佔畢齋集卷之十八 / 詩 / 明妃塚 進退格
漢帝本求傾國色。明妃何事落氈庭。
自緣薄命辭雙闕。不爲無金誤一生。
夜月龍沙魂脉脉。春風馬鬣草靑靑。
胡雛縱牧猶膜拜。何況中華過客情。
*진퇴체(進退體) : 율시에서 용운(用韻)하는 하나의 격식으로, 두 개의 서로 비슷한 운을 격구(隔句)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구와 3구에는 우운(虞韻)을 쓰고, 2구와 4구에는 어운(魚韻)을 쓰는 것을 말한다. 보통 진퇴격(進退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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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집(谿谷集) 장유(張維)생년1587년(선조 20)몰년1638년(인조 16)자지국(持國)호계곡(谿谷), 묵소(默所)본관덕수(德水)봉호신풍부원군(新豐府院君)시호문충(文忠)특기사항윤근수(尹根壽),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이정귀(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文章) 사대가(四大家)로 불림
谿谷先生漫筆卷之一 / [漫筆] / [古人用韻]
古人用韻。各有體格。其逐句用韻。始於虞廷賡歌。於詩則頌之受小球大球。雅之捄之陾陾。風之手如柔荑等章是也。後世所謂雙韻詩。若杜之大食刀歌。韓之陸渾山火。皆出於此。一句一韻。三句而易。始於老子明道若昧章。元次山中興頌。岑參走馬川行。出於此。王弇州謂秦始皇琅邪臺銘用此體。而攷之實不然。三句一韻。始於采芑二章。韓奕首章。秦皇帝嶧山之罘銘。皆用此法。後世銘頌。尤多有之。而詩歌則罕見焉。隔句互用韻。始於魚麗及采薇首章。昌黎張徹銘出此。柳子厚佩韋賦又隔三句而互用之。蓋本諸此而少變者也。近代律詩所謂進退體者。亦類此。句中再用韻。始於離騷卜居曰。哫訾栗斯。喔咿儒兒。突梯滑稽。如脂如韋是也。漢魏以來謠語有類此者。如天下模楷李元禮。不畏強禦陳仲擧。大才槃槃謝家安。江東獨步王文度之類甚多。三句一韻。上二句各自叶韻。未知其所自始。而韓昌黎王仲舒墓銘用此體。若二句一韻。自是通行之法。余故不論。
계곡만필 제1권 / [만필(漫筆)] / [옛사람의 운(韻) 사용[古人用韻]]
옛사람들이 운(韻)을 사용할 때에는 각각 체재와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한 구(句)마다 운(韻)을 단 것으로 말하면, 우정(虞廷)의 갱가(賡歌)가 시초라고 할 것인데, 《시경(詩經)》에서 찾아본다면 상송(商頌)의 “소구와 대구를 받아[受小球大球]” 장(章)과 대아(大雅)의 “흙을 척척 파서 올리며[捄之陾陾]” 장과 위풍(衛風)의 “손은 삘기처럼 부드러웁고[手如柔荑]” 장 등이 바로 그러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후세에 쌍운시(雙韻詩)라고 운위하는 것 가운데 가령 두보(杜甫)의 대식도가(大食刀歌)라든가 한퇴지(韓退之)의 육혼산화(陸渾山火) 같은 것들도 모두 여기에서 기원한다 할 것이다.
한 구마다 운을 하나씩 달다가 3구(句)가 지난 다음에 바꾸는 것은 《노자(老子)》의 명도약매장(明道若昧章)에서 비롯되는데, 원차산(元次山)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과 잠삼(岑參)의 주마천행(走馬川行)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왕엄주(王弇州)는 진시황(秦始皇)의 낭야대명(琅邪臺銘)도 이 문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조사해 본 결과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았다.
3구(句)마다 하나의 운(韻)을 단 것은 채기(采芑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임) 2장(章)과 한혁(韓奕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임) 수장(首章)에서 시작된다. 진시황(秦始皇)이 세운 역산(嶧山)의 부명(罘銘)도 모두 이 체재를 따랐고, 후세의 명(銘)과 송(頌)을 보면 더더욱 이런 현상을 보이는데, 시가(詩歌)에서는 이러한 체재를 보기가 힘들다.
