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가정교회(싱가폴)
A Mission Strategy for Indonesia with Small Group Home Church
"소그룹 가정교회"를 통한 인도네시아 선교전략
인도네시아 선교사 박성오
차 례
I. 들어가는 말
II. 교회의 의미
A. 소그룹 가정교회의 역할
1. 가정교회의 기능
2. 교회사역 핵심은 복음
III. 소그룹 가정교회
A. 성경에서 가정교회
1. "집"
2. 초대교회
B. 현대 교회에서 소그룹 가정교회의 필요성
IV. 인도네시아의 교회 상황
A. 인도네시아 교회의 자화상
1. 외면적인 것
2. 내면적인 것
B. 최근의 교회 동향
C. 기독교 선교에 관련된 법령과 정치상황
V. 인도네시아인의 세계관
A. 인니인의 일반적 의식구조
B. 서구인과의 의식구조 비교 .
C. 인니인들의 좋은 점들
VII. 가정교회를 통한 인도네시아의 복음화 전략
A. 소그룹 가정교회의 정당성
B.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전파 방법들
1. 소그룹 가정교회를 시작하는 법
2.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전파
3. 문화의 충분한 이해
4. 구속적 유비를 통한 접근
5. 강력한 기도와 성령운동
6. 도시지역
7. 농촌지역
C 적대적 환경 가운데에서의 가정교회
1. 핍박의 문제들
2. 회중들의 모임을 통한 해결
3. 예배장소의 원활한 이동
4. 가정교회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
> D. 가정전도의 효과적 방법들 (사도행전에서)
1. 빌립보의 옥사장
2. 이방의 백부장 고넬료
3. 자주 장사 루디아
4. 고린도의 유스도
5. 브리스길라와 아글라
VIII.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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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어떻게 하면 선교지에 견고하고 강력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특히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는 복음 전파에 전략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날도 선교지 인도네시아는 초대교회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는 85% 국민이 이슬람에 속해 있다.
그들은 가족애와 동족애가 남달리 강하다.
그러니 가정을 중심으로 신령한 가정들을 태동시킬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한다면
막강한 교회를 개척해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도네시아의 선교 상황이 더욱 어려워 가고 점점 이슬람이 국교화 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암암리에 다수의 횡포와 핍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럴 때에 소그룹 가정교회를 견고히 세워준다면 인도네시아 교회는 더욱 튼튼히 진리에 설 줄로 믿는다.
부흥의 전략으로도 중요하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예배 장소의 의미가 구약의 개념과 비슷하다.
그들은 예배장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개신교회가 개척 될 때에 예배당을 짓지 못하도록 저들은 여러가지 위협과 핍박을 가한다.
그러므로 소그룹 가정교회를 활성화 시키면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슬람 교도들의 눈을 피하면서 지역 교회를 부흥케 할 수가 있다.
자국민 기독교인의 세력이 어느정도 많아지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세력을 얻기 때문에 원하는 지역에 교회당을 세워 갈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안목이 넓어 질 뿐 아니라 앞으로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사역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 원리는 비단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교회 개척사역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유익한 원리라고 사료된다.
인도네시아의 선교전략은 소그룹 가정교회 운동으로 가능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소그룹 가정교회 전략이 성경적, 신학적으로 정당하다.
둘째는 인도네시아의 문화에 가정교회 전략이 적합하다.
셋째는 이 전략이 인니의 종교나 정치상황으로 볼 때에 신축성 있게 복음을 전파 할 수 있는 원리이다.
넷째는 이 전략은 교회 부흥과 성장 면에서 좋은 원리와 방법을 제공한다.
II. 교회의 의미
범죄함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예수 보혈의 공로를 힘입고 예수를 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
죤 칼빈은 교회론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경건한 자녀들의 어머니라고 하여 가시적 교회를 나타내고 있다.
A. 교회의 정의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그리스의 시(市) 의회를 가리키는 말이였는데
'부른다'는 뜻인 '칼레오( )'와 '불러낸다'는 의미를 가진 '에크랄에오( )'라는 말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말이다.
어떤 공적 임무를 위해 선택되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B. 소그룹 가정교회의 본질
전통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을 접근 할 때에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등을
들었다. 성경적인 교회상을 성질상으로 구별하면 전투적인 교회와 승리적 교회로 나눌 수 있다.
전투적 교회는 현세의 교회가 세상의 죄악과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면 승리적 교회는 교회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주님 오실 때의 영광스런 승리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유형교회와 무교회로 나눌 수 있는데 유형교회는 세상에 가시적 교회를 말함이요,
무형교회는 완성된 보편의 승리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분히 영적인 실체의 교회임을 말한다. 밀라드 J 에릭슨은 성경적인 교회상을 형태적으로 분류하여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다.라고 하였다. 소그룹 가정교회도 똑 같은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본성과 참 모습은 예수를 믿는 거룩한 사람들 자체들이고 거룩한 사람들의
영혼이 주님이 계시는 지성소가 된다. 죤 하브릭은 "인간 지향적 전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회는 결코 장소가 아니고 항상 사람이며, 결코 양(fold)의 우리가 아니라 양(fold) 자체들이고,
결코 거룩한 건물이 아니고 언제나 믿음의 모임(a believing assembly)인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 바로
당신이 교회이지 당신이 기도하는 장소가 교회가 아니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감이 결코 당신이
될 수 없는 것같이 벽돌로 쌓아올린 구조물이 교회가 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거룩한 곳이란
인간을 제외하고는 없으며, 혼(soul)을 제외하고는 인간 내부에 지성소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의 모임인 소그룹 가정교회가 진정한 교회로서의 손색이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C. 소그룹 가정교회의 역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바로 주님께서 하고 싶으셨던 일을 계속해 나가는데 있다.
이일을 위해서 몇 가지 설명하려고 한다.
