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처럼 루스에서 벧엘이 되는 꿈(2024.1.2. 화. 첫째날 새벽부흥성회)
창28:10-22 찬송:338장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참으로 우리들을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뭐 그리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소식은 없고 오히려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고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서서 주 안에서 나의 죄를 이기고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 기도를 통하여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금년 한해를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승리의 날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야곱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나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속이고 빼앗는 간교한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야곱이 아비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의 나이가 77세였습니다. 야곱은 그 나이가 되도록 항상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불과 1분 차이 때문에 장자가 되지 못하고 장자의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항상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진맥진하여 돌아오는 형 에서를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 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부친 이삭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형에서를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부탁하고 그 요리를 먹은 후에 축복하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 리브가와 결탁을 하여 부친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참으로 간교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 챈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자신이 살던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이 잠들어 있는 벧엘은 브엘세바에서 약 64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이 집을 떠난지 하루 만에 주파한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걷지 않고 달렸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루에 64km를 이동할 수 있을까요? 형의 칼과 창이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몰라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쳤기 때문입니다. 날이 어두웠습니다. 잠을 잘만한 마땅한 곳도 없어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요를 삼고, 반반한 돌을 취하여 베개를 삼고 누웠습니다.
돌을 베고 누운 야곱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어머니를 떠나고 한번도 집을 떠나본 적도 없고, 부모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야곱에게 지금 당한 현실은 너무나 망막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피곤한지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의 꿈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의 꿈이 저와 여러분의 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셨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쫓기고 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아비의 마지막 축복까지 빼앗긴 것을 알고 그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쫓기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잠들려고 누워있는 루스 광야는 참으로 험한 광야입니다. 육식성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고 있으며 땅에는 전갈과 같은 독충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들도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루스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 떨고 있는 야곱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걱정과 근심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 오지도 않을 것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떨고는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2024년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살펴보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146:3절‘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 참 평화가 있고,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예수 안에 평안이 있고, 예수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시려는 고통을 참으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2.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와 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내게 가장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막6:50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에 제자들이 이를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복을 야곱에게도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더하여 주시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우선 야곱의 꿈 내용을 보겠습니다. 창28:12-14절에 보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은 너무나도 기가 막힌 꿈을 꿨습니다. 너무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이런 꿈을 꾼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자기가 누운 곳에서부터 하늘 꼭대기까지 사다리가 섰는데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고,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함께 하고 지키고 돌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꿈을 누가 꾸고 싶다고 꿔집니까? 꿈만으로도 기분 좋고, 꿈만으로도 행복하고, 꿈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것 같은 꿈이죠. 더구나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고, 천사들도 보이고...꿈 내용 중에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 꿈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꼭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꿈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 것을 내가 몰랐구나. 과연 여기가 하늘의 문이로구나 하며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하룻밤 노숙한 지명 이름이 ‘루스’입니다.(19절) 그 뜻은 ‘절망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은혜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루스’에 있습니까? ‘루스’가 변하여 ‘벧엘’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루스’와 ‘벧엘’은 같은 곳, 같은 장소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그곳은 절망의 땅‘루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그곳은 은혜 땅, 축복의 땅, 축복의 장소 ‘벧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상실의 땅, 저주의 땅, 절망의 땅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그 땅이 은혜의 땅, 축복의 땅,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인생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위기에 처할 때마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평생토록 동행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바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로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계자’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런 축복을 약속해 주시는 이유가 그가 잘나서도 아니고, 유능해서도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고, 교양 있어서도 아니고, 재물이 많아서도 아니고, 싹수가 있어 보여서도 아니고, 의로워서도 아니라 그가 그냥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평생토록 동행하시고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겠다고 우리를 택하신 것은 그냥 나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하신 말씀처럼(롬9:13) 그냥 나를 택하시고, 나를 자녀 삼으시고,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결정적으로 찾으신 것이 두 번 있는데, 한번은 본문이고, 또 한 번은 얍복강 나루에서 형 에서가 군사 400인을 데리고 자신을 향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밤이었습니다. 이 두 번 모두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상실의 순간이었습니다.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위기를 맞을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 절망에 맞닥트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심한 상실감에 빠질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맞을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주시고, 야곱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망에 허덕이고 위기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우리의 속사람을 보게 하는 치유의 기회입니다. 위기는 하나님을 보게 하는 기회입니다. 위기는 주님 앞에 낮아지는 기회입니다. 위기는 응답받는 기회입니다. 위기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의 기회입니다. 위기는 축복으로 나아가는 기회입니다.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절망의 땅 ‘루스’에서 돌베개를 하고 노숙하고 있는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루스’가 ‘벧엘’이 되는 꿈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의 세월 끝에 요단강 건너편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시고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수1:5-6절‘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 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41:10절‘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14:1절‘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14: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3일만에 부활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골방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르지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참된 평안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이 예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3.야곱의 꿈이 하나 더 있는데 축복하는 인생이 되고 싶은 꿈입니다.
