지게 뽑아볼지 누가 알겠는가.



망중한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정표는 없지만 범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쉬엄쉬엄 10여분 줄달음쳐 내려가면 범바위 삼거리 길이다. 차량 통행이 가능한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 전망대 주차장’(이정표 : 범바위 입구 300m, 전망대 입구 300m)에 이른다. 이곳도 달팽이화장실이 지어져 있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에서 슬로길로 걷고 있으니 최대한 늦게 걸어보라는 의도인 모양이다. 본디 달팽이라는 게 느림보의 상징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앞에 서있는 버스가 왠지 눈에 거슬린다. 버스란 게 본래 빠름의 상징일지니 느림보 달팽이와는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겠는가.



주차장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널찍한 오른편 우회로(迂廻路)는 전망대와 범바위로 이어진다. 그러나 작은범바위를 둘러보고 싶다면 능선을 치고 올라야 한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작은범바위로 향한다. 올라가다보면 시야가 훤하게 트이는 전망바위를 만난다. 산비탈을 비집고 들어선 다랑논들이 조망되는 곳이다.



다랑논들을 당겨보았다. 이곳 청산도에서만 발견된다는 400년 역사의 구들장논일 것 같아서이다. 다랑논이 비탈진 산골짜기에 계단식으로 층층이 만든 좁고 긴 논이라는 점에서는 구들장논역시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일반적인 다랑논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온돌 문화를 활용해서 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어 불기운이 방바닥 밑으로 퍼지도록 하는 난방장치로, 구들장은 불길과 연기가 통해 나가는 길인 방고래 위에 덮어 바닥을 만드는 얇고 널찍한 돌을 말한다. 구들장논은 앞에서 말한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돌로 구들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논을 만든다. 그렇게 하면 구들장 위의 흙으로 인해 논의 물이 잘 빠지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물은 아래쪽 논과 돌 틈으로 흘러내린다. 돌이 많아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섬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들장논은 청산도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네 조상의 애환과 지혜가 담긴 독특한 농법이다. 그런 점을 인정받아 2013년에는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144월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집단지로 부흥리, 양지리, 상서리 등 3개 마을에 약 5ha가 현존하고 있으며, 구들장 논에서는 주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 그 어느 곳보다도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단다.



조금 더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범의 형상을 닮았다는 작은범바위이다. 일정한 거리에 멈춰선 채로 요리조리 살펴본다. 그리곤 한 바퀴를 빙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갸웃거리는 내 머리는 멈추어지지를 않는다. 호랑이의 형상이 그려지지를 않는 것이다. 조선 개국초기의 승려인 무학대사는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는 말을 남겼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뜻이다. 이로보아 삶에 대한 내 깨우침은 아직도 멀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월하게 찾아낸다는 호랑이의 모양새까지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작은범바위근처에서의 조망도 뛰어나다.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너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가 하면 조금 전에 올랐던 보적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아까 만났던 바위들은 다 어디가고 순수한 육산(肉山)의 행색을 하고 있다. 산의 생김새 또한 두루뭉술하다. 하지만 반대편 아랫마을에서 올려다 볼 때에는 뾰쪽하게 나타난단다. 그래서 뾰쪽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니 참조한다. 아무튼 누군가는 보적산(寶積山) 정상에서의 조망을 일러 청산제일경(靑山第一景)’이라 했다. 하지만 이곳의 조망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남쪽에는 의자를 배치했다. 둘이 앉게끔 했으니 연인들에게 안성맞춤이겠다. 의자에 앉으면 발아래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 청산도에 속해있는 부속 섬인 상도일 것이다. 그 너머에는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작은범바위를 둘러봤으면 이젠 제대로 된 범바위를 만나볼 차례이다. 하지만 그 전에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다. 중간 지점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이다. 섬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니 어찌 안 올라볼 수 있겠는가.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 모양으로 지어진 전망대는 이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은 차와 간단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맥주나 아이스크림도 파는 것은 물론이다. 달팽이의 껍질을 타듯이 빙글빙글 돌아 위로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의 안쪽에는 유리로 룸(room)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소망나무라고 한다. 그렇다면 빽빽하게 매달려 있는 저 종이들은 소망엽서일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범바위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호랑이처럼 생겼다는 바위이다.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람이 세차게 불 때에는 바위틈을 지나면서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낸단다. ‘범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바위를 향해 포효한 호랑이가 울림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더 크자 다른 힘센 호랑이가 살고 있나보다 하고 섬 밖으로 도망쳐버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반대편에는 작은범바위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전망대를 가운데에 놓고 크고 작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자기 것이라며 다투고 있는 모양새이다.



전망대 앞 데크에는 우체통을 만들어 놓았다. 청산도에서는 편지까지도 느려 훗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한다. 우체통에 편지를 써서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고 하니 느림보 우체통인 셈이다. 우체통 너머로는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범바위로 다가간다. 범바위는 바위가 뿜어내는 강한 자기장이 휴대전화나 나침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의 바위로 알려져 있다. 광장에는 이와 관련된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한복판에 원형의 탁자를 배치하고, 양쪽 옆에는 삼각(三角)으로 된 의자를 놓았다. 그리고 맨 앞에는 이것들에 대한 안내판을 세웠다. ‘생기의 삼각의자움직이는 나침반이란다. 이곳 범바위 주변이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기()가 흐르는 곳이라서 삼각의자에 앉을 경우 생기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가운데에 있는 회전판인데 조심스럽게 돌려보면 강한 자기장의 영향으로 나침반이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단다. 예로부터 범바위 부근 해역(海域)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했던 곳이라고 한다. 선박의 나침반이 빙글빙글 돌며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란다. 그런 범바위의 센 기()’를 받아가라며 삼각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범바위 앞 광장은 또 다른 전망대이다. 남쪽으로 외롭게 솟은 여서도 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지는데, 맑은 날에는 구문도와 제주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하늘도 바다도 치우침 없이 서로 조화롭고 고르게 공간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늘은 바다를 닮고, 바다는 하늘을 닮았다. 아련하고 아스라한 것은 엷게 낀 해무(海霧) 덕분이 아닐까 싶다.



반대편에는 권덕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청산도 내에서도 오지(奧地)로 분류되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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