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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 (宵火)고은영
그해 겨울은 메밀묵 장사가 늦은 밤거리 목각을 두들기며 눈 쌓인 거리 외로운 골목의 밤을 도는 것이었다 "메에~미~일 무~우욱~ 찹쌀 떠어억~"
그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사라졌다 다시 크게 들리고 방범대원 호루라기 소리보다
내게 훨씬 큰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눈이 몹시 오던 어느 날 뉴욕의 쎈트럴 파크에 있는 스케이트장 링크에 서있는 변호사 올리버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세상을 떠난 부인 제니퍼를 떠올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1970년 알리 맥그로우, 라이언 오닐의 주연인 러브스토리가 극장가에서 대박을 날리고,
크리스마스 즈음에 자정이 넘은 거리는 적막한 침묵과 더불어 눈 내린 거리가
꽁꽁 얼어붙은 밤 하늘엔 유독 차가운 달빛만 서늘한 미소로 일관하고 있었다.
청춘의 심벌에 물컹한 사념은 열네 살 계집아이에게도 쓸쓸하기 이를 데 없이
끝도 모를 밤거리를 헤매며 사랑을 꿈꾸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그 싱그러운 젊음 위에
러브스토리는 흰 눈과 더불어 아름다운 슬픔의 장르로 가슴에 진하게 여울져 흘렀다.
무릎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에 새빨간 털 모자가
잘 어울리는 제니퍼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눈의 요정처럼 빛을 발하고 현대의 비극적인
사랑의 줄거리에 걸린 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처연한 그 슬픈 사랑 앞에 그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이 가슴 에며 간직하던 그것을 오늘 우리는 명화라 부른다.
하버드의 천재, 보수적이고 완고한 재벌의 아버지를 둔 올리버를 만난 제니퍼
겨울 흰 눈 위에서 빚어내던 영화 속의 두 사람의 사랑의 히스토리, 충분히 우리를 울리고도
남을 아름다운 사랑의 줄거리를 보며, 어느 누가 가슴에 그만한 사랑을 키우지 않은
젊은이가 그 시대에 있었을까? 겨울이면, 유독 그 시대는 너무나 가난하여 우리 가슴으로
싸락눈만 산처럼 쌓이던 영혼의 벌판에서 나는 러브스토리를 통하여 또 다른 새로운 사랑의 유형에 눈을 떴고, 두 주인공은 실로 눈물겹게 눈부시고 아름다운 사랑을 수채화처럼 그려 내고 있는 것이었다.
죽음마저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과 비극, 그것은 지난 세월의 흔적을 일깨워 주는
나의 가슴에 애틋한 낡은 회색 필름으로 착색되고 빛이 바랜 채, 내 영혼의 어느 정거장쯤 기억의 내부에 쨍하게 젊음과 소중한 추억으로, 혹은 여름날 소나기처럼 세파에 찌든 내 현실을 말끔히 씻어 주기도 하는 그리움의 한 페이지로 남겨 지고,기억의 창에 가끔 아련한 모습으로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라는 명대사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 가슴에 쨍한 한줄기 빛처럼 내 안에도 화인 되었다.
"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리는 내 입술에서 그해 겨울 방학은 그렇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메밀 무욱~ 찹쌀 떠어 억~" 소리가 늦은 밤마다 오빠의 집 창가로 스며들 때 느끼는,
어떤 차가운 두려움에 온 밤을 밝히며 침묵처럼 굳은 시간을 깨고 거리를 떠돌던
메밀묵 장사의 반복되는 어감과 함께 몸에 스며든 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란
뜻도 모르는 말은, 다섯 살 내 조카마저도 고스란히 외우곤, 어느 자리에서나
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앵두 같이 그 작을 입술로 벙긋거리는 것이었다.
올케와 오빠가 조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무슨 소리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어물어물 그 자리를 얼버무리곤 했다.
