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에서 광주를 지나 담양을 거쳐 전라북도 정읍으로
CP는 도착, 출발하는 주자들과 서포터스들로 항상 시끌벅적 하고 공간도 비좁기만 하다. 그래서 긴 휴식을 취하기도 힘들고 시간만 지체할 수 있어 출발준비를 마치고 빨리 갈 길을 재촉하는게 좋지만 피로가 누적되면 어쩔 수 없이 쉬어 간다. 각 지역 울트라 회원들이 짬을 내어 봉사를 맡는데 선두와 후미간 시간대가 넓고 야간시간도 많아 수고 만땅이다. 그래서 부족함이 있더라도 봉사자들의 헌신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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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샤워할 수 있는 곳을 찾으니 화장실의 여유공간이다.
런닝복과 신발은 예비로 넉넉히 가져가지만 바꾸기 보다는 대부분 빨아 입는다. 신발이나 옷이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골인 때까지 바꾸지 않는걸 미신만큼이나 따른다. 그래서 빨래터이기도 하다. 벗은 옷에 비누를 칠하고 그 옷으로 몸을 닦고 물을 끼 얻는다.
어깨, 겨드랑이, 사타구니가 온전한 이가 별로 없다. 신음소리를 참으며 찡그린 표정이 안 스럽다. 런닝복은 대충 짜서 물이 뚝뚝 흐르는 것을 입고서 말린다. 겨우 2~3명만 허용되는 공간이라 뒷 주자를 위해 후다닥 끝낸다.
식사를 하면서 발을 말린다. 마른 수건으로 닦고 부채질도 해댄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발톱 밑이 피멍으로 천당 갔다. 발바닥은 쭈글쭈글 빨래판이지만 발 테이핑을 해선지 다행히 물집하나 없이 온전하다. 평소 물집에는 좀 강한지라 하루를 운 좋게 넘겼다. 온종일 비가 내려 질퍽거리는 신발로 많은 참가자들이 물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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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발이 퉁퉁불은 참가자 >
발바닥을 단련하는 데는 맨발로 트랙 달리기가 좋다. 작은 돌이 많이 있다면 양말을 신고하면 된다. 물집뿐만 아니라 떙빛 아스팔트 길을 달릴 떄, 발바닥이 따갑고 후끈거리는 것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좀이 있다면 꼭 치료해야 한다. 가장 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라토너들 대부분은 무좀이 없지요? 달리기를 하면 무좀이 저절로 없어진다고들 하데요.
시골에 약국이 있을리도 없고, 운영진에게 문의 했더니 준비한 약이 없단다. 서바이벌 대회니 만큼 미리 준비 했어야 할 비상 품목 중에 하나다.
따끈따끈한 남원추어탕, 이게 약인지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다. 허기진 배라 밥은 한 공기 더 시켜 든든히 먹는다.
발 테이핑을 새로이 하고 신발 깔창도 탈탈 털고 휴지로 눌러 물기를 최대한 없앤다.
젖은 양말은 새 것으로 갈아 신고 땀 제거 생리대도 새로이 교체해 준다.
우의도 새것으로, 땡볕에 대비한 모자 그늘막과 선크림도 챙기고,
코스도도 200Km 구간 것으로 바꾸고 비상식량과 비상의약품(멘톨, 바세린), 비상금도 보충한다.
CP에서 보충하거나 교체할 물품들은 하나의 비닐봉지에 모두 넣었다. 이렇게 출발지와, 바꿈터 CP별로 6개를 포장했다. 만약 간식 중 일부가 남아있어 필요 없으면 빼버리는 된다. 그래서 우의도 7개나 필요했다. 작년 537땐 품목별로 포장했었는데 CP에서 가방 전체를 뒤져야 했고 또 깜박 빼먹는 것도 있었기 떄문이다.
출발 준비를 마치니 도착한지 1시간 30분,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CP에 먼저 도착했던 서상돈님과 함께 출발한다. 그는 울트라 강남지맹 회장과 울트라 연맹일을 하느라 오랜만에 대회에 참가한 베테랑인데, 이 후 골인 때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달린 파트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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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는 높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하늘의 구름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3번째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부산의 포돌이 류창곤님의 종단경험과 뒷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걸었다. 그는 5월 포항 울트라에서 4대 사회악 근절 홍보 캠페인을 한 것이 매스컴을 타면서 동료들의 응원 속에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그래서 수시로 프랑카드를 펼치고 인증샷을 한다. 두런두런 이야기 맛에 빠져 너무 오랫동안 걸었다. 서상돈님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광주가 가까운 곳에 있는 듯 저 건너 산자락은 불빛으로 붉게 보인다.
