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이 되던 해
그해 삼월
구미역 광장에 또래의 순박한 사내아이들이 멈칫멈칫 어색한 첫 눈 맞춤을 하고 있었다.
어느 사이 나타난 금오공고 선배의 안내에 따라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택시를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해서 학교로 속속 모여들었다.
두세 달 전 입학시험 때 하루를 같이 지낸 터라 안면이 익은 친구를 보면
어깨를 감싸며 축하하고 잘 지내자고 우의를 다짐하기도 했다.
언젠가 본듯한 눈익은 얼굴과
생전 처음 본 낯선 모습이 함께 뒤섞여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금오의 열차에 탑승했고,
서로가 수줍게 잡은 손을 반갑게 흔들던 순간
금오의 열차는 이미 소리 없이 출발하고 있었다.
그 열차는 한번 타면 팔 년 동안 내릴 수 없는 운명의 은하철도라는 건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채.
낮엔 교실에서 낯선 선생님의 목소리에 따라 줄을 맞추고,
밤엔 기숙사에서 낯선 선배님의 구령에 따라 각을 세웠다.
얼떨결에 밤이 깊었다.
분주하고 긴장된 하루가 흐르고 쉴 새 없이 뿜어내던 차임벨과 안내방송도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 잠잠하다.
국방색 나이론 누비이불의 촉감은 쌀쌀하고 매끄럽다.
아버지는 주무실까? 엄마랑 내 이야기를 하실까?
형과 동생들은 잠들었을까?
금오의 은하철도가 달의 뒤편으로 접어들어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을 시간.
복도 천정에 달린 스피커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선율이 수직으로 하강해서 바닥에서 한 뼘 뜬 채로 침상 아래로 스며들었다.
존 바에즈가 부르는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란 팝 선율이 애잔하게 흐른다.
부잣집 딸 마리와 벌목공 소년 찰리는 새들이 지저귀는 따스한 봄날에 운명적 사랑을 하고 결혼하였다가
포도가 익어갈 가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뗏목 위에서 손을 흔들며 떠난 찰리, 격랑에 휩쓸려 주검으로 발견된다는 ....
너무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노래다.
일절이 끝나고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심장을 두드릴 무렵 선율은 더욱더 가늘어지더니
방송반 선배의 낮으면서도 애틋한 목소리가 겹쳐 흘렀다,
"새내기 신입생 아우의 입교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뜨겁게 환영합니다.
오늘 구미역에서 운동장으로, 교실로 체육관으로 식당에서 기숙사까지 후배들을 안내하던 의젓한 선배들도 바로 일 년 전
어머니 아버지의 품과 형제들의 울을 떠나 아우들과 꼭 같은 마음으로 낯선 곳에서 첫날 밤을 맞아
아무도 모르게 베갯잇이 촉촉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우리 2학년 선배가 새내기 후배의 형이 되어 품과 울이 되겠습니다.
어미 소를 떠난 송아지는 밤이 되자 울고,
새끼를 떠나보낸 어미 소는 밤이 새도록 우는 밤입니다.
존 바에즈의 "도나 도나"를 끝 곡으로 올립니다."
방송반 선배의 "어미 소와 송아지 이야기"에 이방 저방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 "팝송 영어"란 잡지를 구독한 적이 있어 당시의 웬만한 팝송의 가사를 대부분 꿰고 있었다.
또한 조안이 어떤 인물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를 들을 땐,
합격을 축하한다며 편지하겠다고 해놓고 안 갔으면 좋겠다던 그 소녀가 생각났다.
아! 어쩌면 이렇게 서로 떨어지는 게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마리와 찰리처럼...
"도나 도나" 들을 땐 그 옛날 돼지 몰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나 도나"가 소를 몰 때 하던 말이라고 했지.
우리 말로 바꾸면 "워리 워리" 가 될까.
반전 평화 운동을 하던 조안은 은유의 노랫말과 감미로운 음성으로 광기의 시대 큰 울림을 토로하고 있지.
마차에 실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의 슬픈 눈동자.
