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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03월01일(금요일) 출발 2024년03월03일(일요일) 귀경 완도군 [완도&여서도&청산도] 여행기
회비 225,000원 1월29일 송금 완료, 28번 좌석 예약
2024년03월01일(금요일) 23:59시~ 2024년03월02일(토요일) 04:58시 “좋은사람들” 버스로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9 번지에 있는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로 이동 [432km] [4시간59분 소요]
2024년03월02일(토요일) 여행기
* 04:58~05:25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9 번지에 있는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02-1 번지에 있는 청산신흥식당으로 이동
* 05:25~06:00 청산신흥식당에서 백반정식으로 아침식사
* 06:00~06:07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9 번지에 있는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로 회귀
* 06:07~07:00 완도항에서 청산도항으로 가는 여객선 승선권 발권 후 승선 대기 (신분증 준비)
* 07:00~07:52 여객선을 타고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번지에 있는 완도 연안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에 있는 청산도항으로 이동 (21km) [52분 소요] [여객선 승선요금 : 7,700원]
[2024년03월02일 전라남도 완도군 일출시각 : 7시1분] [퀸청산호 여객선 선상에서 일출광경을 감상]
07:52~08:40 청산도항에서 여서도로 가는 섬사랑7호 여객선 승선 대기
[섬사랑7호(청산/여서/완도) 운항시간표
항 차 기 항 지 입항 시간 출항 시간
1항차 여 서 07:00
청 산 08:00 08:05
장 도 08:17 08:20
청 산 08:30 08:40
여 서 09:40 09:55
청 산 10:55 11:00
장 도 11:15 11:18
모 동 11:40 11:43
완 도 12:33
2항차 완 도 15:00(14:50)
모 동 15:50(15:40) 15:55(15:45)
장 도 16:17(16:07) 16:20(16:10)
청 산 16:35(16:25) 16:40(16:30)
여 서 17:40(17:30)
2항차()는 동절기 시간표
여객·화물(차량) : 여서도 주민 우선 승선·승차
장도 유·무선 확인 승객 없을 시 未기항
기항지별 전화 사전 예약으로 未기항지가 있을수 있으니 회사 또는 선박으로 문의 필요 ]
08:40~09:56 섬사랑7호 여객선을 타고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에 있는 청산도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리에 있는 여서도항으로 이동 (24.4km) [1시간16분 소요] [승선요금 : 8,800원]
09:56~10:00 여서도항 근방에 있는 승혜네 집으로 이동
10:00~10:50 승혜네 집 2층 방으로 입실하여 짐 정리 후 휴식
10:50~11:20 여서도 돌담마을을 탐방 후 승혜네 집으로 회귀
11:20~11:56 승혜네 집 1층 식당에서 점심식사 [식사 제공]
산 : 완도군 여서도 여호산(352m)
[한국의 이스터 섬, 여서도
2016년 10월 섬학교 <여서도 돌담 특집>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6.09.06. 22:26:34 최종수정 2017.11.01. 22:11:41
돌과 바람의 왕국, 한국의 이스터 섬, 여서도.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는 10월 1(토)∼2일(일), 제52강으로 완도 앞의 전설 같은 섬 여서도로 떠납니다. 완도에서는 하루에 한 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는 낙도라 심야인 10월 1일 0시에 서울을 출발해 여서도로 갑니다.
여서도는 한국에서 돌담이 가장 아름다운 섬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고 거대한 돌담들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마을의 집들은 가파른 비탈에 서 있고 그 반은 돌집입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초행의 나그네는 길을 잃고 헤맬 정도지요. 바람 때문에 밭들까지도 돌담을 쌓았는데 그래서 마을의 돌담들은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성곽 같습니다.
오로지 이 돌담 하나 보기 위해 여서도로 갑니다. 여호산 트레킹 길도 있지만 가을에는 뱀들이 지천이라 산에 오르기 위험합니다. 그러니 이번 여서도 길은 오로지 마을의 돌담을 거닐거나 낚시를 하거나 해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아무튼 최대한 한가롭게 지내다 올 예정입니다. 트레킹을 원하는 분은 이번에는 참아주세요 민박집이 작아 선착순 25명만 함께 합니다. 완도에서는 구계등 해변과 상록수림도 거닐다 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답사지인 <돌과 바람의 왕국, 여서도>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돌과 바람의 나라
완도항을 출항한 섬사랑3호는 청산면의 여러 섬들을 거처 여서도로 향한다. 여객선은 완도와 여서도 사이를 하루 한 번 왕래하는 정기선이지만 난바다의 드센 파도로 결항이 잦다. 떠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배다.
완도에서 여서도까지 직항로는 40여 킬로. 여객선은 쾌속선으로 50분 남짓이면 족할 거리를 세 시간에 걸쳐 항해한다. 여서도는 완도군의 200여 개 섬들 가운데서도 낙도다. 육지의 오지처럼 바다의 낙도를 가리는 지표는 거리가 아니라 접근성이다. 소모도와 대모도, 장도, 청산도 등의 기항지를 돌고 돌아 여서도에 입항한 배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서둘러 회항한다.
무엇일까. 나그네를 섬으로 데려온 것은. 돌집들, 민가의 담장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고 거대한 돌담들. 이 섬은 돌과 바람의 나라다. 오래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은 마치 사라진 잉카나 이스터 섬의 유적처럼 경이롭다. 이스터의 거석 문명은 붕괴했지만 여서도의 돌 문명은 현존한다. 돌들이 나그네를 섬으로 이끌었다. 이런 섬의 모습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마을의 집들은 가파른 비탈에 서 있고 그 반은 돌집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있어 나그네는 길을 잃기 쉽다. 이 나라 어느 마을, 어느 섬에서도 나그네는 저토록 장대한 돌담들을 보지 못했다. 궁궐의 담장도 이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다. 돌담들에 둘러쌓인 마을은 마치 거대한 성곽도시 같다. 작은 섬에 어째서 이토록 큰 요새가 필요했던 것일까. 왜구나 해적들도 사라진 바다에 막아야 할 어떤 적이 더 있는 것일까.
흩어져 있는 돌들을 불러모은 것은 누구일까. 바람이었을까. 바람의 침략 앞에 섬은 늘 불안한 것일까. 섬에서 해적보다 무서운 것이 바람이다. 바람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돌담을 저토록 높이 쌓았다. 돌담들은 거주 공간을 분리시켜 주는 동시에 하나로 굳건히 연결되어 섬을 보호한다. 높이 5미터가 넘는 돌담들은 아무리 큰 바람도 막아낼 수 있는 철옹성이다. 바람을 막아줄 무인도 하나 없이 큰 바다를 앞에 두고 산비탈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섬의 지형이 이런 주거문화를 만들어냈다.
