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산서성의 격돌 1 천왕성의 거침없는 진격이 이어졌다. 그들은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을 돌파했다. 태원에 자리하고 있던 십자성의 분타는 초토화가 됐다. 건물은 새까만 재가 되어 지리상에 서 사라졌고, 분타주인 새만검(塞蠻劍) 무수군 휘하 오백 명의 무인 들은 모조리 몰살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산서 분타에 있던 식솔 들은 물로 개미 한 마리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태원에는 관부가 존재했다. 그것도 태원 분타의 바로 코앞에..... 하지만 낭혈문의 문인들은 관부의 존재조차 무시하고 산서 분타를 쳤다. 한밤중에 일어난 참화에 관부에서 출동했으나 낭혈문의 무인 들은 그들을 무시했다. 노골적인 무시에 관부의 무인들은 분노했으 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엄청난 무력 과시에 감히 함부로 움직 일 수가 없었다. 관부의 무인들조차 무시할 만큼 엄청난 무위를 가진 자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이천이 넘었다. 태원부의 무인들과 병졸들까지 합하면 모두 육백 명. 때문에 관부의 무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세상에는 관부를 무시할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분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낭혈문주 좌천기가 그런 자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 누구나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계획보다 즉흥적인 감흥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가 바로 좌천기였다. 관부를 건드림으로써 훗날 벌어질 일 따위는 무시했다. 그래서 무서 운 자가 바로 좌천기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렇게 낭혈문은 거침없는 진군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산서 성의 모든 문파는 자진해서 봉문을 하고, 낭혈문이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문파들은 임시로 자리를 피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재앙부터 피 하고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산서 무림은 초토화가 되고 있었 다. 낭혈문을 비롯한 천왕성의 진격을 막기 위해 십자성에서 선택한 곳은 태곡(太谷)이었다. 태곡은 태원으로부터 남쪽으로 삼백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 그만 마을로 산서성 남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 척박한 곳에 위치하 고 있기에 마을의 규모는 무척 작은 편이었다. 전부 합해 오십 가구 에 백육십 명 정도 되는 사람들만이 마을 구성원의 전부였다. 무기를 든 무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 이 집을 빼앗겨야 했다. 이 낯선 침략자들은 대의를 앞세워 칼을 들 이밀고 그들의 거처를 침탈했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칼을 앞세운 무인들의 위세에 떠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야 했다. 주인은 그들인에 어느새 객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버린 기막힌 현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여인 들이 아직 겁탈당하지 않고, 장정들이 칼부림을 당하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태곡에 배치된 십자성의 책임자는 당사혁이었다. 대공자인 마정옥이 중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한 뒤 어부지리를 얻은 사람이 바로 당사혁이었다. 그는 호시탐탐 십자성의 후계자 대 열에 끼어들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산서성에서 천왕성의 진격을 막 으란 명령을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이것은 그에게 기회였다. 굳이 십자성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지 않더라도 십자성에서 당문의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 당사혁은 숙부인 백안혈수(白眼血手) 다관일과 더불어 자신의 형 제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그와 함께 당문삼병(唐門三兵)이라고 불리는 형제들을 불러들인 것은 그만큼 그의 의지가 확실하기 때문 이다. 십자성에서 당사혁에게 지원한 병력은 내성의 비밀 병력 중의 하 나인 혈루십삼조(血淚十三組)였다. 당사혁조차 혈루십삼조라는 조직 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에게 배속된 인원은 혈루십 삼조 중에서 칠조부터 십삼조까지 칠백 명이었다. 단지 칠백 명뿐이었지만 혈루십삼조에서 풍기는 기운은 범상한 것 이 아니었다. 마치 낭인들같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절 제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 도대체 십자성에는 이만한 전력이 얼마나 존재하는 걸까? 이 괴물 은 마치 양파와 같아서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더욱 많은 비밀이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미치도록 십자성이라는 괴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당사혁에게 십자성은 정말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당사혁은 자신의 거처에서 당관일과 당종혁, 당만혁, 그리고 혈루 십삼조의 부대주이자 책임자인 마안귀(魔眼鬼) 독종행과 함께 천황 성의 진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의논했다.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당사혁과 확실히 대비되는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지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바로 당사혁의 동생인 당종혁이었다. 그는 당문에서도 손꼽히는 용독술의 고수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감숙성에 적을 두고 활동하던 불귀당(不歸黨)이라는 문파를 멸문시킨 일 때문이었다. 불귀당은 문도 수 삼백 명의 중견 문파였는데 당시 외유를 나갔던 당문의 식구 한 명이 그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 에 당문에서는 당종혁을 감숙성으로 파견했고, 그가 감숙성에 들어 선 지 채 하루가 되기 전에 불귀당은 이름 그대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삼백 명의 고수가 채 반항도 못하고 독에 중독되어 죽은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당문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알 렸다. 삼백의 고수를 몰살시킨 당종혁은 대국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났다. 때문에 당사혁을 비롯한 삼형제가 함께 움직일 때는 두뇌 역할을 했다. "저들은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일직선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로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막느냐는 건데......" "무슨 방도가 있느냐?" "후후후!" 당사혁의 말에 당종혁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에 당문의 사람들도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한편 당문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안귀 독종행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당사혁 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느낌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 정파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기를 내포 하고 있군. 원래 인물됨이 그런 것인가, 아니면 당문이란 가문 자체 가 그런 특성을 가지는 것인가?' 