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부모님이 주신 뛰어난 지능덕분에 어렸을때부터 난 주변에서 곧잘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고, 자연스레 나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다보니 누군가는 내가 별 노력없이 얻어내는 것들을 위해 엄청난 피와 땀을 쏟아낸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누구나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한 번 읽은 글을 잊어버리지 않고, 누구나 한 번 배운 공식을 곧장 문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줄 알았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1학기 중간고사가 막 끝난 시점이었다. 중학교땐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추려 따로 자습실을 운영하는 '심화반'이란 제도가 있었고, 난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명단에 들었다. 그리고 자습실 자리를 배정받은 첫 날. 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바꿔주시겠다던 담당 선생님의 말씀에 내 자리나 확인할 겸 들른 자습실에서, 그래, 그곳에서. 난 너를 보았다. 길게 흐드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그 모습이 내 눈에 들었다. 아. 심장이 요동쳤다. 전형적인 미인 상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
자습을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자습실 안 아이들은 각자 제 자리를 찾아갔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앉았고, 그 아이도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대각선. 내 자리에서 그 아이의 모습은 꽤 잘 보였다. 비록 책상 칸막이에 가려 아이가 허리를 완전히 폈을 때나 살짝살짝 보이는 동그란 정수리가 전부였지만, 난 그 하나에도 만족했다. 난 그 날 선생님께 자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렸다.
"……."
난 너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 날 이후로 난 몰래몰래 아이를 관찰했다. 원래가 고개만 들면 보이는 위치기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렇게 지켜본 아이는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는 아이의 습관때문에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한참을 그렇게 집중하다가 가끔씩 기지개를 쭉 켤 때 저도 모르게 찡그리는 왼쪽 눈이 귀여워 입을 가리고 웃음을 꾹 참기도 했고, 주말 자습때는 나도 좀 나른하다 싶어 고개를 돌리면 아니나 다를까 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있는 그 조그만 정수리를 보느라 자습 시간을 통째로 날린 적도 있었다. 덕분에 집에 가서 밀린 숙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그 자리에 앉은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빨리 내일이 되기를, 한시라도 빨리 너를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심화반 기록일지
w. 리플레이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지금쯤 복도에 기재돼있을 명단을 확인하러 나가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빨리 나온 네가 벌써 명단 앞에 서있었다. 아, 또 가슴이 뛰었다. 명단을 확인하는 척하고 슬쩍 그 옆에 서볼까 생각했지만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네 옆에 서다니. 이렇게 멀리서만 봐도 가슴뛰는데 한 발자국 떨어진 그 옆에 나란히 선다면 그땐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이는 작게 한숨을 폭 쉬더니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결국 오늘도 실패구나. 난 터덜터덜 명단 앞으로 걸었다.
"여어, 김종인. 너 또 1등이더라."
"그래?"
"대박이야, 진짜. 이번엔 얼마나 공부했냐? 코피 터져가면서 한 거 아녀?"
"별로."
눈으로 명단을 훑으며 아이의 이름을 찾고있는데, 평소 얘기도 잘 나누지 않던 친구놈 하나가 어슬렁 어슬렁대며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름 찾기에 집중하느라 친구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대충 응, 그래, 하며 들은 체만 해주었다. 이마저도 해주지 않는다면 건방지다느니, 싸가지가 없다느니 뒷말들이 돌테니까. 난 내 이름이 적힌 1등부터 커트라인인 30등까지 손으로 쭉 훑어 내려가다가, 아. 찾았다. OOO. 반가운 세 글자에 나도 모르게 네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
"……."
그곳엔 네가 사라지지 않은 채 서있었다.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치고, 나도 당황했지만 아이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마주친 시선에 난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는데, 너는 조금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에 저기 하고 불러도 봤지만 넌 이미 교실로 사라진 뒤였다.
