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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온전한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은 이후, 나는 정신질환을 직접 겪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고통받는 타인에게 이런 연결감을 느끼자 나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신질환을 향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사회적 낙인은 여전하다. 정신장애는 본질적으로 생리학적인 문제다. 관상동맥 질환이 심장의 병이듯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자들은 종종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는다. 환자 가족들에게도 낙인이 찍힌다. 암이 환자의 잘못이 아닌 것과 똑같이 정신질환도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신질환을 대하는 가장 적절한 태도는 공감과 치료법을 찾으려는 헌신임을 깨닫게 하는 일에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암스트롱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최고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의사나 가족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아프고 지쳤더라도 자신을 보살피는 일의 꼭대기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어야 한다고. 당신의 병과 진단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고, 최고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의사가 당신에게 주는 약과 그가 하는 치료가 정확히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밝혀내고, 의사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질문하고 점검하고, 제2의, 제3의 의견을 구하라고. 이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고. 궁극적으로 당신의 건강을 책임질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도, 당신이 살아남기 원하는 의사들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물론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결국은 당신 스스로 뛰는 경기라고.
전두엽이 성격이 표현되는 방식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이지처럼 머리 외상의 결과든, 나처럼 암 때문이든, 아니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처럼 신경퇴행성 질환 때문이든, 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은 성격이 상당히 많이 변한다. 때로는 정말 기괴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자제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데다 자기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긴 했어도 단지 더위 때문에, 여행의 고됨 때문에, 손자들과 생활하면서 겪는 소음과 신체 활동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이라고 여겼다.
평소라면 사소한 일은 그냥 넘겨버리겠지만 이제 나는 수시로 그들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픈 것 진저리가 나. 발진도, 부은 팔도 진저리가 나. 모든 게 다 진저리가 나. 그리고 두통은 계속 찾아왔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한다.
자신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질병인식불능증anosognosia이라는 증상은 여러 신경증과 정신증 상태에서 나타난다.
조현병 환자의 약 50퍼센트와 양극성장애 환자의 약 40퍼센트는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진단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해도 그것을 자기 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보지 않는다. 환청을 듣거나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가장 극적인 증상인 경우에도 환각을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다. 조현병 환자와 양극성장애 환자 가운데 질병인식불능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정신의학적 치료에도 격렬히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느끼기에 내 정신은 완전히 멀쩡했다. 혹시라도 뭔가 문제가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피곤한 것뿐이라고 믿었다.
가족과 직장 동료를 점점 더 의심하게 되었고 아주 단순한 과제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의 성과에 점점 더 큰 불만을 품었다. 나는 사람들이, 특히 내 가족이 나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기적이고 남의 감정에 무심한 사람으로 변하며 나 자신의 최악의 버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나의 또 다른 뚜렷한 특징이었던 감정이입 능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점점 잃어갔고, 늘 배려해주는 남편과 특히 더 그랬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난 반면, 어떤 사람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것일까?
뉴헤이븐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경험하기 시작한 몇 가지 성격 변화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두엽과 측두엽에 영향을 미치는 전두측두 치매 환자에게서 보이는 증상과 유사했다.
전두측두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일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이러한 통찰의 결여는 전두측두 치매와 다른 여러 정신장애에 대한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내가 내 삶의 많은 시간을 연구하며 보낸 조현병도 이러한 정신장애에 포함된다.
나는 전두측두 치매에도, 조현병에도 걸리지 않았지만 부은 뇌가 나를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나의 뇌는 기수가 고삐를 놓쳐 위험하게 질주하는 말과 같았다. 점점 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을 때 했다. 무언가 빗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혹시 눈치챘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에는 우리 중 누구도 몰랐지만, 나의 집착적인 식탐은 전두엽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호였고, 내 경우에 그 문제는 식욕 촉진 효과를 가진 스테로이드 때문에 더 악화됐다. 전두측두 치매를 앓는 사람들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체중이 상당히 증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먹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두피질이 제대로 기능할 때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따르는 장단점을 저울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능이 억압되거나 사라지면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대로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난 달달한 게 좋으니까 달달한 거 먹을 거야. 끝!