겨울이 깊은 만큼 겨울의 달빛도 냉담하고 차갑게 헐벗은 나무 사이로 얼굴을 디민 그 겨울은,
둘째 올케가 둘째 아이를 해산했고, 겨울 방학 기간이라 나는 서귀포에 있는 둘째 오빠 집에서
다섯 살짜리 조카를 돌보고 있었다. 결코, 그 찬란한 사춘기 시절, 어떤 꿈도 접어버린
내 삶의 형편이 더럽게 절망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시기에, 오빠 집에 가기 싫어서
어머니에게 되지도 않는 반항을 하다가 결국은 고스란히 감당하든 불쾌했든 서러운 겨울 방학,
둘째 올케는 사내아이를 순산하고 며칠 지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그 자신의 부유한 처지에 달관 된 사람처럼, 오지랖도 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다섯 살 조카만 떠맡고 돌보는 게 아니라 이제 막 태어나서 얼마 되지도 않은 갓난 아가의
때 거리조차 챙기고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생아가 섭취하는 한 끼 식사의 분량대로 몇 숟갈의 우유를 타고 팔팔 끓여 따뜻하게 식힌
보리차를 따라 우유병을 있는 대로 흔들어 우유와 희석된 젖병을 아가의 입에 물리면
조물조물 힘껏 빨아대는 아가의 작은 입술에 겹치는 생명의 끈질긴 본능, 그것은 살겠다는
가장 강력하고 정직한 인간의 원형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성이 전혀 자라지 않은 갓 태어난
아가의 살갑고 어여쁜 몸짓, 그 리얼리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 중에
가장 아름답고 그것은 숭고하기까지 한 신비로 내게 다가왔다.
시도 때도 없이 오줌과 똥을 퍼 질러 싸놓은 기저귀를 갈면서 방학 동안 친구는 고사하고
내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 전혀 없다는 현실이, 왜 그렇게 그 시간이 내게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다가왔던지.
그때는 TV가 집집 마다 보급되지 않은 시기여서 시골에서는 TV가 없는 집 아이들은 이웃집에서
저녁이면 같이 앉아 TV를 시청하곤 했는데, 이미자가 왕비 같은 의상을 하고 나와 간드러진
슬픈 목소리로 요즘 시쳇말로 천박한 언어로 표현하는 뽕짝이라는 트로트를 부르면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거창한 칭호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어른이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했다. 코미디언 배삼룡이가 나오고, 주말 늦은 밤에는
KBS, MBC, SBS 삼사에서 명화 극장을 상영해 주었으므로 나는 기를 쓰고
흑백 TV에 코를 박고,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모든 영화를 보았다.
길지 않은 겨울 방학 동안 밀린 숙제는 죽어도 하기 싫고, 그냥 애꿎은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낮이면 조카를 돌보고 밤이면 조카들을 재워 놓고 TV 시청에 열을 올리곤 했는데
밤 아홉 시만 되면 정확히 그 시간 그 자리 즈음에서 매일 똑같은 소리로
"메밀 무 욱~ 찹쌀 떠 어~억~ " 겨울을 휘돌아 내리는 시간 위에 목각 소리와 함께 다시 내 안의
작은 공포가 부활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온 밤을 포진하고 내 작은 가슴을 떨게 하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잠이 들 때까지 생애 쓸쓸한 한 편의 단막극처럼
내 가슴에 두렵고, 외롭게 그리고 구슬프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라디오에 서는 밤 열 시면, 어김없이 맑은 목소리 아나운서가 똑같은 멘트로 읊조리던
"청소년 여러분, 이제 밤이 깊었습니다. 여러분, 가족이 기다리는 따듯한 품안으로 돌아갑시다."
질리지도 않고 잔잔한 백 뮤직을 깔고, 반복되었고 그 멘트가 끝나면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타이틀로 팝의 장을 열어 한밤의 음악 편지가 시작되었다.
비틀즈의 노래나 아바의 노래로 겨울 밤이 더욱 깊어지고, 열네 살 그해 겨울, 기억의 단편처럼
지금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추억, 그 시대 그 시간, 사춘기 소년 소녀라면
어느 누구나 밤을 잊고, 되지도 않는 낙서를 하면서 온 밤을 밝혔던 추억이 있으리라.
나는, 그리고 우리는, 밤을 잊고 싶어 잊은 게 아니라.
가난한 가슴에 감성을 건드리며 다가오는 젊음만으로 어떤 새로운 문화에 젖어
넘쳐나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고, 겨울이면 깊은 자리 목에 엎디어 사랑을 그리고,
미래를 유치한 문체로 황홀하게 그려 내고자 했으며, 냉혹한 사회의 제도에 절망하고 있었다.
대학생 오빠들이 서울 곳곳에서 산발한 모습으로 대모 하는 장면들은 마치,
액션 영화처럼, 흑백 TV 화면에 뉴스를 통하여 화염병을 던지고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으로
잠깐씩 비치곤 했는데, 보나마나 그들은 가차없이 정부에 의해 연행되어 갔고, 소문에 들으면
누구는 미치광이가 됐다는 둥, 반병신으로 돌아왔다는 둥, 자살을 했다는 둥
절망적이고 암울한 사회성만큼 슬픈 소식은 끊이질 않았다.