한 구를 건너뛰어 호용(互用)하기 시작한 것은 어리(魚麗 《시경》 소아의 편명임)와 채미(采薇 《시경》 소아의 편명임) 수장(首章)으로부터인데, 창려(昌黎 한유(韓愈)의 별칭임)가 지은 장철(張徹 한유의 문인으로 종자(從子)의 서(壻)이기도 함)의 묘지명(墓地銘)도 이 방식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유자후(柳子厚 유종원(柳宗元)의 자(字)임)의 패위부(佩韋賦)를 보면, 또 3구를 건너뛰어 호용을 하였는데, 이것도 이 방식에 근본하여 약간 변용(變用)을 한 것이며, 근대의 율시(律詩) 가운데 이른바 진퇴체(進退體)라고 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 구 안에서 거듭 운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이소경(離騷經)》 복거(卜居)가 효시인데, 이를테면 “족자율사(哫訾栗斯) 악이유아(喔咿儒兒)”라든가 “돌제골계(突梯滑稽) 여지여위(如脂如韋)”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한(漢), 위(魏) 이래의 풍요(風謠) 가운데에도 이와 유사한 것들이 나타나는데, “천하의 모범인 우리 이원례, 강포한 자 겁낼까 우리 진중거.[天下模楷李元禮 不畏强禦陳仲擧]”나 “집에서 편히 쉬는 크나큰 재주 사안석(謝安石), 강동의 독보로세 우리 왕문도.[大才槃槃謝家安 江東獨步王文度]”라는 식의 표현이 무척이나 많이 보인다.
3구에 하나의 운을 달면서 위에 있는 두 개의 구에 각자 협운(叶韻)하는 방식은 언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한창려(韓昌黎)의 왕중서 묘지명(王仲舒墓誌銘)에도 이 문체를 쓴 것이 눈에 띈다.
그 밖에 2구에 운을 하나씩 쓰는 것은 원래 통행되던 법인 만큼, 이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논하지 않는 바이다.
[주-D001] 우정(虞廷)의 갱가(賡歌) : 순(舜) 임금 조정의 창화가(唱和歌)라는 뜻으로,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나오는데, “대신들이 즐거우면 임금이 흥성하고 백관도 화락하리라.[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煕哉]”라는 순 임금의 노래와 이에 고요(皐陶)가 화답한 “임금님이 밝으시면 신하들도 훌륭하여 만사가 안정되리이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는 노래와 또 이어서 부른 “임금님이 잗달게 굴면 신하들도 해이해져서 만사가 실패하리이다.[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라는 노래를 가리킨다.[주-D002] 소구와 …… 받아 : 장발편(長發篇)에 나온다.[주-D003] 흙을 …… 올리며 : 면편(綿篇)에 나온다.[주-D004] 손은 …… 부드러웁고 : 석인편(碩人篇)에 나온다.[주-D005] 대식도가(大食刀歌) : 원제(原題)는 형남 병마사(荊南兵馬使) 태상경(太常卿) 조공(趙公) 대식도가(大食刀歌)로,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80에 나온다.[주-D006] 육혼산화(陸渾山火) : 한퇴지의 문인(門人)인 황보식(皇甫湜)이 육혼 땅의 위(尉)로 있으면서 산불을 목격하고 지은 시에 화답한 것으로, 《한창려집(韓昌黎集)》 권4에 나온다.[주-D007] 명도약매장(明道若昧章) : 《도덕경(道德經)》 41장에 “도에 밝은 이는 어두운 듯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이는 물러가는 듯 보이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해 보이며, 훌륭한 덕은 속된 듯 보이고 크게 결백하면 욕된 듯 보이고 넓은 덕의 소유자는 부족한 듯 보인다.