딱히 무슨 할 말이 있던 건 아니었다. 너와 난 그럴 사이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고, 그저 나 혼자의 감정이었을 뿐이니까. 다시 고개를 돌려 명단을 보았다. 그제서야 더 확연히 보인다. 전보다 조금 떨어진 등수에 자리해있는 네 이름이. 그리고 그제서야 다시 떠올렸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조금 전 아이가 폭 내쉬던 한숨을.
"……."
언젠가는, 너에게 무슨 말인가 꼭 해주고 싶었다.
.
심화반으로 향하는 발걸음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굳이 학교에 밤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데도 내가 매일같이 자습실에 남는 이유, 그것은 오로지 너 하나였다. 비록 몇 발치 떨어진 곳에서 몰래몰래 지켜보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난 그 하나에도 만족했다. 처음으로 감사했다. 너를 지키고,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저녁은 원래 먹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게 뛰어난 두뇌를 주시는 대신 체력을 깜빡하셨는지 난 사소한 환경 변화에도 커다랗게 반응하는 타입이었다. 그 때문에 중학교 내내 먹지않던 석식을 챙겨먹으려니 고등학교 와선 배탈이 일상이 되었는데, 난 또 그것을 핑계로 너를 못보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결국 석식을 미신청했고, 대신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자습실로 가 너를 기다렸다. 너를 기다리는 일. 하루 중 제일 설레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난 석식시간이 되자마자 짐을 싸들고 자습실로 내려갔다. 중간에 친구 한 놈을 만나 얘기를 나누느라 좀 늦긴했지만, 그래도 내가 일등일 거였다. 다들 석식 먹고 30분은 되어야 오니까. 평소보다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자습실에는 예상 외로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누군가 어제 불을 끄지 않고 갔나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간 자습실에서 막 나오는 아이와 마주친 순간 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어."
"……."
"안녕."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안녕, 이란 말이 튀어나갔다. 내 인사에 아이는 놀라보였다. 나도 놀랐지만, 이미 내뱉어버린 말이니 어쩔 수는 없고 내심 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치만 너는 야무진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이번에도 실패. 그치만 그 날은 왜인지 그대로 널 보내기가 싫었다.
"어디가?"
용기내 건넨 물음에 넌 집에, 라고 짧게 답했다. 저절로 입맛이 쩝 다셔질만큼 짧은 단답이었지만 크게 서운해할 새는 없었다. 난 그 순간 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조금만 더 길게 대화를 잇고 싶었는데 넌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같아 조금 섭섭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여지껏 말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남자애가 자습실에서 단 둘이 마주쳤단 이유로 이렇게 오지랖을 부려대고 있으니. 이제 그만 비켜줘야겠다 생각하는데, 네 행동이 이상했다. 왜 이렇게 안절부절해.
"너 어디 아파?"
혹시나 하고 물어본 질문에 넌 아니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냥 좀. 그렇담 어디가 아프다는 거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우리가 처음 대화를 해봤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이것저것 캐물었다. 어디가 아픈데. 혼자 갈 수는 있겠어?
"아, 저기…."
당황했는지 한 발짝 물러서는 너를 보고서야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아.. 김종인 방금 좀 오바했구나. 방금 전 내 행동을 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난 머쓱하게 네 앞에 섰고, 네 표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닌 듯 했다. 그치만 난, 난 정말 네가 걱정되서... 네가 정말로 아파 죽겠는 걸 꾹 참고있는 표정으로 서있는데 내가 어떻게 널 그냥 보낼 수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나 괜찮아."
"…그래."
"가볼게."
내 맘도 모르고 넌 그렇게 멀어져갔다. 내 시선이 자동적으로 그런 널 따라붙고, 네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가슴이 좀 아려오는 것 같았다.
