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숨은 진주들
'명품백 업계의 TSMC' 시몬느
릭셔리백 세계 점유율 10% 차지 1위...미선 30% 달해
마크제이콥스.DKNY.지방시.버버리와 수십년간 거래
밤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등이 우거진 녹음 사이로 실내 정원과 테라스, 발코니가 어우러진 핸드백 디자인.제조 시설이 얼굴을
내민다.
9920m2 규모 널찍한 녹지에 들어선 경기 의왕시 시몬느 본사는 한국 최초의 오피스캠퍼스다.
구글이나 애플 본사가 부럽지 않은 이곳은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 뉴욕(DKNY), 랄프로렌, 코치, 루이비통, 버버리 등
명품백의 '산실'로 이름이 높다.
'시몬느가 멈추면 글로벌 핸드백 명맥이 끊깁니다'
지난 11일 만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의 첫마디는 글로벌 핸드백 시장에서 시몬느의 위상을 압축해 보여줬다.
핸드백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ㅊ인 시몬느는 기라성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생산을 도맡다시피 한다.
'명품백업계의 TSMC'로 불리는 이유다.
럭셔리 핸드백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10%를 차지하며 1위에 오른 지 오래다.
미국 1~7위 핸드백 브랜드는 모두 시몬느의 손을 거친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8054억원, 영업이익 1439억원을 올렸다.
제품 소매가로 환산하면 8조원어치다.
이런 시몬느를 박 회장은 '풀서비스 컴퍼니'라고 부른다.
주문한 대로 단순 제품만 생산하는 다른 OEM 업체와 달리 제품 개발과 기획, 생산 능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DKNY와는 32년째, 코치와는 22년째 거래를 이어갈 정도로 명품업체의 신망이 높다.
지난 36년간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은 20만 종이 넘는다.
박 회장은 1987년 자본금 1억원으로 시몬느를 창업했다.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봉제.잡화 제조업에 뛰어들어 30여 년 만에 '명품백 무대 뒤의 주인공'으로 키운 배경에는 장인들의 땀이 있다.
시몬느에는 환갑을 넘긴 장인만 열네명이 근무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대표 명품업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다.
박 회장은 '경력 55년의 업계 최장수 장인 등 본사 직원 400여 명의 경력을 모두 합티면 '6100년'이 된다'고 강조했다.
루이비통.샐린느.로에베...
기획.생산 모두 시몬느가 한다.
'명품백 OEM 명가' 시몬느 박은관 회장
창업 1년 후 DKNY 본사 두드려 가방 240개 주문 받은 게 시작
로에베 등 LVMH 계열도 찾아와 마크제이콥스 제품 개발도 전담
'플랫폼.장인정신.고객사 협업 명품 시장에 뿌린 비결'
1999년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본사.
글로벌 럭셔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장 폴 비비에르 당시 사장이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지방시, 펜디 등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았다.
이탈리아 장인들의 수제 핸드백과 시몬느의 시제품을 섞어놓고 계열사 수장들에게 이탈리아산을 고르도록 했다.
블라인드데스트에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꼽힌 다섯개 백 가운데 세 개가 시몬느의 제품이었다.
'아시아 국가가 무슨 명품을 만드느냐'던 유럽 디자이너들의 콧대가 꺾인 순간이었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허명이 드러난 '파리의 심판'을 이끈 주인공은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다.
시몬느는 1999년 지방시, 셀린느, 로에베, 크리스찬라크르와 등 LVMH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했고 2000년대엔 마크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등이 핸드백 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제품 개발과 생산을 전담했다.
무명의 K패션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지난 11일 경기 의왕시 시몬느 본사에서 만난 박 회장의 눈빛에선 36년 전 핸드백 생산업체를 창업하던 당시의 결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변방의 청년들이 글로벌 패션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갈망이 'K명품백'을 일군 씨앗이 됐다.
해외 출장이 쉽지 않던 시절, 박 회장은 해외 출장이 잦은 중소 핸드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첫 출장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베네통 바지를 빨간색부터 휜색까지 색깔별로 모두 구입한 게 패션업에 눈을 돌린
시작이었다'며 '이후 가죽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제품을 제작하고 바이어와 협상해 수출하는 모든 과정이 즐겨웠다'고 돌아봤다.