한참을 계속 달렸다. 날씨가 좋을 떄 거리를 줄여 놓아야 하는데 그리 만만치 않다. 나주 남평읍을 지나며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김밥으로 충전하고 나니 슬슬 졸음이 찾아온다. 116Km쯤인가 휴게소 주차장에 몇몇 주자들이 쉬고 있다. 멈출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간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우리도 갓길 모퉁이에 몸을 눕혔다. 눈만 감았다가 뜬 10여분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한결 개운하다.
121km 효천역, 광주 시내로 접어든다. 새벽 3시 심야 시간임에도 문을 연 주유소를 발견한다. 물을 보충하고 커피를 한 잔 하며 핸펀을 꺼냈다. “4시30분 전후 131Km 홈플러스에 도착” 광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꼭 응원하고 싶다는데 새벽이라고 그냥 지나갔다간 섭섭했다고 두고두고 씹힐 것 같아 거절할 수 가 없었다.
웬 놈의 모기가 이리도 극성인지 잠시 사이에 무수한 헌혈 자국들로 얼룩졌다. 너무 따갑고 가려워 땡글땡글 구르고 싶을 정도다.
조금 전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도로가 많이 젖어 있고, 이른 새벽을 여는 차들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주로 감독관이 지나다 차를 멈추고 차도에서 올라가라며 노발대발이다. 주자 한 명이 음주 운전 차량에 부딪혀 사고가 났다며 안전을 주지시킨다. 큰 부상이 아니라 불행 중 다행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여기서 포기 해야만 했다.
안전을 위해 인도로 가야 하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한지라 넘어지거나 발을 다칠 우려도 있고, 특히 낮 시간에는 시민과 시설물들을 피해가다 보면 시간 소모가 너무 많아 도로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국도 또한 인도가 없는 길이 대부분으로, 갓길은 가장자리가 패여 있거나 풀로 덮여 있으며, 특히 비가 올 때는 온통 물 구덩이라 도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갓길이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다. 버스나 대형 트럭, 과속 질주 차량이 지날 때는 소름 마져 끼친다. 커브길 운전미숙이나 음주운전 차량에 희생된 사고가 과거에 있었던 만큼 긴장을 늦추거나 깜박 졸다간 큰일 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주자들로서는 조심조심 말고는 대안이 없다.
대광여고, 백운교차로, 금남로5가역, 안보회관, 광주 중심부를 통과한다.
배가 고프다. 시내를 벗어 나면 식당이 없어 쫄딱 굶을 수도 있기에 불 켜진 곳이면 기웃거린다. 운 좋게도 130km 지점에 이르러 24시간 영업집을 찾았다.
따끈한 해장국으로 속 풀이를 하고 있으니 아들 녀석이 도착했다. 복숭아 통조림과 스포츠 음료를 들고서, 지난 6월 광주울트라 때 봤으니 근 한 달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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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먼동이 밝아온다. 이제 만 하루가 지나고 둘째 날이 시작된다.
장마가 북상한다더니 하늘에는 구름도 많이 물러갔다. 부디 흘러가는 구름들이 멈춰 섰다가 우리와 함께 인제까지 가기를 기대하며 담양을 향해 달려간다.
해가 뜨나 싶더니 간간히 구름 사이로 밝은 빛을 비춘다. 아직 지열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미리 선 크림을 바르고 선 글라스에다 모자에는 그늘 막을 붙이고 달리는데, 어제 장맛비 마냥 햇빛이 구름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을 하니 선글라스와 그늘 막이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벗었다 착용했다를 반복한다.
147Km 담양공고, 담양시가지에 진입하니 햇빛이 본격적으로 내리쬔다. 아마 오후에는 땡볕에 혼 좀 나야 할 것 같다. 주유소에 들러 머리에 물을 끼 얻어 열기를 식히며 150km 3CP에 도착한다
(7월8일 8시43분, 누적시간 26시간 43분, 27번째 도착)
공중화장실이 샤워장이다. 옷을 벗어 빨고, 등목으로 상체를 씻고, 아랫도리는 쪼그려 씻는다. 발과 발목 테이핑이 물에 젖으면 쉬 떨어질 수 있으니 고육지책이다. 사타구니를 깨끗이 닦아내고 바세린을 발라 주는게 마지막 공정이다.
