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09시에 181번으로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새내기 민원 담당 여 공무원의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를 받으며 확정일자 받고 동래우체국에서 발송한 택배를 수령하려 간 새 주소지에서 짬뽕 한 그릇 주문하니 배달비가 3천 5백원 이다.
이 배달비는 왕복 버스비를 참고하여 책정한 것이라면 게을러 방콕하는 놈
에게는 정당하다고 하겠으나
몸이 불편해 어쩔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억울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먹어야 사니까 일주일 먹을 식량을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구매하려고 메가마트를 가려고 하니 버스 노선을 몰라 건널목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다리에 무리가 와 정류장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 "메가마트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하니 " 기장 3 번 타세요" 라고 한다.
함께 타서 보니 동남아 여자였다. 나도 모르게 크게 헛 웃음이 나왔다
한국 사람이 그것도 기장에서 10여 전을 살며 마누라와 수백 번을 더 생필품을 사러 간 곳을 외국사람의 도움을 받다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태우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즐거운 마음으로 데려다 준 마누라가 어떤 존재였든가를 생각하니 마누라가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난다.
기장 경찰서에 하차하여 건널목을 건너려니 건널목이 왜 그렇게 긴지
지나기 위해 심호흡을 여러 차례하고 " 요이 땅"했는데 반도 못 건너 건널목 표시등에 13이란 숫자로 바낀다.
지체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겠다.
기장 메가매트는 한산하다.
커피 포트를 구매하고 여름이불을 사려고 침구 코너에서 30분 넘어 종업원을 소리쳐 불렀으나 나타나지 않아 상치등 야채 , 즉석밥,사과 등 과일, 간식 등을 구입하여 배송 부탁하고 호두과자를 이만 원 어치 사들고 병원에 돌아오니
문 간호사가 저녁을 치우지 않고 정성껏 차려 놓고 있어 입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었다
야간 당직이 안**간호사와 김**간병인이었다
안**은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갖다주어 내 몸무게가 이 지경이 되도록한 주범이자 나의 말에 귀 기우려 듣고 밀당하지 않고 대화를 한 사람이고 , 김**는 내가 변을 못 볼 때 마다 나에게 최선을 다 해 주었던 사람이다.
봉대산에서 창문을 통하여 대변항을 거쳐 불어오는 초 여름 바람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그동안 긴 병원 세월을 회상하며 60~70 흘러간 팝송을 듣고 있으니 Jeannie with the light brown hair와 Anything That’s Part of You가 흘러 나온다.
마누라에게 " 당신이 살아 생전에 내가 살아 주기를 바랬던 모습으로 남은 세월 살다가 당신 곁으로 가겠다"라고 맹서했다.
며 칠 전 병원 규칙에도 없는 일과 전 퇴원을 하려고, 회진 온 병원장에게 이야기하니 "그렇게 하세요" 라고 수행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아침 6시에 배낭을 걸머메고 병실을 나오니 할머니 환자 한 분이 휴게실에 앉아 있다 "집에 가는 모양이지요" 라고 어눌한 말투로 말을 건다.
이 할머니는 6시 이전에 휴게실로 나오다 간호사의 제지에 항의 하다가 싸울 때 간호사에게 "아니 간호사가 환자에게 이기려면 되느냐" 라고 호통 치며 할머니 편을 들어 주었던 것이 그렇게 고마왔던 모양이다.
안 간호사에게 " 버스 타고 갈테니 에레베이트까지만 배웅하세요"라고 하니
"나이롱 환자에게 배웅이라니 그냥 가세요"
라는 말을 들어니 눈물이 또 난다. 이만한 일에 눈물이 나니 늙긴 늙었는 갑다.
병원을 나오니 뱃고동 소리에 실려 온 코 끝을 스치는 비릿한 바다 내음이 나를반긴다.
할머니 두 분이 정류장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 내가 열다섯 살 부터 스물 넷 시집 갈 때까지 이 해변에서 고생 무지하게 했다." " 아기씨는 시집가서 고생면했지만 나는 시집와서 여태까지 이 고생이요"
라고 하며 가시돗힌 말을 주고 받는다. 대변에서 이 집안의 땅을 밟지 않으면
지날 수 없는 집안 이었다.
