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북한 평양 을밀대 앞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는 최홍희(가운데). 그는 1980년 10월 태권도시범단(15명)을 조직해 캐나다 토론토를 떠나 스톡홀름과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최홍희는 북한에 간 동기에 대해 “내가 북한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곳이면 이 세상 어디든 간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아마 달에서도 태권도를 배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갈 것이다. 북한도 내 조국인데 가지 못할 이유가 뭔가.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 산하에 있는 가입국의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사이드월드』1997년 3월호 참조>
태권도 발전과 세계화 공로는 인정
홀로 태권도 창시했다는 논리는 '우상화'에 불과
[서성원의 쾌변독설]
2000년 새해 벽두, 최홍희는 <태권도신문>에 '태권도는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지의 신년사를 팩시밀리로 보내 왔다. 이 신년사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상적인 인류사회의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태권도는 나날이 성장하여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수많은 태권도 수련생과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양사상에 근거한 철학과 민족정신에 기초한 순수 무도이며 임기응변의 스포츠인 가라테 식 사이비 태권도는 이제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태권도 24틀의 마지막 틀인 통일은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인 통일을 상징하는 틀이다. 원컨대,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반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 고귀한 무도인 태권도가 세계 평화와 복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보급하는데 앞장 서 주기를 바란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은 무도를 지향하고,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스포츠를 지향한다는 게 최홍희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나는 태권도를 무도라고 생각하고 있지. 내가 만들 당시에도 이것은 단순히 상대를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둔 스포츠가 아닌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야. 스포츠와 무도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국제태권도연맹이 가입되어 있는) 세계무도연맹의 성격을 봐도 알 수 있고…." <월간 말誌 2000년 9월호>를 보면 그의 지론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홍희는 어떤 사람이고, 태권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최근 들어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는 2006년 11월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태권도위원회는 2006년 1월, ITF 대한민국협회에 평양태권도행사와 관련된 초청장을 보내면서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지칭했다. 현재 ITF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와 일부 태권도인들도 그가'태권도 창시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이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근거는 △국제적 명성의 브리태니커 사전에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명기돼 있고 △1955년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었으며 △1959년 태권도 최초로 '태권도교본'을 집필하는 등 독자적인 '창헌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홍희도 생전에 자신을 가리켜 '태권도 창시자'라며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태권도 창시자가 아니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태권도를 창시했다고 하는 근거는 신빙성이 전혀 없다. 다만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창시(創始)'는 '처음 시작함'을 뜻하는데, 그가 '태권도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논리적 개연성은 없다. 오랫동안 그를 연구해온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은 "태권도 창시자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우리들은 (태권도인들은) 그와 같은 의미에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며 "왜냐하면 최홍희가 오늘날 태권도를 처음 시작하고 보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50년대 오도관을 만들어 군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고 '태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당시에도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는 엄연히 존재했다. 다만 그 당시에는 태권도라는 명칭이 없어 공수도 혹은 당수도가 통용되던 시기였을 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생긴 청도관과 무덕관, 송무관, 조선연무관(지도관), YMCA 권법부 등은 창설자들의 무술 이력이 어떻든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파생시킨 태권도 모체관(母體館)이다. 이 모체관에서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태권도의 도약과 발전을 이끌어냈고, 현재 태권도 원로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태권도계에 전면으로 나타난 것은 1950년대 초반으로, 자신이 사령관으로 있던 군부대에서 태권도(당시 당수도)를 가르칠 때 활용한 인력은 대부분 해방 이후 청도관에서 당수도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일본 유학 시절 가라테를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무력(武歷)이 없었다.
만약 그가 태권도 창시자라면, 1955년 청도관에서 손덕성 관장 명의로 명예 4단증을 받은 이유를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그가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 모체관 중 대표 격인 청도관의 명예단증을 원해서 받았다는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울신문, 1959년 6월 16일자 청도관 손덕성 관장 성명서 참조>
그래도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한다면 객관적이고 명확한 역사적 사료가 있어야 하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지적에 대해 ITF 측은 "WTF에 소속되어 있는 기득권 태권도인들이 그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태권도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던 시절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고, 자신의 철학과 성향에 맞게 태권도를 창작하고 변형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만들었다는 '창헌류(태권도 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1965년 창헌류를 소개한 교본에서 故 최 총재는 "태권도와 일본 가라테를 확연히 구분하는데 분수령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자평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WTF의 품새는 가라테의 아류라며 창헌류야 말로 한국적인 동작이라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그를 지켜봤던 림원섭 사범(스웨덴)은 이렇게 반박한다.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라는 책 안에는 최 총재의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 그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개가 있어 실상은 10개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개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 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 최 총재는 평소 수천 개의 태권도 동작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 회고록에 15개 동작, 그것도 중복된 동작이 5개인데, 이는 사람을 교묘히 우롱하는 처사이다." <태권도신문 1998년 10월 기고문 참조>
최홍희는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신처럼 우상화하고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열일 교수의 말처럼 그가 '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功)은 크지만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계파와 이념을 떠나 후진들에 의해 냉철하게 이뤄져야 한다.
출처-태권라인 퀘변독설 <서성원 기자>
제가 그동안 머리속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글로 딱 표현해주셨네요. 맞습니다. 지도관출신인 제가 현재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를 최홍희가 창시했다고 인정할수는 없지요. 제 스승님도, 그 스승님의 스승님도 모두 지도관출신이신데...