여서도를 찾는 여행자는 희귀하다. 외부인은 대부분 낚시꾼이거나 공사장 인부들이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밭에도 돌담이 있다. 사람이 떠난 뒤 집을 허물고 밭을 만들었으나 돌담은 남겼다. 바람으로 인해 돌담은 소멸을 면했다. 바람은 자기 적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돌담이 없는 곳은 마대자루를 이어 붙여 바람막이를 했다. 고장 나 못쓰게 된 텔레비전조차도 담장으로 쓰였다.
“다 내빌고 가지라우”
북향한 섬마을, 겨울 해는 짧다. 어두워가는 골목,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 집 대문간에 연기가 자욱하다. 할머니는 마른 풀을 태워 아궁이 불을 지핀다. 금새 사그라드는 불길을 뒤쫓느라 손놀림이 바쁘다. 산에 나무가 울창해도 땔감을 하러갈 힘이 없어 장작불은 엄두도 못 낸다. 가마솥 안에는 소먹일 여물이 끓는다. 여서도의 소들은 소막에서 키워지거나 산에 방목된다.
"아저씨는 자망하고, 나는 소 키고. 나가 핵교도 안 댕기고, 암 것도 몰라라우."
노부부가 할아버지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할머니는 소를 키우며 산다.
"시킨 일만 하고 부모네 밑에서 살아나서 나는 참말 암 것도 몰라라우. 말도 배와야 하제. 할지도 몰라라우. 우리 애들은 고생도 징하게 했고. 씨어머니, 씨어머니 모시고 삼시로 애들 겔친디 한 번도 못 가봤어라우. 밥 한 끼 못해 줬어라우."
시어머니 모시고 외딴 섬에 사느라 뭍에 나가 공부하는 자식들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던 것이 할머니의 평생 한으로 남았다.
"딸 다섯, 아들 둘인디, 다들 잘 사는디 큰 아들만 학굘 댕기다 말아서 군산에서 배하고 산다우. 저는 배 안타면 좋겠다고 합디다마는 지가 공부 안 했는디 인자 후회하면 머 하꺼시오. 안산서는 딸 하나가 산디, 노화도 사람하고 살어라우. 노화 대당리."
낯선 말소리에 할아버지가 뒤 안에서 나온다.
"요새는 당최 도미가 안와요. 전에는 감생이(감성돔)도 많이 들었는데. 아주 안와. 고기 잡으면 완도까지 싣고 가서 경매 하는디, 우리 배로 왔다갔다 하면 세 시간, 딸뿍딸뿍 하면 세 시간 반이 걸리고. 아주 숨이 왔다갔다 하지라우."
풍랑이라도 거센 날이면 물고기를 싣고 완도까지 내왕 하는 뱃길이 저승의 문턱처럼 위태롭기도 하다. 예전에는 제주 해녀들도 많이들 물질하러 왔었다. 그래서 '제주 처녀 여서도 들어가면 애 배야 나온다'는 말도 생겼다. 할머니는 그 시절이 꿈속 같다.
"물질은 제주서도 오고 여그 사람도 하고 그랬어라. 그때가 사람 사는 것 같았지라우. 그래도 제주서 들어와 산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어라우. 큰 제주 작은 제주가 살았었는디 지금은 모다 돌아가셨지라."
큰 제주는 먼저 시집와 산 사람이고 작은 제주는 나중에 시집온 사람이었다. 외딴 섬이지만 여서도는 지금보다 옛날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어장에 고기가 말라 이제 더 이상 외지 배들이 오지 않는다. 완도의 다른 섬들과는 달리 바람막이가 없는 난바다의 섬인지라 바다 양식도 여의치 않다. 그러니 섬에 들어와 살려는 젊은 사람도 없다. 섬은 적막하고 섬은 아주 늙어버렸다.
요즈음은 섬의 장례 풍습도 바뀌었다. 사람이 죽어도 산이 아니라 완도로 간다. 메고 가 묻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죽어도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하게 된 사람들. 나이 들고 병들어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는 노인들은 자식들을 찾아 뭍으로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생애와 하직한다.
"다 내빌고 가지라우. 몸만 가제. 아깐 집조차, 밭조차 다 내빌고 가제라우."
다 버릴 수 있다는 장담은 쉽지만 실상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가진 것 모두를 버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은 뒤에는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어코 손에 쥐고 죽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여서도의 노인들은 살아서 모두를 버린다. 섬을 떠나는 것이 곧 삶을 떠나는 것이니 가능한 일이다.
"어더지요. 어서 가씨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민박집으로 돌아가라고 할머니는 등을 떠민다.
바람이 묻어온 이야기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유적이 출토되었을 정도로 이 섬의 사람살이 역사는 길다. 하지만 근세에 사람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경이다. 그때 처음 먼 바다를 건너 섬에 정착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갈 곳 없어 숨어들어온 외딴 섬. 섬이 숨어 살 만하다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은 열흘도 못 갔을 것이다. 섬은 숨어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다. 숨고 드러냄은 선택이지만 갇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옛날 이 난바다의 섬에서 바다를 건너는 일은 곧 생사를 건너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 때문일까 뭍에서 먼 섬일수록 사람들의 세계관은 숙명적이다.
여서도는 완도와 제주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직선으로 가면 제주도 조천이 40여 킬로 거리다. 여수의 거문도까지는 30킬로, 완도나 제주보다 가깝지만 서로 왕래하지 않는 두 섬은 전혀 다른 세계의 섬들이다. 옛날에는 여서도를 ‘작은 제주’라 했었다. 거리도 가깝고 풍토도 비슷했던 까닭이다. 여서도의 정정석 이장은 오랫동안 마을 이장을 했던 선친을 옆에서 지켜본 탓에 60, 70년대 여서도의 생활상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선친이 여서도 이장을 할 때는 이장을 보좌하던 이 서기까지 있었다. 그는 80년대에 완도로 이주했다가 5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서도는 여서리 200-1번지에서 시작되어 500번지에서 끝난다. 한때 이 작은 섬에 300가구까지 살았다는 증거다. 인구가 줄어 193세대였던 1968년도만 해도 여서국민학교의 학생수가 180명이나 됐다. 지금은 학생이 둘뿐이다. 옛날의 여서도는 제주와 육지의 중간 기착지였다. 여름에는 제주에서 수박이나 과일들을 싣고 가던 풍선(風船)들이 여서도에서 바람을 기다렸고 가을이면 전라도 강진에서 옹기를 싣고 온 풍선들이 바람을 기다렸다. 제주의 고기잡이배들도 많이 들락거렸다. 심지어 그 뗏목처럼 위태로운 테우(떼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와 자리돔을 잡아가는 제주 어부들도 있었다.