심화반 기록일지
w. 리플레이
자습실로 향하는 도중에 매점에 들렀다. 아파서 학교도 못 오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넌 어제보다 좋아진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지갑을 꺼내들고 뭘 사야할까 고민했다. 어제 잠깐 나눈 대화를 핑계로 너와 조금 더 가까워져 볼 심산이었다. 이것도 오바일 지도 모르겠는데, 그치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너와 가까워질 기회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잖아.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진열장을 훑고있는데 짤랑, 매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습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매점엔 나 뿐이었는데, 반사적으로 돌아간 고개에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엔 네가 서있었다. 넌 쭈삣거리며 걸어와 내게서 멀찍이 떨어져 주문을 했고, 그 모습이 날 썩 불편해하는 것 같아 마음은 아렸지만 나도 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뭐, 처음부터 아는 척을 할만한 사이도 못 되었지만. 내가 먼저 자리를 비켜줘야겠다 싶어서 난 눈에 보이는 음료수를 꺼내 계산을 하고 서둘러 매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심화반을 향해 걷는데, 정말 별 일 아닌데도, 이렇게 먼발치에서 널 지켜보는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도, 새삼스레 가슴이 아팠다. 짝사랑은 힘든거구나. 자꾸만 무너져내렸다.
.
"오, 김종인 이거 뭐냐?"
"뭐긴 뭐야."
"박카스? 이걸 왜 얘한테 줘?"
네 책상에 음료수를 내려놓고 자리로 가려는데 네 옆자리인 변백현이 말을 걸어왔다. 변백현하고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었는데, 애 성격이 원래 이런건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서스럼없이 말을 잘 걸길래 나와도 어쩌다가 친해졌다. 그 친화력으로 너하고도 친해졌다는 게 문제지만.
그나저나, 내가 뭘 샀는지도 몰랐는데 자습실로 내려오면서 보니 박카스였다. 아.. 좀 아닌거 같은데. 포장부터 아기자기한 음료수들도 많은데 그 중에 하필 자양강장제, 박카스라니. 급하게 나오느라 고를 새가 없었던 게 아쉬웠다. 김종인은 박카스. 이렇게 기억에 남으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른걸 사올까 생각했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자습 시작 5분 전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놓아두고 뒤돌아섰다.
"야, 야, 왜 얘만 주냐니까?"
"시끄러, 좀."
"나도 줘, 나도. 나도 박카스 먹을 줄 아는데?"
전부터 느낀거지만 변백현은 참 시끄러웠다. 내가 너한테 음료수를 왜 줘. 가뜩이나 그 아이 옆에 앉아서 쉬는시간마다 쫑알쫑알 떠드는 꼴이 얄미워 죽겠는데. 그 아이 옆에 앉으면 자습 내내 심장이 떨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지금 이 자리에 앉은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날 선생님께 자리를 바꿔달라고 할 걸 그랬다.
"네껀 없어."
변백현은 저 구석에 처박아달라는 부탁도 같이.
.
자습 내내 도저히 문제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손이 떨리고 입술을 자꾸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러다간 고쳤다고 생각했던 손톱 물어뜯는 버릇도 다시 도질 것 같았다. 결국 난 자습이 끝날 때까지 한 글자도 머릿속에 넣지 못했고, 그보다 더 날 미치게 하는 건 자꾸만 떠오르는 아까의 네 행동이었다.
자습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내가 너의 책상에 박카스를 놔두고 자리로 돌아와 널 기다리던 때. 종이 치기 몇 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한 손에 웬 초콜렛 하나를 들고 자습실로 들어온 네가 변백현과 얘기를 나누는 걸 아니꼽게 쳐다보다가 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굳었던 내 얼굴이 신난 아이마냥 환하게 펴졌는데, 다행히 넌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은 너는 책들을 꺼내다 멈칫했고, 난 네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내심 기대하며 안 보는 척 네 쪽을 다 보고있었다. 쉬는시간에 내게 고맙다고 말하러 올까? 아니면 부끄러우니까 그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쪽지를 써줄까? 그 짧은 순간에 별의 별 상상을 다 했었다. 변백현에게 물어 음료수의 정체를 안 네가 내 쪽을 쳐다봤고, 난 일부러 모른 척 하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제집만 쳐다봤다.
"이거 너 먹어."
