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쟁 ----②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동원은 귀국하는 즉시 문교부를 통하여 그 동안 민족사관이 확고한 젊은 사학자를 추천해 달라고 하였다.
"팀장님 한국대학에서 전인강사를 하는 김대환 교수를 추천했는데요?"
"김대환 교수란 사람 신원파악하고 국가정보원에 협조 의뢰하여 모든 사항을 점검해보도록."
몇 사람의 추천자중 이 동호가 요구하는 성격이 거의 맞는 사람은 김 대환뿐이었다.
젊고 국내학술지에 꾸준한 연구발표 그리고 주변국과의 시대적 교류에 대한 비평을 써 놓은 논문은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번역의뢰가 들어올 정도란 문교부와 학술진흥재단의 설명이 없더라도 동원의 손에 들려있는 사진에서도 남과 타협할 그런 인물이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선민과 같이 명섭의 사무실을 오가면서 자료를 만들고 있던 대환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있는 컴퓨터 개임에 역사적인 시나리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민씨 일본이 만화로 우리아이들을 공략한다면 반대로 우리는 일본아이들은 개임으로 공략하면 안될까?"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런데 그 시나리오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난 그런 건 모르고 만일 일본이 만화라면 우리도 뭔가로 일본을 흔들 그런 무기가 있었으면 해서…"
선민은 대환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했다.
"그러지 말고 이따 저녁에 모이시면 한번 예기나 해보죠 워낙 여러분이 모이는 자리니 혹 알아요 전문가와 연결될 일이 있을지?"
확실히 선민의 말은 언제나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말을 잘도 했다.
저녁 무렵 이 변호사부터 하나둘씩 사무실로 나타났다. 요즘 명섭은 식당 일로 저녁시간에는 거의 사무실을 비워 놓았다 자연히 사무실 주인은 선민이 되어버린 격이 되었다.
사랑방으로 시작한 사무실이지만 처음 의도가 정확했고 모이는 사람들도 남보다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커서일까 모이는 대부분이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크지는 않아도 커피값 정도는 언제나 사무실에 남모르게 놓고 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버렸다.
명섭이 있을 때야 누가 감히 커피를 가져다줄 것을 생각이나 했을까만 서도 선민은 여자였다. 언제나 누군가 들어서면 이름을 불러주고 선생님이란칭호와 커피나 녹차를 내 놓았다.
자연히 오피스텔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대환은 연신 자료를 날라다 선민에게 일을 부탁하고 선민도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열심히 자료를 정리하여 김 교수에게 제공했다.
그날이후 김 교수는 선민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선민의 재치는 김 교수를 다시 망치지 않게 보호하는 편이었다.
학교에서 이상한 전화한통과 학과 사무실에서 교수님으로부터 혹시 정부에 잘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이상한 질문만 듣고 오피스텔로 돌아온 김 교수는 혹시 명섭이 다리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명섭도 재게라면 모르지만 정부관리들하곤 그리 친분이 돈독한 사이가 아니란 사실이 떠올랐다.
모처럼 오피스텔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자꾸 이렇게 식구들이 늘어나면 아예 전문사무실을 만들던지 해야하겠습니다."
이변호사가 처음부터 농담으로 말을 열었다.
"그래요 요즘 같아선 뭐가 좀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김 교수도 열심이지만 선민씨가 있어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준표는 가끔 이런 자리에 자신이 저녁을 산다고 하는 편인데 요즘은 영 바쁜지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런 준표가 모처럼 사무실을 들어서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며칠사이에 이리 식구들이 늘었나?"
"그러게 말입니다."
"야 이제는 밥 산단 소리도 함부로 못하겠네 하하하…"
"참 뭐 좀 하나 여쭈어 볼까하는데요?"
"이야기해 봐요?"
"아까 오전에 김 교수님이 혹 개임 만드는 일이나 이쪽전문가를 아는 분이 있냐고 하시던데요?"
"개임 무슨 개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전자오락이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뚱딴지가 아닙니다. 김 교수님 생각은 일본이 만화라고하는 저변을 이용하여 문화를 잠식하려고 한다면 반대로 우리는 개임을 이용하여 일본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 수 있는 개임으로 도전해 보자는 것이지요?"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듣기에 따라선 좀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친일청산이란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갑자기 문화적이란 이야기를 계속하여 듣다보니 혼선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들 침묵으로 일관할 때 준표가 나섰다.
"정말 괜찮은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나도 일본 개임을 몇 개 수입하여 재밀 좀 보긴 했지만 영 느낌이 안 좋았는데 그 반대라 이야기지…"
"예."
"그렇다면 개임 시나리오는 김 교수가 아웃라인을 잡아준대?"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어요 김 교수님이 직접 말씀해 보세요?"
"뭐 특별한 시나리오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제 생각에는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사람을 소재로 하여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만?"
"아니죠 광개토대왕이야 이야기가 되지만 일본에선 이순신 개임을 누가 하겠어요?"
"선민씨 그럼 뭐가 좋을까?"
"일본을 겨냥한다면 철저한 일본식이 되어야 하겠죠 예를 들어 한일합방이란 주제로 일본 형사가 독립군이나 뭘 잡으면 점수가 올라가는 형식을 만들고 반대로 조선이 일본 순사나 혹은 친일파를 처단하면 점수가 오르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요?"
"그거 참 리얼하겠는데 그럼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찾아봐야겠군."
"잘만하면 자금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권선징악을 꼭 넣어야 하구요."
"선민씨는 아이디어 뱅크야."
준표가 선민과 김 교수의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역을 맞았다. 어차피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 방면이 겸비되어야 하는 일이고 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