완도 본토가 완도군 섬사람들의 생활권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8년 완도대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완도 역시 섬이었고 대도시와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60~70년대 여서도 사람들은 완도로 나다니지 않았다. 여수가 생활권이었다. 어선들이 여수로 고기를 팔러 다녔고 여수에서 생필품을 사들여 왔다. 보길도와 소안도, 노화도 등 완도 '서삼면(西三面)' 사람들의 생활권 또한 완도가 아니라 목포였다. 섬사람들은 완도-목포간, 완도-여수간 정기여객선을 타고 여수나 목포로 나가야만 서울이나 부산으로 갈 수 있었다.
그때는 여서도 사람들이 지닌 동력선만 50여 척이 넘었다. 섬사람들은 잡아온 갈치나 고등어를 '염장질' 해서 경상도 충무와 삼천포까지 팔러 다녔다. 멸치는 젓갈을 담아 강진 사초리나 장흥 삼신포 등에 내다 팔았다. 귀항 길에는 지붕 이을 볏짚과 쌀, 보리 등 겨울 날 곡식을 사왔다. 봄보리 나올 때까지는 그 식량으로 버텨야 했다. 여름에서 가을 사이 갈치 낚시철이면 뭍의 장사꾼들이 장비를 직접 가지고 들어와 빵이랑 엿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박물장사들은 생필품을 들여와 생선과 물물교환 해 갔다. 인천의 배들까지 갈치잡이를 오곤 했다.
섬사람들에게는 바다 일 못지않게 농사도 큰 일이었다. 작은 섬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살았으니 산밭을 개간하여 곡식 거두는 일에 필사적이었다. 농사철이 지나면 섬사람들은 약초를 캐다 약초수집상들에게 팔았다. 이장은 오래된 사진들을 꺼내서 보여준다. 사진 속의 여서도에는 집들이 빼곡하다. 이제 막 혼례를 치른 신혼부부의 모습이 어제 같다. 이장은 여서도의 역사를 증거해 줄 자료집이라도 만들어 후세에 남길 생각이라 한다.
섬은 산이다!
여서도의 주산은 여호산(352m)이다. 섬 전체가 여호산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마을은 여호산 산자락에 기대 자리잡았다. 여호산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섬을 한 바퀴 일주할 수 있다. 산정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작은 섬의 산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산길을 걷고 싶은 사람은 단단한 채비를 차려야 한다. 산정에 오르니 소모도, 대모도, 청산도, 소안도 등 완도의 섬들이 아스라하다. 구름에 쌓여 오늘은 제주도가 보이지 않지만 맑은 날에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여호산 산정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정상에서 하산길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려 kt중계탑 부근에서 길을 찾았다. 당산숲 방향으로 하산을 하다가 해양사의 중요한 유적 하나를 만났다. 여서도 요망대(瞭望臺)다. 돌담으로 쌓아 만든 요망대는 아름다운 돌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군사시설이다. 높은 곳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는 곳이 요망대인데 감시초소인 셈이다.
여서도 요망대는 조선조 말 대원군 시절 이양선의 출몰을 감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요망대는 둘레가 약 20m로 바깥 높이가 1.5m 정도인데 내부의 바닥에는 구들장이 놓여 있다. 추운 겨울 요망대를 지키는 봉군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다. 요망대 아래쪽에는 봉군들이 숙식하던 집터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요망대는 일제의 파수대 역할을 했다. 해방 직전까지도 섬 주민들이 봉군으로 차출되어 요망대 근무를 했고 서양 선박을 발견하면 지서의 일본인 순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요망대에서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여서도의 당산숲이 있다. 마을 윗당이다. 당숲의 경계는 돌담을 쌓아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했다. 거목들이 그늘을 드리운 당숲은 신령하기 그지없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섬사람들은 이 당숲을 신성하게 여기고 해마다 당제를 올린다.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사라져 버릴 것이 두렵고
돌담길을 따라 동쪽 능선을 오른다. 이 섬도 위성 안테나 덕분에 텔레비전 시청이 편리해 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여전히 구형 안테나를 장대에 매달았다. 바람을 피해 여러 가닥의 끈으로 안테나를 붙들어 두었으나 위태롭다. 안간힘을 써도 안테나가 잡을 수 있는 전파란 기껏 한두 개다. 이 길목에는 사람의 집보다 밭이 더 많다. 많은 집들이 폐가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돌담길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낯설고 신비롭다. 현세가 아니라 과거의 어느 시간 속을 걷는 듯하다. 당숲을 지나 마을 서쪽 길로 접어드니 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에는 돌다리와 돌우물이 온전하다. 뭍에서라면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의 집들을 가르는 경계는 돌담이지만 그 돌담은 또한 이웃과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돌담 중간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물건을 주고받고 소식을 나누던 생활의 통로다. 저 통로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바람은 통로를 지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묻어갔을까. 돌담들이 없이도 이 섬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돌들은 섬의 수호신인 동시에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내연화력발전소를 지나 섬의 서북쪽 산정에 있는 등대로 간다. 무덤들, 산속 유택들의 경계를 가르는 것도 돌담이다. 돌담과 함께 이 섬을 지켜온 또 다른 공로자는 방풍림을 이룬 상록수들이다. 길 가의 동백나무 노거수 한 그루는 이제껏 나그네가 본 동백나무 중 가장 크다. 동백나무는 야물고 단단해서 성장 속도가 아주 느리다. 어른 두 사람이 둘러도 다 못 품어안을 저 정도의 크기라면 5백년이 아니라 천년은 족히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나무들은 섬사람들을 지켜주었으니 이제 사람이 나무들을 보호해야 할 차례다.
동백나무뿐이겠는가. 섬 전부를 천연기념물이나 문화재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그네는 두렵다. 이 섬의 보물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버릴 것이 또한 두렵다. 그러나 끝끝내 숨길 수 없고 숨긴다고 보전되는 것이 아니라면 드러내서 모두가 함께 지킬 방도를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섬 자체가 문화재인 이런 섬은 자치단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보호관리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주민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섬의 문화유산 보존이 주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비전만 있다면 반대할 주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산정에 오르니 멀리 소모도, 대모도, 청산도, 소안도 등 완도의 섬들이 아스라하다. 가깝고도 먼 것이 섬들 간의 관계다. 바로 붙어있는 듯이 보이는 저 섬들의 삶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섬들은 제각각 육지만을 지향하는 까닭이다. 등대로 가는 길목에서 '고래' 한 마리를 만난다. 바위는 금방 바다 속을 헤엄치다 숨 쉬기 위해 솟아오른 고래 같다. 고래바위라 이름 붙여준다. 고래는 실눈을 뜨고 입을 벌려 깊은 호흡을 한다. 나그네도 막혔던 숨통이 비로소 트인다.