"어? 그래도 돼?"
"어. 나 이거 싫어해."
순간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고개를 들어 널 쳐다봤지만 이번엔 네가 날 무시했다. 내가 준 음료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변백현에게 건넨 너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변백현이 준 사탕을 입에 까넣었다. 변백현은 그래도 종인이가 너 먹으라고 준건데, 하면서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넘겼고, 그렇게 내 박카스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 순간 어, 나 이거 싫어해. 하던 네 말이 어, 나 김종인 싫어해. 라고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자습이 끝나고, 난 느릿느릿 준비를 마쳤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건지 넌 종이 치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더니, 어깨를 흔드는 변백현의 손길에 그제서야 가방을 챙겼다. 매일 집에 같이 가는 친구들도 오늘은 먼저 보냈다. 너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
"__아."
신발을 꺼내 신는 너를 뒤에서 불렀다. __아. 매일 꿈에서나 불러보던 네 이름을 이렇게 입밖으로 내어본 건 처음이라 __아, 하고 뱉어지는 목소리가 퍽이나 어색했다. 내 부름에 너는 뒤를 돌았고, 난 정작 네 눈을 맞추지 못했다. 분명 너와 할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널 앞에 두고도 아무말 못 하는거 보면, 아무래도 난 평생 널 혼자 좋아할 운명인 것 같았다.
"응."
"……."
"왜, 종인아."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 네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매번 명단에서 마주치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인데도 난 새삼 가슴이 뛰었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것도 김종인, 이 아닌 종인아. 하고.
우리 둘 사이로 아이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어느새 이곳엔 우리만 남았다. 너는 내 반응을 가만히 기다려주었고, 난 그에 보답하듯 한 번 더 힘주어 네 이름을 불렀다. __아. 이번엔 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짓으로 응, 하고 내게 답하는 것 같았다.
"너…"
"……."
"나, 싫어해?"
이 말을, 정말 하기가 싫었다. 내가 너에게 이런 물음을 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비참했고, 속상했다. 난 이렇게 네 이름만 불러도 좋은데, 너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나 가슴이 뛰는데. 그저 난 너에게 아무 노력도 없이 상위권을 꿰차는 재수없는 남자애, 그 정도일 뿐인걸까. 어쩌면 그보다 더 형편 없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숙여진 고개는 들릴 줄 몰랐다. 왜 하필 그 질문이었을까. 나는 꼭 뱉어놓고서 후회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확인할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종인아. 또 다시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야했지만 난 네 눈을 바로 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네 입에서 응, 나 너 싫어해, 하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넌, 나 좋아해?"
"……."
예상을 깨고 네 입에서 나온 말은 날 더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방금까지 마주치지 못하던 눈이 저절로 네 시선을 찾아 맞닿았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꺼낸 너는 담담하니 아무렇지 않아보였고, 널 좋아하는 나만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내게 널 좋아하냐고 물은걸까. 그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아니. 넌 내게 정말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은 게 아니었다.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던 모양인지, 저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이리 귀찮게 구느냐고 묻고있는 거였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일, 그게 너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까.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너는 곧 시간이 늦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서 뒤돌아서며 불 꼭 끄고 가라는 당부를 하는데, 그제서야 난 문득 깨달았다. 아, 지금 이 순간이 너에겐 아무것도 아닌 거구나. 하고. 나는 이렇게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 둘이 이런 얘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나 긴장되고 꿈만같은데, 너에겐 이 순간이 불 꼭 끄고 가라는 당부나 할만큼 아무 의미 없는거였다. 그래. 난 네게 그 정도였다.
"대답,"
"……."
"듣고 가야지."
애초에 내 대답따위는 바라지 않았을 네가 멈칫하는게 보였다. 넌 그 자리에 멈춰섰고, 언제나처럼 내게서 등을 돌린 채였다. 너무도 많이 봐서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너의 뒷모습은 뒷모습이라도 내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 언제나 떨렸고, 언제나 설렜다. 조금은 네가 미운 이 순간에도 말이다.