[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類 上德若俗 大白若辱 廣德若不足]”라고 하였다.[주-D008] 원차산(元次山) : 차산(次山)은 당(唐) 나라 원결(元結)의 자(字)로, 한유(韓愈) 이전에 고문(古文)을 부흥한 선구자로 일컬어진다.[주-D009] 잠삼(岑參) : 당(唐) 나라 시인으로, 고적(高適)과 명성을 다투어 고잠(高岑)으로 병칭되었다.[주-D010] 왕엄주(王弇州) : 호가 엄주산인(弇州山人)인 명(明) 나라의 문장가 왕세정(王世貞)으로, 당시에 이반룡(李樊龍)과 함께 고문(古文)을 제창하여 이왕(李王)으로 일컬어졌다.[주-D011] 낭야대명(琅邪臺銘) : 산동성(山東省) 낭야산에 진시황(秦始皇)이 누대(樓臺)를 세우고 자신의 공을 기려 세운 비명(碑銘)이다. 《史記 秦始皇紀》[주-D012] 진(秦) 나라 …… 부명(罘銘) : 진시황(秦始皇) 28년에 순행(巡行) 도중 역산에 올라가 진 나라의 공덕을 찬송하며 새긴 비명(碑銘)을 말한다.[주-D013] 호용(互用) : 상호 대체(代替)해서 사용하는 것. 예컨대 여(與)와 이(以)는 호용(互用)하는 문자로서 유여(有與)를 유이(有以)라고도 하며, 지(之), 기(其), 시(是), 자(著) 등도 옛날에는 모두 같은 뜻으로 호용(互用)하였다.[주-D014]
진퇴체(進退體) : 율시에서 용운(用韻)하는 하나의 격식으로, 두 개의 서로 비슷한 운을 격구(隔句)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구와 3구에는 우운(虞韻)을 쓰고, 2구와 4구에는 어운(魚韻)을 쓰는 것을 말한다. 보통 진퇴격(進退格)이라고 한다.
[주-D015] 복거(卜居) : 《초사(楚辭)》의 편명(篇名)으로, 이소(離騷) 제24의 글이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아첨하는 신하들에게 질투를 받고 쫓겨나 살 곳을 찾게 된 것을 서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주-D016] 족자율사(哫訾栗斯) …… 여지여위(如脂如韋) : 복거(卜居)에 “차리리 초연히 멀리 떠나가, 참된 나의 본성 보존을 할까. 아니면 아양 떨고 안색 살피며, 선웃음 치면서 궁인(宮人)들에게 굽신댈까. 차라리 결백하고 곧은 자세로 내 몸 하나라도 깨끗이 할까. 아니면 둥글둥글 모나게 굴지 않으면서, 미끈미끈 기름처럼 무두질한 가죽처럼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몸을 사릴까.[寧超然高擧 以保眞乎 將哫訾栗斯 喔咿儒兒 以事婦人乎 寧廉潔正直 以自淸乎 將突梯滑稽 如脂如韋 以絜楹乎]”라고 하였다.[주-D017] 천하의 …… 진중거 : 원례(元禮)는 후한(後漢) 이응(李膺)의 자(字)이고, 중거(仲擧)는 진번(陳蕃)의 자(字)이다. 진번은 윗사람에게 바른 소리를 잘 했고, 이응은 아랫사람을 엄하게 단속했다는 평가에서 나온 말로, 《세설신어(世說新語)》 권4 품조(品藻) 제9의 주(注)와 《후한서(後漢書)》 당고전서(黨錮傳序)에 보인다.[주-D018] 집에서 …… 왕문도 : 안석(安石)은 진(晉) 나라 사안(謝安)의 자(字)이고, 문도(文度)는 왕탄지(王坦之)의 자(字)이다. 사안이 집에 있으면서도 출세한 동생 만(萬)보다 훨씬 이름을 날린 고사가 전한다. 《晉書 謝安傳》 왕탄지 역시 명성을 떨치며 사안과 함께 나중에 조정의 일을 주도하였다. 《琅琊代醉篇 17》 본문의 인용문은 《세설신어(世說新語)》 권4 상예(賞譽)의 주(注)에 보인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