여서도 앞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태양광으로 작동되는 무인등대다. 등대를 둘러싼 쇠울타리가 통째로 기울어져 있다. 바람의 힘이 얼마나 거셌던 것일까. 건너편 산은 정상까지 밭이다. 지금은 모두 휴경중이지만 비탈밭은 섬살이의 고단함을 증거해 주는 귀중한 사료다. 비탈 같은 삶이 섬뿐일까. 삶의 비탈은 세상의 도처에 널려있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잠잠해진다. 내일은 다시 배가 뜰 것이다. 이제 나그네는 섬을 떠나 또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어디를 가든 사람은 결코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산행코스: [ 승혜네 집~무인등대 왕복~사형제바위~여호산 정상 표지목~봉화대~전망대 쉼터~우물~승혜네 집 ] (약 5km)
일시 : 2024년03월02일(토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2024년03월02일(토요일) 전남 완도군 청산면 최저기온 영하 2도C, 최고기온 7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2시간47분 소요)
* 11:56~12:15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의 여서도항 근방에 있는 승혜네 집에서 산행 출발하여 무인 등대로 이동 [등대에서 청산도가 조망된다.]
* 12:15~12:20 사진촬영
* 12:20~13:12 사형제 바위를 거쳐서 여호산(余湖山) 정상이라는 표지목이 있는 곳으로 이동
* 13:12~13:25 사진촬영 후 휴식
[여호산 정상임을 표시한 표지목이 있지만, 이 곳보다 봉화대가 6m 더 높은 최고봉이다.]
* 13:25~13:36 여서도 여호산의 최고지점인 봉화대(352m)로 이동 [봉화대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이 여서도의 최고봉인 요망대(瞭望臺)이다.]
[여서도 요망대는 조선조 말 대원군 시절 이양선의 출몰을 감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요망대는 둘레가 약 20m로 바깥 높이가 1.5m 정도인데 내부의 바닥에는 구들장이 놓여 있다. 추운 겨울 요망대를 지키는 봉군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다. 요망대 아래쪽에는 봉군들이 숙식하던 집터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요망대는 일제의 파수대 역할을 했다. 해방 직전까지도 섬 주민들이 봉군으로 차출되어 요망대 근무를 했고 서양 선박을 발견하면 지서의 일본인 순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 13:36~13:45 사진촬영
[봉화대에서 남서쪽으로 제주도가, 남쪽으로 우도가, 남동쪽으로 남해가, 동쪽으로 거문도가, 동북쪽으로 여수 초도가, 북쪽으로 청산도가, 북서쪽으로 소안도가, 서쪽으로 사수도와 추자도가 조망할 수 있다.]
* 13:45~14:16 전망대 쉼터로 이동
* 14:16~14:29 간식 후 휴식
* 14:29~14:39 우물로 이동
* 14:39~14:43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의 여서도항 근방에 있는 승혜네 집으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14:43~18:00 승혜네 집 2층 방으로 입실하여 세면 후 낮잠
18:00~18:50 승혜네 집 1층 식당에서 저녁식사 [식사 제공]
[2024년03월02일(토요일) 완도군 청산면 일몰시각 : 18시30분]
18:50~22:00 승혜네 집 2층 방으로 돌아와서 샤워 후 TV를 보면서 휴식
22:00~ 승혜네 집 2층 방에서 취침
2024년03월03일(일요일) 여행기
05:30~06:00 승혜네 집 2층 방에서 기상하여 세면 후 짐 정리
06:00~06:30 승혜네 집 1층 식당에서 아침식사
06:30~06:34 여서도항으로 이동
06:34~06:58 여서도항에서 청산도항으로 가는 섬사랑7호 여객선에 승선하여 출발 대기 (신분증 준비)
06:58~08:21 섬사랑7호 여객선을 타고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리에 있는 여서도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에 있는 청산도항으로 이동 (24.4km) [1시간23분 소요] [여객선 승선요금 : 8,800원]
[2024년03월03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일출시각 : 7시]
[청산도의 관문인 청산도항(도청항)부터 선창(부둣가)를 따라 걷는 미항길은 관광객, 상인, 주민, 청산도 농특산물이 한데 모이는 길로 바닷가 삶의 활기가 넘치는 길이다. 청산도항(도청항)의 대표적인 풍경인 빨강색과 하얀색 등대를 지나 청산도항(도청항)에 내리게 되면 방문자센터가 있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2011년 새롭게 리모델링 되었으며 승선권 구매 및 관광안내를 받을 수 있고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청산도 어판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08:21~08:52 청산도항에 있는 갯마을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식사 (아침식사 제공)
탐방지 : 완도군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봄의 왈츠 촬영지&목섬(항도) 새목아지&신흥리 풀등해변&노적도 일출전망대&진산 갯돌해변&국화리 포구&지리 청송해변]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하는 섬이다. 물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하여 청산도라 한다. 완도 남동쪽 17.5㎞ 지점에 있으며, 서쪽에 대모도(大茅島), 동쪽에 황제도(皇帝島), 남쪽에 여서도(麗瑞島)가 있다. 왜구 등의 침입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다가 효종 때 입도(入島)하여 1866년(고종 3)에 진이 설치되었고, 1895년에 진이 폐지되어 1896년 완도군에 속하게 되었다. 매년 음력 1월 15일에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훈련장을 기념하기 위해 바위와 나무에 음식을 차리고 마을의 경사나 군에 입영한 자식의 무사를 비는 신앙제가 행하여지고 있다. 주요 농작물로는 쌀·보리·고구마·콩·마늘·참깨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삼치·멸치·도미·민어·갈치·쥐치·장어·문어·낙지 등이 어획되며 굴·미역·조개 양식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김장용 멸치젓과 김 양식이 유명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날씨가 따뜻하여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탐방코스: [ 청산도항에 있는 갯마을식당~(1.5km)~서편제 촬영지~(268m)~봄의 왈츠 촬영지~(0.5km)~당리 버스 정류장~(4.5km를 청산도 공영버스로 이동)~항도 입구 버스 정류장~(2.3km)~목섬 삼거리~(0.4km)~목섬 새목아지~(0.4km)~목섬 삼거리~(2.3km)~항도 입구 버스 정류장~(0.2km)~신흥리 풀등해변~(2.0km)~노적도 일출전망대~(0.7km)~진산 갯돌해변~(2.3km)~국화리 포구~(3.4km)~지리 청송해변~(1.6km)~도청리 뒷등길~(0.4km)~도청항 ] (총 22.8km 중 4.5km를 버스로 이동하고 18.3km를 도보로 이동)
탐방일 : 2024년03월03일(일요일)
날씨 : 구름이 낀 날씨 [완도군 청산면 : 최저기온 4도C, 최고기온 12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9분 소요)
08:52~09:15 청산도항(도청항)에 있는 갯마을식당에서 탐방 출발하여 청산도 슬로길 1코스를 거쳐서 전남 완도군 청산면 당락리에 있는 서편제 촬영지로 이동
[청산도 슬로길 1코스 미항길+동구정길+서편제길+화랑포길 (거리 : 5.71km / 소요시간 : 90분)
미항길
도청항방문자센터220m도청리쉼터300m갤러리150m도락리안길
청산도의 관문인 도청항부터 선창(부둣가)를 따라 걷는 미항길은 관광객, 상인, 주민, 청산도 농특산물이 한데 모이는 길로 바닷가 삶의 활기가 넘치는 길이다.
