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과 맛사지로 유명한 왓포!
왓 쁘라께우 구경후에 왕궁 구경..
현 국왕은 지금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경비병은 있습니다!!
짖궂은 관광객들은 경비병을 모델로 사진 촬영..
1927년 태어나 푸미폰 아둔야뎃..
유럽에 망명을 가 있다고 2차대전후 태국으로 돌아왔으며 형의 의문의 죽음으로 국왕에 취임..
1946년에 취임하여 지금까지 왕위에 있으며 태국 차끄리 왕조의 9대왕.. 라마9세입니다!!
태국이 군부 쿠데타에 의한 혼란을 겪기도 했으나 최근에 경제 부흥의 영향으로 입헌군주국의 국왕이면서
많은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든 태국의 화폐에 현 국왕의 젊은 모습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살아 있으면서 화폐에 올라가 있는 인물이 몇 되지 않겠죠!! 그런데 쪽 팔리지는 않나???ㅎㅎ
별 겸손하지는 않은 분으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제가 왕같으면 쪽팔려서 사양할 것 같기도 한데..ㅎㅎ
왕궁과 불교 그리고 코끼리..
꼬끼리와 태국은 불가분의 관계인 모양..
태국의 입헌 군주제를 알기 위해서는 현 왕조인 차끄리 왕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죠!!
작년 태국 여행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여행기를 보시는 분들의 편의보다 제가 제대로 공부하자는 생각에 다시 한번
인터넷의 자료를 검색하여 옮겨봅니다..
타이(Thai) 왕국을 재통일한 딱신 장군이 죽고, 그 뒤를 딱신의 부하 장수인 차끄리(Chakri, 재위 1782~1809), 즉 라마(Rama) 1세가 왕으로 추대..
라마 1세는 타이족의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방콕(Bangkok)에 도읍을 정하고 관제 및 지방조직을 정비..
캄보디아의 바탐방(Battambang) 지역을 병합하고, 1785년에는 버마의 침공을 격퇴..
라마 1세의 뒤를 이은 파탈르틀라 나팔라이(Phatthaloetla Naphalai, 재위 1809~1824),
Rama 2세는 정부 조직을 제도화하여 왕실의 참여를 강화..
1822년 영국의 우호통상조약 체결 제의를 거절하였다.
라마 2세의 뒤를 이은 낭 끌라오(Nang Klao, 재위 1824~1851)
라마(Rama) 3세는 라마(Rama) 2세의 서장자(庶長子: 본부인이 아닌 여자가 낳은 아들 중 맏아들)
라마 2세는 어린 적자(嫡子: 본부인이 낳은 아들)인 몽꿋을 보호하기 위해 낭 끌라오(Nang Klao)에게 왕위를 승계..
1824년에 영국과 버마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1826년에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태국과
버니(Burney) 조약이라고 불리는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라마 3세의 뒤를 이은 몽꿋(Mongku, 재위 1851~1868)
라마(Rama) 4세는 낭 끌라오의 재위 기간(27년)에 수도원에서 불교경전과 서양문물을 연구하며 생활..
라마 4세는 1855년에 영국과 일명 보링(Bowring) 조약이라고 불리는 우호통상조약을 체결..
태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1856년에 이 조약을 비준할 때 최초로 ‘시암(Siam)’이라는 국호를 사용..
이후 1856년에 미국, 프랑스, 1858년에는 덴마크와 우호통상조약을 체결..
이어서 1862년에는 벨기에,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1869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우호통상조약을 체결..
라마 4세는 국내 정치·경제 개혁을 추진..
영국인 가정교사 애나 레오노웬스(Anna Leonowens)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 「왕과 나(Anna and the King)」의
주인공으로, 39명의 부인과 82명의 자녀를 두었다.
율부리너와 데보라카가 주연한 브로드웨이의 오페라를 영화화한 "왕과 나"는 명작이죠!!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장된 왜곡된 세계관이 많이 불쾌하기는 합니다만..
라마 4세의 뒤를 이은 출랄롱꼰(Chulalongkorn, 재위 1868~1910),
라마(Rama) 5세는 근대지향의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인재등용을 위해 학교를 설립..
1882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에 상주공사를 파견하였고, 1885년에는 부왕제를 폐지하고 왕세자제를 도입하였으며,
1887년에는 12개 부로 구성되는 새로운 내각제도를 도입..
1893년에는 프랑스의 무력에 굴복하여, 메콩(Mekong) 강 좌안을 프랑스에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
1896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선언으로 태국(Siam)의 중립지대화(Buffer Zone)에 합의..
1902년에는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1905년에는 현금 인두세제를 도입..
1907년에 프랑스의 재침입으로 캄보디아 지역을 상실하고, 1909년에는 말레이(Malay) 북부 4개 주를 영국에 양도..
라마 5세는 불교를 개혁시키고, 사원의 교육기능을 강화시키며,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시도하는 등 개혁정치를 실시..
인도차이나에는 태국을 제외하고는 제국주의의 득세로 제대로 된 국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기입니다..ㅠㅠ
라마 5세의 뒤를 이은 와찌라우트(Vajiravudh, 재위 1910~1925),
라마(Rama) 6세는 10년간 영국 유학 후 귀국하여 즉위..
당시 태국에는 타이(Thai)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이는 반중국(Anti-Chinese) 운동으로 귀결..
이에 따라 태국은 왕의 세력을 기반으로 군 조직 개편하고, 와일드 타이거 코즈(Wild Tiger Corps)를 결성하였다.
태국은 라마 5세 때 ‘국가-종교(불교)-왕’ 이념을 확립하였다.