"응."
"……."
어쩌면 난 지금 제정신이 아닌지도 몰랐다. 예상에 없던 말, 예상치 못했던 행동. 그치만 이미 내 안에선 오래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일, 그래서 이젠 내 일상이 되어버린 일, 그게 너에게 있어 말도 안되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일로 치부된다면 그동안의 내 마음이 너무 불쌍해지지 않을까.
"나 너 좋아해."
네 뒷모습만 지키는 일, 이제 그만두고 싶어.
심화반 기록일지
w. 리플레이
"김종인."
널 좋아한다고 고백한 걸 후회하진 않았다. 무언가에 떠밀리듯 갑작스럽게 내지른 고백이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넘어야할 고비였으니까. 오히려 후련하게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밤 나는 어느때보다 더 편히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이 쓰레기, 네가 버려."
"……."
정말 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말 걸지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내 고백이 있고 난 후로 넌 나를 피하는게 눈에 띄게 보였다. 혹시나해서 쉬는시간마다 나와보던 복도에서도 단 한 번을 마주치질 않고, 자습실도 넌 종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전 내 자리를 안 쓸고 넘어가려던 행동까지…. 티라도 내지 말지 그랬어, 사람 비참하게.
처음엔 널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언제부턴가 내 안에 작은 욕심들이 피어났다. 널 가지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정말로 널 가지고 말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넌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내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다. 네가 다른 남자애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질투가 났고, 가끔 남자선생님들이 네 머리를 쓰다듬기라도 하면 그것조차도 짜증이 났다. 당장에라도 가서 네 손목을 끌고 나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거지같게도 난 그럴 수 없었다. 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니까.
'불편하면 못들은 걸로 해도 돼'
네 손에 꾸깃하게 구겨진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불편하면 못들은 걸로 해도 된다는 이 말이, 어째서 널 그토록 화나게 한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정말 네가 불편해하지 않았음 해서, 나로 인해 네 생활리듬이 깨져가는 게 미안해서, 그래서 한 말이었는데.
'이 쓰레기, 네가 버려.'
밖에선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었다.
.
다음날은 조퇴를 했다. 새벽부터 열이 뜨끈뜨끈하게 올라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더니, 양호실에서 약 먹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두통이 아니었다. 결국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조퇴를 했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된건지 기억이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께 들어보니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내가 비에 젖은채 현관 앞에 쓰러져 있었고, 침대에 눕히고 열을 재보니 40도에 육박했다고 했다. 정말, 비밀번호는 어떻게 치고 들어온건가 싶다. 아마도 집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서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린 모양이었다. 집안에 남자 둘밖에 없어 아버지는 서툰 손길로 내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리며 날 간호해주셨다.
"그런데 비는 왜 맞았니. 아침에 우산 들고 나가지 않았어?"
"아… 친구 줬어요."
"친구?"
친구. 사실 친구라 하기도 뭐한 관계지만 딱히 너를 칭할 말이 없었다. 정말 너랑 난 아무사이도 아니었구나. 햇수로 꼬박 3년이나 널 좋아하면서 그 흔한 친구란 명분 하나 만들지 못한 내가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한층 어두워진 내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시며 물었다.
"여자애니?"
"……."
"좋아하는 애야?"
난 다만 입술을 꾹 물었다. 정곡을 찔린 것도 있지만, 계속 널 좋아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요즘들어 자꾸만 들기 때문이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로 인해 네가 날 불편해하고 피하는데, 나 계속 이래도 될까. 그게 너를 위한 일이 맞을까. 그만둘 수 없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속에서 울컥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너를 떠올리는데. 너에게 우산을 건네던 그 때에도 난 이 우산을 빌미로 너와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거진 울상이 돼버린 내 표정과는 달리 아버지는 사람좋게 허허 웃으셨다. 아버지 입장에서 지금의 내 고민은 한낱 학창시절의 추억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지금은 지독하게 아프기만 한 이 감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이 흐려질 거란 것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다.
