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따라 입맛도 간질간질
봄, 봄, 봄. 아침 햇살에 놀라 잠이 깼습니다. 얼마 전에 때아닌 눈이 내리질 않나,
매일같이 비가 오지 않나. 봄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따뜻한 봄볕에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간질간질합니다. 넌 어디서 왔니?
봄은 말없이 남쪽을 가리킵니다. 멀리서부터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온 모양입니다. 이번 주에는 가까이 온 봄을 만나봤습니다.
봄 1
봄이 오는 길목 용원 바다횟집
굴·새조개에 '금테문어'주꾸미까지
빨그레 익은 털게 입안에서 사르르
산과 들에만 봄이 오는 게 아니다. 여자의 가슴에도, 바다에도 봄은 온다. 봄은 군항제의 도시인 진해 가기 전에 있는 용원을 거쳐서 온다. 지금 용원의 어시장에는 봄이 한창이다. 어시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힘이 솟아난다. 용원의 해산물은 가격 대비해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 맛있는 걸 좀 먹어보자. 이강춘 경남정보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로부터 소개받은 곳이 30년 된 '바다횟집'이다.
봄의 진객 '도다리, 털게, 도다리쑥국, 미역국'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손님 맞을 줄 아는 집이다. 용원 스타일은 무 같은 잡것을 깔지 않고 순수하게 회만 올린다. 도다리 뼈째썰기가 맛있어 보인다. 봄이 되면 도다리는 산란기가 끝나고 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사람 같으면 꿀벅지를 갖춘 글래머가 되어간다고 할까. 직접 담근 된장에 찍어먹으니 더 맛이 있다. 굴과 새조개는 가는 겨울을 아쉬워한다. 봄 주꾸미는 고소하다. 주꾸미는 방언으로 '금테문어'라고도 한다. 문어에 금테까지 둘렀으니 얼마나 맛이 있을까. 낙지보다 덜 질기고 오징어보다 감칠맛이 난다. 옛날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다.
또 한 명의 귀한 분이 횡보공자(橫步公子) 털게이다. 우리는 게에게 용기를 배워야한다. 게는 어떤 짐승한테도 집게다리를 쳐들고 용감하게 덤빈다. 털게는 여름부터 가을에는 깊은 곳에, 봄에는 얕은 곳으로 이동한다. 산란기인 4∼5월이면 육량도 많고 맛도 좋아진다. 털게가 익어서 빨그스름해졌다. 그 안에 빨간 알이 가득 찼다. 그래서 미안타.
도다리 쑥국은 길고 음산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이다. 들깨가 풀린 쑥국이 시원해서 좋다. 조미료가 적게 들어서 음식이 순하다. 이날 박기동 대표의 둘째 딸 미진 씨가 손님을 맞이했다. 미진 씨는 봄이 되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단다. 여기까지 찾아 준 손님이 고맙다며 차 바퀴에 묻은 진흙을 다 씻어서 보내던 어머니이다. 봄은 길지 않다.
도다리 한 접시 6만원. 털게 小 3마리 5만원.
진해시 용원동 1064. 의창수협서 200m.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055-552-1950.
봄 2
꽃이 피어 더 좋은 남해 남해별곡
뜨거운 불 위에 꿈틀대는 낙지
통유리 너머로 바다풍경 일품
봄은 남쪽에서 온다. 경남 남해까지 봄 마중을 나갔다. 남해스포츠파크 옆 서상에서 예계 가는 길에는 '남해별곡'이라는 이름난 맛집이 있다. 매화, 개나리, 벚나무를 따라 올라가니 통나무와 황토로 지어진 소박한 집이 드러난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잘생긴 시베리안 허스키가 반긴다. 경치 한번 좋다. 장밋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노을이 일품이어서 해질녘에 방문하는 게 가장 좋단다.
