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종찬이가 11만원짜리 막걸리 이야기를 했지만
막걸리는 종류도 많고 술도가마다 또는 집집마다 술맛이 다르다.
예전에 촌에서는 집집마다 술을 담아(궈)먹었다.
아부지가 논을 멜때 중참으로 술빵 한 조각과 술독에 퍼낸 원주를 물을 타서 체에 걸러
양은 주전자에 부어 심부름으로 들고 가면서 주전자 주둥아에 입을 대고 빨아 먹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술 담그는 솜씨가 좋았다.
밀을 찧어 반죽을 해 누룩을 잘 띄워 놓았다가 쌀로 고두밥을 쪄서 밥알이 꼬들꼬들할 때
누룩가루와 잘 섞어서 술독에 넣고 미지근한 물올 부은 다음에 이스트(술약) 한 봉지를 털어 넣고는
방 안 구돌막에 이불을 덮어 씌워 놓으면 한 이틀 지나면 술독에서 뽀글뽀글 술이 괴기 시작한다.
이 때 숟가락으로 한 숟갈 떠럿 맛을 보면 약간 달짝지근하다.
지난 19일에 코스트코에 갔다. 집에 필요한 생핑품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셋째주 목요일에 맞춰서 나갔다.
그날 전세계에서 와인의 막걸리격인 보졸레가 판매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인코너에 가서 보졸레가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직원왈,"없어요"라고 했다.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없다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나? 대신동에 살 때는 인근 LG25시에서 몇번 보졸레를 사다 마셨다.
올해도 미리 예약주문도 받고 했으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무데나 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마트에 가서 보졸레를 사려고 와인코나에 가서 찾아 봤더니 이마트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전날 신문 기사에 지중해산 다랑어가 많이 들어와 거의 반값으로 할인행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안주나 해볼까 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제품을 보니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과 일본으로 가던 다랑어가 그쪽 소비가 줄어들면서 우리나라로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저녁때 지난번 코스트코에 가서 보졸레를 사려다가 헛걸음 친 대신에 호주산 싸구려 와인 '하디즈'를 사다 식탁밑에 내팽개쳐 둔 것을 꺼내 맛을 보았다. 유리병이 아니고 종이팩에 들었는 데 마개도 코르크가 아니고 통 아래에 수도꼭지처럼 붙여 놓았다. 5L짜리인데 값이 19990으로 720ml 짜리 한 병 값도 되지 않는다.
식탁 위에 통을 얹어 놓고 와인 글라스를 댄 다음에 술통꼭지를 살짝 여니 붉은 포도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도 술을 아주 좋아하셨는데 소원이 수도꼭지에서 술이 끊임없어 철철 흘러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소원을 내가 풀어 드린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7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