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들의 부동산들.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칼포퍼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82년도에 출간된 이책은 한때 잘못이해되어 운동권에서 읽히는 '금서'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5공이 바로 꽉 막힌 닫힌 사회였기 때문이기도 하죠.
몇해전 조지소로스의 인터뷰가 신문지상에 실린것을 보고 그가 바로 칼포퍼의
열렬한 추종자란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며 포퍼를 통해 현재 한국의 부동산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조지소로스와 포퍼를 들먹이는 것은 바로 조지소로스가 쉽게 말해 투기꾼이며
우리나라의 수많은 부동산 투기꾼들과 기본적인 맥락에서는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는 수십조의 자산가이지만
한국의 투기꾼들은 사람이 사는 집을 몇백만불로 만들었다 허물었다 하는
사회악적 존재들이고
그는 그의 재단을 통해 수많은 닫힌 사회들을 열린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
좀 거창하게 글을 시작했지만 좀 쉽게 말해보지요.
포퍼가 이야기한 열린사회를 가로막는 몇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역사주의로 통칭되는...견해와...(거창한가요?)
더 풀어보죠. 두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전체주의와 역사주의입니다.
약술하면.. (열린사회를 가로막는 조건)
전체주의는 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유기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본체(유기체)에 종속물이며
하나 하나의 존재로서 이해할 수 없는 사회 전체로 이해해되어야야
하는 피동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역사주의는
역사에는 필연적인 발전단계 혹은 과정이 있으며
그에 따라 발전할수 밖에 없고 모든것은 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한
지도자에 의해 다 자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이명박 요정론?)
자 더 쉽게 말하면 위 두 논점을 보고 누가 떠오르세요?
바로 이명박.
그는 분명 기독교적 원리주의에다가 유토피아 주의 그리고
결정론적 세계관을 숭배하는 꽉 닫힌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파시스트의 광기를 집권초 용산에서 쌍용자동차공장에서 촛불시위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죠.
그의 인생과 철학이 투영된 우리들 다수의 모습이 바로 부동산 투기꾼
들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죠.
부동산. 이사회를 지배하는 유령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이라는 유령.
풀어보시죠.
전체주의적 속성.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아주 단순한 몇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됩니다.
바로 고층 아파트군과 호사스런 쇼핑몰.
다른데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아파트와 상가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동일한 전체주의적 속성을 갖습니다.
판교의 1평이 삼천만원이 되면 자동 분당 용인이 그 가격비율대로
따라갑니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한채의 가격이 1억 오르면 나머지
수백 수천세대의 가격도 그 가격으로 올라갑니다.
얼마나 놀나운 전체주의적 속성입니까? 옆집이 오르면 옆동네가 오르면
나도! 오른다.
상가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성립됩니다. 상가의 가치는 상대적인
상가의 가치로 평가됩니다. 인근의 상가가 얼마이기 때문에
여기도 얼마라는 것이다. 이얼마나 허황된 주장일까요?
상가가 늘어나면 수요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근상가가 평당 1억이면 신축상가는 1.2억에 분양합니다.
분식점하나 간신이 낼 공간의 가격을 5억 10억 심지어는 15억에도
분양하더군요. 그 어디에도 그 비용에서 사라지는 기회비용과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상가가 평당 1억이니 여기도 1억이라는 전체주의적
주장뿐입니다.
둘째 유토피아적 속성.(결정론적 세계관=기독교적 세계관)
이명박이나 정몽준이나 이런 소리를 한다.
집값오르면 좋은거 아니에요?
다 잘살게 해준단다. 다 주거생활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한다.
재래식 주택이 밀집된 공간은 다 허물고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만들어 거기서 윤택하고 편리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토피아론인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하나님 믿으면 천당가서
영생하다는 것과 같은 관점입니다.
닫힌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이용해서 전체주의적
독재를 이어갑니다. 나만 따르면 잘 살게 해준다는데 왠 태클.
과연 재개발 지역에서 비새는 노후한 집에서 옹기종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천민의 삶이라고 매도하며 자기가 그들을 모두
초현대식 아파트에서 멋진 중상류의 삶을 이어가는 유토피아를
만드는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가진 자산(단 열몇평에 불과한 대지지분)이
수배 수십배로 불어나 언젠가는 그 현금을 챙길것이라는 꿈이
있을뿐 자신이 사는 현재의 삶에서 몇단계 업그레이드 된 중대형
고층 아파트의 삶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은 자신의 자산을 한것 부풀려 누군가 그것을 떠 안아
줄것으로 생각하지요.
이러한 생각이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기 동네를 때려부숴
버린다는 자들에게 열광하고 표를 준 사람의 생각인 것일겁니다.
그러나 자산이 아무리 오른들 삶이 바로 유토피아로 올라설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파괴된 공동체와 생활의 기반.. 얼마후에 정신
차려보면 빚더미에 올라 입주한 허울좋은 아파트든
얼마간의 보상금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는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유토피아는 없다. 현실만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은 역사적 법칙론이다.
일종의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7위 경제규모가 되고 4만불 소득이 된다?