그것은 소그룹 가정교회의 기능, 사역의 핵심인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가정교회의 주요 기능 부분에서는 예배, 전도와 건덕, 교제(Fellowship)를 언급하고자 한다.
1. 가정교회의 기능
소그룹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기능을 신령한 영적인 교제로서의 예배와 복음전도, 성령
안에서의 교제(Fellowship)를 다루었다.
a. 예배
예배를 통해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또 그 분의 말씀을 공급받으며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 된 것들을 교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할 수 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익케하는 예배를 계속해서 드릴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하고 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그러나 바울은 진정한 예배를 로마서 12장 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라고 영적 예배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로버크 뱅크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신령한 예배는 그들에게 몸을
포함하여 자신의 전부가 하나님께 거룩하고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져야 된다"고 했다.
b. 전도와 건덕(健德)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는 유언의 말씀에 복음전파 선교의 대 명령을 주셨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고 한다면
이 사명을 힘있게 수행해 가야한다. 이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순종의 문제이다.
제자들은 그들의 힘만으로 이 일을 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성령께서 친히 도와주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해 주시겠다고 보증 해 주셨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c. 교제 (Fellowship)
기독교회는 마땅히 이 세상의 고통과 궁핍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복음서와 서신서 여러
곳에서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율법사에게 주님께서는 "네 이웃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주시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주셨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 이였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마태 25:31-46)
2. 교회사역 핵심은 복음
신약성경에서 복음과 관련된 열쇠의 단어는 유앙겔리조마이( )와 유앙겔리온( )
은 유( )라는 접두어로 말미암아, 항상 불변적으로 '좋은 소식'을 나타낸다. 실제로 프리드리히는
다음과 같이 단언적으로 말한다 : '유앙겔리온( )'은 '승리의 소식'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이다.참으로 결정적인 질문은 '과연 예수님 자신이 유앙겔리온이란 단어를 사용하셨는가 ?'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과연 그의 메시지의 내용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인가?' 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 - 그것은 그의 말씀과 행위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에 관한 자신의
메시지(막1:14)를 좋은 소식으로 생각하셨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게다가,
그는 그 메시지의 저자요 전달자인 동시에, 그것의 주제, 즉 그 메시지가 말하고 있는 장본인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유앙겔리온이란 용어를 채택하여 예수님의 오심과 연관된
구원의 메시지를 묘사한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오늘날 이 생명의 복음은 교회에게 맡겨졌다.
가정교회는 이 복음을 가장 효과성 있게 백성들에게 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작은 공동체를 통해서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며,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III. 소그룹 가정교회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는 어떤 의미로 '건강한 기독교 가정'이다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가정을 교회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성경은 교회를 잘 다스리기를 원하는 장로는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딤전3:4-5)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 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
B. 성경에서 가정교회
성경시대에 사용했던 가정집의 개념과 역사적으로 교회가 가정집들을 어떻게 사용하여 3세기말까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집( ): 그 구조와 점유자들
초대교회 시대 때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성전(행3:1)과 지방 회당을 예배처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자라나므로 계속해서 이 장소들을 예배 처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라는 원리처럼 그리스도인들의 합당한 예배처소가 있어야 했다. 유대교 회당에서 그리스도
인들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그 당시의 집 구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초대교회 시대의 가정교회들
성경에서 '집'이라는 말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처소이다. 히브리어로 바이트( )이고 그리스어로는
오이키아( )이다. 오이키아는 '가정'(마태10:13, 22:25, 빌립보서4:22, 고전16:15)과
'소유'(마태12:29, 눅10:27)로 둘 다 사용되었다. 이것의 주요한 의미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집'이다. 이 을 사도행전에서나 서신서 에서 증거 된다.
a. 사도행전에서의 '집'이라는 뜻
성경학자 브르스는 말하기를 드로아에서(행20:8) 주의 날에 만남이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예배를
위해서 가정집에서 모이는 가장 최초의 증거가 된다고 하였다. 당시에 이방교회 회원의 대부분은 낮
시간에 주인의 일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모이는 것이 편리하였다.
b. 서신서 시대에 '집'이라는 뜻
오이키아'집'이라는 말은 서신서 여러 곳에 나타난다.(고전 11:22, 16:15, 고후5:1, 딤후2:20, 3:6).
고린도 성도들을 말할 때에 그 도시에 신자들의 '집'으로 표현하고(고전11:22), 스테바나의 '집'이라고
말한다(고전16:15). '오이키아'를 고후5:1에 보면 2번 비유적으로 사용하였다. 첫 번째는 땅에 있는
영혼의 집인 인간의 몸을 말했고, 둘째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 한 영원한 하늘의 집으로 말했다.
다시 말해서 땅에 있는 동안은 신자들이 영혼의 장막 집에서 살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집에서 산다.라는 말이다.
c. 유대 메시아 시대의 가정에서 모임들
초기 유대인 기독교에 대하여 그게 바랍직스럽게 연구된 바는 없으나 우리의 영적인 유산과 배경에
중요한 몫이다. 이 기간은 "역사의 창조적 시대"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존하는 자료는 대부분이
행전 11장이다. 그들이 부르는 사도들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의외로 신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로 새롭게 되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제자들은 이 땅위에
사는 동안에 주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교제의 '기쁨과 찬양'이 충만하였다.
d. 이방 기독교인의 가정교회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은 개인 집에서 가르쳤고 설교하였다 (행2:12, 20:20). 유대인으로서의
기독교인은 유대교와 배경이 비슷하였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교회를 개척하는 모델로서 가정교회를
사용하였다. 바울은 교회를 가족운동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믿음으로 회원이 되어 가족들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그 자신은 개종하기 전부터 이 사상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핍박 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 지도자들을 감옥에 집어 넣었던 것이다(행8:3). 유대인들도 바울처럼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들의 가정에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공격하였다.(행 17:5-9) .