도청항의 대표적인 풍경인 빨간색과 하얀색 등대를 지나 도청항에 내리게 되면 도청항 방문자센터가 있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2011년 새롭게 리모델링 되었으며 승선권 구매 및 관광안내를 받을 수 있고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청산도 어판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미항길을 걷다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 복지회관 앞을 지나면 된다. 이 앞에 1코스 안내판과 청산완보 스탬프가 있다.
1코스 안내판에서 청산완보 스탬프를 찍으신 후 느림의 종 타종으로 슬로길 걷기를 힘차게 시작해보자.
복지회관을 지나 푸른 바다가 동무처럼 따라 부는 길에 청산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삶을 주제로 한 사진 갤러리가 조성되어 있다.
비록 도심 속 전시관처럼 멋스럽지 않지만 바다냄새, 마을냄새,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동구정길
도락리안길400m동구청310m도락노송길410m당리입구(서편제촬영지)
도락리에 있는 동구정이란 오래된 우물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길로 동구정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항상 같은 수위를 유지한다하여 신비의 우물이라고도 불린다.
도락리 안길 속 아트 갤러리(2011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장관상 수상)을 지나 동구정에 다다르게 된다. 동구정은 도락리에 있는 마을 우물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항상 같은 수위를 유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만남의 장소로 이웃 간의 소식과 정보를 알 수 있었던 우물가는 현재 도보 여행자의 갈증을 풀어주는 휴식처가 되었다.
도락리 해변을 따라 서 있는 나무는 얼핏 보면 소나무와 똑같이 생겼지만 바닷가에서 자라는 곰솔이다.
땅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지대에 청산도 사람들은 이렇듯 곰솔을 심어 방품림을 조성하고 농사를 지었고 오랜 세월 묵묵히 바람을 견디며 청산도 사람들의 터전을 지켜준 고마운 나무이다.
이 길을 올라오면 서편제 주차장에 들어서게 된다.
서편제길
당리입구(서편제 촬영지)420m봄의왈츠 드라마세트장
한국영화 최초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의 명장면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부한 돌담길을 걷는 장면이 촬영된 길이다.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길에 수놓아지면 언덕 위에는 드라마 봄의왈츠 세트장이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해안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나타난다. 이 길에서 서편제 주인공 유봉과 송화, 동호 세 사람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내려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5분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정자쉼터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당리 부녀회에서 직접 만든 전과 막걸리를 판매하는 서편제 주막이 있다.
또한 신발 조형물과 풍경사진관도 설치되어 있다.
당리마을 언덕은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된 곳으로 세트장으로 사용된 언덕 위의 하얀 집이 자리잡고 있다.
세트장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와 초록 보리가 어우러진 그림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락마을 전경 또한 일품으로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 주인공 김선아와 이동욱이
자전거 데이트와 캠핑 등 멋진 로맨스 장면을 연출했다.
봄의 왈츠 세트장 뒤 조개공예품판매장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아름다운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조개공예체험도 진행되니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만나는 자연의 선물을 체험해보자.
화랑포길
봄의왈츠 드라마 세트장1,370m화랑포갯돌밭입구(삼거리)2,130m연애바위 입구
화랑포에서 새땅끝을 연결하는 길로 먼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양이 꽃과 같다하여 꽃 화, 파도 랑자를 써서 화랑포라 부른다.
파도가 이는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화랑포(花浪浦)에는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카메라도 좋고 두 눈도 좋다. 이 곳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가득 안고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슬로길 1코스 마지막 지점인 화랑포에는 잠시 걸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푸른 바다와 하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답답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유를 느낄 수 있다.]
09:15~09:18 서편제 촬영지를 사진촬영
[청산도항에서 당리 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서편제는 우리나라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남도 이곳저곳에서 촬영되었지만 이곳이 유독 유명한 이유는 유봉일가가 당리의 황톳길을 내려오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5분 30초에 걸친 롱테이크가 촬영된 곳이었는데, 원래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임권택감독이 이 장소가 너무 좋아서 시나리오를 바꿨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돌담이 매력적인 이곳은 4월 중순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고 9월 하순에서 10월 초면 코스모스가 돌담사이로 피어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노란 유채꽃밭 황톳길 옆에는 송화가 소리공부를 하던 초가가 복원되어 있다.
서편제 쉼터 주막 앞마당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어 막걸리를 마시면서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09:18~09:20 전남 완도군 청산면 청산로 136 번지에 있는 봄의 왈츠 촬영지로 이동
09:20~09:23 봄의 왈츠 촬영지를 사진촬영
[청산도에서는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 되었다.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 드라마 ''봄의 왈츠''는 겨울연가, 여름향기, 가을동화에 이른 계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청산도가 배경이 된 이 드라마는 노란 유채꽃과 청보리밭 그리고 돌담길이 어울린 장면들이 주가 되었다. 당리에는 봄의 왈츠 촬영지로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콘셉트로 지어진 유럽풍의 이층집 오픈세트장이 있다. 오픈세트장 안은 관람이 가능하며 거실, 주방, 침실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드라마 속 모습 그대로 잘 관리 되어 있다. 그 밖에 주변에는 읍리~청계리 들녘(유채밭, 보리밭), 지리해수욕장 남자주인공집, 읍리 청용공원 등이 있다.]
09:23~09:29 당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09:29~09:31 당리 버스 정류장에서 항도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청산도 공영 버스 승차 대기
[청산도 공영버스가 도청항(청산항)에서 신흥해변까지 하루 9번 운행한다.]