내 경우에는 단순한 숫자들로 덧셈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눗셈이나 뺄셈, 곱셈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글쓰기 능력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변한 점이 있다면 단기 기억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오히려 글쓰기 능력이 더 좋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언어능력은 여전히 멀쩡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왕성했다. 창의력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는데 아마도 스테로이드의 추진력 때문인 듯했다.
나의 감정들과 기억들은 너무나 강렬하고 때로는 너무나 기괴해서 그 부담감을 덜어내려면, 또 생생한 회상이 흐릿해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얼른 언어로 옮겨놓아야만 했다.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숲에서 버섯을 따고 얼음처럼 차가운 개천을 건너고 야생 블랙베리를 따던 날들. 50년도 더 지났건만 너무도 생생하고 유쾌해서 나는 이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교통 표지판을 충실하게 확인하면서도 교차로를 하나 또 하나 지난다. 나는 아주 신중하다. 길을 읽고 싶지 않다. 그러나 몇 백 미터를 걸은 뒤에는 더 이상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지 못한다. 거리 이름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익숙한 이름이긴 하다. 하지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느 방향으로 난 길인지는 도저히 기억해낼 수 없다.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한 뉴런을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뇌세포들 사이의 연결과 뇌 영역들 사이의 연결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연결은 더 강해지고 어떤 연결은 시들어가고 어떤 연결은 손상을 입는다. 뇌의 한 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세포들 사이의 새로운 연결이 생성되어 장애가 생긴 기능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우리 존재의 본질까지 바꿔놓는 걸까?
이제 나는 그 시기에 일어났떤 다른 일들도 흐릿하기는 하지만 차츰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우리집을 찾아왔던 해충 방제 회사의 젊은 직원도, 스프레이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지 대답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며 내가 그를 해고하겠다고 했던 일도 기억난다. 길을 잃고 온몸에 소변을 묻힌 채 다녔던 날도 떠오른다.
그리고 나에게 살구버섯의 의미는 영원히 망쳐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버섯이자 정말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였고, 폴란드와의 정서적 연결 고리로 내 유년 시절의 특별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살구버섯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살구버섯이라는 단어조차 큰 소리로 입에 올리기 어렵다. 살구버섯의 이름만 들어도 나는 공원에서의 그 끔찍한 날로 되돌아간다. 그 일은 나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날 나의 행동이 정신적 붕괴 과정의 일부였음을 깨달은 뒤로는 살구버섯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장 정신을 잃는 상황이 떠오르게 되었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 이것은 매일 나를 따라다니는 공포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암과 방사선치료에도 불구하고 계속 평소의 나 자신이기를 고집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의 정신이 손상되었던 시기에 가족들이 겪어보았듯이 그런 적응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내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것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했다. 특히 내가 괜찮다고 계속 우겼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나 변화가 명백해졌을 때도, 새로운 나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계속해서 그러한 현실을 부인하고만 있었다. 어머니나 아내가 더 이상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우리 가족 중 우리의 행복한 삶이 달라지기를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내 병이 초래하는 현실을 온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행동의 변화는 그 위험이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점진적 기억상실이나 육체적 능력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엄마는 그냥 늙어가는 거야. 깜빡깜빡하는 것도 당연하지." 혹은 "어머니는 관절이 아파. 그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 다정하고 애정 어린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거야."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성격의 왜곡(분노, 짜증, 자제력 상실, 공감 결여)은 뇌에 심각한 물리적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받아들이고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30년 이상 정신질환에 관해 연구해오는 동안,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내게 진정으로 가르쳐준 것은 바로 나 자신이 겪은 고통이다. 도저히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세계. 과거는 순식간에 잊히고, 미래는 계획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며, 어떤 논리도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는 몸소 경험했다.
뇌는 그 복잡성과 신비로움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우리가 꿈꾸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모든 것, 그러니까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모든 것은 뇌에서 온다. 우리는 우리의 뇌다. 병이나 노화 때문에 뇌가 망가져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우리의 페르소나를 잃게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정신에 관해, 그리고 언젠가는 설명되고 치료되기를 모두가 소망하는 정신질환에 관해 더 많이 알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