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작은책>에 보낸 글입니다.(9월호에 실릴 예정)
울진에 와서 반년 살면서 느낀 바를 좀 거칠게 썼는데요,
토요일에 참석할 농부학교 학생들은 미리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이번 주 농부학교 수업일인 8/28에 이 글은 지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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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성조
글을 쓰는 지금은 8월 12일, 울진에 귀농한지 일주일이 못 미치는 여섯 달이 지났다. 지난 여섯 달, 시골 와서 처음 생각대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 따져볼 틈도 없이 몸만 쓰느라 몸만 바쁘게 살아 왔다. 그러다 요즘 들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 매듭 한번 짓고 넘어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그랬는지 때마침 작은책이 멍석을 깔아주었다.
아이들 삶 - 비닐하우스 유기농에서 노지 화학농으로!
우리 아이들이 도시에서 살 때는 덜 오염된 것을 먹고 집 안에서 많이 지냈다면 여기서는 오염된 것을 자주 먹고 바깥에서 많이 지내고 있다.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애들한테 쓰레기 먹이게 생겼다고 우리 부부 절망하고 엄청 고민했다. 시골이라지만 유기농으로 키운 농산물 살 곳이 없고, 가장 가깝다는 생협 매장이 100km 넘게 떨어진 도시(포항이나 동해)에 있는 현실. 도시에 살 때는 사람 가려가며 만나고 먹을 것도 가려가며 먹였는데 시골 작은 마을에선 그것도 힘들고. 오는 사람 막을 길 없고 애들 먹는 건 더 막기 힘들다. 더군다나 학교라는 곳에 가니 먹을거리 문제는 더하다. 학교 급식과 간식이라고 나오는 것이 거의 쓰레기라는 것이다. 양념치킨, 돈가스, 햄 같은 것이 반찬으로 나오고 오후 간식으로는 빵, 우유, 과자, 음료수 따위가 나오니 애들이 좋아라하는 만큼 거꾸로 어미 아비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또 하나 아주 맘에 안 드는 것은 영혼 없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라는 곳이 승진 점수 따기에 딱 좋은 곳이고, 그러다보니 그런 교사들이 거쳐 가는 곳으로 돼버린 지 오래다. 점수에 목매는 교사들이 참교육이니 아이들 삶이니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일학년인 우리 아이가 한 학기 동안 정규 시간에 배운 노래라곤 애국가와 교가 뿐이고, 과외 활동으로 배운 노래가 영어동요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그렇지만 쓰레기 먹을거리와 영혼 없는 교사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좋아진 것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아이들이 씩씩해졌다는 것이다.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가 안보이면 알아서 밭에 찾으러 오고, 뒷집 할머니가 고샅을 걸어 우리 집 옆을 지나는 걸 보고는 '할머니 어디가요~?' 버릇없는 듯, 외치듯 말을 걸기고 하고, 어찌하다 올라간 신발 주워오겠다고 지붕을 타고 다니기도 하고, 깜깜해지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친구 집에 놀러가서는 늦을 거란 연락도 없이 실컷 놀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깜깜한 골목길로 자전거 타고 유유자적 돌아오기도 하고. 시키지도 않을 일을 스스로 하니 한편으론 걱정스럽긴 하지만 퍽 대견스럽고, 이렇게 마음 놓고 애들 놀게 할 수 있는 걸 고맙게 여기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8살, 5살짜리 아이들 보고 '니들끼리 나가놀아라' 내보내고, 저녁 무렵 옆 마을에 놀러 보낼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될까? 애들한테 휴대전화를 쥐어주고, 골목길에 방범용 CCTV가 설치돼 있다면 그나마 마음 놓고 내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비닐하우스 유기농’과 ‘노지 화학농’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을까? 굳이 고르라면 비닐하우스에 갇혀 살 바엔 차라리 농약 좀 맞더라도 하늘과 흙과 비와 이슬과 바람의 기운을 받으며 사는 편이 조금은 더 나을 거라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마음껏 뛰어놀며 몸이 튼튼해지면 몸속으로 들어오는 오염원(영혼 없는 교사 포함)을 걸러내겠지 하고.
