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차가운 비. 어두운 밤에 주룩주룩 내린다. 시애틀의 전형적인 가을밤이다. 지난 11월3일 워싱턴주 음악협회가 주최한 가을 음악회나 10일 샛별 무용단의 '나래‘ 공연장을 찾아가는 길도 어둡고 비 내린 좋지 않은 날씨였다.
그러나 홀 안에서는 밖의 을씨년스런 날씨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잠시나마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 시절 과거로 돌아가거나 시애틀이 아닌 포근한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UW 미니 홀에서 열린 가을 음악회에서는 세미클래식, 오페라 노래와 함께 한국의 가곡들이 이어져 깊어가는 시애틀의 가을밤에 내리는 빗줄기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낭만으로 촉촉이 적셨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축배의 노래’ 등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은 이민생활에서 잊었던 젊은 학창시절을 불끈 떠오르게 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 ‘봉선화’, ‘그리운 마음’등 주옥같은 한국 가곡들의 향연으로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물씬 나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한국 학창시절 오페라와 음악회 공연이나 음악 감상실에서 이같은 음악들을 달달 외울 정도로 많이 듣고 즐겼다. 음악만 나오면 금방 작곡가가 누구이고 무슨 곡인지 척척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바쁜 이민생활이다 보니 이런 음악과 가까이 한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이날 음악회는 출연진들과 청중들이 함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함께 부르며 막을 내렸는데 10월이 아닌 비오고 어둡고 추운 11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었다.
샛별 한국 문화원이 에드몬즈 예술극장에서 펼친 '2012 나래 공연'은 아름다운 전통과 창작무용, 퓨젼국악, 파격적인 비보이팀이 출연해 문화와 감격이 동시 폭발하는 공연이었다.
귀여운 어린이부터 성인들까지의 80여명이 아름답고 우아한 궁중의상과 춤의 ‘금수강산’을 시작으로 ‘비의 변주곡’ ‘부채춤’ ‘한국의 혼’ ‘강남 아리랑’ 등 2시간동안 화려한 춤과 음악을 펼쳐 관중들의 갈채가 떠날 줄을 몰랐다.
화려한 의상의 여성들이 부채로 꽃을 만들기도 하고 파도물결을 이룬 화관무, 부채춤의 현란한 향연을 보면서 마치 궁전에서 궁녀들이 임금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는 것같은 환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특히 장고, 북, 꽹과리가 동원되고 출연진들이 다시 아름다운 춤을 보이며 상모돌리기 등 함께 한마당을 펼친 크라이막스를 보면서 어렸을 적 고향에서나 축제 때면 신나게 펼쳐졌던 한국 전통 춤과 음악의 신나는 한마당이 떠올랐다.
밖에는 어둡고 차가운 비가 내리지만 비를 맞고 들어선 공연장에서는 이처럼 낭만과 즐거운 한마당이 펼쳐져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한인사회에 더 많은 이런 음악과 무용 등 예술 공연이 있기를 바란다.
공연에는 1세들뿐만 아니라 2세들과 미국인들도 많은 것을 보고 미 주류 사회에 우리 전통 음악과 무용을 심는 귀한 기회도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 경기침체로 많은 한인들이 어려운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주택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실업률도 낮아지는 등 다소 회복되는 점이 있지만 아직도 차압, 파산이 늘고 있어 호경기가 금방 돌아올 기미가 없어 편하지 않다. 이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깊어가는 시애틀 가을 날씨는 더 비 많이 오고 더 어두워져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럴수록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누려보자.
마음이 우울할 때면 학창시절 즐겨듣던 음악들도 들어보고 정겨웠던 노래들도 불러보자. 또 실망이나 좌절이나 우울한 시간이 올때면 깊은 가슴에 간직되어 잊고 살았던 낭만의 추억들도 다시 꺼내보며 이 가을과 다시 올 긴 겨울을 인내하자.
특히 어둡고 비오는 창밖의 날씨를 불평하지 말고 집안의 따뜻함과 가족 간의 사랑에 감사하자. 그리고 현재의 어려운 세상의 환경을 보지 말고 마음 안에 소망과 용기를 채우고 밝은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이동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