가정교회를 만들 때에 그곳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규모가
작았다. 그들 중에 믿는 한 형제의 집에서 모였다. 둘째로 그 회중들이 커 졌을 때에 모두 들어
갈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집에서 모였다.
e. 초기 세기에 가정교회들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당시 습관 이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가정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였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일반적인 가정신앙은 가정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병과
어려움으로부터 보호받고 경제적으로 부유해 짐을 요구하는 가정 신을 예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타이슨은 이탈리아의 가정은 종교 중심지의 기원 이였다고 하였다. 한 고고학 발굴단은 가정 교회로
사용되었던 곳에 세워진 어떤 교회 건물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4세기초에 사용했던 곳 사실상 성.
클레멘트의 바실리카이다. 초기 교회의 지하에는 두 개의 집이 있었다. 한 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위해서 사용했던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다. 개인 집들이 2-3세기 늦게 까지 기독교
모임을 위해서 사용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다비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4세기가 되어 이내 기독교인
들에게 가정집에서 더 이상 예배를 위한 모임의 습관이 없었다. 이제는 이 목적을 위해서 특히 큰 건물을
건축하였다."
C. 현대교회에서의 소그룹 가정교회의 필요성
가정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영적인 사랑의 교제가 결핍되면 성도들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될 수가 있다.
그래서 교회는 가족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여 주님의 몸을 세우는데 결속력을 강화해 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충분한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획일적이고 완전한 기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유기적 공동체요, 운용에 있어서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융통성 있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독립과 의존, 사유와 공유, 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이 병존하는
것이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소그룹 가정교회는 더욱 필요하다. 눅5:37-38의 비유에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말씀처럼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교회체제는 가정교회 체제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시대에 맞는 일이다. 복음전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교회 성장에 큰 유익을 줄 수 있다.
가정교회의 정의를 잘 나타낸 말이라고 본다. 소그룹 가정교회는 기성교회의 구역 개념보다는 더
교회 적이고, 소그룹 개념보다도 더 교회 적이다. 유기적이면서도 융통성 있게 작은 가정교회
체제로 형성하는 것이다.
IV. 인도네시아 교회 상황
소그룹 가정교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잘 발전하려면 이 나라의 교회 상황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 인니교회의 자화상, 최근 교회들의 동향과 기독교 선교에 관련된 법령과
정치상황을 살피려고 한다.
B. 오늘날 인니교회의 자화상
우리는 인도네시아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니 교회의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면들을 살펴보자.
1. 외면적인 것
인도네시아 교회는 종족별로 기독교화 되었고 종족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종족들 중 복음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인 종족들 예컨대 바탁족, 머나도족, 토라자족, 다약족,
암몬족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한 지역의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종족의
소속감이 강하여 추장이나 왕족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전체 종족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단 개종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태의 종족교회는 네델란드 정부가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종족들의 대립을 교묘하게 조장했는데 여기에 반발을 보이며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한 종족들은
단결하여 저항하기 마련이다. 자립심이 강한 종족들의 교회(특히 쟈바족)들은 외국 선교사들의 간섭을
싫어하여 자주적인 교회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그러한 교회들은 자연히 종족의 특성을 강하게 띄게
되었던 것이다.
2. 내면적인 것
인도네시아 교회는 '어미 교회'로부터 1930년부터 1942년사이에 스스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바딱지역의 개신교회(Huria Kristen Batak Prostestan: 1930),
동부 쟈바교회(Gereja Kristen Jawi Wetan: 1931),
쟈바 기독교회(Gereja Kristen Jawa: 1931),
미나하사 복음교회(Gereja Masehi
Injili Minahasa: 1943),
빠순단 기독교회(Gereja Kristen Pasundan: 1934),
중부 쟈바 인도네시아교회(Gereja Kristen Indonesia Jawa Tengah: 1936),
인도네시아 서부 쟈바교회(Gereja Kristen Indonesia Jawa Barat: 1938)들이다.
이어서 족속의 특성을 지닌 교회들이 또 생기게 되었다.
'시말룽운 개신교회'(Gereja Kristen Protestant Simalungun: 1963),
인도네시아 개신교회(Gereja Kristen Protestant Indonesia: 1964), Angowuloa Masehi Idano Niha(1946)
이다. 이들은 스스로 교회를 조직하며, 자립해 갔던 것이다.
1980년에는 '성도들의 찬양'(Kidung Jemaat)을 발간하여 사용하고,
1946년 이후에는 교회 연합운동이 이루어져서 DGI라는 인도네시아 교회협의회가 구성되었다.
1970년에는 PGI (인도네시아 교회 연합회)가 결성되어 연합운동이 이루어졌다.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이들은 신학적으로 바르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려고 애를 쓰며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C. 최근의 기독교 동향
35여년 인니에서 거주한 김영호 씨는 그의 책표지에 인도네시아를 '천년의 미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표현을 했고 20여년 동안 무관으로 근무한 서세호씨는 인도네시아를 '미래의 대국'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을 하였다. 다 그럴 만 이유들이 있다고 본다. 인니인은 대개 품성이 부드럽고 인간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얼굴에 웃음이 많은 백성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인니는 천연자원의 보고
일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인도네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분포도를 알 필요가 있다. 1995년도 통계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만일 쟈바와 수마트라 인구를 합치면 전 인구의 대략 80%를 차지한다. 이는 인적 자원 측면에서 두 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인도 빤짜실라는 이 나라에서 오랫동안 다듬어 진 민주정치의 이념이다. 초대 대통령인
스카르노가 제창하여 오늘까지 국민 정신 이념의 기초요, 생활 철학이 되고 있다.
첫째, 모든 국민은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영위한다.
둘째, 인간의 존엄성에 따른 인도주의를 추구한다.
셋째, 다양한 종족의 일체성을 부여한다.
넷째, 민의에 의한 법의정치를 구현하다.
다섯째, 법과 질서가 확립된 정의사회를 추구한다.
