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건축현장을 보면 신축공사
보다도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리모델링은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신축공사 이상의 효율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후 된 건물은 너무 낡고 보기에도 별로
좋지 않지만 실제로 안전상 여러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건물의 본질은 외관상 보기에도 좋아야 하고
내장재나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안전일 것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세련된 건축양식과 수준 높고 격조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한들 건물에 균열이 생겨 물이 새거나
지반이 든든하지 못해 기울어지고 있다면
그 건물은 애물단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건물주는 냉철하게 생각하여
구 건물을 헐고 새롭게 신축할 것인지 아니면
리모델링을 할 것인지 판단해야만 한다.
건물이 노후화 되어 안전이 위협 받는다면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모델링하는 동안 재정적 부담이 있더라도..
그리고 다소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결코 결단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우리네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잘못 지어져 가고 있다면 설계변경을 해서라도
다시 지어야 할 것이며 너무 신앙이 노후화 되어
(오랫동안 침체에 빠진 교인이나 타성에 젖은 교인) 이미
성장을 멈춘 지 오래 되었고 영적으로 누수현상이
일어난다면 속히 리모델링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생사(生死)가 달린 문제이기에 그렇다.
흔들리고 노후된 건물을 그대로 방치하면
갑자기 무너져서 가장 귀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웰빙하기 위해서는 조기진단과 빠른 처방만이
우리에게 재도약의 기회와 밝은 미래를 안겨 줄 것이다.
건물이 흔들리고 물이 새는데 인테리어만 바꾸고
금이 간 벽 위에다가 시멘트로 덧칠만 한다고 되겠는가?
영적으로 이미 노후화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야성과 감동과 열정이 식었는데 그 사실을 간과하고
덧칠만 한다면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위선과 가식이라는
'가면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수고와 희생과 피눈물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리모델링을 결단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살고, 남이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가장 중요한 대들보와 H빔만 빼놓고는
가능한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
진리만 빼놓고는 모두를 리모델링해야 하고
신축 중인 신앙생활이라면 설계변경을 해서라도
든든하고 반듯한 신앙건축을 재시도 해야만 한다.
영적인 리모델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고정관념이며 완고함이다.
고정관념이란? '내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마음이며
완고함이란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려 하는 강퍅함'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생각의 유연성 없이는
리모델링이 불가능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으로는 영적인 재건축이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굳어지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더 굳기 전에 리모델링을 서둘러야 한다.
영적인 리모델링은 신앙생활의 패턴을 바꾸는 작업이다.
내가 쌓아올린 인본적인 구(舊)건물을 철거하고 주님이
그곳에 신령한 새 건물로 리모델링 하시도록 전적으로 위탁하라.
철거될 때는 아프고 힘들지만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면 춤추며 기뻐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낡고 흔들리는
위험한 건물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날마다 그날(?)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바로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날 말이다.
주님과의 첫사랑에 밤을 지새우며 감격하던 날 말이다.
'주예수와 함께하니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노래하던 그날 말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주님 한분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던 그날 말이다.
영혼의 리모델링!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우리 모두의 시대적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