"아버지."
근데, 그런데요 아빠.
"저 좋아하는 애가 생겼어요."
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파요.
.
학교에 갔더니 반 아이들이 몸은 괜찮냐며 다 한마디씩 안부를 물어왔다. 애초에 하루만에 거뜬해질 증상은 아니었지만 난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답을 했다. 사실 아버지는 오늘 날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으셨다. 이 상태로 학교가면 너 또 쓰러진다고. 하지만 난 그저 더 밝게 웃어보이며 제대로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집을 나섰다. 너를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어제 웬 여자애 하나가 너 찾던데. 난 직감적으로 너에 대한 얘기라는 걸 알아챘다. 내게 그 말을 전해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당장 너의 반으로 가려고 했지만, 백 번 참아 그 발길을 멈췄다. …네가 싫어하겠지. 너에게 내 감정을 들켜버린 게 처음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전에는 보고싶을땐 언제든지 화장실을 핑계로 너희 반 복도를 지나치곤 했었는데. 창문 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네 모습이 그렇게도 예뻐보였더랬다.
"김종인."
청소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자습실로 내려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뒤돌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에 난 애써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너를 마주했다. 옆에 있던 친구놈들이 오오-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잡는데, 왠지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서 빨리 먼저 보내버렸다. 너와 난 계단 옆쪽으로 비켜섰다.
"아팠다며."
네가 이틀만에 내게 건넨 첫마디는 나에 대한 안부였다. 오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물음인데 네 입에서 들으니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날 걱정했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치만 꼴에 나도 남자라고 여자인 너에게 아팠다는 말을 하는게 내키지 않아서 지금은 약먹고 다 나았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너는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뭐, 어차피 곧 나을거니까 상관없겠지.
"잘 썼어."
"우산 없었던거 맞지?"
"…뭐."
네가 건네는 우산을 받으면서 손끝이 살짝 스쳤다. 잠깐이었지만 부드러웠던 그 손끝도, 자존심에 우산이 없었다고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그 고집스런 입술도, 다 예뻤다. 다 사랑스러웠다.
"비 안맞아서 다행이네."
그런 너를 위해 내 한 몸 아프는 것쯤, 난 정말 상관없었다.
.
야간 자습을 위해 자습실로 내려가려는데 교실에서 여자애 하나가 사탕 박스를 열었다. 남자친구한테 받은건데 자긴 다이어트때문에 못 먹는다나. 우르르 몰려드는 여자애들을 보며 설핏 웃다가, 문득 네 생각이 들었다. …너도 저런거 좋아하려나.
"나도 하나 주라."
"어? 너도 먹게?"
"아니."
"그럼?"
누구 주려고. 의아해하며 사탕 하나를 내미는 여자애에게 그냥 한 번 웃어주고 교실을 나왔다. 생각해보니까 너, 전에 변백현이 준 사탕을 내 앞에서 맛나게도 먹었다. 내가 준 박카스는 그놈한테 줘버리고 말이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좀 괘씸했지만 왜인지 오늘은 자신이 있었다. 우산, 네가 먼저 내게 우산을 돌려줬기 때문일까. 자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때는 안 빨랐겠냐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자습실 문을 열자마자 너를 찾았다. 저쪽 제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좋아할까. 좋아해야 하는데. 성큼성큼 네 자리까지 걸어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는데, 네가 고개를 들자마자 난 급격히 자신감을 잃었다.
"……."
"……."
"…왜?"
난 왜 항상 네 앞에만 서면 이렇게 작아질까.
"..먹을래?"
아, 김종인 병신. 쪼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무슨 그림을 상상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쨌든 확실히 이건 아니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넌 멀뚱히 날 올려다봤고, 그런 네 앞에 내밀어진 내 손만 머쓱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도 넌 내 손에서 사탕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공부 열심히 해."
가끔씩, 공부하다가 지칠 때면 내 생각도 해주고 말이야.
