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기부 덕에 여수 갓김치 주문 2배… 함안 빵은 전국구 꿈꿔
[2023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스마트팜, 스마트잡
〈4〉 지역 바꾸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자체, 기부 답례로 특산물 선물
22일 경남 함안군 산인면 아라가야협동조합 제빵실에서 제빵사 이동명 씨가 아라불빵 반죽을 오븐에 넣고 있다. 아라불빵은 경남 함안 특산물로 만든 마들렌이다. 함안=도영진 기자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은 감으로 만든 빵이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납니다.”
사회적기업 아라가야협동조합 이근표 대표(56)는 22일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조합 제빵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아라불빵은 올 초 고향사랑기부제 시행과 함께 경남도와 함안군 답례품으로 선정되며 매출이 급증했다.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거주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기부자는 추가로 원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자체 특산품 매출이 늘고 홍보 효과도 발생한다.
● “고향사랑기부제가 성장 발판”
아라불빵은 경남 함안 특산물로 만든 마들렌이다. 빵 안에 수제 수박조청과 홍시조청, 곶감 등 함안 특산물을 넣었다. 고대 가야 6국 중 아라가야 왕조가 자리했던 곳이란 점에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모양도 가야의 불꽃무늬토기를 본떠 불꽃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대표는 “매달 50세트 이상이 답례품으로 나가면서 월 매출이 150만 원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추석이 다가오면서 매출은 더 늘고 있다. 조합은 올해 수익을 재투자해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아라불빵 전국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조합 제빵사인 이동명 씨는 “고향사랑기부제로 회사가 성장할 발판이 생겼다”며 “경주를 떠올리면 경주빵이 생각나는 것처럼 함안 아라불빵이 고향 사랑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전남 여수시에 있는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여수시니어클럽’ 김치사업단도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후 바빠졌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모여 여수 특산품인 돌산갓김치와 고들빼기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고향사랑기부 답례품으로 지정되면서 월 주문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 매출도 지난해(약 1억1500만 원)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선자 여수시니어클럽 사업1팀장은 “수익금 일부를 급여로 드리는데 어르신당 매달 최대 20만 원까지 더 드릴 수 있게 됐다”며 흐뭇해했다.
● 기부금이 바꾸는 지역 사회
지자체들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 기부금을 뜻깊게 활용하기 위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광주 동구는 3년 동안 15억 원을 모아 광주극장을 리모델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935년 문을 연 광주극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 중 하나다. 한재섭 광주영화영상연대 사무처장은 “광주극장은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기부금을 활용해 노후 시설을 리모델링하면 지역 예술과 상권 모두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주도는 고향사랑기금 1호 사업으로 ‘제주 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플로깅 행사’를 선정했다. 기부금 1억 원을 투입해 지자체와 환경단체, 도민과 관광객이 동참하는 환경 행사를 열겠다는 것이다.
행사에선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 제주 해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등이 진행된다. 이를 통해 해양쓰레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해양 생물 서식지가 위협받는 현실을 알릴 방침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낸 기부금이 실제로 제주의 환경을 지키는 활동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 이색 답례품 경쟁도 치열
답례품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도, 기부금을 활용한 문화·환경 사업도 일단 기부금이 모여야 가능하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한 푼이라도 많은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강원 춘천시는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위해 브랜드 이미지(BI)를 만들었다. 춘천의 자음인 ‘ㅊㅊ’과 하트 모양을 결합한 형태다. 기부자와 답례품 생산자가 동행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춘천시는 BI가 인쇄된 답례품 포장용 테이프를 제작 중이며 향후 지역 홍보물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답례품으로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전남 강진군과 여수시, 순천시 등은 ‘주택화재 안전 꾸러미’를 답례품으로 내놨다. 기부자가 고향의 부모님 등 대상을 지정하면 소방서 직원이 방문해 소화기, 화재알림경보기, 가스타이머를 설치하고 화재 예방 교육까지 해준다. 강진군 관계자는 “부모님, 친지들에게 ‘안전’을 선물한다는 의미가 담겨 인기”라고 설명했다.