한 치 앞도 모르고 평화의 기치 아래 연인과 작별 키스를 남기고 베트남전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미국의 청춘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을 은유하고 있음을
방송반 선배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어쩌자고 수많은 곡 중에 오늘 같은 날 존 바에즈의 "도나 도나"를 선택했을까?
학교인지 군대인지, 구별 못 하고 자신이 장군인지 선생인지... 그들의 전횡에 말없이 굴복해 방조한 가련한 서생들...
아마도 방송반 선배는 그들이 어찌 "도나 도나"를 알겠냐고 확신했던 듯하다.
첫날의 은하철도는 그렇게 달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해 삼월 낙동강 바람은 유난스레 차갑게 불었다.
본관 체육관 실습동을 가릴 것 없이 감아 돌고 휘적거렸다,
기숙사 옥상까지 올라간 바람은
교번과 이름이 적힌 러닝셔츠와 팬츠를 빨랫줄에서 끌어 내려 옥상 바닥 한 모퉁이에 뒤엉켜 나뒹굴게 했다.
하루 가고 이틀 지나 사흘이 되도록 바람은 잠들지 않는다.
바람은 입학식에도 어김없이 참여했다.
대운동장 한구석에서 회오리치며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던 바람은 마이크로 들어가 쉬익 쉬익 소리치며 스피커로 빠져나왔다.
우리는 그 누구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집 떠난 지 사흘 만에 군인이 되었다.
피복 수령, 관물 정리, 점호 보고, 불침번. 집합, 구보 등등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 된 것이다.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 구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거수경례를 하자 동시에 이른바 스타 마치가 울렸다.
두 번 인가 세 번의 전주가 반복되었는데 기억은 분명치 않다.
두 번 반복되었다면 해병대 예비역 소장 출신의 교장 선생에 대한 예우일 것이고,
세 번 반복 되었다면 중장 출신의 이사장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학부모도 있고,
초청받은 기관장과 교육 관계자들도 있는 자리에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싶지만,
당시로는 "군사문화"라거나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할 수조차 없는 사회적 분위기라 하겠다.
오히려 그런 것이 잘하는 일인 줄로 여겼다.
멋있게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여 년 후 나는 악대 부에서 코넷을 연주했다.
구미에서 초청된 교육 관계자가 배석한 행사에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 시에 별생각 없이 투 스타 마치를 울렸다가
악단장 박 선생님이 교장실로 불려가서 혼이 난 사건이 있었다.
대구 시립악단의 연주자를 겸임하던 박 선생님은 자신만 혼나고
단원에게는 화를 내시거나 벌을 가하시지는 않았다.
당시 금오에서 체벌을 하지 않는 드문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교장님도 예의에 어긋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셨던 걸 보면 함부로 판단할 분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다만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싶어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과연 그 시절에 "나는 과거에는 군인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니 스타 마치는 생략하는 게 좋겠어" 할 수 있었을까?
"학생들을 군인처럼 휘몰지 말고 자유를 알고 꿈과 이상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자."고 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는 어느 선배로부터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뚱뚱하고, 복장도 단정치 않고, 걸음걸이도 어딘지 모르게 불량스러운 선배와 야간 동초를 서게 되었는데,
혼잣말로 "학교가 어찌 돌아가려는지 온통 군대 판이야! 일방적 명령뿐이고, 모든 게 권위적이고..."
"선배님 어떤 게 권위적이고, 어떤 분이 그렇습니까?"
"누구긴 누구야? 넓은 화장실을 혼자 전용으로 쓰고 운전기사 고용해서 학교 내를 차를 타고 휘젓고 다니고...
교육자가 무슨 여비서가 필요해?"
카리스마 넘치는 범접할 수 없는 분이라 여겼는데...
"선배님! 저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학교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난번 교장님은 우리가 새벽 6시에 기상해서 허겁지겁 튀어 나가 일조점호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기숙사 사감을 불러 간단한 인원 점검 후 각자 개인적으로 사색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어.