.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물건을 보고 난 한참을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카스. 1차 야자가 끝나고 네가 내게 준 것이었다.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어디론가 급히 달려나가길래 무슨 일 있나 싶었더니, 이걸 사러 매점에 다녀온 거였다. 이걸 나에게 주려고. 넌 박카스를 건네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저 아까 사탕을 준 것에 대한 답인 줄 알았는데, 넌 그날 내가 네 대신 비를 맞고 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순간 종이 쳤고, 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날 놀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영영 이 박카스를 마실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어쩌면 넌 알고 있을까.
그 날 난 무슨 용기였는지 너에게 번호를 물었다. 아마도 당황해서 그런 것 같았지만 쨌든 넌 예상외로 내게 번호를 줬고, 난 신이 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너에게 카톡을 했다. 카톡을 하면서 알게된 건데, 그날 일은 변백현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외국에 계신걸 네게 알려줬다고. 이번만은 그 얄미운 변백현 놈에게 감사해야할 것 같았다.
우린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고, 난 예전같음 상상치도 못했을 상황에 하루하루 학교다니는 게 즐거웠다. 아침 버스 안에서 소소한 메세지를 나누며 등교를 하고, 청소 시간엔 너를 데리러 교실로 가고, 자습이 끝나면 네가 타는 버스정류장까지 내가 데려다주었다. 우린 각자의 버스에 올라서도 연락을 멈추지 않았다. 카톡, 카톡하고 심장이 울렸다. 꼭 너와, 하루종일을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야, 김종인. 너 ___이랑 사겨?"
"어?"
"여자애들이 그러던데. 진짜야? 진짜 사겨?"
요즘들어 내게 너와의 관계를 묻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너와 내가 친해졌단 증거겠지. 이미 여자애들 사이에선 너와 내가 사귀고 있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나로써는 나쁠 게 없는 소문이어도 네 입장은 어떨지 몰라서 함부로 대답을 하고 다닐 순 없었지만, 큰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놔두고 싶었다.
"글쎄."
이젠 나도, 작은 욕심을 부려도 될것만 같았으니까.
"오늘은 안 졸았어?"
"뭐래. 나 원래 안 졸아."
"저번에 종 칠때까지 졸고있는거 봤는데."
"…조용히 해."
네 작은 머리통은 꼭 짜맞춘 것처럼 내 한손에 쏙 들어왔다. 키도 내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아 귀여워 죽겠는데, 이렇게 머리 위에 손까지 올리면 정말 당장이라도 품에 쏙 넣고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인 모양이었다. 내 놀림에 아프지 않게 배를 퍽 치는 팔꿈치까지도 예뻐보였다.
"종인아."
널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데, 나보다 조금 앞서 걷던 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언제 들어도 기분좋다. 네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거. 응? 하고 대답했는데, 왜일까. 방금 전 나와 장난을 치던 넌 어디로 가고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우리 무슨 사이야?"
"…어?"
몇 칸 남았던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온전히 같은 층에 서있는데도 넌 나보다 한참 아래에서 날 올려다본다. 볼을 꼬집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묻는 너는 진지해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나는 그마저도 귀여워보여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느라 일부러 표정을 더 굳혔다. 너는 끈질기게 내 눈을 맞추며 대답을 요구했다.
우리 사이. 솔직히 생각을 안 해봤다면 그게 더 거짓말일 거다. 하루에도 수백번, 안 해본 날이 없었다. 너랑 나 사이. 전보단 확실히 가까워졌지만 아직 그게 전부였다. 내가 널 좋아하는건 우리 둘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 반대의 상황을 난 알 수 없었고, 어쩌면 네 자신도 모르고 있을지 몰랐다. 그치만 굳이 그걸 빨리빨리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의 난 이 상태로도 좋았다. 너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이 순간을, 조금만 더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싶었다.
"소문 들어서 그래?"
"너도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너는 내가 그 소문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했나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너와 나의 일인데.
