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다 문우님의 추천으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원은 초록이 꽃보다 예쁘게 느껴질 만큼 상큼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양철로 만든 인형과 돌하르방이 관광객을 반겨 주었다.
나는 바로 갤러리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뜰 주변에 볼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지체 할 수가 없어 갤러리로 들어갔다.
다래향님이 이미 표를 끊어놓은 상태였다.
제주를 찍어놓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을이 눈에 들어 왔다.
김영갑 작가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별세한 것으로 기록 되어있었다. 그는 사진집과 에세이를 낸 작가이기도 했다.
제주에 홀리고 필름에 미쳤다고 기록된 걸로 보아 그가 얼마나 제주를 좋아 했는지 알만했다.
“나 오십견 인가봐”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어떤 질병을 알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병원에서 루게리병 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는 그런 몸 상태로 폐교 건물을 얻어(김영갑 갤러리 모두악)터를 닦기 시작 했단다.
지인들이 찾아와 걱정하면 오히려 태연히 말했다한다.
“3년쯤 더 살면 잘사는 거라네!"
‘비가오고,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양력에 써진 한줄 글귀다. 그 글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
나는 두모악이란 단어의 뜻이 궁굼했다. 일부러 안내를 찾아가 물었다.
“두모악이란 뜻이 뭔가요?”
“하날오름관이란 말로도 쓰는데 한라산의 옛 이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두모악','하날오름관' 모두 한라산의 옛 이름인 것이다.
나는 이들이름이 한라산 보다 더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은 오른쪽으로 제1전시관과 왼쪽에는 제2전시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 1 전시관에서는 그의 살아생전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보다 제1 전시관과 제2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써진 문구였다.
제1전시관 벽면에는 ‘구름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이라 쓰여 있었다.
그 문구가 누구에 의해 써졌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김영갑 자신의 심정을 그리 표현해 놓은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른쪽 통로를 보니 ‘마음을 열어주는 은은한 황홀’이란 문구가 보였다.
그런 문구들이 왠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이란 공간을 더 따뜻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었지만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개별행동을 한다고 한소리 들었던 터라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정원에서 단체사진을 몇 컷 찍고 밖으로 빠져 나오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아기자기하니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사실 나는 평소 갤러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광주에 이사온 뒤 그저 주변에 있는 갤러리를 구경한게 전부다.
그런데 왠지 이곳 갤러리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