어른들 삶 - 시골에 없는 것은?
시골엔 사람이 없다. 젊은 사람과 아이가.
젊은 사람이 없으니 학교와 유치원에 여러 일자리가 있어도 마땅한 사람 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아이들이 없으니 초등학교 학생이 갈수록 줄어들어 복식수업(한 학급에서 두 학년 이상을 가르침)을 하게 되고, 거기서 더 줄어들면 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학교 일자리로는 초등학교 보육교사, 방과후학교 강사, 유치원 시간강사 들이 있는데 급여는 한달 40만원부터 100만원 가까이 된다. 우리 아내만 하더라도 ‘방과후학교 학부모 코디네이터’라는 길고도 희한한(거칠게 말하자면 듣보잡?) 일자리를 꿰차고 생활비를 벌어오고 있다. 내가 보기엔 예산이 주어지니까 어거지로 만들어 놓은 일자리도 있고, 또 몇몇은 머잖아 한국 재정 파탄이 나서 긴축에 나서면 싹~ 사라질 일자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심성 떡고물에 너무 기대지 말자고, 힘든 시절이 온다면 여기서 땅만 파먹고 살 수 있도록 그동안 야성을 키워나가자고, 우리 부부 술 한 잔씩 걸칠 때면 때때로 이런 다짐을 하곤 한다. 그래도 한편으론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는 걸 보면서(사람이 없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사람이 내려오면 먹고 살 길은 있겠다는 것에 우리 부부 동의하는 바, 울진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한테 이런 현실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저런 일자리 덕에 한 달 가구 소득은 110만 원 쯤 되고, 가계부를 적어보니 생활비는 백만 원 안팎이라 지금 수입으로 저금도 하겠다고 우스개 소리 해가며 좋아하는데, 오히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우리 앞날을 걱정해주고 한발 더 나가 조언까지 해주고 있다. '그거 벌어서 자식들 교육 어떻게 시키겠냐?‘, 이 말은 보는 사람마다 대신 해주는 걱정이고, 용접기술 배워서 원자력 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일해보라는 둥, '기 공장'(울진의 명물인 대게를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해보라는 둥, 멀미 안하면 멸치잡이 배를 타보라는 둥 지역 선배들의 충고와 조언이 넘쳐나고 있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젊은이와 어린이가 없다 보니 우리 같이 어린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오면 참 좋아한다. 동네 어른들, 우리보고 ‘시골에 뭐 하러 왔노’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마을에는 아 울음소리가 들려야지'하고 ’빈집이 많아 죽은 동네가 돼가고 있는데 가까이에 이웃이 생겨서 참 좋다‘하며 반겨주니 어디서 이런 환대 받으며 살아볼까. 하나 아쉽다면 마음 터놓고 지낼만한 우리 또래를 ’아직까지는‘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골에 없는 것 또 하나는 사생활 보호라는 것인데, 이거 우리같이 시골 물정 모르는 사람한테는 까딱하면 큰일 날 일이다. 집을 비울 때나 밤에 잠 잘 때나 문을 잠그지 않는데, 찾아온 사람이 마당에 서서 사람 있나 부르다가 답이 없으면 문을 불쑥불쑥 열어 보기도 하므로 집 안에 있을 땐 늘 단정하게 있어야 탈이 없다. 도시처럼 지금 들러도 되겠냐고 전화로 물어보고 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밤일은 밤에만 하게 됐고, 낮에는 낮일 할 생각 밖에 없다.