09:31~09:43 청산도 공영 버스를 타고 당리 버스 정류장에서 항도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12분 소요]
09:43~10:14 청산도 슬로길 7코스 들국화길(신흥리 풀등해변~새목아지)을 따라서 목섬 삼거리로 이동
[청산도 슬로길 7코스 돌담길+들국화길 (거리 : 6.21km / 소요시간 : 136분)
돌담길
상서돌담마을~(100m)~돌담길/소막~(670m)~동촌길돌담길~(410m)~동촌리할머니나무~(220m)~1박2일촬영지~(200m)~신흥리풀등해변 정자쉼터
상서리와 동촌리를 지나는 길로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만 돌려도 한가득 들어오는 것이 청산도 돌담이지만 이 곳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된 돌담을 만날 수 있다.(슬로푸드를 즐기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쉼터와 돌담찻집이 운영되고 있다)
바람이 많은 섬 지방의 특성 때문에 청산도 슬로길을 걷다보면 돌담이 둘러친 집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상서리는 마을 전체가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층층히 쌓아올린 돌담은 소박하게 지어진 농가와 조화를 이루고 마을 입구에 슬로푸드를 즐길 수 있는 슬로쉼터가 있다.
포근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서마을 옛 담장은 2006년 등록문화재 제279호, 2010년 환경부 자연생태우수마을, 2011년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되었다.
돌이 흔한 청산도는 소 우리(소막)까지 돌로 만들어졌다. 상서리 돌담길을 천천히 걸으며 돌담이 속삭이는 이야기와 순한 눈망울의 미소(牛)를 만날 수 있다.
주의사항 : 소를 놀라게 하지 말기, 소에게 먹이주지 말기, 마을 주민들에게 정답게 인사 건네기, 마을 농산물을 탐하지 않기, 쓰레기는 챙겨가기
상서리 돌담마을을 걷다보면 시원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돌담찻집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에서 지친 다리를 쉬며 쉼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돌담은 청계리, 원동리, 상서리, 동촌리까지 이어지는데 같은 돌담이지만 마을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오랜 세월 마을을 안고 있었던 돌담이 어느새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람을 닮아 따뜻한 체온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닐런지...
마을마다 각기 다른 돌담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걸어보자. 동촌리 돌담길을 따라 오면 풀등이 내려다보인다.
(동촌리 할머니 나무 밑에는 청산도 슬로우걷기 축제기간 동안 슬로장터가 운영된다.)
들국화길
신흥리풀등해변 정자쉼터~(630m)~국화길 해변공원~(180m)~상서 돌담마을~(440m)~목섬(항도) 연도제주차장~(400m)~목섬 삼거리~(1100m)~목섬 새목아지~(1860m)~목섬(항도) 연도제주차장~(1860m)~신흥리 풀등해변
신흥리에서 항도까지 주변 갓길이 들국화로 조성되어 있어 들국화길이라 부른다. 특히 항도로 가는 길은 청산도 비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들국화길은 또 다른 섬, 항도로 향하는 길이다. 청산도 사람들은 목섬이라고도 부르는데 가을이면 주변 갓길로 들국화가 조성되어 있어 들국화길이라 부른다.
목섬으로 들어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 계속 걸어가보자.
목섬은 아주 작은 섬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어 태고적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청산도의 숨겨진 보물섬이다.
목섬삼거리에서 400m를 더 가면 목섬새끝까지 갈 수 있다. 산길이 비교적 좁아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지만 목섬(항도)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이후 목섬새목아지 반환점에서 돌아서 나오다 목섬 삼거리에서 내려가는 다른 슬로길을 선택하면 연도제주차장으로 나오게 된다.
목섬(항도)연도제주차장에서 들국화길을 다시 걸어가면 신흥리 풀등해변에 도착하게 된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에서 갖가지 조개와 바지락을 채취하는 청산도 주민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14~10:23 청산도 슬로길 7코스 들국화길(신흥리 풀등해변~새목아지)을 따라서 청산도의 동쪽 끝 지점인 목섬 새목아지로 이동
[새목아지에서 서북쪽으로 노적도와 그 뒤로 다량산이, 북쪽으로 신지도와 약산도가, 북동쪽으로 생일도와 평일도와 덕우도와 매물도가, 동쪽으로 황제도와 그 뒤로 여수의 초도가, 동남쪽으로 여수의 거문도가, 남쪽으로 완도군 최남단 섬인 여서도와 그 뒤로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
[신흥리에서 1차선 해변도로를 따라 1㎞쯤 걸어가면 외딴 섬 목섬 앞에 선다. 목섬과 청산도를 연결한 제방이 설치돼 있어 물때와 관계없이 드나들 수 있다.
목섬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가린 숲길을 걸을 수 있다. 목섬은 슬로길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통행이 없어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해 온 청산도의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섬 전체가 숲으로 덮여 있는 목섬은 동쪽 끄트머리에 천하절경을 이룬 ‘새목아지’라 불리는 기암괴석이 신비로운 풍경을 선물해준다.
동쪽으로 뻗어나간 기암괴석의 모습은 마치 새의 긴 목 같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새목아지가 바다로 날아가는 새처럼 느껴진다. 새목아지에 서 있으니 멀리 생일도 평일도, 덕우도, 형제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손짓한다. 바다 위를 맴도는 갈매기가 자유를 만끽한다.]
[목섬에는 섬을 순환하는 산책로가 있다. 한 바퀴 도는 거리는 약 1.9km이고, 소요시간은 40분.]
10:23~10:26 목섬(항도) 새목아지에서 주위 풍경을 사진촬영
[새목아지에서 북쪽으로는 신지도와 약산도를, 북동쪽으로는 생일도와 평일도와 덕우도를 동쪽으로는 황제도와 그 뒤로 여수 초도를, 동남쪽으로는 여수 거문도를, 남쪽으로는 여서도와 그 뒤로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다.]
[청산8경 중 제 1 경이 項島歸帆(항도귀범 : 돛단배가 일몰 직전에 고기를 잡아 항도로 돌아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항도의 순우리말 표현이 목섬이다.]
10:26~10:34 목섬 삼거리로 회귀
10:34~11:03 항도 입구 버스 정류장으로 회귀
11:03~11:07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의 시점인 신흥리 풀등해변으로 이동
[신흥해수욕장은 지리청송해변과 함께 청산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손을 담그면 금세 파랗게 물들어버릴 것 같은 쪽빛바다를 자랑한다. 신흥해수욕장은 지리청송해변과는 청산도 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사장이 매우 넓은 해수욕장으로, 지리청송해변에 비해 편의 시설이나, 방풍림은 적으나 물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주변 바다가 전부 낚시터이다.