1987년 자본금 1억원으로 시몬느를 창업할 때 주변에선 '사양산업인 봉제업에 뛰어드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사양 기업이 있을 뿐 사양산업은 없다'며 고급화와 완벽한 품질을 앞세워 새롭게 떠오르던 미국 명품 시장을
겨냥했다.
이후 36년간 뉴욕만 200번 넘게 방문했다.
300번이 넘는 비즈니스미팅을 비롯해 글로벌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댄 횟수가 1만 회를 넘는다.
럭셔리업계의 문턱을 넘긴 쉽지 않았다.
1988년 뉴욕 DKNY 본사를 찾아가 '너희 제품 1%만 시몬느에 맡겨 보라'고 큰소리쳐 핸드백 물량 240개를 맡은 게 돌파구가
됐다.
제품이 완판되자 주문 수량은 600개, 2400개 식으로 늘었다.
DKNY는 생산공장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옮겼고 코치, 토리바치 등도 시몬느를 찾았다.
시몬느는연간 핸드백 2080만 개, 지갑 920만 개를 제작했다.
70조원 규모 세계 럭셔리 핸드백 시장(매출 기준)의 10%가량을 시몬느가 제작한 제품이 차지한다.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 미국에선 'TV에 나오는 명사 중 시몬느 백 없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다.
2003년 1440억원이던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전 1조원대로 커졌다.
시몬느는 어떻게 명품 시장에 뿌리내렸을까.
박 회장은 비결을 세 가지로 꼽았다.
고객사의 서플라이체인을 대체할 플랫폼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장인정신
고객사와의 협업 파트너십이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정도를 제외하면 90% 이상의 럭셔리 브랜드는 자체 서플라이체인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전문성.효율성을 갖춘 시몬느가 고객사를 대신해 핸드백 소재 및 제품 개발, 품질관리 등을 맡는다.
시몬느 장인들은 손기술을 포준화했다.
'가격 경쟁력은 중국보다 뛰어나고 품질은 압도적이어서 도저히 거래처를 바꿀 수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시몬느는 시몬느 에프씨, 시몬느자산운용, 해피투게더하우스, SP자산운영 등 네 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시먼느에프씨는 해외 브랜드의 국내 유통과 자체 브랜드 0914의 영업.마케팅 등을 맡고 있다.
시몬느 자산운용과 SP자산운용은 부동산 투자와 사모팬드(PE) 운용 사업을 하고 있다.
해피투게더하우스로 종합부동산업에도 진출했다. 의왕=강경주/오유림 기자
기술력.브랜드 파워 다 갖춘 'K패션'
해외서도 잘 나간다
OEM.ODM 업체 8곳 매출 33% UP
의류를 수출하는 K패션 업체들의 매출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
글로벌 브랜드의 주문자브랜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부진을 떨쳐낸 데 이어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패션기업들도 '매출 1조원 클럽'에 잇달아 가입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탄탄한 제조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패션기업을 발굴.소개하는
'K패션의 숨은 진주들' 시리즈를 게재한다.
14일 금융간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해외에 OEM.ODM 방식으로 의류를 남품하는 의류 수출로 상장사 여덟 곳(영원무역 한세실업 태평양물산 호전실업 국동 윌비스 SG세계물산 엠에프엠코리아)의 지난해 총매출은 8조5721억원으로 전년 대비 32.8% 늘었다.
2019년 이후 6조원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의류 수출 기업들의 매출이 지난해 껑충 뛴 것이다.
갭 올드네이버, 바나나리퍼블릭 등 갭그룹 브랜드와 월마트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납품하는 ORM업체인 한세실업은 지난해
고객사 주문량이 늘어나 창립 40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 2조원을 넘어섰다.
브랜드 유통사업을 하는 패션기업도 실적이 호전됐다.
40여 개 패션 분야 상장사 중 지난해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한 기업은 아홉 곳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엔 다섯 곳에 불과했다.
이들 아홉 개 기업의 매출을 합하면 17조원에 육박한다.
2020년 (14조1732억원) 대비 19.8% 증가했다.
MLB, 디스커버리 등 라이선스 브랜드를 운영하는 F&F는 지난해 해외 판매액 1조원을 기록했다.
코웰패션도 파파 등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영국 캐주얼 브랜드 슈퍼드라이의 아시아태평양 지식재산권(IP)을 인수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과 K콘텐츠 열풍은 패션기업의 든든한 발판이 되고 있다.
신희진 한국패션협회 부장은 '과거에는 브랜드의 국적을 숨기고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있는데
최근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부각시켜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