CP에서 마련한 큰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눈을 붙였다. 눈만 감았지 잠은 오지 않는다. 뒤치락 거리다가 출발해야겠다며 일어났다. 아직 잠 부족이 한계에 이르지 않은 모양이다. 잠은 참다가 못 견디겠으면 그 때 길바닥이라도 쓰러져 자는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라 식당 문을 연 곳은 없고 간이음식점의 국수 밖에 없다. 국수를 삶는 시간이 걸린단다. 서상돈님을 먼저 보내고 핸펀을 꺼냈다. 카톡에 가족, 양재천, 친구들 세 그룹에 소식을 전했다. 급하게 몇 명만 초대했다. 새끼를 치듯 대화상대를 초대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양재천에도, 친구들도 섭섭하신 분들이 많았더군요.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전남도립대학을 지나 추월산으로 접어든다. 지금까지는 언덕길이 거의 없는 평지를 달렸지만 단풍으로 소문난 내장산 백양산등이 있는 정읍으로 가는 길은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우린 언덕길은 대부분 걷는다. 체력 소모도 줄이고 물이나 간식을 먹으며 한 숨 돌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너털너털 가다 시간에 쪼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허리를 펴고 고관절과 허벅지를 이용해 걷기를 해야 한다. 속도도 빠르고 발목이나 무릎에 부하도 적다.
158Km 지점 추월산 터널을 통과하자 ‘동원샘물’이 나타난다. 이 산속에…… 취수장인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싶지만 꾹꾹 참는다. 작년 537에서, 낙동강 200에서 그랬듯이,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달렸다가 부상을 입었기에 완만한 경사가 아니면 절대 달리지 않기로 했다. 아직 1,100리 길도 더 남았는데 서두를 일도 아니다. CP에서 챙겨준 가래떡을 씹는다. 국수 참 끈기 없네ㅎ
땡볕에 대비한 복장을 하고 길을 나섰으나 예상이 완전 빗나갔다. 산악지대 여선지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부슬부슬 안개비가 어느새 세찬 소나기로 바뀐다. 거기다가 오싹할 정도로 추위가 느껴진다. 몇몇 주자는 미쳐 우의를 준비하지 못했는지 어쩔 수 없이 그냥 맞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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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Km에 이르러 CP에서 먼저 출발한 서상돈님과 포항에서 참가한 최성열, 김경란, 함지호님을 만난다. 작년 537때 무릎 통증을 견디고자 진통제를 먹었다가 데자뷰가 와서 부축 받다시피 해서 골인했던 최성열님, 밥 한끼를 사야겠다며 묻지도 않고 식당으로 끌고 간다. 백반이 나오기 전 깜박 잠에 떨어졌다. 첫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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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한민국종단 537Km>
다섯 명이 빗속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는 언덕 앞까지 달리고, 또 저 멀리 마을까지 달리고, 우의를 벗었다 입었다 반복하며 약 20여 Km를 그렇게 달려 185Km의 정읍 산내면까지 왔다. 어느새 전라남도를 지나서 전라북도로 들어왔다.
쉬었다 가고 싶지만 서상돈님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시야에 놓치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가다 가게에 진열된 ‘까스활명수’가 눈에 팍 꽂혀 멈췄다. 더부룩했던 속을 확 날려버린 청량제였다. 곧 이어 만난 주로 봉사 차량, 청남대울트라에서 제공한 닭죽을 맛나게 먹는다. 참가자들에게 모자 그늘막도 찬조하고 정성이 대단하다.
190Km 지점 구절재를 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마을이 가마득히 내려다 보이는데, 건너편 산 꼭대기에는 아래로 길게 뻗어있는 관들이 이색적이다. 섬진강 상류에서 3km 지하 터널로 유역변경하여 그 낙차를 이용하는 섬진강수력발전소다.
이내 195km 4CP에 도착한다(7월8일 19시 16분, 누적 37시간 18분, 25번째 도착)
첫댓글 에고 옛날 내발 같아 눈물나네,,
발바닥이 1미리 두께로 훌러덩 벗겨져 보드라운 살만 남으니 이상하더니만,,
울트라 고수 최성렬도 이런 경우가 있구만 ,,하하
잠은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야 자고,발바닥은 물집으로 도배하고,갓길로 가다 차량사고도 당하고.....
저는 이렇게 하면서까지 달릴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들 까 궁금하네요.
새벽 4시에 광주에서 조우한 아드님은 훗날 아버지의 뒤를 따를 울트라맨을 꿈 꿀 까? 이것도 궁금하고
데쟈뷰가 왔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또 어떻게 원상태로 회복되는 지 그것도 궁금하고....
후기를 읽다보니 모든 게 궁금해지니 호기심 천국이네.
ㅋㅋ 카톡중계 때문에, KUMF 들락날락 했던 시기가 생각납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