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등대 같으신 선생님
윤 효 석 (한의사, 대구 해인한의원)
한의대학생으로서 평소 단식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나는 방학 때를 이용하여 혼자서 단식을 하곤 했었다. 그때도 한의과대학 수업과목 중에 단식에 대한 내용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당시 나는 나름대로 단식을 고행과 수행의 방편 중의 하나로 삼고 있었다. 그때 단식에 관한 많지 않은 책 중에서 ‘사람을 살리는 단식’을 읽게 되었고, 이어서 ‘민족생활의학’을 읽고 마음속으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만나 뵙고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선생님의 책이 단식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되어 있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의대학생으로서 약물 몇 가지와 혈자리 몇 가지의 지식뿐이었던 나에게 책의 내용이 정말 실제적이었고, 책의 뒷부분에 있는 치험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소설처럼 감동스러웠고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들이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면허증을 가진 한의사가 되었지만 진료에 참여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이상의 방황과 갈등을 풀어보려고 떠돌 듯 두 달간 인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물이 다르고 기후 토양이 다른 지역에서 몸살하듯 고열이 나고 오한이 들면서 대변은 회색빛이 되고 급기야는 눈에 황달까지 오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단식이었다. 며칠간의 단식과 요양으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린 뒤 여행을 그만두고 돌아오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가난한 여행자에게 그 나라의 의료시설이 무슨 혜택이 될 수 있었겠는가?
몇 개월간 몸을 추스르고 선생님께 전화를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어려운 전화였으나 선생님께서는 갓 한의대를 졸업한 신참 한의사가 기특하셨는지 얘기를 잘 받아주시고 ‘민족생활학교가 청주에서 있을 테니 참여하라’고 하셨다.
1995년 7월 청주신협 연수원에서 10박11일 교육이 있었는데 일생동안 지키고 살아야할 참으로
중요한 여러 값진 교훈들을 배웠다. 교육은 내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긴 역사 속에서 한 점도 못 되는 기간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 주었고,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웃과 사회가 함께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까지, 건강한 사람들부터 목숨이 오락가락하실 정도로
힘이 드신 분들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내 목숨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공감했다. 강의를 들을수록 우리 것과 우리 민족을 위해서 작지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솟구쳐 올랐다. 양심적인 의사, 양심적인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되었다.
‘청춘남녀가 혼인 전에 반드시 민족생활학교 교육을 받고 마음의 깨침을 얻어서 혼인을 하게 되면 참으로 몸과 마음이 두루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겠구나. 그러면 건강한 사회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내도 한의사였는데 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교육을 받았다. 민족생활학교를 통해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이를 갖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 선생님의 뜻을 잘 받아들여 첫아이를 낳을 때도 민족생활의학에서 배운 대로 집에서 자연출산을 하고 자연육아법을 실천했다. 병원에서 의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출산 과정이 아니라 가정에서 주위의 가까운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출산은
아내에게 출산에 대한 두려운 마음 없이 아이들 셋을 더 낳게 해주었다.
어떤 이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호통도 대단하시다는데 한 번도 선생님이 무서운 분이라고 느끼지는 못했다. 특유의 꼿꼿하심과 불의에 굴하지 않으시는 강인함과 언행은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두려움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동네의 작은 한의원을 경영하는 한의사로 선생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관심과 호의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선생님께서 가시는 길이 옳고 그 길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항상 풀지 못한 숙제처럼 삶 속에 남아 있다. 언젠가는, 늦기 전에 그 길을 함께 하고 싶다.
한의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있다. 다 선생님께 배운 것인데, “병은 나쁜 것이 아니다. 병은 나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선생님이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병을 계기로 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뭔가 잘못된 것들이 있거든 반성하고 새롭게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병은 아무것도 아니다.
병은 잘못 살아온 나를 바로잡아 주는 너무나 고마운 선생인 것이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병과
싸우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병은 우리 몸에서 물러나 있다”는 말이다. 새겨볼수록 그 뜻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