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만든 진미, 황태
이학주(강원대학교 교양교육센터 글쓰기 담당,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최고의 맛, 황태>
황태로 만든 음식은 무엇이든 참 맛있다. 황태가 풍기는 그 특유의 향이 음식을 맛있게 한다. 황태는 머리며 껍질이며 뼈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요리가 된다. 게다가 어떤 재료와 섞어도 모두 궁합이 맞는다. 황태묵, 황태껍질튀김, 황태껍질볶음, 황태채국, 황태양념구이, 황태해장국, 황태라면, 황태구시다, 황태채무침, 황태고추장, 황태된장 등등이 모두 황태요리이다.
이렇게 맛있는 황태는 현재 강원도 용대리, 대관령, 하장면 등에서 덕장을 만들어서 말리고 있다. 연안명태가 많이 잡힐 때는 동해안 집집이 덕장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용대리 황태덕장은 그 명성도 대단하고 유래와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독특한 강원도인의 삶과 문화가 깃든 용대리 황태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겨울눈 덮인 황태 덕장의 참 풍경>
“와, 아빠 저게 뭐야?”
아이들과 속초로 가던 어느 날 용대리를 지날 때 차에 타고 있던 딸이 내게 물었다.
“어디, 뭐가 있어?”
“저기 길가에 있는 것 말이야.”
딸은 덕장에 가득 널려 있는 황태를 가리켰다. 정말 장관이었다. 눈 멈출 수 없이 큰 밭, 그곳엔 덕장 가득 황태가 걸려 있었다. 마침 하얀 눈이 바람에 비끼며 펄펄 날리고 있었다. 황태덕장 위에는 어떤 여인이 함박눈을 맞으며 황태를 걷어내고 있었다. 다시 물에 적셔서 덕장에 걸려는 것이다. 그 여인은 추위를 막으려고 얼굴을 수건으로 폭 싸서 마치 눈사람처럼 보였다.
“황태덕장이야.”
“그게 뭔데요? 아빠!”
“응, 그게 말이야. 명태를 가져다가 추위에 말려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일이야.”
“새 상품요?”
“그래, 황태라는 새 상품을 만드는 중이란다.”
딸이 황태에 대해 묻는 바람에 우리는 잠시 그 덕장 주변에 쉬어가기로 했다. 인부들이 이곳저곳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저 멀리 소나무 가지위로 하얀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설악의 풍경은 언제 봐도 일품이었다. 그렇게 멋진 설악산 앞 황태덕장에도 하얀 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 눈 아래로 눈을 동그랗게 뜬 명태가 황태로 변신하고자 꽁꽁 얼고 있었다. 줄에 꿰어진 명태는 그렇게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물에 적셔서 덕장에 널어 얼리고 녹이고를 반복한다.
“황태덕장 크기가 어떻게 돼요?”
황태덕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침 주인인 듯한 노인이 옆으로 지나갔다. 그때 얼른 나는 물었다. 엄청 큰 덕장이 얼마나 넓은지 궁금했다.
“5천5백 평입니다.”
“와! 대단합니다.”
“이거는 보통이예요.”
바로 앞에 있는 덕장만 5천5백 평이고, 그 옆으로 또 다른 덕장이 연이어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이 풍경은 겨울에만 볼 수 있다. 올 겨울엔 날씨가 도와준다고 주인은 말했다. 바람과 눈과 추위가 있어야 황태는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용대리 황태덕장의 유래>
용대리에서 황태덕장이 시작된 것은 6.25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였다. 지난 해 만난 대성덕장 사장은 1961년부터 용대리 황태덕장이 시작했단다. 그전에는 바닷가에서 또는 집집이 마당에 덕장을 만들어 명태를 말렸다.
1961년 어느 날 함경도에서 황태를 만들던 사람이 진부령을 넘어서 용대리에 오게 되었다. 골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했다.
“바로 여기야.”
그는 갑자기 소리쳤다. 바람과 추위가 함경도 영흥과 비슷했다. 게다가 설악산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그는 속초에서 어물상회를 하며 직접 황태를 만들던 터였다. 물론 6.25한국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었다.
“여보게, 여기에서 황태를 만드세.”
그는 같이 용대리로 갔던 점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땅을 구입하고 그곳에 덕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용대리에 황태덕장이 생기게 된 사연이다. 이후 수많은 황태덕장이 생기게 되었다.