교장은 그래야 하는 거지"
절도 있고 위엄찬 선배 가운데는 이런 분도 있구나 싶어 놀랐다.
자유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며 꿈과 이상을 알게 해 준 열 여덟 살의 그 선배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수백 명의 학생이 새벽 별 아래 기상 후 짧은 순간에 운동장에 모여 인원보고를 마치고 공단을 휘저으며 구보를
하던 그 모습을 보고 "사색하게 하라"고 하신 그분이 계속 학교에 계셨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금오에서 링컨 같은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
"다음 시대의 대한민국 미래를 열어 갈 사람은 바로 미나상데스"라고 하셨던 그분, 서흔 여명의 일본인 교사 단장을 하신
마스오 센세이가 그리워진다.
그리움으로 말하자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화장실 당번을 맡아 세면장에서 대걸레를 발로 꾹꾹 밟아
물을 짜고 있었다.
바로 그때 조용히 다가온 유난히 키가 큰 정 선배님이다.
어깨에 큰 갈매기가 석 줄이 걸려있는 연대참모였지싶다.
"종기야 손 시리지?" 그러고는 내가 밟고 있던 걸레를 자기 손으로 정성껏 쓱싹 문질러 두 손으로 보송하도록 꼭 짜서
내게 건네주었다.
일 년 후 나도 후배에게 꼭 같이 그 선배처럼 걸레를 씻어 주었다.
볼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감동은 받는 사람의 몫인가 보다.
과별 오리엔테이션 실습이 끝날 무렵, 과를 결정할 시기가 되었다.
기계과 갈까. 판금 용접과 갈까 고민했었다.
중학교 졸업하던 날 예쁜 김미옥 미술 선생님께서 전에 부임했던 곳의 미술반에 있던 잘 생기고, 그림 잘 그리고, 공부 일 등을 하는
멋진 아이라며 금오에 가서 어려운 일 생기면 찾아보라고 주셨던 메모지가 떠올랐다..
수첩을 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열려라! 참깨"
오랫동안 수첩에 보관했던 메모에는 '창녕 김동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밤 옥상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는 전자과 1지망, 금속과 2지망을 권했다.
이상하고 수상하게도 전자과 실습 시에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회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속과에서도 비슷했다.
"담금질이란, 철강을 오스테나이트화 온도로 가열 후 급랭하여, 마르텐사이트를 생성시켜 경화한다."
뭔 말인가 싶었다.
나는 금속의 조직보다는 가공이 재미있었다.
한때 펄펄 끓는 쇳물에 닭의 피를 넣고 주문을 외어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되고 싶긴 했지만.
기계과로 결정했다.
참깨를 외친 것인지, 들깨를 읊조렸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나의 골수에는 어떤 디엔에이가 흐르는 것일까?
나의 심장은 무엇을 볼 때 환희로 뛰는 것일까?
한 줄기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는 있다.
나의 몸에 보헤미안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나의 눈이 가끔 현상계의 건너편을 바라본다는 것을
2학년이 되고 나서,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금오라는 은하철도에서 내리고 싶어졌다.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다듬질 특별실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 14시간 정도 실습을 한 것 같다.
학과 수업에 들어가지 않은 날도 꽤 오래되었다.
모든 특실자가 그러하듯이...
아쉬울 건 없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의 영어 시간중 한번은 일반 영어 또 한번은 공업 영어 수업이지만,
일반 영어 시간에는 잔디심기나 나무심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인문계에서 음악 미술 시간이 푸대접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능올림픽 대구지방경기 이후 당시 전년도 전국대회 금메달을 수상한 금성사 팀과 공동 훈련을 했다.
사실상 전국대회 상대자인 셈이다.
지난해 우승자와 올해 우승자가 경합하여 세계대회 출전권을 갖게 되는데, 이미 몇 회째 연속으로 세계대회 금메달을
한국에서 석권한 시기이므로 전국대회 제패가 곧 세계대회 제패로 이어진다,
그래서 상대의 전력을 탐색하려 금성사팀을 초청했던 것 같다..
모든 장비는 금성사 팀이 탁월했다.