외롭지만 찬란한 시간을 밟고, 우리는 결코 거창하지 않은 가난하나 미래를 희망하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의와 때묻지 않은 사회를 동경하였고,
용기 있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정의 실현과 꿈꾸는 사회의 이상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밤을 잊고, 온 밤을 밝히느라 잡혀가고, 쓰러지고, 분노와 정의의 이름으로
사회를 응징하려던 젊음의 패기는 마치, 아주 작은 날짐승처럼 미약하기 이를 데가 없어
내 눈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습처럼 비쳤다.
짠한 아픔으로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그 시대의 암울하고 하나같이 가난했던 그들은
언제나 내겐, 슬픔으로 어른거렸다.
"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찹쌀 떡 장수의 서글픈 외침 "찹사 알~ 떠~억~ 메 미~일 무~우~욱~"
그럼에도, 나는 창문을 열고 가난한 찹쌀떡 장수에게 한 조각의 찹쌀 떡을 팔아 준 적도
메밀 묵을 팔아 준 적도 없었다. 그때는, 그 소리가 한밤의 귀신의 곡소리처럼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오던 생소한 경험의 소리였기 때문이다.
제주도 성산포에서는(제주에서도 시골 어촌이었음 ) 누구나 찹쌀떡 장사도, 메밀묵 장사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의 어촌은 가난해도 걱정 없이 하루를 버틸 정과 사랑이 숨 쉬는 따듯한 곳이었는지 모른다.
도시의 각박함은 그 시절에도 존재했을 테고, 지금 와서 더욱 각박해 진 인심이나 정은,
시골이나 도시나 별반 그렇게 차이 나지 않게 변해버렸지만, 처음엔 무슨 소린지도 분간이 안 가던
묵직한 그 소리가, 겨울의 조용한 침묵을 타고 흐를 때 느꼈던 공포는, 훨씬 뒤에야
그 소리가 메밀묵과 찹쌀떡 장수가 외쳐 대던 생의 절박한 소리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 허탈한 그 소리의 실체를 깨닫던 순간, 작은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호수 같은 잔잔한 가슴에
파장이 일던 연민과 양심이 중얼거리던 미안함, 사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란 말과
묘하게 매치 되던 메마른 감정으로 외쳐대던 메밀묵 장사의 서글픈 목소리.
방학 동안 특별한 사건 없이도 그 겨울 만은 내게 기억의 선명한 조각처럼 문신 되었고
영화 속에 암으로 죽어가던 한 젊은 여자 주인공의 생을 조명하던 사춘기의 단순한 사고와
현실과 이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눌한 감성으로 사랑을 퍼 나르든 중학교 2학년 계집아이의
생각도 현실도 가난했든 시절, 한없이 약해 빠져 환청 같은 사랑을 그리고,
단호한 이성이나 견고한 삶의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나약한 경험조차
지금은 행복한 추억의 순간이었기에 많이도 그립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 고운 내 삶의 흔적,
그 아름다운 영혼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던 순간들은 어떤 메타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을 지금 와서 어떻게 무엇으로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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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 찹사~알~떠~억~ 메에~밀 무~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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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중고교 시절, 단체 관람으로 봤는 지, 명화 극장이라는 티비 영화 프로그램에서 봤는 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추억의 명화, 저도 봤답니다. 전 예전에 영화를 볼때면 감독, 배우 이름까지 메모해 가면서 부모님 몰래 늦도록 봤었어요ㅎㅎ 그 시절엔 만화도 그리고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돌리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감수성을 키우기도 했구요. 사랑인지 뭔지는 모를, 선생님에게 관심 끌려고 답안지를 백지로 낸 사건과 학교 도착 할때 즈음 버스를 타는 옆동네 한 얼굴 까무잡잡한 동년배 남학생에게 눈길도 줬었고, 그 맘도 모르고 뒷집 1년 선배 오빠는 참고서 빌리는 빌미로 하굣길 날 기다렸다 사귀자고 자전거로 날 가로막아
귀가길이 무서워 어머니께 일러줘 혼나게 했던 기억들이 웃음 짓게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련히 이런 영화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던 시대로 기억됩니다. 남자 친구를 사귈 엄두도 못냈던 그 시절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처럼 순수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론 역시 후회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사랑 부딪혀 사랑하다 이별도 해보다 그렇게 추억이 쌓이고 사랑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처럼 시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고은영 작가님, 제주도 이제는 겨울에 메밀묵, 참쌀떡 장수 있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건안, 건필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