용대리가 일명 바람 풍(風)자를 쓰는 풍대리로 불리는 까닭도 바람이 잘 불기 때문이다. 용대리 사람들이 황태덕장을 얘기할 때 꼭 하는 말이다.
<황태생산의 어려움>
황태를 만드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먼저 겨울농사이기 때문에 추위가 대단하다. 영하 27~8도까지 내려가도 찬바람 속에서 일을 해야 했다. 살이 저미고 손발이 쪼그라들었다.
“옛날에는 물에다 담갔다가 물지게로 져서 날라 널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동해안에서 할복을 해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널어요.”
그나마 요즘은 명태를 얼음 속에 담갔다가 건져 나르는 물지게를 지지 않으므로 조금 낫다.
“일할 사람이 없어요.”
황태 작업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덕장에 널고 걷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는 노인뿐이고, 그나마 기초연금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정한 수입이 있으면 기초연금을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쓰는데, 그나마 여러 어려움이 있다.
“노임이 비싸서 탄산이 맞지 않아요.”
게다가 더 어려운 사실은 임금이 비싸다. 이 때문에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누렇게 황색이 되려면 볏짚을 써야 해요.”
지금은 상온숙성을 하고, 저온으로 오랜 기간을 두고 변색을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볏짚이나 가마니를 활용했다. 마치 청국장 만드는 원리를 쓴 것이다. 아마도 그 맛이 명태와 황태가 다른 원인이기도 하다.
“덕장의 나무는 잘 쓰면 20년은 써요.”
나무는 여름에 비를 맞지 않게 관리를 잘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나무이므로 약품을 친다거나 페인트를 칠해서 가공을 하지 못한다.
덕장에서 건조를 하는 주체는 자기명태와 위탁명태가 있다. 자기명태는 덕장을 하는 사람이 명태를 사서 말리고 파는 방식이고, 위탁명태는 원양회사 등에서 명태를 제공하여 덕장에서 말리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수익이 많지 않다. 위탁건조에서 얼마를 받는데, 그곳에서 노임과 경비지출하고 남는 돈이 수익이기 때문이다.
<왜 고기 이름을 명태라 했을까>
유래가 전하는 고기이름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명태는 그 유래가 전한다. 바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사연이 있다. 이유원은 함경도관찰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그가 함경도에 관찰사로 갔을 때 들은 이야기를 그 책에 기록했다.
옛날 함경도관찰사 민 모씨가 명천군(明川郡)에 초도순시를 했다. 그때 반찬으로 내놓은 생선이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물었다.
“이 생선 이름이 뭐요?”
“예, 아직 이름은 모릅니다. 다만 명천에 사는 태(太) 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잡은 고기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관찰사는 한참을 생각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고기 이름은 명태(明太)라 해야겠소.”
명천의 명자와 태 씨의 태자를 따서 관찰사는 그 고기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명태는 상황에 따라 수많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가 조사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명태(明太): 명태를 총칭하는 명칭.
간태(杆太): 강원도 간성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
간태(干太): 명태업자들이 부르는 동건 명태.
강태(江太): 11월 경 강원도 연해에서 잡아 동건(冬乾, 얼려 말린)한 질이 나쁜 명태.
건태(乾太): 명태업자들이 부르는 동건 명태.
골태: 속살이 딱딱하여 부드럽지 못한 황태.
그물태: 망태의 다른 말. 그물로 잡은 명태.
금태(金太): 잘 잡히지 않아 귀하다고 하여.
깡태: 기온이 높아 얼리고 부풀리기가 안 돼 바로 건조된 황태.
꺽태: 산란하여 살이 별로 없이 뼈만 남은 명태.
낙태(落太): 건조과정에서 부주의로 땅에 떨어진 황태.
난태(卵太): 산란 전에 알을 뺀 상태로 잡은 명태.
냉동진공태: 공장에서 기계로 급속하게 얼리고 부풀려 말린 푸석한 명태.
노가리: 명태 새끼. 앵치라고도 한다.
더덕북어: 1월 중 신포(新浦)에서 잡아 동건한 어육(魚肉)이 노랗고 부풀부풀한 가장 좋은 마른 명태.
동지(冬至)바지: 동지 전후에 찾아오는 명태.
동태(凍太): 얼린 명태.
막물태: 마지막 어기(漁期)에 잡은 작은 명태.
망태(網太): 그물로 잡은 명태.
