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며칠 전 (8.26) 지하철 1호선 도봉 역 맞은편 골목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좁은 골목 길가 상가 2층에 첨부 사진과 같은 6.25 동란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고 워커(Walton H. Walker)장군의 흑백사진이 어색한 영문 번역문과 함께 초라하게 부착되어 있는걸 발견하였다. 나이 지긋한 한국사람이라면 워커 장군이 어떤 분인지는 거의 알고 있을 것이다.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기습 남침 시 미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대한민국을 지켜내고자 악전고투하다가 불행하게도 의정부근 좁은 비포장 도로에서 장군이 탑승한 짚 차가 한국군 쓰리쿼터 추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1950년 12월 23일 오전 전사하였다. 워커 사령관은 1950년 12월 23일 휘하 장병들에게 성탄절 메시지를 띄우고 전방에 있는 휘하부대 표창과 특히 당시 전방사단에서 보병중대장으로 근무중인 본인의 아들 Samuel S. Walker 대위에게 본국에서 보내온 은성 훈장을 직접 수여하기 위하여 전방으로 향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사고 현장이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96-5번지인 것이다. 국내에는 워커 장군을 기리는 추모비나 기타 조형물이 몇 군데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만나게 된 66년 전 워커 장군이 전사한 그 현장에 남겨진 추모 표식으론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벌써 오래 전에 국가기관이 나서서 그렇게 넓지 않더라도 자그마한 공간을 확보하여 소박한 추모비를 세우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장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고마움을 깊이 새기는 비문이라도 남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워커 장군에 대한 자료에서 1950년 7월 낙동강 방어전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 다를 때 미8군 예하 사단장들에게 내린 절박한 내용의 명령문을 찾아냈다. 대한민국 자국의 어떤 군 지휘관보다도 더 단호하고 절절한 내용을 접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에 원문을 번역문과 함께 소개한다. On July 29, 1950, the increasingly dire situation prompted Walker to issue to division commanders what has become known as his “Stand or Die” order: “We are fighting a battle against time. There will be no more retreating, withdrawal or readjustment of the lines or any other term you choose. There is no line behind us to which we can retreat.…There will be no Dunkirk, there will be no Bataan. A retreat to Pusan would be one of the greatest butcheries in history. We must fight until the end.…We will fight as a team. If some of us must die, we will die fighting together.…I want everybody to understand we are going to hold this line. We are going to win.” 1950년 7월 29일 한국전 전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미8군 사령관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은 예하 사단장들에게 장군의 유명한 명령 즉, “전선을 사수하라 아니면 죽음뿐이다” 을 하달하였다. “우리는 지금 화급을 다투는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후퇴나 철수, 전선 재조정은 없을 것이며 그리고 귀관들의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우리 뒤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프랑스의 뒹커크나 필리핀 루손섬 바탄의 경우를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만약 부산까지 밀린다면 그것은 역사상 최악의 도살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똘똘 뭉쳐 싸울 것입니다. 우리들 중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우리 다같이 싸우다 최후를 맞이합시다. 나는 귀관들 모두가 이 전선을 사수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66년 전 워커 장군이 비명횡사(非命橫死) 한 도봉동 596-5현장에 나지막한 표지 석을 세우고 “장군께서 한국전 당시 보여주신 용맹성과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우리 모든 한국인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영면하옵소서” “General’s gallantry in action and exceptional affection towards the Republic of Korea during the Korean War shall be engraved upon every Korean’s heart for good. May you rest in peace.” 라고 한다면 자라나는 후대들에겐 애국적 교훈이 될 것이며 특히 우리의 우방 미국에게는 동방 예의지국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표본으로 인식 될 것입니다. 도봉동 596-5 현장 상가 2층 1950년 12월 23일 오전 사고 직후의 현장 워싱톤 알링톤 국립묘지의 워커장군 묘비 |
첫댓글 정형..! 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대한민국을 수호한 영웅이지만 그에 공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본인의 인천상륙 작전의 현장을 방문한 기고문에서 워커 장군의 언급을 했습니다만,
"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한다."
워커 사령관이 예하 사단장들과 각급 지휘관에게 남긴..! 낙동강전선의 최후의 보루..!
소위 말하는 "워커 라인"의 사수 명령을 내리면서 한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는 절절한 명언입니다.
한국전쟁 발발후 초대 주한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 낙동강 전전을 사수하고,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하여 성공시킨 영웅입니다.
어느 외국인 장군이 이처럼 목슴을 걸고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워줄 수 있을까?
불가사의한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외아들 "샘 워커" 대위를 한국전 최 전방의
말단 중대장으로 참전 시켰습니다. 만약 당신이 아버지라면 그것을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불행하게도 그는 1950.12월 23일 전방 전선 방문 도중에 야전 찝차에서 교통 사고로 전사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샘 워커 대위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미국으로 운구하도록 조치하였지만,
샘 대위는 자신은 한국 전선에 남아서 싸우겠다고
고집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결국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당시 도쿄 사령부로
샘 워커를 직접 불러 워커 대위에게 아버지의 시신 운구 지시를 내립니다.
한국전의 영웅 워커장군은 미군이 숭상하는 최고의 군인입니다.
워커장군의 세계 평화 수호의 의지를 마음으로 느껴봅니다. 우리가 이분을 잊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고있는 6.25 전쟁과 참전 용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합니다. 미국이 진정한 우리의 우방국 임을 세삼 느껴봅니다.
영상에 뜬 워커장군님의 묘비에 손을 올려 명복을 빕니다
전쟁지원군 사령관으로 우방국 전승에 목숨을 잃은 장군님의 희생에 경건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당신의 희생으로 강건한 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작금에 당산의 의로운 희생에 방관한 것이 사실인즉 느낀바 있는 정재성 동가생의 기고로 더사한번 상기허여 그 뜻을 널리 알리는데 성의를 다할것입니다
필자가 올려준 워커장군님 사진의 장소를 찿아가 보겠습니다
이 글을 올려준 정재성 동기생의 심사에 동감헙니다
감사합니다
의견을 같이해준 동기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위의길이 훼이스북과 유명 웹싸이트 시스템크럽에 기고했더니 벌써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읽었더군요.
오늘 아침에는 예비역 장군 두분과 여타 논객들이 워커장군에대한 내용을 공감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모금 운동이라도 벌여서 제시한 방항대로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렇게라도 진행해서 구겨진 대한민국의 체면을 살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