"넌 그 소문 싫어?"
너와 나의 일이라면 귀부터 쫑긋해지는 나인데. 아니, 나보단 너의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나인데.
"아니, 뭐..."
"난 좋은데."
그 소문도, 너도. 웅얼거리던 네 말이 멈췄다. 도대체 이 용기가 어디서 나고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 큰 일 하나를 치룰 것 같았다. 넌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했다.
"우리 이제 친구놀이 그만해야겠지."
"……."
"이만하면 사귈 때도 된 거 같애."
"……."
이런 말들로 너에게 우리의 연애를 허락받고 싶진 않았는데, 왠지 오늘이어야만 했다. 지금 이 장소, 이 시간, 이 분위기. 난 왠지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난 손을 들어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뱉기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지 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조금씩 떨렸다.
"사귀자."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단한 세글자를 전하기 위해서 난 몇 년을 달려온건지 몰랐다. 무려 3년이야. 내 찬란할 고등학교 시절, 그 속엔 항상 네가 있었다. 너와 난 각자 다른 곳에 서있었지만 나만은 널 계속 지켜보았고, 지켜주었다. 그에 반해 항상 다른곳을 보던 너. 언젠가는 돌아봐주리란 걸 믿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난 꿋꿋이 기다렸고, 이제서야 너와 내 시선이 맞닿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난 너에게로 가는 길목인 친구놀이, 그마저도 좋았지만,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았다. 그만하고 싶었다.
네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길이 멈추고, 난 천천히 너에게 다가갔다. 너는 조용히 눈을 감아주었다.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하던 네가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작고 투명한 유리구슬을 다루듯이 난 조심스레 너에게 가까워졌고, 조금은 생소한 느낌과 함께 어색하게 우리의 입술이 맞닿았다. 가슴이 설레다 못해 벅차올랐다. 그 때 네가 푸스스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고, 난 아쉬웠지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왜 웃어."
누군 떨려 죽겠는데 내 앞에서 맘좋게 눈꼬리를 접고 있는 네가 조금 얄미웠다. 얄미운데, 그게 또 예뻤다. 내 입맞춤을 받고 웃는 너를, 난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문득 너에게 감사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마음을 열어줘서, 날 받아들여줘서. 더이상 짝사랑이 아닌 서로가 마주하는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좋아서."
심화반으로 향하는 계단에 분홍빛 꽃이 피는 것 같았다.
-
갠홈 트래픽 늘렸습니당.
이제 다시 주소드릴수있어여~~
진짜재미써여ㅠㅠ주소좀주세요ㅎㅎ..♥
쪽지확인~
저도주소좀여 ㅠㅅㅠ!!
쪽지확인~
삭제된 댓글 입니다.
쪽지확인~
저도 갠홈주소좀..ㅠㅠ!
저도 갠홈 주소 좀 주세여ㅠㅠ
아.. 심장 떨려요. 저도 갠홈 주소 알려주세요 흡ㅠ
주소좀알려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짱재밋어요ㅠㅠㅠㅠㅠ
이으아이이으이이히이으으아아아아아 너무좋다진짜좋다 저도주소좀요ㅠㅠ!!!!
아ㅠㅜ정주행햇어요!!ㅎㅎ저도 주소알수잇을까요?
저도 주소부탁드려요ㅠㅠ
좋아요.. 종인이 마음도 예쁘고!ㅠㅠㅠㅠㅠㅠㅠ 내 남자도 종인이 같으면 좋겠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 그리고 언니 글 더 보고싶은데ㅠㅠㅠㅠ주소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아대박ㅠㅠㅠㅠ저도개인홈주소좀 알려주세요..ㅠㅠ
주소좀요.....하....진짜 미칠거가테....미쳣나봐 이언니...
ㅠㅠ다정주행했ㅇㅓ요....진짜너무재밌어요ㅠㅠㅠ저도주소좀주세요...현기증나요..♥
이게대박재미써요 ㅠㅠ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