마을 - 지방은 식민지다
마을에 이런 저런 행사가 있으면 웬만하면 가는 편인데, 우리같이 애들까지 모든 식구가 오는 집이 거의 없다. 이삼십 대는 도시로 나가버렸고, 몇 있는 중고등학생들은 그런 행사에 어울리지 않으니 세대가 단절됐다고 볼 수 밖에. 이런 단절이 생기는 건 학교라는 괴물 탓이 아닐까? 애들 따로 모아놓고 도시에 나가서 돈 벌 공부만 시키니 마을 어른들과 어울릴 새도 없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엔 관심도 없겠지. 마을 어른들 이야기 들어보면 누구나 젊은 사람과 어린이가 많이 와서 실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들 자식들은 도시로 내보냈거나 앞으로 대학 진학 따위 도시로 보내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끊임없이 젊은 귀농자를 데려와야 마을이 살아남는 셈이니 이게 될 이야긴가?. 농사에서 순환을 말하듯 마을 사람도 그 안에서 순환이 되어야하지 않나? 요즈음 우리 마을에 사람이 붐볐다. 바로 여름 휴가철인 것이다. 요맘때면 도시로 나간 자식과 친척들이 휴양지 삼아 모여들어 집집마다 사람 소리로 왁자하다고 하니, 시골은 도시사람들이 지칠 때 그저 쉬어가는 곳인가 보다.
농사를 떼놓고 생각해보면, 칠팔십 넘은 어른들이 대학이라는 기업에 돈 바쳐가면서 자식들 보내려고 뼈 빠지게 농사짓고, 또 그렇게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 먹이려고 농사짓고 있다. 그렇게 돈을 벌어야하니 땅에 비닐도 깔고 때맞춰 농약 뿌리고 비료 주는 농법을 따를 수 밖에 없겠지.
나는 그런 것 거부하며 살겠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처럼 ‘믿음에 따른 석유화학농업 거부’를 할 것이며(비닐 까는 것이 꼭 양심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므로 양심 대신 믿음이란 말을 썼다),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살겠다. 버릇없이 말하자면, 도시사람들 뒤치다꺼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 시골은 도시만 바라보고 살아야하나. 왜 시골과 도시의 관계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여야 하는가.
생활비-돈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농사 아닌 것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벌고, 농사는 우리 먹을 것과 여기저기 나누어 줄 만큼만 짓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農 노동자’가 아닌, 정성을 쏟아붓는 ‘農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농부가 되려는 것이지 결코 농업인이 되려고 귀농한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귀농하면서 꿈꾸던 ‘자급과 자립’이란 경지가 몇 년 만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줄 어렴풋하게야 알았지만, 반년 살아보니 내가 과연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아득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또 그것이 귀농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잣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살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과 보람이 있더라는 말이다. 너무도 자잘한 즐거움이라서 남들 들으면 콧방귀 뀌고 말겠지만, 이를테면 볕 좋은 날은 햇볕 받으며 지내고 비오는 날은 처마 밑에 앉아 비 구경하는 즐거움, 마른풀 타는 냄새를 맡고 장작 타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불 때는 재미, 나이 많은 어른들의 팔이 되고 다리가 되어드리는 뿌듯함.(이 글도 태풍 ‘덴무’ 덕에 집에 콕 틀어박혀 빗소리 바람소리 들어가며 쓰고 있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귀농해서 살아보니 어떠냐는 사람들 물음에 내가 늘 해주는 답이다. 몇 번 말하다 보니 이게 가장 그럴듯한 답이란 생각이 들었고, 내 시골 살이 목표를 이걸로 정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름철 모기 때문에 밤에 뒷간 가기 무섭고, 지네와 뱀은 마주치지 않고 살면 좋겠고, 책 읽을 틈이 없어 작은책을 끊을까? 말까? 갈등도 해보고…… 이래저래 불편한 것과 고민거리야 많지만, 누가 ‘어떻게 지내냐?’ 물어볼 때마다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 할 수 있으면 그게 성공한 귀농이고 행복한 삶이지.
첫댓글 도시에 의존해서 살지 않겠다며 정샘 감자파는 것을 왜 부러워하노?!
우하하.