먹태: 기온이 높아 색깔이 검게 변한 황태.
매가리: 강원도와 서울에서 25cm 내외의 생명태 또는 건명태를 지칭.
무태어(無泰魚): 함경도 명천의 토산물로 알려짐.
무두태(無頭太): 머리를 떼고 몸통만 건조시킨 것.
바닥태: 바람태. 해안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빨리 건조시킨 것.
백태: 기온이 지나치게 추워 얼어붙어 살이 희게 변한 황태.
북어(北魚): 말린 명태. 북방에서 온 고기 또는 북방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
북태(北太): 일본 북해도에서 수입되던 명태.
북훙어(北薨魚): 얼려 말린 최상품의 명태.
생태(生太): 얼리지 않은 싱싱한 명태.
선태(鮮太): 신선한 명태.
섣달바지: 음력 12월부터 떼를 지어 오는 명태.
애태: 애기태. 작은 명태.
염태(鹽太): 간명태. 소금에 절인 명태.
왜태: 아주 큰 명태.
원양태(遠洋太): 원양어선에서 잡은 명태.
은어바지: 은어(도루묵) 떼를 쫓아 내유(來游, 찾아오는)하는 명태.
조태(釣太): 낚시로 잡은 명태.
진태(眞太): 동해안 근해에서 잡은 명태. 원양어선과 구분.
짝태: 내장을 빼고 소금에 절여 넓적하게 말린 명태.
찐태: 덕장에 바람이 많이 불어 육질이 흐물흐물해진 황태.
추태(秋太): 가을에 잡은 명태.
춘태(春太): 봄에 잡은 명태.
코다리: 명태의 내장을 빼고 반쯤 말린 것.
통태(統太): 내장과 같이 건조시킨 황태.
파태(破太): 건조 과정에서 흠집이 생긴 황태.
황태(黃太): 겨울에 말려 색이 누렇게 된 명태.
월별명태: 함경도 지방에서는 월별로 잡히는 명태를 一太, 二太, 三太 … .
크기에 따라서: 대태(大太), 중태(中太), 소태(小太), 왜태(倭太), 아기태 등
<명태가 잘 팔리는 사연>
명태가 국민 생선이 된 것은 잘 잡히기 때문이었다.
“명태가 왔어요. 명태가 왔어요. 명태 싸게 팝니다.”
옛날 명태 장사가 외치는 소리이다. 6~70년대 풍경이다. 명태장수가 트럭 가득 싣고 온 명태를 비료포대에다 삽으로 퍼 담아 팔았다. 그만큼 많이 잡히는 고기였다. 아주 흔한 고기였다. 그렇게 잘 팔리던 명태는 어느 때부터 제의에서 꼭 필요한 제물로 인식되었다. 제상에 올리는 포(脯)는 당연히 명태포였다. 이 때문일까.
“사람이 70프로를 먹으면 귀신이 30프로를 먹어요.”
용대리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명태 또는 황태가 잘 팔리는 이유이다. 사람이 요리해서 먹는 것도 있지만 집안의 제사용(祭祀用)이 많다는 것이다. 또 무속인들의 제사에도 꼭 쓰이고, 마을제사를 지낼 때도 필수 제물이다. 실타래와 한지와 명태는 예물로 신목(神木)에다 매달았다. 제사용으로 많이 쓰인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담백하고 말리기 쉽고 냄새가 적은 고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흥겨운 황태축제>
“설악산 산신께 비나이다. 황태축제가 성황리에 아무 사고 없이 끝날 수 있도록 살펴 주세요.”
황태축제 준비가 끝나자 축제장 끝자락에는 제사상이 차려지고 마을이장과 축제위원들과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정갈하게 제물을 차리고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 걸세.”
마을사람들은 기대가 컸다. 그 어느 행사보다도 이번에는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3일간에 걸쳐 진행하는데, 빼곡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무려 7개 분야 35개 이상이나 되었다. 벌써 음악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지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려고 모여들었다. 사람들 어깨는 저절로 덩실거렸다.
공연행사, 황태요리체험, 황태문화체험, 황태장터, 황태전시, 특산품판매, 짚라인타기 등 정말 즐길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축제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유명한 가수를 초청하기도 한다. 그 가수를 따라 오는 사람도 꽤 많다.
이처럼 황태축제는 용대리 황태를 널리 알린 원인 중 하나다.(문화통신, 2023,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