첫댓글 제 생각에도 태권도 자체를 최홍희 총재가 창시했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럼 그 당시 최홍희 총재가 없었다고 친다면 지금의 태권도도 없지 않을까요? 그냥 당수도란 이름으로 한국식 가라데 유파가 있었겠지요
최홍희가 없었다고 해도 태권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한국식 이름의로 개명되고 관들도 통합 되었을겁니다. 일례로 무덕관 황기관장은 전통무술에서 이름을 따서 당수도라고 가르치던것을 수박도로 바꾸죠. 무덕관 수박도는 현재도 협회를 유지하고 있고요.
관들이 통합되었을 거란 주장엔 전 동조하기 힘들군요.... 사실 말이 같은 당수도지 거의 다른 유파라고 볼 만큼 서로 마냥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고 알고 있는데 자연스레 통합될 리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같은 성장 역시 정부가 개입해서 가능한 것이지요... 중국의 전통권이나 일본의 가라데가 자연스레 발달해서 하나의 유파로 통일되었던가요? 다 정부 주도의 노력으로 중국엔 우슈가 일본에 가라데연맹이 생기게 된 것이죠...
물론 저도 각관의 관장들이 자발적으로 통합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올빼미님이 말씀하신거와 같이 정부든 누군가의 노력으로 통합이 될수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일본의 공수도유파들 처럼 각 관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협회만 연맹체계로 될수도 있었겠죠.
태권도가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처럼 왜곡했던 대한 태권도 협회의 역사왜곡이 더 큰 문제 아닌가요?
여기도 올리셨군요.
![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0.gif)
집내봐야 더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떡실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0724/texticon_83.gif)
이건.. 뭐 고조선때부터 있었다는 W모 단체의 설을 뒷받침 해주기 딱 좋네요...
그리고 이 내용도 언제적 소리인데 이런식으로도 재탕을......
태권도라는 명칭이 괜히 나왔을리도 없었을 것이고
최홍희가 아니었다면 WTF도 마찬가지로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창시라는 게 혼자 다 만들어야하는 것도 아닌 것이...
본인들 역사의 일부를
인정할 건 인정해으면 좋겠는데요
글 올린 분도 지도관 같은데 거기라면 단체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어디 그것뿐입니까. 아무리 관점이 다르려니 하려해도 출처가 너무 뻔하지않습니까...
단체가 사라진것이 아니라 대한태권도협회로 통합이 된겁니다. 그리고 WTF에서 언제, 누가 고조선 어쩌고 했는지요? 금시초문이군요. 태권도 교본에서 말하는 역사는 고구려 금강역사상입니다. 그리고 엽사에 올린 리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대로 정독하시고 답글다시길 바랍니다. 이글에서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한줄 이라도 있나요? 분명하게 '1945년 해방 이후 생긴 청도관과 무덕관, 송무관, 조선연무관(지도관), YMCA 권법부 등은 창설자들의 무술 이력이 어떻든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파생시킨 태권도 모체관(母體館)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태권도라는 명칭이 그냥 나왔답니까? 위 ㄱ
위 글을 쓰신분과 같이 저도 최홍희가 태권도라는 이름을 만든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만든건 인정하시만 창시자라는걸 인정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발 제대로 아시고 그리고 제대로 읽으시고 반문하시길 바랍니다.
고대 기원설은 최홍희를 부정하면 생각할 것도 없는 스토리가 아니겠습니까.
뭐라할 생각은 없는데요. 자꾸 정독을 요구하시는데... 혹시 이글 본인 글이신가요. 읽을만큼은 읽은 것 같네요.
덕분에 지도관을 찾아보니 2대관장이었던 사람이 공수도 간판달고 명맥만 유지하다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다른 모양이군요..
서로 할말은 한 것같으니 인정 못하고의 인정하고의 문제는 그냥 알아서 생각하시구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데 나중에 한번 더 올려보세요.
뭥미? 아이쿠~ 운동만 쳐하고 자빠져서 문장력이라고는 젓도 없는 저같은 놈을 이런글 쓸수 있는 놈으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최홍희 부정하면 고대 기원설 인정하는건가요? 아이쿠~ 참 유식하시네요~ 다른관에서 당수도라는 이름의로 가르칠때 공수도라는 이름의로 가르친게 지도관이거든요~뭔놈의 제가 고대 기원설 찬양설론자 처럼 보이시나요? 미치겠습니다. 가라데에서 넘어 온거 다 인정한다구요~ 제발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는 개소리만 지껄이지 말아달라구요~
말하는 게 딱 본인 글이신가..;; 게다가 외계어인가요.![-_-](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0.gif)
![ㄱ-](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8.gif)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관심은 없는데요. 20여년전부터 똑같은 소리를 한 사람들이 너무많아서요.^^
언급하신 개소리는 부디 혼자 지껄이셨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 뭔 반응이 ..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떤가 보고싶어 장단 좀 맞춰주었더니
이건 뭐.. 글이 밀려서 그런가.. 그저 시비걸 사람이 필요했었나보네요.
이제부터는 괜한사람들 잡지말고 ITF 관계자분들과 직접 이야기해보세요.
아니면 차라리 뉴스 게시판에다 올려보세요. 기왕이면 ITF관련의 모든 카페에도 올렸으면싶네요.
ITF에 대해 찾아보니 단체가 장웅하고 최중화 트란콴 이 세곳이 있었던가요.^^
카페수가 꽤 많더군요.
이 글에서 보는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마지막으로 제가 알던 지도관과 님이 말한 지도관이 동일단체가 맞긴맞나본데
지도관 당시 2대관장이란 사람이 무슨 공수라 하여 중간에 갈라선 것 같네요.
윤 모씨 였던데 궁금하면 찾아보세요.
네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신거 같은데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