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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와 꽃뱀 91
(용광로 속??) 다 타버리는 줄 알았어요!⊙
한 바퀴를 돌자 두 사람의 춤이 착착 들어맞았다. 그도 그
럴 것이 서울춤으로 이미 이력이 난 경력자들이 만난 것이
다. 그녀도 동철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흠뻑 춤에 빠져서
서로를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동철이 그녀에게 춤을 추자
는 제의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먼저 했을 성싶게 그녀의
춤은 동철의 구미를 당기고 남음이 있었다.
동철은 서서히 속도를 높여 나갔다. 그녀도 신이 나는지 얼
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간혹 동철이 악센트를 주어 그
녀를 끌어안으면 그녀도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착착 감겨
왔다.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춤이었다. 그 강약의 포인트
속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읽어내고 결국엔 상대방을 자신의
포로로 만드는 기술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서너 번 플로어를 돌고 나자 그들의 춤은 금세 농
도가 짙어졌다. 이들은 벌써 10여 년 지기 파트너인 양 상
대편의 요구를 서로 헤아리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아무 말
없었지만 그러나 무한한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플로어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더 이상 채울
수가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카바레를 빠져나오자 그녀는 공중전화를
먼저 찾았다.
「엄마! 나야. 서울에서 전화 안 왔어요? 네, 그럼 알았어
요. 지금 친구 지숙이네 집 앞이에요. 혹시 애아빠한테 전화
오면 그렇게 전해주세요.」
그녀의 전화는 아주 능수능란했다. 나이 든 친정 어머니를
속이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전화를 끊고 동철을 돌
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곤 동철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여관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의처증이 심해요. 잠시도 절 놓아주지 않죠.」
동철이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동철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별다른 대꾸를 하
지 않았지만 동철과 함께 버젓이 여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녀를 동철은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동철이
그녀의 옷차림과 액세서리를 보고 한눈에 느꼈듯이 이미 자
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외부로 발산하는 그녀를 어느
남편이 안심하고 마음대로 놓아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철의 춤상대이며 또
한 향연을 치를 비너스인만큼 동철은 그녀를 편안히 해줄
작정이었다.
동철이 예상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녀는 성에 있어
서도 격정적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방 안에는 희미
한 핑크색 불빛만이 방 안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었다. 대단
한 여인이었다. 나이에 비해 피부는 탄력이 넘치고 적당한
볼륨에서 뿜어나오는 음기는 한 남성의 밤을 사로잡기에 부
족함이 없었다.
동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그녀는 요염하게
실눈을 뜨며 작은 미소를 보냈다. 그녀는 동철의 팔을 빼서
팔베개를 만들어 베고는 뱀처럼 동철의 몸에 감겨왔다.
「너무나 좋았어요. 온몸의 뼛속이 텅 빈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대단해요.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다 타버리는 줄 알았어요.」
동철은 이불을 끌어 그녀의 목까지 당겨주었다. 팔베개를
한 그녀는 동철을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대로 깊
은 잠에 빠진 것이다.
동철은 평화로이 잠든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밖으로 슬며
시 빠져나왔다. 대구에 내려오면 꼭 만나봐야 하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철은 황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동철입니다.」
「아니 누구라고? 동생이 어쩐 일이야.」
「누님 보고 싶어서 대구에 안 왔능교.」
동철은 자기도 모르게 흥이 나서 대구 사투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럼 지금 대구에서 전화하고 있는 거야?」
「그러믄. 지금 대구라니까.」
「아니, 그래 지금 어디야?」
「동대구역이오. 누님 보고 싶은데 제가 어디로 가면 될
까?」
「그러지 말고 내가 차 가지고 나갈게. 거기 있어.」
「아니 그럴 필요없어. 택시 타고 가지, 뭐.」
「그럴까. 그럼 거기서 택시 타고 중앙로 사거리 대구은행
본점 옆에 행복다방이라고 있거든. 거기 와서 전화해. 내가
바로 나갈게.」
「알았수. 지금 바로 출발할게.」
황여사를 만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동철이 그녀를 만나러 대
구에 내려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동철에게 다가왔다.
「동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오셨나 그래?」
「무슨 바람이라니? 누님 보고 싶어서 왔지.」
「어쨌든 잘 내려왔어.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어디 야외에라
도 나가서 근사하고 신나게 보내자고. 내가 차를 가지고 나
올 테니까. 동생 한 10분 있다가 밖으로 나와.」
그녀는 들뜬 듯 서둘렀다.
동철이 10분 후에 나오자 그녀의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동철은 그녀의 옆좌석에 탔다. 동철은 자신의 동정을 바친
그녀가 늘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통해서 성을 배웠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동철을 도왔
다. 동철은 그녀에게 남다른 정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정
을 통하고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알고 있었지만, 그런 성적
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동철은 진실로 그녀에게서 누이의 정
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10여 분을 달려 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앞산’이
란 곳이었다.