충북 옥천군은 고액 기부자를 타깃으로 한 답례품 ‘효도잔치’를 선보였다. 고향사랑기부 상한인 500만 원을 기부할 경우 고향 마을에서 동네 잔치나 문화 공연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세종시는 테니스팀 강습권을 답례품으로 제공하고 있다. 20만 원 이상 기부하면 지역 출신 국가대표급 선수에게 강습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충북 괴산군과 증평군, 충남 천안시, 세종시, 전북 부안군 등은 벌초 대행 서비스를 답례품으로 내놨다. 기부자 본인뿐 아니라 고향에 남아 있는 친척들이 사용할 수도 있어 반응이 좋다고 한다.
고향사랑기부제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역 농특산물 외에도 새로운 답례품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제도의 취지를 살린 답례품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함안=도영진 기자, 여수=정승호 기자, 춘천=이인모 기자, 사지원 기자
日, 일상이 된 ‘고향 기부’… 골프장 판매기에 기부금 넣으면 이용권
[2023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인구 16만 미야코노조시 1770억 등
작년 9조원 가까이 기부금 들어와
일본 남서부 가가와현 사누키시는 올 5월 지역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고향 기부금 자동판매기’를 설치했다. 자판기에서 신용카드로 기부금을 내면 답례품으로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골프장 이용권이 나온다.
기부자는 거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2000엔(약 1만8000원)을 공제한 나머지 기부액을 돌려받기 때문에 골프장 이용권 금액에서 2000엔을 뺀 나머지만큼 이득을 본다. 일본이 2008년 도입한 고향 기부금(후루사토 납세) 제도는 올 초 국내에서 도입한 ‘고향사랑기부제’의 바탕이 됐다. 각 지자체는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기부자는 기부금을 내면서 답례품을 받을 수 있어 좋고, 지자체는 열악한 재정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윈윈’이다.
22일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도입 첫해인 2008년 81억4000만 엔(약 740억 원)에 불과했던 기부금 납부액은 지난해 9654억1000만 엔(약 8조8650억 원)으로 15년 사이 120배 가까이로 늘었다. 담당 부처인 총무성은 “납세자가 직접 기부처를 선택해 태어난 고향은 물론 신세를 진 지역, 응원하고 싶은 지역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제도”라며 “전국의 다양한 지역에 활력이 생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부금을 많이 받는 지역은 재정도 윤택하다. 일본 남부 미야자키현의 인구 16만 명 소도시 미야코노조시는 지난해 고향 기부금으로 195억 엔(약 1770억 원)을 모았다. 지난해 예산의 15%에 달하는 금액이다. 기부금 규모로 일본 전국 기초자치단체 1718곳 중 1등이다.
시는 모은 돈으로 지역 도서관, 공립 어린이 놀이방 등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축산물·소주 산지라는 점에 착안해 기부자들에게 소고기, 돼지고기, 소주 등을 답례품으로 보내며 특산품 홍보 및 판매 촉진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일본 북부 홋카이도 가미시호로정은 인구 감소 대책의 일환으로 고향 기부금을 활용하고 있다. 인구가 약 4800명에 불과한 이곳은 모은 돈으로 자체 귀농·귀촌 기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10년간 어린이집 무상화, 외국인 영어 강사 배치 등 시골 지자체로는 하기 어려운 사업을 진행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에이팜쇼’ 고향사랑특별관 운영… 고향기부 동참땐 풍성한 경품도
[2023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다음 달 1∼3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주최로 열리는 ‘2023 A FARM SHOW(에이팜쇼)―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에는 고향사랑특별관이 설치된다. 특별관을 방문하면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국 243개 광역·기초지자체의 다양한 답례품을 한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다. 또 원하면 즉석에서 고향사랑기부에 동참하고 원하는 답례품을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현장에서 고향사랑기부에 동참한 이들을 위한 풍성한 경품도 준비돼 있다.
사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