지역별(도서)별 인구 현황
지역(도서) 국토비(%) 인구(명) &nb;sp 전체인구 대비(%)
쟈 바 6.89 114.987.700 58.88
수마트라 24.67 40.969.500 20.98
술라웨시 9.85 13.771.600 7.05
칼리만탄 28.1 10.520.500 5.39
누사 떵가라 4.61 10.982.900 5.62
이리안 자야 21.99 1.956.300 1.01
말 루 쿠 3.88 2.094.700 1.07
100 195.283.200 100
자료: (1995년도 기준) 인도네시아 중앙통계국
인도네시아 교회에 작은 셀그룹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20 년간 성공적 목회 사역 후에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소그룹 운동을 크게 일으키는 '랄프, 니버(Ralph W. Neighbour)'는
그의 책( Where do we go from here ?)을 인니어로 번역 출판했을 때에 Pais Jos Lamel 목사는
추천서에 '교회는 소그룹의 조직이다'라고 썼고, Jimmy 목사는 '소그룹 조직은 21세기 교회를 위한
대안이다.'라고 칭찬했으며, Eddy 목사는 '어디든지, 언제든지'라는 제목으로 소그룹을 위한 이 책을
대 환영하고 있다. 자카르타나 수라바야의 몇 대교회들은 서울 "순복음 교회의 소그룹 구역조직 원리"
를 적용하여 교회들이 획기적으로 부흥하고 있다.
D. 현재 기독교 선교에 관한 법령과 정치 상황의 이해
이 난을 통해서 기독교 선교 활동이 법적으로 얼마나 많이 제한을 당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1. 법령 70호 발표
이 법령이 발표됨으로 인해 인니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활동이 많이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단합을 위하여 각 종교단체는
빤짜실라 (Panca sila, 국가 5대원리)의 정신에 입각하여 상호 존중한다. 둘째, 종교를 선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항은 부당하다. 하나, 이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종교를 선전하는
일. 둘, 종교 선전을 목적으로 의류나 금품이나 의약품을 제공하는 일. 셋, 종교적인 책자나
인쇄물을 기성 종교인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개인에게 돌리는 일. 넷, 종교를 선전 할 목적으로
다른 종교인의 가정을 방문하는 일이다.
2. 법령 제 77호 골자
하나, 외국으로부터 반입되는 모든 원조는 금품이든지 인력이든지를 무론 하고 종교성에 보고해야
하며 종교성 장관의 추천 또는 동의를 얻은 후에야 활용 할 수 있다. 둘, 종교 관계에 종사하는
모든 외국인은 종교성 장관 또는 지정하는 관계관의 허락을 받아 임시로 활동 할 수 있다.
셋, 모든 종교관계 및 기구는 현재 외국인을 대체하도록 정한 기간 안에 교육 및 훈련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넷, 상기 교육 및 훈련계획은 본 법령이 확정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실시하여 2년 이내에
마쳐야 한다.이와 같은 법령이 계속 발표됨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이론이 있었다.
특히 국내 기독교계에서는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즉각 철회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서 법령이 수정되거나 철회되기는 커녕, 1979년 2월 1일에는 종교성 장관과 내무성
장관이 공동 명의로 법령을 발표함으로 상기의 두 법령이 합법적임을 강화하였다. 이 후로
자유로운 전도지 살포와 축호전도가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되었다. 선교사의 입국허가와 비자연장이
종교성의 추천으로 이민국에서 곧장 처리되었으나 새 법령이 발표된 이후로는 중앙 정보부의
결정으로 종교성을 거쳐 이민국에서 연장되고 있다. 문화적인 입장에서 본 인도에시아 정부의
종교활동에 대한 일련의 조치는 정치, 경제, 문화등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국 자결주의 사조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1992년에 발표된 인니 선교사 비자 3년 제한조처를 내린 노동성 법령 208호는 선교사들의 장기사역에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첫번 임기를 끝내는 시기와
맞물려 비자 연장이 만료되어 있어 다음 번 임기의 불확실성 속에 안식년을 맞고 있다. 최근 5년
사이에 해외선교사 인력 600명 선에서 200명 ( 종교성에서 비자 받는 선교사)선이라는 현격한 추세를
드러내고 있다. 회교도가 다수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선교사 숫자보다 월등히 많은 기독교 선교사의
숫자를 줄여 가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사 비자가 아니고 다른
거주비자를 이용하여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일연의 기독교에 대한 제한 법령들이 발표되는 때에 소그룹 가정교회
전략은 복음을 전파해 가는데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강한 접착력을 가지고 전진 할 수 있다.
V. 인도네시아인의 세계관
선교지 영혼들의 세계관을 이해 할 때에 그들의 문화에 맞게 복음을 접불일 수 있다. 그것은
복음을 혼잡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데 더 적절한 방법으로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인니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살펴보고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쟈바인, 3000만의 인구를 가진 순다족, 라섬의 최 남단에 살고 있는
람뿡족들의 정신 세계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A. 인니인의 일반적인 의식구조
1. 체면 문화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인들은 체면 문화가 강하다.
2. 잘못에 대한 책임 회피
잘 못된 사건/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지도자나 회원이나 같은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분명히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계급사회(Feodal System)
겉으로는 없는 것 같으나 계급사회가 아직도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힌두교의
영향이 아직도 국민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샤마니즘과 민간신앙
미신이 많아 점쟁이와 주술을 믿거나 무당들의 말을 믿는 경향이 있고 토속적으로 내려오는 민간
신앙을 그들은 믿고 있다. 85%가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형식적인 신자가 많고 이슬람 신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부적을 지니고 다니며 민간적으로 내려오는 정령숭배에 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대다수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샤마니즘과 정령숭배인 민간신과 혼합되어 있음이 이미
드러났다. 그들도 참 능력의 주 예수를 믿어 흑암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소그룹 가정교회는 저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하는데 적절한 방법이다.
