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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장, 12장
섬김과 고난에 대한 바울의 자랑, 셋째 하늘(하늘의 환상), 육체에 가시
1~21절
11: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섬김과 고난에 대한 바울의 자랑, 바울은 그들의 믿음 안에서의 아버지로서 아버지가 자기 딸에 대해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하나님의 열심(질투심)을 느낍니다. 유대 문화에서 딸의 약혼식에서 딸이 결혼할 때 딸을 '정결한 처녀'로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였습니다. 여기서 '약혼'은 바울의 사역을 통한 고린도 교인들의 회심이고, '남편'은 그리스도이며, '결혼하는 날'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입니다(2절).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에 빠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바울의 대적들이 대변하고 있는 뱀에 간 뱀의 '간계'는 하나님의 충분한 공급하심과 현재 그리스도안에 초점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3절). 사탄의 속임수의 수단은 대적들이(바울이 선포한 예수님 대신) '다른 예수', '다른 영'(성령이 아닌 어떤 거짓된 귀신의 영),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구원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대적 들의 '복음'은 모든 이에게 건강과 부를 약속할지는 모르지만 바울의 메시지와 경험과는 반대로 어떤 고난도 말하지 않습니다(4절).
자급자족하며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던 바울은 고된일로 인한 육체적 고생과 떠도는 장인으로서 얻는 불충분한 수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가졌던 문화적인 격멸을 겪으며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경험을 했습니다(7절).
'다른 여러 교회에서....탈취한 것이라', 이는 과장법의 한 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게도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가 위치한 그리스 북부를 말하며, '아가야', 고린도가 위치한 그리스 남부를 말합니다(8~10절).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고린도에서 탐욕의 동기로 일하던 거짓 사도들의 사역과 구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돈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거짓 사도들은 스스로 '광명'(즉, 진리외 구원)의 천사라고 주장했지만 자신들의 참된 기원(사탄)과 운명(지옥)을 숨기고 있었습니다(11~14절).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 하는 바울의 대적들은 스스로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바울의 참된 정체인 의의 사역을 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도 주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15절).
'어리석은 자'는 교만하여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자랑하며 이 때문에 정죄를 받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거의 바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 자랑하려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말이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즉,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즉 성령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따라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상황의 결과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자랑'은 주님이 행하신 일에 있습니다(16~18절).
22~33절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거짓 가르침, 신성 모독, 심각한 범법행위에 대해 서른아홉 대의 매를 치는 형벌을 가했는데 바울의 복음 전파, 특히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에 대해서는 이 모든 죄목이 적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형벌은 성경이 허락하는 가장 심한 매였습니다(신 25:1~3).
'태장으로 맞고', 이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한 이방인의 형벌이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한번 돌로' 맞았는데 이는 성경에서 가장 흔한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세 번 파선하고', 여기에는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뒤에 발생한 행 27장에 묘사된 파선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24~26절).
하나님은 인간의 '약한 것' 가운데서 승리하시며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리를 구현하십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직후에 했던 경험(행 9:8~25)은 나비테아 왕 아레다 4세의 통치기간(주전 9년~주후 40년)에 나비테아의 고관 아래서 발생한 일입니다. '광주리를 타고' 도망쳐야 했던 일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도록 부르심 받은(행 9:16) 결과인 바울의 "약한 것"의 눈에 띄는 한가지 예입니다(30~33절).
셋째 하늘의 환상, 육체의 가시,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영광을 돌리기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서 "육체의 가시"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화자찬이 지닌 이런 측면의 배후에 있는 원리 즉, 바울의 계시가 아닌 이 땅에서의 연약함이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입증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진술합니다.
1~13절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내가....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바울이 자신이 받은 환상을 마지못해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마치 그 환상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3인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셋째 하늘'(즉, 가장 높은 하늘) 이 문구는 지나치게 단순한 '3층으로 된 우주'에 대한 믿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1)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기권, (2) 해, 달, 별을볼 수 있는 더 높은 영역, (3) 하나님이 거하시는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상식적인 구별을 반영합니다. 이 세 번째 영역은 낙원(헬, '파라다이소스', 70인역에서는 에덴동산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복된 장소)과 동일시 됩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두 단어 모두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영역을 언급하는 말로 인식했을 것입니다(2~3절).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 '가시' 또는 '사자'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가장 자주 제한된 가능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신이 전에 교회를 박해 한 일로 인한 고민이나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한 슬픔 내지 계속되는 유혹 같은) 바울의 내적인 심리적 갈등, (2) 바울을 계속해서 박해한 바울의 대적들(이 구절들에서는 가시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가리킵니다), (3) 일종의 육체적 고통 아마도 약한 시력이나 말라리아 열병이나 심한 편두통, (4) 일종의 귀신의 괴롭힘 ("사탄의 사자"),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조심스럽게 세 번째 견해의 일종을 선호합니다. "육체의 가시"는 육체적 상태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7절).
'세 번',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응답을 받은 뒤 이제 그 가시를 없애기 위해 기도하는 일을 끝냈음을 가리킵니다(8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말하며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가에 관계없이 바울의 모든 신자들에게 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유용함과 넉넉함을 강조합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자신이 받은 천상의 계시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받은 계시가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서 지닌 연약함이 주님의 능력을 온전하게 하고 입증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선언("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을 인용합니다(9~10절).
'사도의 표가 된 것은....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고린도 교인들의 회심 및 은사에서 그리고 바울의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경 속에서 인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바울의 사역을 통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 사도의 사역에 수반되고 사도의 사역으로 간주된 초자연적 행위에 대한 심중적인 묘사, 이 세 가지는 새 언약 아래서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출애굽 때의 표적과 기사에 연결시키며 이로써 구속사 내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12절).
14~21절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의 고린도교회 방문,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첫 번째 방문 때 바울은 고린도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바울의 두 번째 방문은 근심 중에 찾아간 방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재정적으로 폐를 끼치기를 거부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사도로서의 바울의 메시지와 삶을 구체화하여 바울의 대적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4~15절).
'교활한...속임수....이득을 취하더냐', 바울은 자신의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활하게 돈을 취하기 위해 헌금을 유용했다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런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디도를 포함해서 바울과 함께 일했던 모든 이들도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의 자기 변호는 기본적으로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6~19절).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못하고',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며 악한 생활방식에 바탕을 둔 이 모든 모습은 그들이 아직도 사실 진정한 신자가 아님을 보여줄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과거와 같이 계속해서 그들의 회개를 끊기있게 기다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에게 시행했을 것입니다(20절).
하나님이 바울을 고린도 교인들 앞에서 그들을 출교하는 수단으로 삼으심으로써 바울을 낮추실 수도 있는데 이는 바울이 대적하는 자들로 인해 슬퍼해야 할 수도 있음을 뜻할 것입니다. 새 언약 아래서 주로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 받은 사도에게 심판을 시행할 때 기쁨은 없습니다(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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