썰물 때면 2km에 달하는 모래사장이 모래섬이 되고 물이 차면 마을 앞까지 물이 차는 자연의 신비를 감상할 수 있다. 간조시 드러나는 수만 평의 은빛 모래사장에서 가족이나 연인끼리 백사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조개잡이는 또 다른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이곳에서 슬로길 7코스, 들국화길을 이용하여 목섬(항도)까지 갈 수 있는데 목도까지 가는 길은 청산도 비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가을이면 신흥리에서 항도까지 주변 갓길이 들국화로 조성되어 있어 들국화길이라 부른다.]
11:07~11:37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신흥 해변~국산리 정골꼬랑)을 따라서 노적도 일출전망대로 이동
[노적도 일출전망대에서 다량산(194.5m)과 그 앞의 섬인 노적도와 청산도 동쪽의 섬들인 생일도, 평일도, 덕우도, 매물도, 황제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 (거리 : 4.1km / 소요시간 : 77분)
신흥리 풀등해변~(750m)~성산포 보리마당~(1000m)~노적도 일출전망대~(700m)~진산리 갯돌해변~(570m)~진산천~(1080m)~정골꼬랑(상수원입구)
청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를 맞이할 수 있는 목섬, 신흥리, 상산포, 진산리를 잇는 길로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이다.
8코스는 신흥리 풀등해변에서 시작되고 왼쪽으로 가면 해맞이길이 나온다.
군도를 따라 걷다 보면 노적도 일출전망대가 나타난다. 노적도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일출 광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이외에 주변 경관 또한 뛰어나 포토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다. 굳이 일출이 아니더라도 보배로운 햇살에 뒤척이는 푸른 바다는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침 햇볕을 처음 볼 수 있는 광명의 보배로움을 지니고 있다 하여 진산리(疹山里)로 부르게 되었다. 진산리 갯돌해변은 둥글둥글한 갯돌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오랜 세월 구르고 구르며 모서리가 닳아버린 갯돌은 모래사장과는 또 다른 파도소리로 귀를 즐겁게 한다.
갯돌 위를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제법 아린 것이 지압하기 좋고 해맞이길에 위치한 진산리 갯돌해변은 청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진산리 마늘밭을 지나면 정골꼬랑이라 부르는 상수원 입구에 도착한다.]
11:37~11:44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신흥 해변~국산리 정골꼬랑)을 따라서 진산 갯돌해변으로 이동
[진산 갯돌해변에서 동쪽으로는 노적도와 매물도와 황제도를, 동남쪽으로는 목섬을 조망할 수 있다.]
[진산 갯돌해변도 일출 명소이다.]
11:44~12:11 청산도 슬로길 8코스 해맞이길(신흥 해변~국산리 정골꼬랑)을 따라서 청산도 술로길 9코스 단풍길의 시점인 정골꼬랑으로 이동
12:11~13:10 청산도 슬로길 9코스 단풍길(국산리 정골꼬랑~지리 청송해변)을 따라서 청산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국화리 포구를 거쳐서 청산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청산도 슬로길 10코스 노을길의 시점인 지리 청송해변으로 이동
[국화리 포구에서 북서쪽으로는 완도와 그 뒤로 해남의 두륜산을, 북쪽으로는 신지도와 약산도의 삼문산을 조망할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 9코스 단풍길 (거리 : 3.21km / 소요시간 : 55분)
정골꼬랑(상수원입구)~(750m)~국화리입구~(460m)~오천기미입구~(1070m)~진짝지입구~(930m)~지리청송해변입구
진산리에서 지리까지 단풍나무와 함께 걸을 수 있어 단풍길이라 한다.
아름다운 단풍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선명한 색의 대비에 눈을 떼지 못하는 길이다.
9코스 시작점에 안내판과 청산완보 스탬프가 있다. 육지의 단풍이 질 무렵, 청산도에는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다.
미처 단풍놀이를 즐기지 못했다면 청산도로 단풍여행을 떠나보자. 멀리 단풍을 찾아온 만큼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 충분히 깊고 아름다운 단풍색을 감상할 수 있다.
뒤를 돌아보면 푸른 바다와 붉은 단풍의 선명한 대비를 느낄 수 있다.
군도로 이용되는 길이니 차에 유의해주시기 바라며 물이 아닌 섬에서 그것도 푸른 나무들이 많은 청산도에서 단풍을 만난다는 건, 이 길이 주는 행운과도 같은 선물이다.]
[지리 청송해변에서 남서쪽으로는 지초도와 그 뒤로 소안도를, 서쪽으로는 대모도를, 북서쪽으로는 소모도와 장도와 그 뒤로 완도를 조망할 수 있다.]
[지리 해수욕장은 2km의 은빛 백사장과 20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을 갖춘 청산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이다.]
13:10~13:45 청산도 슬로길 10코스 노을길(지리 청송해변~도청리 뒷등길)을 따라서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미로길의 시점인 도청리 뒷등길로 이동
[청산도 슬로길 10코스 노을길 (거리 : 2.67km / 소요시간 : 51분)
지리청송해변입구~(520m)~지리청송해변~(1270m)~고래지미~(400m)~도청들녘~(480m)~도청리뒷등길
노을길은 섬의 서쪽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걷기에 청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노을의 검붉은 농담이 푸른 바다로 흘러내리는 장면이 장관을 연출한다.
10코스 시작길 지리청송해변 입구에 안내판과 청산완보 스탬프가 있으며 지리마을은 전복양식으로 유명하며 논농사와 밭농사를 겸하고 있다.
지리 청송해변은 수심이 완만하고 앞으로 폭 100m, 길이 1.2km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200년 이상된 해송이 시원한 그늘을 만드어주어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은 청산도의 대표적인 일몰 포인트이다. 자연이 만들어준 붉은 조명에 그저 감탄하게 되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슬로길을 걷다보면 청산도 고유의 장례문화인 초분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짚,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방식이다. 솔가지가 꽂혀있는 건 가족이 방문했다는 뜻이다. 죽음조차 느리게 흘러가는 초분을 보며 생에 대해 잠시 사색해보는 것도 길이 주는 또다른 선물이다.
지리청송해변과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 숲길로 들어서면 더 광활한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나타나는데 일명 고래지미 포인트이다.
일몰에 역광으로 비쳐지는 섬 모양이 고래 같다 하여 고래지미라 부르며 청산도 주요 일몰 포인트인 지리청송해변, 도청항과는 또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몰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노을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낮에는 해국, 머루, 마삭줄, 협죽도, 동백 등 청산도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생태를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13:45~14:01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미로길(도청리 뒷등길~도청항)을 따라서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에 있는 청산도항(도청항)으로 이동하여 청산도 슬로길 [1코스의 (서편제 촬영지&봄의 왈츠 촬영지)&7코스~11코스]의 탐방을 완료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미로길 (거리 : 1.2km / 소요시간 : 21분)
도청리뒷등길~(200m)~사장개~(500m)~청산지역아동센터~(120m)~안통길~(130m)~향토역사문화전시관~(250m)~도청항방문자센터
청산중학교에서 도청항까지 이르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길을 찾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소소한 일상까지 만날 수 있다.