왜? 이유는 부족하다. 그냥 우리는 훌륭한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갑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마치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유토피아를 만들듯이
그냥 그렇게 된다고 외칩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의 집값이
올라서 지금 10억 하는 집이 15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뭐하는가?
결국 모든사람들의 삶만 피폐해져 가는것 이 아닌가요?
국민소득 4만불이 되면 뭐하는가? 시쳇말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부동산 불패 정신이 바로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땅밖에 믿을것 없다.
역시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땅값 떨어지는 것
봤냐? 과연?
언젠가는 오른다. 무조건 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조건 집을 사고 땅을 샀습니다.
거기에 법칙을 가져다 붙이고 경제이론을 들이밉니다.
이게 닫힌사회이며 열린사회의 적들입니다.
그렇다면 열린사회에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토론과 광장이 존재해야 한다.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한쪽의 주장만을 알려서는 안되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지요. 제대로 된 언론이 있습니까?
쉽게말해 조선,중앙,동아을 보세요. 분통이 터지고
열불이나서 신문을 읽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린 '마음'을 가진 필자류의 사람들의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왜곡되고 과장되고 폄하된
곡필만을 본다.
방송?
요즘 방송장악이라고 핏대를 내는데
방송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디어의 특성상 한건을
올리기에는 좋지만 한두시간안에 기승전결을
다 끼워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비론에 앞뒤가
안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충 횡설수설하다가
시급한 대책이 요구됩니다..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됩니다.
라고 끝내면 땡입니다. 제발 하나마나한 이야기좀 하지 말자구요.
그나마 요즘은 다들 신문 따라갑니다.
인터넷? 아직 파급력이 부족합니다. 인터넷을 자주 접하는
젊은층은 부동산에 여력이 없고 돈을 가진 기득권은
한가하게 인터넷 서핑하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 좀 사는 친구들..나꼼수를 한편이라도 제대로 들은 사람
한명도 없습니다. 조금 듣다가 만게 전부죠.)
정보는 비대칭적으로 흐릅니다.
국회? 여긴 절망적이죠.
저는 국회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간단히 말해서 우리 국민 오천만을 골고루 대변하는
국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00명의 인간이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국회를
구성한다면 적어도 농어민을 대변하는 강기갑의원
같은 분이 3-40명은 있어야 하고 비정규직이 천만명이면
국회에서 이정희의원같은 분이 60명은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국회에서 실업자,무주택자,소규모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몇명이나 있습니까?
어떻게 죄 대기업,재벌,권력층 들을 대변하는 놈들뿐이고
죄 그쪽 출신들이냐? (검,경,기업,관 등등)
우리나라는 열린사회의 가장 초보적 단계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생각의 한쪽 방향을 꽉 틀어막은 국가보안법을
두고 있으며 무슨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한마디로 빨갱이다 하면 모든 논쟁은 스톱되고 검경이
출동하는 사회가 무슨 열린사회일까요?
부동산 버블은 바로 이 닫힌 사회의 기반위에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붕괴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습니다. 왜냐?
진실을 알게 되었을때 가장 피해를 입는쪽이 기득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난파하는 배에서 다 내린 뒤에야
사람들은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이후 미국의 시사 프로그램을 보세요.
그리고 미국의 정책을 보세요. 화끈하게 디펄트 처리하고
망하게 내버려 뒀다. 그들은 버블을 끄면서 자신들의
부실(부채)를 인플레이션을 통해 남에게 떠밀어 냈죠.
만약 2008년도의 금융위기시 기득권들이 이런식으로
할걸 알았다면 그때 과연 뭐라고 말했을까요?
미네르바가 주가 500간다 했을때 과연 저는 아니다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한두번 속는 거 아니죠.
그래서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과 중국만이 버블을 더
키우며 아직도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믿게 하며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피라미드 다단계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나가고 싶은데 못나가게 하는게 아니라 나갈 마음이 없게
분위기를 띄워 줍니다.
그 덕분에 1년사이 백몇조의 대출이 늘어났습니다.
다시 포퍼.
포퍼는 역사적 필연론이나 유토피아를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을 비판했고 마르크스를 반대했습니다.
오로지 그리고 그는 그의 또다른 저서
과학적 탐구의 논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논리적 결론을 유지하기 위해서 덕지 덕지 가져다 붙이는
예외론에 반대했습니다.
부동산은 불패에요. 근데 잠실만 빼고요.
부동산은 불패에요. 근데 잠실,용인만 빼고요.
부동산은 불패에요. 근데 잠실,용인,송도만 빼고요
부동산은 불패에요. 근데 잠실,용인,송도,파주만 빼고요
이런거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는 반증 혹은 검증 가능한 논리만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반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논리는 거짓이라 했습니다.
부동산 불패.
반증 가능한 논리인가?
부동산이 실패한다는 사실 분명히 있습니다.
일본을 보라 미국을 보라.
부동산 불패는 반증도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논리가 아니라
이미 수많은 리퍼런스를 통해 깨진 '거짓'의 논리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신봉한다면
그것은 그가 닫힌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깨고 나와야합니다.
닫힌 사회를.
(2010)
(by 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