다듬질의 생명인 줄(절삭 공구)이 비교되지 않았다.
상대는 스웨덴(?)제 니컬슨 줄을 쓰고 우리는 삼익 또는 일제 줄을 사용했다.
제품을 닦는 기름으로 경유를 틀 기름통에 넣어 쓰는 우리와 달리 상대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스프레이 방청유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로는 본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는 W/D 윤활제였다.
또 하나의 스프레이가 있었다.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엔진톱 카뷰레터 청소 시 사용하는 이 물질을 흡착하는 거품이라는 것을.
난 상대방 감독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그런 방청제와 경유의 차이는 뭘까요?"
자식 같은 앳된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상대 감독은 웃으며 대답했다.
"평면도가 천분의 일 이 밀리를 다투는 제품의 표면을 스프레이 방청제가 깨끗이 씻고 미세한 도막을 형성하면
평활도를 더욱 높여 줄 것입니다.
제품과 측정기에 손가락 온도가 영향을 미치는 국면인데... 하하"
"제군들이 쓰는 러닝셔츠의 올 부스러기는 몇 미크론이 될 것 같아?
심사 위원이 선수의 제품을 닦아서 측정할까?
표면에 아주 미세한 철 가루라도 묻어 있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어기 충격적인 가르침이다.
그분은 공동훈련을 한 지 한 시간 만에 이미 우리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우린 금오니깐!
우리에겐 섬광처럼 번뜩이는 지혜가 있고, 사흘 밤낮을 연속해서 책을 보는 투지가 있어!
"감독 선생님! 같이 훈련하는 동안 잘 지도해 주십시오.
훗날 금성사에 취직하면 잘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기다릴게.
그렇게 믿어요.
자네들만큼 반짝이는 눈빛을 본 적이 없어."
합동 훈련 마지막 날 상대 선수 형에게 물었다.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다듬질 부문 금메달을 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이번 네덜란드세계 대회에서 금메달만 따면 사원 대우를 받아."
"그럼 지금은요?"
"그냥 기능직이지."
"하"
말문이 막혔다.
기능직이란 게 지금의 기능직 사원하고는 개념이 달랐다.
굳이 비교한다면 지금의 비정규직이랄까?
우리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조선이랑 다를 게 뭐 있어.
전국대회 금메달을 전문대 졸업한 것보다 못한 취급을 하다니
어깨에 붙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 견장을 떼어 버리고 싶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달빛 없는 밤 열 두시 경에 밀링머신 특별 실습을 하던 친구 박현은 내 가방을 들고 대운동장 외곽 울타리 비탈길을 걸으며 말했다.
"종기야! 내가 잘하는 일인지 우애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말릴 수도 없고...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울타리 밑에 앉았다.
"현아! 내 가방 깔고 앉아라. 냉 대하 생기면 장가도 못 간다.하하"
"내가 여자가?"
"너 내 이불로 기어들어 와 만진 거 다 알고 있어.
너 무안할까 봐 자는 척했을 뿐이야.
넌 반은 여자야.
반은 변태고...하하"
"종기 넌 참 간도 크다.
이 판에 농담이나 하고...
웃음소리나 낮춰라! 잡히면 훈육감 야구 방맹이 불난다."
"현아! 나 사실 금오에 와서 따귀는 맞아봤지만, 그 흔한 야구방망이는 한 번도 맞은 적 없어."
"그래! 그저께 우리가 정밀가공사 시험에 전멸한 날, 왜... 실습장 앞에 반 전체 다 집합시켜놓고... 실과 부장 게거품 물고 사라진 뒤,
기계과 과장까라 실기교사마데 전부 야구방맹이 들고 우리가 결딴 날 판인데, 전부 엎드려뻗힌 가운데 종기 네가 벌떡 일어서더니,
시험 떨어져서 가장 참담한 것이 우리라며, 다음 시험에 꼭 합격하도록 굳게 다짐하고 있다고 했지.