태국은 1917년 4월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승국의 일원으로서 국제연맹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태국은 국제위상을 제고하고 불평등 조약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
특히 1925년에는 영사재판권 및 관세자주권을 회복하였다.
1913년에는 성씨제도를 도입하였고, 1916년에는 출랄롱꼰(Chulalongkorn) 대학을 설립하고, 국기를 제정하였으며,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고, 국가 공휴일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대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
라마 6세의 뒤를 이은 쁘라자티폭(Prajadhipok, 재위 1925~1935),
라마(Rama) 7세는 라마(Rama) 6세의 동생으로, 태국 최후의 절대군주..
라마 7세는 정부 최고기관인 국가최고위원회(SupremeCouncil of State)를 설치하고, 재정난 등 내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1930년대 초의 세계공황 등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국왕이 임명하는 총리에게 정부운영권을 위임하는 정부개혁안을 발표..
한편 1932년 6월에는 청년장교, 관료를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 쿠데타가 발생하여, 입헌군주제가 도입..
라마 7세는 1935년 3월에 신병 치료차 영국에 체류하던 중 공식적으로 퇴위 선언을 하였다.
라마 7세의 뒤를 이은 아난다 마히돈(Ananda Mahidol, 재위 1935~1946)
라마(Rama) 8세는 라마 7세의 조카로,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10세에 즉위하였다.
1945년 12월에 귀국하였으나 1946년 6월에 궁중에서 피살되었다.
라마 8세의 뒤를 이은 푸미폰
현 국왕인 라마(Rama) 9세는 형인 라마 8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19세에 즉위하였으나,
그 후에도 스위스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라마 9세는 1946년에 국왕으로 즉위하였고, 1950년 5월에 대관식을 거행..
2006년 즉위 60주년을 맞이하여 태국 역사상 가장 장수하는 국왕이 되었으며, 태국 정부와 국민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
라마 9세는 1967년 이래 외국 방문을 중단하고 농촌복지사업 등 국민의 후생·복지 향상에 전념하여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나, 2009년 9월 이후 건강 악화로 입원 중..
이상이 태국 왕조 그리고 현 국왕의 약력입니다!!
별 뚜렷한 업적도 없으나 군부에 의하여 신격화되고 포장되면서 태국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으며 태국의 가장 큰
국경일도 현 국왕의 생일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강국의 위치에 있으니 당연히 치적을 존경 받는 것인가요??
이런 풍토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ㅠㅠ
이제 왕궁을 나와서 왓포 사원으로 이동합니다..
왕궁 바로 옆이 차오프라야 강입니다..
식사도 해결하고..
강을 건너는 크로스 보트도 이용하여 봅니다..
많은 다리도 건설되어 있습니다만 크로스 보트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차오프라야강..
타이만으로 흘러드는 타이 최대의 강으로 길이는 372km로 라오스의 산지에서 발원합니다!!
태국 북쪽의 차이낫에서 분기하면서 삼각주가 발생하고 평야 지대가 되었으며 아유타야와 방콕이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여
간혹 홍수로 인한 범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방콕은 타이만에서 32km 떨어진 차오프라야강 하류에 위치함으로 운하가 많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태국 맛사지와 세계 최대의 와불로 유명한 왓포 사원..
왕궁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
입구의 수호상이 독특한 모양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만남인가요??
왓포는 태국으로 도읍을 정한 라마 1세에 의하여 건축됩니다..
유명한 와불은 17년이 세월동안 복원이 되었다고 하며, 라마 1세의 유골이 안치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네요..
파고다의 전시장과 같은 분위기..
미얀마 인레의 쉐인테인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만 이곳이 더 화려하고 또 복원이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기 좋네요..
대단한 파고다 군집입니다..
왓 프라케우보다 조금 더 차분한 분위기..
여기는 도교의 영향 그리고 중국 불교의 영향권으로 보입니다..
구경하기 좋은 사원..
왓포에서 와불만큼 유명한 곳이 맛사지 센터..
태국 전통 의학이 발전한 형태로 오늘날 전통 맛사지 교육장으로 사용..
방문객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태국 현 국왕이 국민들의 생계를 위하여 맛사지 교육의 체계화를 명하였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타이 맛사지를 즐깁니다!!
외국인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고 합니다만 그냥 받는 것이 좋죠..ㅎㅎ
사원 구경으로 마감합니다..
주 법당인데 에메랄드 사원 주법당과 비슷한 분위기..
이곳은 사진 촬영이 됩니다!!
주불이 여기는 금불입니다..
왓 포의 가장 큰 볼거리는 본당에 모셔진 길이 46m, 높이 15m에 달하는 크고 웅장한 와불상..
1832년 라마 3세의 명으로 제작된 불상으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
폭 5m, 높이 3m에 이르는 거대한 발바닥에는 정교한 자개 장식을 했는데, 이는 삼라만상을 의미..
불상의 발바닥 쪽에 서면 거대한 와불상이 전체적으로 보인다.
너무 거대한 부처상으로 전체적인 사진 촬영은 힘듭니다..ㅠㅠ
이제 차오프라야강을 다시 넘어서 마지막 관광지 "왓 아룬"!!
새벽 사원으로 향합니다..
태국 관광의 빅 3..
왓 쁘라께우, 왓 포 그리고 왓 아룬입니다..
인구 8백만의 거대한 도시 방콕입니다만 이것 3개와 차오프라야 강 그리고 박물관을 보면 태국 관광은 다 하신 것으로
보면 됩니다..
호사가들은 태국 밤문화가 더 궁금한지 모르지만..ㅎㅎ
왓포에서 차오프라야를 넘으면 왓 아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