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제9장)
편집실
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의 신비체
1.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는 레지오 봉사의 기초이다
레지오 최초로 가졌던 바로 그 회합에서 단원들은 자신들이 시작한 봉사가 초자연적인 특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단원들이 사람들에게 다가설 때에는 마땅히 친절함이 넘쳐야 하겠지만, 그 동기가 순전히 자연적인 동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모든 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뵐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다른 이들에게 행하는 것, 가장 나약하고 가장 미천한 사람들에게까지 행하는 것이,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바로 우리 주님께 해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했다.
첫 회합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레지오는 이 점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레지오는 이 초자연적인 동기가 레지오 단원들이 행하는 섬김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레지오의 규율과 내부 조화가 특히 이 원리에 달려 있다는 점을 레지오 단원들이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단원들은 자기 간부들에게서 그리고 단원들 서로에게서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존경해야 한다. 이 혁신적인 진리가 단원들 마음속에 각인되어 남아있도록, 레지오는 이를 상훈(常訓)에 넣어 매월 첫 주회합에서 낭독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상훈은 레지오의 또 다른 원리도 강조한다. 활동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성모님과 일치하겠다는 정신으로 행하여, 실제로 단원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활동을 수행하시는 분은 성모님이 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지오 조직의 기초가 되는 이 원리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관한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며, 이 가르침은 바오로 성인의 편지들의 중심 주제를 이룬다. 바오로 성인이 이 가르침을 중심 주제로 삼아 편지를 썼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회심을 이끌어냈던 주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선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열렬한 박해자였던 사울은 땅에 엎어진 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저항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4-5). 예수님의 이 말씀이 바오로 사도의 영혼에 깊이 새겨졌고 그 결과 이 말씀이 드러내고 있던 진리를 바오로 사도가 늘 말하고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바오로 성인은 그리스도와 영세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머리와 그 밖의 지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와 같은 것이라고 묘사한다. 각 지체는 저마다 독특한 목적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지체는 더 고귀하고 어떤 지체는 덜 고귀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지체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동일한 생명이 그들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 지체가 기능이 정지되면 모든 지체가 손해를 보고, 마찬가지로 한 지체가 뛰어나면 모든 지체가 이득을 얻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며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다(에페 1,22-23 참조). 그리스도는 이 몸의 머리이시며 우두머리시요, 없어서는 안 될 완전무결한 부분으로서, 몸을 이루는 다른 모든 지체들은 여기에서 힘을 얻고 생명까지도 얻는다. 세례성사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유대로 그리스도께 결합된다. 그러므로 신비롭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깨달아라. 성경의 강렬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이다(에페 5,30). 지체들과 머리, 그리고 지체와 지체 사이에는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1요한 4,15-21 참조). 몸이라는 표상은 이 신성한 의무를 생생하게 깨닫게 해주며, 깨달은 것만으로도 절반은 이 의무를 수행한 셈이다.
교회는 이 진리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라고 말해왔다. 실제로 인간에게 전달된 모든 초자연적인 생명과 모든 은총은 구속이 가져다준 열매이기 때문이다. 구속 그 자체의 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함께 단 하나의 신비로운 몸을 구성함으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속죄와 그분이 겪으신 수난의 무한한 공로가 그리스도의 지체들 즉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속한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당신 자신이 범하지도 않은 죄를 기워 갚으신 이유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에페 5,23)
신비체의 활동은 그리스도 자신의 활동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합체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고통당하고 죽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세례성사만이 거룩하게 한다. 세례성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그 지체들인 영혼들 안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연결부를 그리스도와 영혼들 사이에 설치해주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성사들, 특히 지성한 성체성사는 신비로운 몸과 그 머리 사이의 일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존재한다. 게다가 신비체와 머리가 이루는 이 일치는 믿음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교회 내 통치의 유대와 상호 섬김을 통해, 노동과 고통을 마땅히 감수함으로써,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든 행위를 통하여 그 깊이를 더해 간다. 특히 이 모든 일들을 마리아와 의식적으로 협력하면서 행한다면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마리아는 머리와 지체들 모두의 어머니시라는 지위로 말미암아 탁월한 일치의 유대를 형성해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에페 5,30 참조)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실질적으로 온전히 동등한 방식으로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녀들이다. 마리아가 존재하시는 유일한 목적은 ‘전(全)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낳는 일이다. 여기서 ‘전 그리스도’란 서로 알맞게 연결되어 있는 완전한 지체들을 모두 갖추고서(에페 4,15-16 참조)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신비체를 가리킨다. 마리아는 이 일을 신비체의 생명이시며 영혼이신 성령에 협력하시고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성취하신다. 바로 마리아의 품 안에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그분의 보살핌 아래에서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에페 4,13).<후략>
2.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
하느님이신 당신 아드님의 실재 몸을 양육하고 보살피고 사랑하시면서 성모님이 수행하신 다양한 직무는, 가장 고결한 형제만이 아니라 가장 작은 형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구성하는 각 지체와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성모님의 직무로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신비체의 여러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볼’ 때(1코린 12,25), 마리아와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그 지체들이 부주의나 무지로 성모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할 때조차도, 그저 자신들이 쏟는 수고를 성모님의 수고와 연결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이미 성모님의 활동이고, 성모님은 이 활동을 주님 탄생 예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아하고 분주하게 수행하신다. 이와 같은 이유로 레지오 단원들이 신비체의 다른 지체들에게 봉사할 때에는 그들이 성모님을 모시고 가서 성모님이 자신들을 돕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모님이 단원들을 불러 당신이 하시는 일을 돕도록 하시는 것이다.
지체들을 섬기는 일은 성모님의 특별하고 고유한 일이므로, 성모님이 은혜로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그 일에 참여할 수 없다. 자기 이웃에게 봉사하려 하면서도 성모님의 지위와 특권을 좁히려는 이들이 있다면 신비체 교리에서 나오는 논리적인 결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야 한다. 게다가 이 신비체에 관한 교리는 성경을 받아들인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느님의 어머니를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이들에게 교훈이 된다.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당신 어머니를 사랑하시고 어머니께 순종하셨다는 사실과(루카 2,51 참조) 그리스도의 모범은 그 신비체의 지체들에게 일종의 의무를 부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끔 하자. “……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자녀로서의 효성을 성모님께 드려야 하며, 모든 세대는 그분을 행복하다 노래할 의무가 있다(루카 1,48 참조).
성모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 어느 누구도 이웃에게 봉사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듯이, 성모님이 의도하시는 바를 어느 정도라도 따르지 않고서는 이 봉사의 의무를 훌륭하게 이행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모님과 더 일치하면 할수록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라(1요한 4,19-21 참조)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