우성조님은 울진에 귀농이 아니라 글을 쓰러가셨나요? 글솜씨가 대단합니다. 님의 글을 확인하니 필자 역시 농촌 출신으로 실감나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 과수원 일부에 사과나무 100주를 이식하여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무공해 사과를 생한하겠다는 아버님의 고집으로 결국은 10여년을 정성들여 가꾸었던 사과나무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농약을 하지 않으니 모두 과일에 반점이 생기더니 결국 부패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렁 주렁 열린 사과나무의 대부분의 사과가 그렇다면 이해를 하실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친환경 농법이라면 병충해 방제는 농약을 샆포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까요? 금년 애서 가꾼 배나무의
배도 흑성병과 우박 피해 및 이상기온으로 수정이 불안정하여 열매가 열리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아우가 토요일과 일요일이 휴뮤일이라서 휴일이면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애써서 작업한 과일이 이 상태이니 당사자인 아우는 너무 괴로워합니다. 그것도 소량이 아닌 9,000평의 배나무 과수원이 이 모양이니 아우를 상면하면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아직까지'가 아니고, 계속해서 잘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연두 같이 비닐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을 하고 싶은데....
글에서 말했듯이 그렇다고 관행농을 쉽게 말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 소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도....
형님 잘지내시네 ^^ 글을 읽으면서 그림이 그려집니다 ㅎ 토요일에 더 생생한 이야기를 기대할께요 ㅎ
저도.....노지 화학농이 더 땡기는데요.....쉽지 않은 귀농귀촌이지만.......꼭 하고 싶은 일입니다.....먼저하고 계신분의 이야기가 너무 소중하네요.....꾸벅..
'農예술가'란 말이 남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귀농한지 6개월 남짓 된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기계톱 사가지고 벌목하는데 따라 다니라는 마을분들의 말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려느냐고 걱정하시는 말씀, 로터리로 뚜두리고 씨뿌리고 제초제 찌끄려야지 농사가 되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들... 분명 맞는 말일수도 있지만..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수십년을 농사지으신분들과 똑같이 해서 내가 이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면 결국 다른 방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밭에서 자라는 먹을수 있는 풀들을 우리밭에서는 맘놓고 먹을수 있는기쁨들.
나는 누굴 이기려는 마음은 없는데. ^^. 이번에 못 온다니 많이 아쉽구만.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토요일 수업에 참석을 못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밑그림을 그리게 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특별히 연고지도 아닌 것 같으신데 울진을 택하신 이유가 뭘까 궁금합니다. 귀촌은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지, 혼자 가도 될지, 도무지 그림이 안그려지네요. ;;
왜 울진이냐? 저는 그저 '인연'이라 생각하니다. ^^. 실상을 들어보면 별 것 아닐텐데요, 나중에 변대표한테 들어보세요. ^^.
연고지는 중요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오히려 연고지로는 절대 귀농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민도 가서 사는데 작은 대한민국에서 연고지가 없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는 그냥 땅값 싼곳으로 오다보니 전남 곡성으로 왔습니다. 전혀 연고가 없구요. 혼자서 귀촌은 안하는게 좋을듯합니다. 많이 외롭고 쓸쓸하다 보니 자연이 주는 행복을 못느끼고 술과 더욱 친해지기만 하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막연히 '인연' 닿는대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가 봅니다. 땅값은 어떻게 알아 보는지, 어떤 땅을 사야 하는지, 그런 것도 물론 아는 게 없습니다.(땅을 사본 일이 없어서..) 제가 말한 연고지란 자연스러운 인연에 따른 곳이라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물론 혼자 가는 건 아니겠지요. 연두농부학교도 그런 인연이 이어질 수 있는 곳이리라 믿구요. ^^
어제 <작은책>을 받았는데 제목이 '밤일은 밤에만 해야 한다'이군요. 허~
ㅋㅋ 새벽도 있습니다
허허~ 새벽이라. 그것도 좋은 수이긴 한데... 새벽에 일어나긴 힘들어서.
ㅋㅋㅋ...역시 작은 책은 좋은 책이여...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잡았구만 그려~/ '밤 일은 밤에만 해야 한다' 실감혀~/
역시 잘 지내고 있군.^^ 씨앗 준비해놨다. 걱정말고 와라.
이렇게 좋은 글 지우지 마시지요~!! ^^ // 우리 먹을것과 마음 가는이들께 나눠줄 만큼만 가꾸시겠다는 말씀에 공감 합니다.
어제 네분의 말씀들이 참으로 소중히 느껴졌어요
생각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