별실에 자리 잡으니 3면이 통유리여서 시원하기 그지없다. 창가에서 보이는 여수쪽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뭘 먹을까. 서대구이 정식(8천원)이나 갈치구이 정식(1만 3천원)도 좋아 보인다. 구이를 잘하는 집이라고 했다. 찰지며 고소한 두부로 만든 우리콩두부보쌈(中 2만 5천원)도 좋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 집의 대표 주자 산낙지가마솥볶음(2인분 3만원)을 안 먹어볼 수 없다. 그래 결심했다! 참, 별미가 한 가지 더 있다. 직접 만든 유자 막걸리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멸치볶음, 미역나물, 동치미, 시금치나물, 해초무침, 파래무침, 호박나물, 김치가 상에 올랐다. 그렇게 정갈할 수 없다. 주인장의 성격이 상 위에 그대로 나타난다.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이 듬뿍 들었다. 진한 유자 막걸리는 새콤한 게 입에 착착 감긴다. 노란 유자로 담았는데 어째서 검은빛이 날까. 노릇노릇하게 구운 서대구이는 최고다. 밥 위에 한 점 올려놓고 먹으니 살살 녹는다. 산 낙지가 등장했다. 낙지라고 하기에는 체격이 커서 돌문어같다. 인근 어시장에서 경매를 받아왔다는 낙지가 뜨거운 불 위에서 꿈틀댄다. 삶의 의욕도 같이 꿈틀댄다. 참 잘 먹었다. 이 집 류경완 대표가 대단한 미식가라더니 역시나이다. 황토방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작은방(3∼4명) 숙박은 5만원. 개나리는 피고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4∼5월이 되어 꽃이 만발하면 정말 좋단다.
남해군 서면 서상리 1640의 1.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0시. 055-862-5001.
봄 3
불을 끄면 벚꽃이 빛나는 청산별곡
초장 찍은 가오리찜 쫀득쫀득
수북한 산채나물 향긋한 내음
산성 가는 길은 부산을 벗어나는,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며칠 뒤면 이 곳은 벚꽃 천지. 봄을 완상하는데 더없이 좋다는 '청산별곡'을 찾았다. 외로운 도심에 등불 하나 내 건 주막 같은 느낌이다. 올해로 25년째라는데 메뉴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단다. 전통을 깨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 오히려 더 고맙다.
따끈한 방 안은 오붓함 자체이다. 대표 메뉴인 가오리찜과 산채나물을 시켰다. 가오리는 참가오리, 정월의 가오리가 맛이 있단다. 가오리찜을 초장에 찍어먹으니 참 쫀득쫀득하다.
커다란 대접에 산채나물이 수북하게 나온다. 종류도 많다. 콩나물, 숙주나물, 겨울초, 도라지, 고사리, 취나물 등 이날은 11종류이다. 가지나물이 빠졌고, 봄이 되면 미나리도 올라온단다. 봄에는 미나리가 그렇게 맛있어진다. 산채나물이 안주로는 최고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소금, 참기름, 통깨 이렇게 딱 3개만 쓴 나물이 고소하다. 호박과 콩나물은 아삭하다.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나물이 포장으로도 많이 나간단다. 안주로 먹다 남으면 밥에다 비벼 먹으면 된다.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말고 내어라." 직접 담근 청주가 한 병 나왔다. 술 맛이 꽤 좋다.
가게 앞 벚나무들은 다음 주면 만개할 것 같다. 안청산 대표는 "처음에 내 키만 하던 벚나무가 지금은 이렇게 큰 나무로 성장했다. 벚꽃이 피면 실내에 불을 꺼도 밖이 환하다"고 말한다. 벚꽃을 청주에 띄워 먹는 운치도 느낄 수 있다. 안 대표가 영화배우 강수연씨와 같이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이때만 해도 참 예쁘다. 방안의 동백꽃, 안 대표가 부르는 '동백아가씨' 노래가 잘 어울린다. 동백이나 목련은 툭툭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벚꽃만은 비가 되어 내린다. 오늘도 봄비가 내린다. 아 봄비!
산채비빔밥 8천원, 가오리찜 2만원, 청주는 한 병에 1만 2천원.
영업시간은 낮 12시∼오후 10시. 매주 일요일에는 쉰다.
식물원 매표소에서 산성쪽 400m. 051-517-5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