또한, 청산 파시문화거리에서는 1930년~70년대 전국 3대 어시장으로 유명했던 청산도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11코스 미로길 시작점인 도청리 뒷등길은 등산로 1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2013 청산도 슬로우걷기 축제 때 그려진 벽화가 길을 안내해준다.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도청마을 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마을로 들어서면 슬로길을 나타내는 파란색 화살표가 사라진다.
이 길에서만큼은 잠시 길을 잃고 헤매보며 길 속에 스민 느림의 미학을 만나보자.
미로길을 걷다 보면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만날 수 있다. 2011 청산도 슬로우걷기 축제 때부터 2013년까지 총 13점의 작품이 그려졌으며 벽화 덕분에 미로길은 정말 미로(迷路) 속 미로(美路)가 되었다. 길 곳곳에 스며있는 벽화를 찾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로길을 빠져나와 도청항 뒷골목길로 들어서면 11코스의 끝인 안통길이 나타난다.
예부터 청산도는 흑산도, 거문도와 함께 전국 3대 어장 중 하나로 안통길은 청산도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이며 과거 193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번성했던 청산 파시의 옛 생활문화와 역사가 남아있다. 파시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시장으로 예부터 청산도는 고등어 파시와 삼치 파시가 유명했다. 안통길을 걸으며 청산이 간직하고 있는 파시의 기억과 이야기를 만나보자.
안통길에는 청산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는 향토역사문화전시관(구.면사무소)가 마련되었다.
일제 강점기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어 시대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2012 한국농어촌건축대전 대상 수상)
또한 2012 청산도 슬로우걷기 축제 때 느림카페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곳에는 받고 싶은 달을 선택할 수 있는 12개의 월(月)별 느림 우체통이 있다. (느림카페에서 엽서를 구입할 수 있다)
좁다란 골목길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부와 상인들의 피로를 풀어줬을 선술집과 요리집, 그들이 묵었던 여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을 다방 등 옛 안통길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청산 파시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걷는 길을 더욱 즐겁게 한다.]
14:01~14:05 청산도항에서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3길 11-3 1층에 있는 어부횟집으로 이동
14:05~14:36 어부횟집에서 소주 1병(5천원)을 반주로 전복뚝배기김국 정식(13,000원)으로 식사
14:36~14:40 청산도항으로 이동
14:40~15:00 청산도항에서 완도항으로 가는 청산 아일랜드호 여객선에 승선하여 출발 대기(신분증 준비)
15:00~15:54 청산 아일랜드호 여객선을 타고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에 있는 청산도항을 출발하여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번지에 있는 완도 연안여객선터미널로 이동 (20km) [54분 소요] [승선요금 : 7,000원]
15:54~16:01 완도항 앞에 있는 섬인 주도를 사진촬영 후 “좋은사람들” 버스로 이동하여 출발 대기
[벌채를 금한 성스러운 산,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주도
[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완도의 숲과 나무... 주도의 상록수림
오마이뉴스 기사 등록일 : 2023.10.20.
글 : 완도신문 유영인
완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보이며 발길을 잡는 섬이 있다. 완도항 앞 바다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주도이다.
예로부터 완도사람들은 이곳이 저울 추처럼 생겼다 하여 추섬(錘섬)이라 부르며 주도만조명월(珠島滿潮明月)을 완도팔경 중 제1경으로 꼽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론의 발달로 공중에서 바라본 섬의 모양이 하트처럼 생겼다 하여 사랑의 섬으로도 불리운다.
주도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난대식물의 보고로 인정받아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62년에는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이 재조사를 통하여 천연기념물 28호로 재지정한 난대수림의 보고이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완도항의 여의주(如意珠)로 완도읍의 동망산과 서망산이 청룡과 백호로 뻗었고, 공고지(空高地)와 객사등(客舍登), 비석산(飛石山) 등 다섯 마리의 용이 떠 받치는 오룡배주(五龍杯珠)형국으로 주도가 육지에서 흐르는 물을 막고 있어 완도읍의 경우 어디에 지하수를 개발하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주도 상록수림은 식생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난대림 천연기념물 중 그 모습이 가장 잘 유지·보존되고 있으며, 높이 25m, 1만7355㎡(약 5200평)의 척박하고 좁은 면적에 비해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난대림의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좋은 임상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에서 생성된 풍부한 유기물로 물고기 떼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목포대학교(책임교수 김철수)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 주도에는 124종의 식물이 서식하였으나 완도항을 준설하면서 남겨진 갯펄에 네 종류의 식물이 귀화하여 오늘날은 128종류의 목·초본류(木·草本類)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림을 형성하는 전체 나무 1700여본 중 대표적인 나무들은 구실잣밤나무(땟밤나무) 500여본, 감탕나무 400여본, 육박나무 110여본, 광나무 120여본, 황칠나무 60여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타 다정큼나무, 참식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소나무, 청가시덩굴, 인동덩굴, 고란초, 콩짜개 등이 있다.
원래 완도읍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할아버지 당과 할머니 당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당은 완도중학교 위 소나무 숲에 있었으나 사라호 태풍으로 사라지고, 주도는 할머니 당으로 신성시되어 숲이 잘 보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정상에는 당제를 모셨던 당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옛날, 이곳 섬의 중앙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었다. 작은 샘의 물은 영험한 기운이 있어 복통이 있거나 위장장애가 있을 때, 마시기만 해도 씻은 듯이 낫게 되어 주민들은 이곳 샘을 애지중지했다.
이곳 샘에서 크게 효험을 본 어떤 이는 샘에서 물을 퍼 올릴 수 있게끔, 은그릇 하나를 마련해 주었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은그릇으로는 오직 식수만을 뜰 때 사용해야 하는 불문율이 만들어져 대대로 내려오게 됐다.
주도는 예부터 벌채를 금해온 봉산(封山), 그래서 지금도 섬 중앙에는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해상의 나무 전시장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일제 때 일인들은 섬 꼭대기에 금북라(金北羅)라는 신사를 짓고 참배하도록 했으나 주민들이 신성한 이곳에 일본 왕을 찬양할 수 없다고 거부했던 이야기도 전한다.]
16:01~20:59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번지에 있는 완도 연안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432km) [4시간58분 소요]
여서도 지도
청산도 슬로길 11개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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