5. 예술적 정서
인니인들은 정서적으로 예술적이다. 섬세한 수공적인 예술공예가 인도네시아에 발전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목공예, 석공예, 금은 보석공예, 음악, 바틱 천, 각 족속마다의 고유의 의상문화가
있다. 여자들의 장식품들이 발달 돼 있다.
6. 신념과 지구력의 연약성
인니인들은 일반적으로 신념이 약하고 혹은 열심히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 어떤 신념을 계속 믿고
나가는 면이 약하다. 다시 말하면 어떤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나가는 성향이 약하다는 것이다.
또 대개 쉬엄 쉬엄 일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날씨가 무더운 까닭인지 그들이 즐겨 쓰는 말은
'뻘란 뻘란(Pelan-Pelan)'이다. 이 말의 뜻은 '천천히 천천히' 이다.
7. 낭비성
그들은 아낄 줄 모르고 마구 써버린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이런 습성이 생겼을까? 이들은 사실
풍요할 때 내일을 위해 저축, 절약을 못한다. 가난을 운명적으로 받아 드리기때 문일까 ?
풍성한 천연자원, 무더운 기후, 힌두와 이슬람의 운명론적인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봉급을 받은
후 며칠은 풍요하게 쓰지만 월말이 되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말을 인니말로
'땅갈 뚜아 땅갈 무다 (Tanggal tua Tanggal muda.)" 라는 속담이다.
8. 관료적 사고
그들은 공무원이나 군인이 되기를 원한다. 인니인들이 믿기는 지위나 권세가 있으면 재물은 저절로
따라 온다고 믿는다. "스므아 우르산 머스띠 우앙 뚜나이(Semua Urusan Mesti Uang Tunai)" - 돈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속담이 있다.
B. 서구인과 인니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비교
인니인들과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을 비교하므로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그들을 이해 할 수 있다.
하나, 서구인들은 논리적이지만 인니인들은 생각이나 행동에 다분히 감정적이다.
둘, 서구인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인니인들은 특별한 사건과 인물을 중히 여긴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가 있을 때에 시간 중심이 아니고 인물중심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주요 인물이
아직 참석하지 않으면 마냥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셋, 서구인들은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인니인들은 인간 관계를 중요시한다.
넷, 서구인들은 위기감이 있지만 인니인들은 장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다섯, 서구인들은 활달하게 자기를 표현하지만 인니인들은 침묵의 미덕을 좋아한다.
여섯, 서구인들은 인격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인니인들은 지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C. 인니 사람들의 좋은 점들
( 언어학교에서 '플라띠'와 면담 )
인니인들에게 부정적인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긍적적인 좋은 점들이 많이 있다.
선교적인 측면에서 이것들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그들과 접촉하는데 좋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성 이해는소그룹 가정교회로 복음을 전파할 때 유리하다.
첫째, 친구로 사귀기가 쉽다.
이들은 미소가 많고 부드럽고 친절하여 교제하기가 쉽다.
둘째, 인니인들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악행을 쉽게 잊어버린다. '용서 해 주셔요' '잘못 됐습니다' '깜박 잊었습니다( Saya lupa)' 하면
그만이다.
셋째, 가족의식이 강하고 가정 결속력이 강하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플 때 돌아보지 않으면 사람가치를 못한다고 여긴다.
넷째, 모든 인니인들은 위에 계신 신을 믿는다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 불교, 힌두교).
다섯째,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다.
여섯째, 그들은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침해하기를 싫어한다.
일곱째, 인내심이 많다. 속담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여덟째, 그들은 잔치와 행사를 좋아한다.
아홉째,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길 가르쳐 주기를 좋아한다.
열째, 상부상조하는 정신 ('고똥로용')이 강하고, 할 수만 있으면 남에게 나눠주기를 좋아한다.
VII. 소그룹 가정교회를 통한 인니의 선교전략
인도네시아 현재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가정교회 전략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어느 때보다도
적합하고 시급히 적용해야 할 성경 적인 방법이다. 가정교회는 기성교회와의 경쟁적인 상대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위임 명령을 수행하고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지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교회 시대처럼 오늘날 가정교회는 주위에서 교회를 돕는
교회(Para Church)의 조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당한 교회, 복음 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합당한 공동체이다.
A. 소그룹 가정교회의 정당성
하워드 스나이더는 그의 책에서 소그룹 구조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하나, 유연성이 있다. 그룹모임의 장소, 시간, 횟수, 규모에 있어서 융통성이 크다.
둘, 유동성이 있다. 소그룹은 가정, 사무실, 상점, 다른 어느 장소에서든지 회합을 가질 수 있다.
셋, 포괄적이다. 모든 류의 사람들에게 참석할 수 있는 문이 열려져 있다.
넷, 인격적이다. 대화가 인격적인 수준에서 일어난다.
다섯, 분할에 의해 성장할 수 있다. 각 그룹의 생명력에 의존하여 소그룹은 마치 살아있는 세포들이
2, 4, 8 혹은 그 이상으로 분열되는 것처럼 증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섯, 최소한의 전문적인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직업적으로 훈련받은 요원들이 필요하다기보다
교회의 인력 중에서 은사가 있는 일꾼들을 얼마든지 개발 할 수 있다.
일곱, 그것은 제도적 교회에도 적용 가능하다. 개러스 아이스 노글은 "소그룹 사역의 지도체제는
애굽의 바로처럼 최고 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한 억압적 통제 조직이 아니라, 건강한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체제이다"고 하였다.