자신 역시 마도의 인물들보다 더욱 패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만 이들을 보니 그런 자신의 생각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았다. 독종행이 입을 열었다. "그 웃음은 그들의 전진을 막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오?" "후후! 물론입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조건이라...... 그게 무엇이오?" "후후후!" 당종혁은 확답을 피하고 묘한 웃음만 흘렸다. 그러자 당사혁이 대 신 입을 열었다. "몇 명만 희생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들의 전진을 확실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혈루십삼조가 그들을 친다면 확실히 궤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대체 그 방책이 무엇이오? 어떻게 몇 명의 희생으로......" "그것은......" 당사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말을 듣는 독종행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계책을 다 듣고 난 이후, 그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 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난 그 계책을 받아들일 수 없소. 내 아무리 패도를 지향한다 하 더라도 내 부하들을 그리 허무하게 희생시킬 생각이 없소." 그의 강경한 어조에도 당사혁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반대는 이미 염두에 둔 탓이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방법을 쓰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소. 비록 몇 명의 희생이 있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소. 그리고 수적 열 세인 우리가 놈들을 확실히 제압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소.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시오." "그건......" 독종행이 대답을 못하자 당사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방도가 없다면 우리의 말대로 행동하시오. 그러면 독 대주 에게도 탄탄대로가 열릴 테니....." "하지만 내 부하를 희생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소." "누가 혈루십삼조를 희생시킨다고 했소이까? 여기에도 얼마든지 지원자가 많은데......" 당사혁의 입가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누구? 설마!" 독종행이 당사혁의 의도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당사혁 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당신은 십자성을 뭐로 보는 거요? 아무리 당신이 당문의 대공자 라 해도 이런 작전은 결코 용납할 수 없소!" "당신은 생각보다 무르구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정상적인 방 법으로는 저들을 절대로 막을 수 없소. 적들의 수는 이천이 넘는데 우리는 불과 칠백 정도요. 제아무리 혈루십삼조의 무공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적들 또한 정예요. 지금까지 그들이 내려오면서 벌인 흔적 으로 보아 그들의 전력은 우리보다 훨신 압도적이오." 당사혁의 말에 독종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자 당사혁이 승 리의 미소를 더욱 짙게 베어 물었다. "모든 죄과는 내가 뒤집어쓰겠소. 그러니 독 대주는 내 말대로 하 시오. 모든 것은 종혁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고 이 일은 절대 밖 으로 새어 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오. 내가 장담하오." 결국 독종행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정상적인 방법 으로는 결코 천왕성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 문이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모든 책임을 당사혁이 진다고 했을 때 그 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는 결과의 책임이 자신에 게 돌아올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모든 안건은 당사혁이 의도한 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형제들과 독종행이 나간 후 단둘이 남은 방 안. 당사혁과 당관일 이 마주 앉았다. "너는 이번 일의 결과가 어찌 되리라고 예상하느냐?" "당연히 우리의 승리지요.' "자신 있느냐?' "숙부님은 누구보다 저에 대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안 된다면 되 게 해야지요.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하기는......" 당관일은 당사혁의 말에 수긍을 했다. 그의 조카인 당사혁은 심계 가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얻어냈 고, 추진력과 의지가 굳건했다. 그런 당사혁을 걱정하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 당관일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 당문에 무척 중요한 일이야. 결과에 따라 십자성 내에서 우리의 위상이 달라질 게야. 그리고 십자성을 먹어 치울 수도 있겠지." "그 때문에 치욕을 감수하고 십자성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대공 자가 도마란 자에 의해서 얼굴에 커다란 자상이 생기는 수모를 당했 습니다. 물론 성주야 자신의 핏줄인 아들을 옹호하겠지만 한번 금이 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불신이 싹텄 겠지요."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있다, 당문의 영화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각오면 됐다." 적무강에 의해 십자성의 전력에 큰 구멍이 뚫렸다. 도저히 한 사 람에 의한 피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피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타격은 대공자 마정옥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 이다. 그로 인해 이제까지 숨죽이고 있던 십자성의 다른 후계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당사혁에게 기회였다. 그는 야심이 큰 자였다. 십자성을 통째로 집어삼켜도 배부르지 않은. 당종혁은 밖으로 나온 후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어슬렁거 리며 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십자성의 무인들에게 점거당한 후 주민들은 한 집에 여러 식구가 모여 험악한 무인들을 피했다. 그들은 이 낯선 침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의 터전에서 나가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주민 들에게 별다른 해코지는 없었으나 시일이 더 지난다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먹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시꺼먼 남자가 다가오자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고자 애를 썼 다. 마치 쥐가 고양이의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주민들이 쥐였고, 당종혁은 그들을 노리는 고 양이였다. 당종혁은 그런 주민들을 재미있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꽤 괜찮은 물건들이 몇 개 보이는군. 재밌겠어!" 그에게 있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그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존재는 그와 동등한 무력 을 소유한 인물들뿐이었다. 그가 히죽 웃었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인혈(天刃血) 제5권 6"과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 월요일 하시는 일마다 기쁨이 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