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지금은 남남지간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두번째 부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다. 영국 태생으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음을 구사하는 그녀의 명성은 두 세기에 걸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녀의 무대경력은 13세 때부터 시작된다. 데뷔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발레 레슨을 받는 등 매사에 성취욕이 강한 여인이었다. 16세에는 댄스그룹(Pans People)의 멤버로 참여하고,18세에는 알린 필립스의 무용단(Hot Gossip)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웨버와의 첫 만남은 81년 '캐츠'의 오리지날 캐스팅에서였다. 그 후 '송 앤 댄스(Song and Dance)', '레퀴엠(Requiem)'의 제작에 함께하는데, 특히 '레퀴엠'은 앨범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어 그녀를 '그래미 최우수 클래식 신인상' 후보에 오르게 한다. 여세를 몰아 제작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오페라 유령'. 영화 '타이타닉'과 '쥬라기 공원'을 제치고 20세기 최고의 입장권 수익을 기록한 이 작품에서 사라의 인기는 천장부지로 상승한다. 그래서 '유령'은 웨버가 부인 사라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의도적 작품이란 설까지 나왔다.
뮤지컬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영역은 음악적 깊이를 더해 가며 세계로 확산된다. 92년에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식 주제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불러 지구인을 침묵시킨다.
몬주익 경기장에 뛰어드는 황영조 선수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노래였다. 웨버의 히트곡들로 구성된 뮤지컬 콘서트 투어도 시작하는데, 1999년 한해 동안만도 전세계 81개 대도시에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둬 이른바 '사라 브라이트만 신드롬'까지 일으킨다.
웨버와의 결별은 사라의 음악적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사라에게 웨버는 사랑하는 남편이자, 동료이며, 음악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성공을 웨버의 그늘 덕이라 평가하자 분연히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잠시의 공백기를 거쳐 97년 사라는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부른 '이별의 시간(Time to say goodbye)'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이목을 모으며 자력갱생의 위대한 여가수로 재등장한다.
2000년, 사라는 99년 3월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선시티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 앨범 '에덴에서의 하룻밤(One Night in Eden)'을 내놓고 또 다른 행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내 성공은 내 노력의 결과다"라며 웨버가 선사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버린 사라 브라이트만. 올해 이미 마흔일곱(1960년 생)의 불혹의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그녀의 노래 여행은 끝나지 않은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