B. 소그룹 가정교회를 통한 복음전파의 방법들
1. 소그룹 가정교회 시작
소그룹 가정교회를 어떻게 시작하여 지역교회를 형성할 것인가? 전도자는 먼저 복음을 받을
대상자들을 문화적으로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정을 개방하고 다른 사람들의 가정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다. 신약성경에 복음 전파와 봉사를 위해서 가정을 열고 손 대접할 것을 말했다
(롬12:13, 딤전3:2, 디도서1:8, 히13:2, 벧전4:9).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가정을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선교를 위해 가정을 사용하신 것은 세례요한의 두 제자가 어느 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왔을 때부터 였다. 예수께서는 돌이켜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그들이 묻자 예수께서는 그냥 장소만 이야기 해 주시지 않고 '와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주님이 계시는 곳에 가 보았고 그날 그와 함께 지냈다 (요한 1:37-40),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그날 그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가정이 있었던 덕분에 제자의 길로 들어 설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이런 개방 된 가정에서 식사시간 및 그 밖의 다른 시간에 예수님의 선교는 이루어 졌다."
지역 내의 소그룹 가정교회들이 점차적으로 성장됨으로 성도들이 스스로 믿음이 견고해 진다.
신앙들이 성장되므로 자신들이 예배처소를 스스로 준비해 가도록 하며 또한 지역 사회에서 야기되는
종교적인 문제들도 기도하면서 해결하도록 한다. 소그룹 가정교회들이 연합정기 예배가 점차
부흥되면 지역 중앙교회로 발전하는 것이다. 소그룹 가정교회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어떻게 훈련하여 세울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지역 목회자
(전도자, 또는 선교사)는 큰 관심을 가지고 소그룹 지도력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의 더 자세한 연구는 지도자 훈련에서 다룰 것이다. 이상에서 소그룹 가정교회와 지역 중앙교회를
그림으로 도식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 할 수 있는가를 다음 원리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
2.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높은 수용성이 있다. 그들은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고아, 과부, 노인 등)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병행하여 구제사업이 전개되어야
한다. "(시72:12-13)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셨다. 하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 자신의 사역임을 확인했다(눅4:18-21). 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준비되어 있는 상태임을 믿었다(마11:25-26). 셋,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가난한
자를 부르시는 복음을 말씀하셨다(마11:28). 넷, 몇 차례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보이라고 하셨다(마19:21, 눅12:33, 14:12-14).
죤 칼빈도 기독교 강요에서 고대 문헌들을 인용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교회 재산은 원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고대의 여러
인용들을 들어서 설명하였다." 이어서 교회 재물을 빈민에게 분배하는 장에서 "아미다 감독
아카키우스도 무수한 폐르샤 사람들이 기아로 아사 직전에 있을 때 자기 교회의 성직자들을 모아놓고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잡수시거나 마시지 않음으로 교회당에 값비싼 접시나
잔이 필요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교회 기물들을 녹여 그 가련한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사며 몸값을 치르게 했다."라고 하였다.
3. 문화의 충분한 이해
350여 종족을 가지고 있는 다민족 다문화로 이루어 진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전파의
대상 지역과 종족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복음전파 방법을 그 문화에 알맞게
옷입어야 할 것이다.
4. 구속적 유비를 통한 접근
a. 문안 방문하기.
인니 사람들은 외국사람의 방문을 기쁘게 생각한다. 람뿡 사람들의 생활철학에서 이미 증거한 바
있지만 쟈바와 순다 사람들도 손님을 아주 반갑게 맞이한다. 그들은 손님이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큰 명절(Idul Fidri)이 돌아오면 서로 방문하여 그 동안 허물진 것들에 대해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다.
b. "호라스" 라는 인삿말.
이 말은 Batak족들의 인사 말이다. 그들은 Horas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평강, 평화, 축복이라는
의미로 그들이 말할 때에 "Horas!"라고 외친다. 아침 인사도 "호라스", 저녁인사도 "호라스", 낮
인사도 "호라스", 만났을 때에도 "호라스", 헤어 질 때에도 "호라스"라고 외친다. 그리고 무슨 행사를
할 때도 "호라스" 라고 큰 소리를 한다. 예를 들어 씨뿌리는 축제에도 '호라스' 라고 외친다.
자녀들을 축복 할 때에도 "호라스"라고 한다. '호라스'라는 말은 바딱 족에게 매우 친근하고 평화와
축복이 내포 돼 있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요, 평강이요, 축복이다.
c. 뽀똥 끄빨라
'뽀똥 끄빨라 깜빙' (Potong Kepala Kambing) or '뽀똥 끄빨라 아얌' (Potong Kepala Ayam)
쟈바 반둥에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순다족인 그들은 집을 짓고 대들보를 올릴 때, 재앙을
물리치고 평안을 얻기 위해서 '염소나 닭 머리를 집터에 묻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인니어로
'뽀똥 끄빨라 깜빙' (Potong Kepala Kambing) or '뽀똥 끄빨라 아얌' (Potong Kepala Ayam)이라고
한다. 그것이 구속적 유비의 한 흔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짐승의 머리 즉 생명의
피를 드려서 평화를 얻으려고 하는 데 사실상 참 평화와 영원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의
피에 있다.
d. 부적
평안한 삶을 위해서 부적(Jimat)을 사용하거나 주술한 보석 반지를 사용한다. Jimat은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으로 호랑이 가죽이나 호랑이 뼈, 또는 작은 칼등을 옷 속이나 주머니에 지니고
부적으로 호신을 믿는다. 혹은 주술을 아랍어로 써서 부적으로 갖고 다닌다. 또 보석 반지에
주술을 새겨 호신이나 행운을 위해 갖고 다닌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에서 해방 받고 항상 보호하심을
받으려는 심리에서 인간이 이런 것을 의지하고 부적을 믿게 되었다. 예수는 우리의 완전한 보호자요,
우리의 힘이시요, 뿔이시요, 영원한 축복이 되시며,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시며, 우리의 진주
보화가 되시며 영원한 기쁨이 되신다.
e. 쟈바인의 세계관에서 '왕'의 사상
쟈바인은 '왕은 우주의 모든 신비한 힘의 화신들이다'는 사상이 있다. 그것은 자바사람들이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그분 예수님이 바로 쟈바
사람들이 기다리는 구원의 왕이시요, 모든 신비의 힘을 한 몸에 지니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아라. 죽은자를 살리시는 신비한 능력, 문둥병, 장님, 앉은뱅이를 말씀한마디로 고치시는
신비한 힘을 소유한 분을 보라. 자연도 그 앞에서 순종(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풍랑이는 갈릴리를
순하게 함)하는 신비력을 가지신 분, 그 분이 바로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이다.
f. 자바인의 세계관에서 'Slametan'사상
그들은 인생의 삶중에 '평안'을 추구하며 이를 위하여 많은 행사들이 있다. 이것이 감사의 의식이다.
