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고개
집필자 김종군(金鍾?)
정의
학통을 중시하는 각기 다른 두 집안 딸의 가마 행렬이 고개에서 충돌하여 대립하다가
두 딸을 자결하게 했다는 가마고개에 얽힌 지명전설.
역사
『하동지(河東誌)』에 전하는 비극적인 전설로 조선 유학자들의 파당의식(派黨意識)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갈등이 크나큰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현대시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줄거리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골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통을 이은 집안의 딸이 시집가기 위해 가마를 타고 나섰다.
고갯마루 안계골에 사는 퇴계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은 집안에서도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가마를 내 보냈다.
그런데 공교롭게 두 가마가 고갯마루에서 서로 만나 대치하였고,
평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두 집안의 싸움으로 번져 나갔다.
며칠을 두고 대치하는 사이, 영남의 남명파와 퇴계파가 모여들어 자존심을 내세워 갈등은 점점 고조되었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두 집안에서는 가마에 타고 있는 딸들에게 돌덩이를 치마에 안고 절벽 아래 덕천강으로 투신하도록 권했다.
두 딸이 투신하고 난 후 대립했던 유학자들과 두 집안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흩어졌다.
변이
이 이야기는 남명 조식의 학통이 이어지는 영남,
그 가운데서도 서부 경남에서 전승될 수 있는 내용인 까닭에 분포 지역이 하동에 한정된다.
대체로 『하동지』에 기록된 내용이 하동군 역사와 마을 유래 및 사적전설에 확대되어 전승된다.
두 집안의 가마가 고개에서 대치하는 상황 묘사에서 열사흘이 연 사흘로 변이되는 기록도 있고,
영남 유학자들이 모여들어 저자를 이룰 정도였다고 묘사하는 변이도 있다.
분석
<가마고개전설>은 한국 선비들의 파당의식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이로 말미암은 비극으로 분석된다.
한편, 돌덩이를 치마폭에 감싸고 투신한 두 여인을 소속 집단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희생하는 이들로 보기도 한다.
즉, 가마고개에서의 대치와 소동이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시집가는 가마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일종의 죄스러움을 느껴 두 여인이 죽음을 결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두 여인 중 한쪽 편만 죽으면 결과적으로 상대편 가문에게 승리를 제공하기에 상호 합의하여 함께 죽게 된 것이며,
이러한 두 여인의 자책감과 쌍방의 희생이 이야기를 애틋한 비극으로 끝맺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징
영남의 유학은 경상북도 안동 중심의 퇴계학풍과 경남 밀양, 산청 중심의 남명학풍이 경쟁하는 구도로 유지되었다.
중앙정계 진출이 잦았던 퇴계학풍은 산림처사를 표방한 남명학풍에 대해 우위를 강조하면서
남명 학풍을 폄하하는 시각을 가졌다.
이러한 지역적인 갈등을 이 전설을 통해 표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선비의 의식구조(이규태, 신원문화사, 1984), 하동군지-하(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참고문헌
남과 북(고은, 창작과비평사, 2000),
민담과 민속의 신학적 이해(박정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6).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