나는 종기 너 때문에 빠따 두 배로 맞을 거 같아서 오금이 저렸는데, 넌 거기다가 시험 지도한 선생님들도 책임이 있다고 했지.
그때 선생들이 한숨을 푹 쉬더라고. 누구는 어금니 꽉 물고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렸고. 그때 니가 한 마디 더 보탰지.
"제 뜻은 선생님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실패를 거울삼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며, 선생님께서는 기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해달라고 간청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했어.
넌 사실 선생들을 들었다 놨다 한 거지.
과장은 니말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들어가서 모두 반성해!
선생님들은 원인 분석 하시고."했고.
"현아! 깔고 앉아라. 그 가방 집에 가면 버릴 거야.
내가 네 궁둥이를 목숨걸고 케어했는데 맨바닥에 앉아서 쓰겄냐?"
"금오와서 팔도 사투리만 배웠네."
"나 일어설 테니 말도 못하고 간다고 친구들한테 전해주고 그동안 함께한 것 자랑스러워한다고 전해줘.
봄비 선배한테도 잘 계시고. 다음 시험에는 꼭 합격하라고 전해주고."
"넌 참 유별나다.
다 싫어하는 그 선배를 이 순간에 떠 올리다니."
"그래도 봄비 선배가 남자야.
두세 번씩 시험에 떨어져서 후배 틈에서 시험 보자니 울화통 터질 거야."
"지난 달에 내가 다듬질 시료를 밀링머신으로 안 깎아준다고 이 학년 선수들 집합시켜 놓고 건방지다고 일장 훈시하며
정신 교육한다며 쇠파이프 들고와서 " 몇 대 맞고 정신 차릴 거야?" 했을 때,
난 다섯 대 맞겠다고 해서 그렇게 맞고, 그 다음 종만이는 "세 대 맞고 정신 차리겠습니다" 해서
다섯 대 맞는 게 더 나을 뻔한 세 대를 맞았고, 세 번째 종기 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놀랬다! 놀랬어."
"나야 안 맞아도 정신 차리겠다고 했지.
한 대만 맞겠다고 해 봐.
지금 뼈 부러져 공단병원에 엎어져 있겠지.
그때 난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 날 때릴 수 없다는 걸.
그나저나 나의 다음에 영진이가 힘들었지."
"맞어! 그 말은... 정말이지... 그 상황에서 뭔 말을 할 수 있겠어.
다섯 대 맞겠다할 필요는 없고... 적게 불러도 그렇고 ... 종기 너 따라 했다간 돌려차기가 터질 판인데.
그저 어!버!버 말을 못 했지. 하하하. 난 그때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 아이가?"
"오후 수업 벨이 울려서 영진이부터는 안 맞긴 했지만, 그 말 없는 친구 영진이가 기숙사 가는 길에 내 옆에 쓱 붙더니
뭐라 했던 줄 알아?
배종기 넌 정체가 뭐냐?
네 땜에 맞는 거보다 더 힘들었어.
오줌이 찔끔 나왔어. "
내가 대답했어.
"숙소 가서 내 자리 라디에이터 위에 말려!"
"푸~하!하!하!"
"크크크."
"잠깐! 저기 누가 온다. 안 되겠다.
내가 담을 넘으면 가방 던져줘!"
"종가야! 이대로시간이 멈출 수는 없나?"
급히 울타리를 타고 넘어 훌쩍 뛰어내렸다.
허공에 뜬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캄캄한 우주 밖으로 천길만길 낭떠러지 떨어지듯 긴 시간이 흘렀다.
발이 언덕에 닿자마자 던져준 가방을 받아 옆구리에 끼고 큰길로 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노란 불빛이 달려와 내 앞에서 멈췄다.
"동대구역으로 가 주세요."
택시를 타고서야 현이 생각이 났다.
현인 비 안 맞고 숙소로 들어갔을까?
낙동강 철교를 지나자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어둠 사이로 백사장이 부옇게 나타났다.
아직 날지 못하는 물새들도 있을 텐데.
세찬 빗방울이 발자국을 다 지워버리면 어린 물새는 어떻게 집을 찾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