출생, 생일, 이사, 승진, 결혼, 장례, 여행전, 여행 전후 등이다. 참 평안은 예수 안에 있지 않는가?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g. 성경과 코란의 비교
참고적으로 회교도가 전 인구의 85%인 인니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그들이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코란경에 예수님의 기록이 있다. 이슬람교도들과 만나 그것을 접촉점으로 사용 할
수 있다. 이들은 사복음서와 구약의 오경을 믿는다.
5. 강력한 기도과 성령 운동
소그룹 가정교회를 세워 갈 때에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며 성령이 출만하게 역사 되도록 해야 한다.
오직 주의 복음은 성령을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이다.
a. 기도
기도로 성령을 받는다. 주님은 메시아직을 수행하시던 도중 한 번은 특별히 주의해야
할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다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b. 계속되는 오순절과 부흥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주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정교회를 모일 때마다 간절히 기도
드리자. 그래서 믿는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진 것이다. 새 성전이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새로운 중심지, 기도와 예언의 새로운 능력을 인간들은 받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예배드려야 할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다. 이제는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문이 되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경륜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목적이 인간들의 본성 속에서 성취될 수 있도록 성령이 쏟아 부어진
사건이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단순한
추종자로부터 변화되어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연합관계로 들어간 사건이었다.
오순절 사건을 세상 편에서 볼 때, 찬양과
기도와 예언이라는 그 본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사람들로 구성된 새
성전이 내려온 사건이다.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이 계속하여 이루어지는
곳마다 새로운 부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교회의 부흥을 기대 하십니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의지하십니까? 조직화 된
힘을 의지하십니까? 아니면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를 부흥시키시고 새롭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십니까? 교회에는 또 다른 오순절이 필요합니다. 모든 부흥은
오순절의 반복이며, 오늘날에 있어서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 입이다."라고 로이즈 죤스는 증거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소그룹 가정교회에 오순절의 사건이 계속되도록 해야한다. c . 성령 충만성령을 달라고 기도함으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으로 충만함은 곧 하나님의 큰 부유함을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다. d. 은사활용소그룹 가정교회가 힘있게 전진하고 부흥되는 것은 온 교우가 기도에 힘써 성령을 충만히 받고 각각 받은바 은사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은사를 다른 형제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사랑으로 봉사의 열매를 맺을 때에 교회는 활력 있게 부흥되는 것이다.
6. 도시 지역 오늘날 시대는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고 있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모든 문화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로 모이는 것이다. '클라바우트'는 이 물결을 거꾸로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세계적인 추세인 이 도시의 인구집중 현상을 Conn은 다음과 같이 예상하였다.이 세상은 점점 더
도시화 되어가고 있다. 20세기 초기에는 세계인구의 15%가 도시에 살았다. 1950년까지 28%로
성장하였다. 1975년까지는 41%가 되었다. 만약에 주님이 2000년까지 오시지 않는다면 도시인구
비율은 최소한 55%에 육박할 것이다. 그때에는 최소한 32억의 인구가 도시지역들에서 살게 될
것인데 그것은 1965년의 세계 전 인구수와 같은 것이다.
7. 농촌 지역
인도네시아 상황에서는 복음 전파하기가 농촌 지역이 도시 지역보다는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슬람이 강한 시골 지역은 교회가 틈을 타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폐쇄적인 농촌
사람들은 각 동네마다 이미 회교 사원이 있고 주민이 이슬람화 돼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한 길은
주의 성령을 의지 할 때에 가능하다고 본다. 소그룹 가정교회 전략이 농촌지역에도 적합하다.
C. 적대적인 환경 가운데 가정교회
소그룹 가정교회를 이루어 갈 때에 사탄의 세력이 방해하며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생긴다.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어려움, 핍박, 방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항상
힘써서 기도하고 주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충성하면 주께서 해결할 길을 열어 주신다.
그 문제점들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살피고자 한다.
1. 핍박의 문제들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일어났다. 어떤 면에 있어서
기독교는 핍박을 통해서 계속 성장하고 더욱 견고하게 되었다. 스테반이 순교를 당하고 핍박이
심해지자 성도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안디옥까지 핍박을 피하여 흩어진 평신도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고 안디옥 교회가 형성되었다. 로마시대 때 핍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저들은
지하무덤(Catacoms)이나, 가정집에서 비밀히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이슬람의 열성 지하조직들은 이슬람을 국교와 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기독교인 숫자가 증가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교회 건축허가 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을 증거 하였다. 선교사들의 비자를 3년 이내로 동결을 하였다. 그나마도 그
숫자를 점점 줄이고 있다. 교회가 확장되고 개척되어 갈 때 어려움과 핍박이 따르지만 주 성령께서
함께 역사 하신다. 이럴 때 합심기도 하여 핍박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2. 회중의 모임을 통해서 해결한다
가정교회의 그룹이 이미 형성되어 가면 주민들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건국 이념이 빤짜실라이니 백성들은 각기 자기 종교를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를 진행해 갈 때에 이슬람과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현지 교회 지도자들을 세워
지역의 반장(RT)과 동장(RW)과 함께 의논하여 해결점을 선하게 찾도록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적 생활이요,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며, 외인들에게 칭찬을 받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정교회에서 합심하여 신실히 기도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주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3. 예배 장소의 원활한 이동
가정교회 규모의 예배는 일반 성도들 집에서 얼마든지 드릴 수가 있으니 이웃에 이슬람이 다소
강하다 하더라도 약 네 곳의 성도 집을 지정하고 주일마다 예배처소를 돌려 가면서 순번 적으로
정기 예배를 드려도 된다. 왜냐하면 이슬람교도들은 예배에 장소적 개념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들은 교회를 방해할 때에 한곳에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한다. 저들은 구약의
성전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개척해 갈 때에 성도들이 교회의 신령 적인 뜻을 잘 이해한다면 장소를 옮기는 다소의 불편이 있더라도 그런 수고는 교인들이 충분히 감당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남부 수마트라 람뿡의 빌립보 교회를 열어 갈 때에 이렇게 함으로 이슬람들의 긴장된 신경을 누그럽게 할 수가 있었다. 주민들 중에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기까지는 당분간 이렇게 장소를 변경하면서 정기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성도 수가 어느 정도 많아지면 어떤 지역에서 성도들이 계속하여 일정한 장소를 예배 처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주민 중에 성도들의 세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같이 신자들의 기도에 의한 하나님의 응답인 줄 믿는다. 4. 가정교회에서 부정적인 생각들과 해소점
가정교회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리한 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나, 가정교회는 공간과 시설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다소 불편하다. 사람들이 피로하게 느낄지 모른다.