그녀는 차를 어느 양옥집 앞에 대었다. 주차를 하기도 전에
안내원이 서둘러 차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겉에서 보기에는 여염집 같았으나 음식
점이었다. 방 한쪽에는 대형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고 교
자상까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동철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뭐, 적당히 먹지.」
「이 집 옻닭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는데 그걸 먹어볼까? 몸
에 좋다니까 한번 먹어.」
「그러지.」
종업원이 오디오 스위치를 넣고 나갔다. 스피커에서는 지르
박 음악이 쿵쿵거리며 흘러나왔다.
「누님, 한번 출까? 음악도 좋은데.」
「누가 춤꾼 아니랄까봐. 좋아 한번 추자고.」
그녀는 동철을 얄밉다는 듯 흘겨보고는 일어나 손을 내밀었
다.
동철은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끌어당겨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동철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손사래를 쳤
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 여긴 대구란 말이야. 누가 보면 어
쩌려고.」
「볼 테면 보라지, 뭐. 겁날 것 없어.」
그녀는 허리에 감은 손으로 동철의 등을 때리며 눈을 곱게
흘겼다. 동철은 블루스 전진 스텝을 밟다가 한 바퀴 돌리며
지르박 스텝으로 바꿔 추었다.
방바닥이라 양말이 좀 밀리긴 했지만 그런 대로 맛이 있었
다. 한창 흥을 돋우려는데 종업원이 문을 두드렸다.
종업원도 별 놀라는 기색없이 탁자 위에 술과 밑반찬들을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술을 몇 순배 돌리며 두 사람은 계
속해서 춤을 추었다. 종업원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음식상
이 들어온 것이다.
두 사람은 물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씻은 다음 식사를 했다.
닭은 색깔이 까맣게 변해 있었으나 느끼하지 않고 씹히는
맛이 있어 좋았다. 거기에 소주를 곁들이니 아주 일미였다.
식사가 끝날 즈음 동철은 그녀의 손을 이끌어 다시 한번 땀
이 흥건할 때까지 춤을 춘 다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부자
리를 폈다. 오랜만에 황여사와 함께 느껴 보는 열락의 밤이
었다.
이튿날 동철은 그녀의 가게에 들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고 여행비까지 두둑하게 받았다. 아쉬워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동대구역으로 나와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에 몸을 실었
다. 오후 1시쯤 부산역에 떨어진 동철은 곧바로 태종대로
직행했다. 동철은 태종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너 시간을 감상하다가 해운대로 나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해운대 백사장을 거닐며 동철은
여행의 한가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깔
리고 해운대 주변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카바레를 찾아 들어갔지만 고고 음악이 나오고
젊은이들이 몸을 신나게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알고 보
니 그곳이 유흥지인 관계로 낮에만 카바레로 운영을 하고
밤에는 고고장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동철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부산에서 제일 좋은 카바레로 데려다주시죠.」
「서울서 오신 모양이군요.」
「예, 아 춤을 추러 카바레에 들렀더니 일곱 시에 끝난다고
하네요. 부산 시내 전체가 그런 건 아니겠죠?」
「여부가 있습니까? 여기까지 오셨으니 재미 좀 보셔야
죠.」
「그러니 기사님 잘 좀 부탁합니다.」
「부산역 부근에 태평양이란 카바레가 있어요. 물이 동양
제일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곳이죠.」
동철이 택시에서 내려 업소에 들어가니 정말 태평양은 태평
양이었다. 얼마나 플로어가 넓은지 끝이 안 보일 지경이었
다. 뿐만 아니라 동양 최고라는 말처럼 군데군데 노랑머리
의 서양 사람들도 보였다. 좌석에 앉으니 태평양에 빠진 듯
의자가 동철의 몸을 집어삼킬 듯 빨아당겼다.
부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동철은 다시 마산과 진주, 호남의
목포와 광주, 전주를 돌았다.
진주며 마산은 업소에 손님들은 별로 없었지만 서울 못지않
게 춤솜씨가 일품이었고, 호남지방에선 광주가 아주 깨끗했
다. 웨이터부터 손님들까지 매너가 깍듯했으며 친절하였다.
긴 여정이었다. 동철은 몸 속에 오래 묵었던 찌꺼기가 말끔
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넘게 여행을
하고 나니 갑자기 서울이 그리워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동철은 어느 도시를 가도 외롭지
않게 되었다. 언제라도 연락하면 나올 만한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 놓았기 때문이다. 춤을 추면 어디서나 사람 사귀기
가 쉽다. 춤꾼에겐 지역주의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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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케 쉔, ~~~~~
순례의 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