야곱의 꿈은 하나 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곱의 꿈을 잘 못 알고 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사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대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복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진짜 꿈은 축복을 받는데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에서와 야곱은 바라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에서가 본 것과 야곱이 본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보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에서는 육의 것만 보고, 야곱은 하늘의 것, 신령한 것만 보고 있습니다. 말씀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에서가 본 것들입니다. 창28:6절‘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창28:8절‘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야곱이 본 것들입니다. 창28:12절‘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28:13절‘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우리도 야곱과 같아야 합니다.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심으로 가득차서 닳고 닳은 모습으로 사는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받을까 이리저리 애쓰는 야곱처럼, 순전하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찾아주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왜 이토록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고, 차지하려고 애쓰고 애썼을까요? 재물 많은 것이 좋아서일까요? 인생 편하게 살려고 했을까요? 성공하고 싶어서일까요? 자기만 잘 먹고 잘살고 싶어서일까요? 자손들에게 많은 재물을 물려주고 싶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야곱이 축복을 사모하고 차지하려고 애썼던 것은 축복의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는 인생!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그것이 야곱이 꿈꾸던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실제로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것이 야곱의 믿음생활의 전부였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히11:21절‘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는 야곱의 믿음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축복하고’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이 두 아들 즉, 손자를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48:9절‘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할아버지 야곱은 손자들을 만나자마자 그들을 축복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 사람을 축복하고 싶어 했습니다.
창47장을 보면 야곱이 아들 요셉을 인하여 애굽의 바로왕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곱은 그때도 바로 왕을 축복했습니다. 창47:7절‘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그리고 창세기 49장 전체 내용은 야곱이 죽음의 목전에서 12명의 자기 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축복합니다. 창49:28절만 보면‘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곱이 그토록 장자의 축복을 차지하려고 애쓴 것은 그 자신이 축복을 누리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축복을 받고, 그 받은 축복을 나눠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꿈꾼 인생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축복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처럼 ‘루스’가 ‘벧엘’이 되는 꿈,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꿈을 꾸시기를 축원합니다.
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새벽에 말씀 듣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들은 야곱은 즉시 하나님께 돌단을 쌓고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기름 한 병을 부어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야곱의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16-17절‘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이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낙심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새 힘이 솟았습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졸지도 않으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121:3-6절‘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너무나 감사하여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고 누웠던 돌을 세우고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28:16-19절‘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드린 서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0절‘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고 했습니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1절‘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 하였습니다. 본문 21-22절‘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22절‘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야곱의 기도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야곱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누구도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조부 되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와 노획한 물건 중에서 십일조를 구분하여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때에 십일조 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년 365일중에 오늘이 둘째날입니다. 첫날은 송구영신예배로 드리고 둘째날을 맞이했는데, 주일로 말하면 아직 첫주일이 되기 전입니다. 첫 주일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들은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믿음과 신앙의 잠재력이 있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시며,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오늘의 우리들은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마치 야곱과 같이 사람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배신하고 불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쫓김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광야와도 같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 하여 주시고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광야와 같은 험한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인생, 그리고 지나간 한 해는 루스 광야에 영원히 묻어버리고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믿음이 바로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야곱과 같이 돌단을 쌓아야 합니다. 돌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에 불을 내리셨고 제물 위에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축복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처럼 ‘루스’가 ‘벧엘’이 되는 꿈을 꾸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꿈을 꾸시기를 기도하여 야곱의 꿈처럼 축복받는 인생이 되고, 축복해 주는 인생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셔서 2024년도에는 축복하는 멋있는 인생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