둘, 때로 어려운 점들을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배처소의 이웃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한다거나,
이웃의 사나운 개나 가축들로 인해서 성도들이 모일 때나 예배 때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셋, 예배를 드릴 때에 일어나는 소리들을 이웃사람들이 싫어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넷, 기존 성도들에게 느끼는 것인데 가정교회 인도자의 인격적 자질이 부족하여 모임에 흥미를
잃을 경우도 있다. 이런 당면한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교회와 성도들은 전심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해결점으로 처리해 가면 거의 대부분의 문제점은 해결될 것이다.
가정교회를 열어 주의 교회를 확장해 갈 때에 무엇보다도 합당한 인도자를 세우도록 교회에서는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잘 훈련된 인도자를 파송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인도자는 예배 장소로 된 곳의 이웃들과 관계를 원활히 하고 주의 사랑으로 대인관계를 잘 유지
해야한다.
D. 가정전도의 효과적인 방법들
Castillo 박사는 그의 책에서 필리핀의 복음전파를 위해 사도행전에 출현하는 여러 인물들을
모델로 사용하면서 가족개종을 통한 복음화를 설명하였는데 인도네시아인들의 여러 상황에
적용하면서 논문의 결론에 이르려고 한다. 가족개종은 바로 소그룹 가정교회 전략과 연결되므로
그들의 가정이 바로 예배처소로 된다. 그들을 통해서 교회는 계속 성장 할 것이다.
1. 빌립보 성의 옥사장의 모델
사도행전 16장에 나온다. 바울은 옥사장인 한 가정의 가장에게 직접 복음을 전함으로 그 가족을
예수께로 인도하였다. 바울은 그 옥사장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도 많은
가정의 가장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걱정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인들은 두려운 일들이 많다.
그들의 말 가운데 '두렵다(takut)'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미
인도에시아 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Keselamatan)과 평안(Tenteram)'이다
는 것을 인니의 세계관에서 이미 증거 하였다. 바로 이들에게 주의 복음이 시급히 필요하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네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2. 이방의 백부장 고넬료의 모델
그의 가정은 성경 공부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께 인도되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안내로, 집에 있는 고넬료를 방문하도록 인도 받았다. 그는 고넬료와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인들은 가족끼리 모이기를
좋아한다. 가까운 이웃들끼리 모여 성경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성령께서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를 드리자.
3. 자주장사 루디아의 모델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그녀는 옷감 파는 상인 이였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동시에 세례를 받았다.
루디아와 그의 동료들은 기도하기 위해 강가에 모였다. 바울과 그의 팀이 함께 만났다. 바울이
구원의 복음을 나눌 때에 루디아의 가정은 개종하였다. 인도네시아 백성들도 기도하기를 좋아한다고
그들의 세계관에서 이미 증명하였다. 또 저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의지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기 원하는 사람을 찾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
4. 고린도 유스도의 모델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회당으로부터 내쫒김을 받았다.
복음이 충실히 전파되어 질 때에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드리든지, 거절하든지 한다. 태도들의 차이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분명히 가르쳐진다(막4). 그리스도께서는 반응이 없는 사람들( 단단한 길),
일시적으로 반응한 사람들(돌밭), 부분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가시넝굴밭), 충분히 반응한
사람들(좋은 밭)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복음에 대해 적대 세력이 강한 지역에서 그들 자신의
안전한 처소인 복음을 잘 받아드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복음을 잘 받아드리는 가정을 우선 찾는 것이 중요하다.
5. 브리스길라와 아글라의 모델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과 같은 장막지기인 브리스길라와 아글라 부부와
함께 살았다. 일하는 가운데 사람들과의 접촉은 전 가족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제자훈련을
효과적으로 하는데 사용할 수가 있다. 이 원리는 일반 직업을 가진 복음 전도자들에게 매우 좋은
원리이다. 복음전도자는 사람들과 일터에서 접촉을 통해서 믿음 훈련을 시킬 수 있다.
가정 단위로 개종을 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가정은 서로 떨어 질 수 없는 가정 작은
단위로 하나님이 축복하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도 가정 단위의 개종이 절실히
요청된다. 주님의 지상 명령이 소그룹 가정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 예들이 신약성경에 많이
나타나 증거되어 있고, 하나님은 가정을 초점으로 하여 구원시키시는 전략으로 그의 교회들을 부르신다.
먼저 믿는 가정들은 아직 믿지 않은 이웃 가정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도록 주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이다. 개종된 가정은 소그룹 가정교회의 요새가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가정들을 통해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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