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미러링(mirroring) 창세기 12:1-9
미러링이라는 말이 방송이나 신문에서 종종 보인다. ‘미러링(mirroring)’ 은 거울(mirror)처럼 반사해서 보여준다는 뜻이다.
미러링 중에 ‘언어 미러링, 말 따라 하기(verbal mirroring)’라는 것이 있다. 네덜란드의 어느 식당에서 실험을 하였다. 여종업원이 고객에게 식사 주문을 받으면서 고객이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서 말하게 했다.
손님에게 ‘식사 주문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손님이 ‘등심스테이크’ 하면 ‘등심 스테이크 주문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익힐까요?’ ‘미디움으로요.’ ‘예, 미디움으로 주문하셨습니다.’
이렇게 손님의 식사 주문을 그대로 따라서 말한 여종업원이 주문을 따라 말하지 않고 주문을 받은 여 종업원보다 70퍼센트나 더 많은 팁을 받았다. 손님들은 종업원이 자신의 말을 따라 했을 때, 저녁 식사에 대해 더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러링은 일차로 말 따라하기이다.
어떤 대선 후보의 부인되는 사람이 기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했는데, 그 기자가 방송에 폭로를 했다. 그랬더니 곧 바로 미러링을 했다. 그 쪽 후보가 말했던 욕설도 방송에 내 보내라. 사실 욕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는 후보의 미러링은 아주 아픈 채찍으로 돌아갔다.
인터넷에 누가 ‘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말을 줄인 ‘삼일한’이라는 말을 썼더니 곧바로 미러링이 되었다. 남자에 대해 ‘숨쉴한’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남자는 숨 한번 쉴 때마다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미러링이 나쁘게 쓰이면 적대적이고 서로 반목하고 갈등이 깊어진다.
우리 성도들은 좋은 미러링, 믿음 좋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반영, 미러링 해 볼 수가 있겠다. 오늘은 아브라함 미러링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은혜를 받고자 한다.
첫째, 아브라함은 신앙의 개척자이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없는 길을 갔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개척자, 파이오니아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의 수도 우르였다. 우르는 고대세계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가 발달한 곳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층집을 짓고 살았고 수세식 화장실을 썼다. 글자를 알고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다. 발달한 문화생활을 누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비옥한 초승달의 평야를 떠나 척박한 땅으로 갔다. 알지 못하는 세상, 미지의 세계로 길을 떠나는 아브라람은 개척자였다. 아브라함을 미러링 해 보면 내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고향과 친척 일가 아버지 집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누구의 인도로 교회에 나갔다. 초등하교 2한년 때였다. 초등학교 4학때 나는 아버지에게 앞으로 제사를 안 지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러라고 했다.
아마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를 그렇게 정성을 다 해봐도 사는 형편이 어려우니까 그랬는지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길로 갔다. 그 길은 외로운 길이었고 개척자의 길이었다.
내가 처음 그 길을 갔을때는 거기에 길이 없었지만 가족들이 하나 둘, 누나 동생 형 엄마 아버지 이렇게 다 나가니까, 이것이 길이 되었다. 우리 성도님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는 길이 없었다. 내가 가는 그 길을 가족들이 다 가니까 그것이 새로운 길이 되었던 것이다.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 길이 낯선 길이지만, 그 길이 바른 길이면 내가 가는 그 길을 모두 가게 되어 있다. 이번 설 주간에 꼭 새겨야 할 말씀이다.
둘째, 아브라함은 제단 중심으로 살았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중심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땅에 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이다. 곳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이 가장 힘들었던 예배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번제 제물로 드리라는 예배였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런 예배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옆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아들을 데리고 번제를 드리러 갔다.
하나님의 요구가 부당해 보일 때도 우리는 곧바로 예배하러 가야 한다. 그 예배가 나의 생명이나 내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예배라도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곧바로 예배하러 갔다. 이 지점이 우리가 미러링 해야 할 부분이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예배했는데 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은 나도 제단 중심으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제단이 있는 곳은 교회이다.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이 제단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제단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누가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한다면.. 정부 당국이나 똑똑한 아들딸이 교회 가지 말아라고 해도, 그래도 교회에 가야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누가 교회 간다고 핍박하고 불이익을 준다고 해도 교회에 가야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슨 학예회라는 것을 했는데 주일날 학교에 오라고 했다. 당시 주일학교는 오후 2시에 모였다. 학교 선생님에게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교회 한번 안가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괜찮지 않았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교회에 가야 하는데...
선생님이 좀 독한 선생이고 매도 잘 때리는 분이라 더 말도 못하고 있다가.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교실에서 나와서 교회로 달려갔다. 한 2km 정도 떨어진 교회로 달려갔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기특한 일이었다. 어린 내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학교 선생님 말을 들을 것이냐, 교회 선생님 말을 들을 것이냐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정부 당국의 말을 들을 것인가? 교회 목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여러분은 옆도 보지 말고 교회 목사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군대에 갔을 때 주일도 없었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온갖 일을 시켰다.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믿음이 좀 있는 사람이면 이게 환장할 노릇인데, 믿음이 좀 부족한 사람은 예배를 안 드려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평소에 영적 훈련을 잘 되어 있어야 어려운 순간이 와도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
군대 자대 배치 받고 어느 날 교회 예배를 다녀오니 쫄따구가 겁대가리가 없다, 군기가 빠졌다면서 내무반에 비상이 걸리고 줄빳다라는 것을 맞았다. 나 때문에 맞은 전우들이 안됐지만 나는 참 잘 했다. 내무반 분위기를 봐서 예배 안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아니다. 예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예배는 성도가 마땅히 목숨을 걸어야 할 최고로 중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예배를 통하여 완전하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의 신임을 받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참으로 나를 경외 하는 줄.을 알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셋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실행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라. 그 수를 셀수 없이 많다.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 하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었다고 했다.
이때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는 이미 출산을 할 수 없는 나이였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 아브라함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는 것, 이 지점이 아브라함 미러링의 지점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모리아 산에서 네 아들을 번제로 드려라.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도 살리심을 믿었다고 했다. 믿고 아들을 바쳤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 자신에게 미러링 해 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가?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을 아멘 하고 믿는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행복하게 하고 보람되게 한다.
가난하게 자란 어떤 사람이 연세대 의대를 나오고 미국유학을 해서 미국의사가 된 사람이 있다. 미국 의사는 연봉이 매우 높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다. 별장도 사고, 부자동네로 이사하고, 보트도 샀다. 인생은 살만하구나.. 그러면서 죽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기 몸에는 기관지 천식, 관절염 등 병에 걸렸고 병을 세어보니 15가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의사가 암 공포증이 생겼다. 암 공포증을 벗어나려고 의사가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성경책을 꺼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 확실하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만일 이 성경이 진짜라면 내가 믿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30분 안에 답변을 부탁드렸다.
그러나 30분이 지났는데 답이 없었다. ‘역시 하나님은 없구나’ 생각했다. 머쓱해서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경책을 탁 펴니, 창세기 9장 29절 말씀이 들어왔다. 그 말씀은 노아가 950세가 되어 죽었다는 말씀이었다. 깜짝 놀랐다. 오래전에 연대 의대 다닐 때 이 말씀을 보고 웃기지 말라며 그 부분 성경을 찢었는데, 희한하게 그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이 의사가 지갑에서 부적을 꺼내 찢어 쓰레기통에 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 순간에 암 공포증이 싹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서 몸의 15가지 병이 전부 다 나았다. 그가 잘못된 이단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정신이 들었다. 그는 바른 신앙으로 신앙의 새 출발을 했다. 아브라함처럼 그 분 이상구박사 나이 75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