181번이 5분 후에 도착한다고 표시등이 뻔쩍인다
디리가 아파 버스에 오르며 카드를 찍을 수 없어 착석 후 찍을려니 버스가 몸씨 흔들려 찍을 수가 없다.
그 할머니가 내게 오더니 " 이리 주세요 찍어드릴테니"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혹시나 내리지 못할까 염려되어"기장 시장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귀 기우려 듣고 있었다. 그래도 못 내릴까 애가 달아 일어서려니 "어르신 일어나면 위험합니다 안전하게 내려 줄테니 가만히 앉아 계세요"라고 안내 한다.
마누라와 함께 즐겨 찾았던 떡볶이 가계 천막은 아직 덟혀있다.
" 마누라가 오뎅을 참 좋아 했지"
기억 속에 있든 선지 국밥 집 문이 영업 중이었다.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선지 국밥이 칠천 원이다, 동래 삼색 수제비도 칠천 원인데 고마운 가격이었다.
밑 반찬이 깔끔하다. 게다가 파래 김이 수북하게 담겨있다.
" 아줌마 제가 병원 생활을 몇 개 월 했는데 제가 돈 푼 께나 만질 때
먹었던 거 보다 훨씬 맛이 좋네요" 라고 하니 국물을 낼 때 드렸던 정성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 아침은 몇 시 부터 영업합니까" "재활용 센터는 어디로 갑니까" 사회복지관 옆에 있다고 한다. 상당한 거리다. 내 체력이 얼마나 대는지 알아야 한다.
기장시장, 농협, 대라리 사거리, 기장 2주공을 거쳐 사회복지관에 도착하니
이전하고 없다. 근처에 재활용 센터도 없다,
기장 인도 보드블럭은 부실공사로 울텅불텅하여 턱에 걸려 넘어지면 중상이다. 눈 덮인 된 비알길을 오르듯이 해야 한다.
정비 공장에서 물어 재활용 센터를 찾아가니 고철수집상이다.
다시 물어 오르니 재활용 센터 문이 닫혀서 안내판에 적혀있는 곳으로
전화하니 가전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새것을 사야 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메기마트 배송 시간이 다가오니 이사 갈 집으로 가야겠다. 이 길은 내가 장산에서 기장 산성산까지 종주하여 기장 시장에서 소주 한 잔하고 버스로 회귀하던 길이라 쉽게 가리라 여겼다. 그런데 구획정비로 바둑판이 되어 그곳이 그곳이었다. 세탁 공장, 편의점 종업원, 지나가는 젊은이, 하산하는 등산객 등이
가리켜 준 길은 전부 자기들 만의 길이라 다리 아픈 나를 도리어 힘들게 했다.
택시 타고 " 대라리 ***번지로갑시다"하니 그렇게는 찾을 수 없다
하여 "기장고등학교 정문까지 데려다 주세요" 정문앞에서 집 주인에게 전화해 배송되는 거 좀 받아달라 부탁하고 가리켜 준 길로 가려니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카카오 택시를 이용하려고 앱을 열고 몇 번 시도했으나 차는 오지 않는다.
보이는 부동산 가게로 들어가 사정읗 이야기하고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겨우 찾아 왔다.
우선 급한 것이 전자레인지와 앉아 있을 의자였다. 작은 딸에게 SOS를 보냈다. 최근에 "내 쪼대로 살아 갈테니 너희들 간섭하지 마라" 선언한 나에게 "아빠 ! 자기 뜻대로 살려면 절대로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해서 " 알았다.전화도 안 하겠다" 라고 했다
내가 길치인 건 고등학교 시절에 스스로 확인했다.
그런데 어제 집 찾는데 힘들어 해야 한 것은 길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아집이었다
내가 어제 일레븐 세븐 가계 앞에서 마지막 위치를 확인 할 때 아래께 일월정사를 보았고 그 위에 이사 갈 집이 있다고 머리 속에 넣고 있었는데
오늘 나무젓가락 사러 나가보니 일월정사가 절이 아니고 점받이 집이네
길을 물을 때 집 옆에 절이 있다고 물었어니 바른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은 당연하지 그렇니까 어제 내 위치에서 직선200보 좌회전 하여 100보, ,우회전200보 하니 이사 온 집이네
애만 넘을 욕한게 넘사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