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음악을 좋아하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노래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했죠.
그러나 타고난 재능의 한계로 더이상 노래부르는 것이 두려워 졌습니다.
그 소녀에게는 학교에서 부르기도 부끄러웠던 리코더가 있었죠.
500원짜리 리코더.
집에서 아무도 없을 때면 그 리코더를 가지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아마도 어설픈 소리에 쑥쓰러움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도 머리에 떠오르는 음악소리를 주체할 수 없어 노래로 흥얼거리다가 결국에는 리코더로 손이 갔습니다.
시골에서도 변두리에 살던 어린 소녀에게는 리코더 만큼 자신의 맘속에 있는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수단이 없었겠죠.
얼마나 자주 불렀을까.
심심할 때마다, 소리를 내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몇년이 흘러 이제는 리코더를 부는 느낌이 노래를 부르는 느낌과 같게 되었습니다.
어떤 소리건, 어떤 음악이건 제 맘에 와닿는 것은 리코더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예전엔 리코더를 부는 것이 가끔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없을 때, 아무도 모르게 불렀습니다.
가족들조차 제가 그렇게 리코더를 좋아하는지 모르니까요.
한 몇년 전이였을까요.
'텔레만 쿼텟'이란 팀이 연주하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더군요.
고풍스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나무로 된 리코더가 있는 것도 첨 알았구요.
처음으로 리코더를 가치 있는 악기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곡, 그런 악기를 갖고 연주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서점에서 악보를 찾아보고, 악기점에 들러 목관 리코더에 대해 물어보고, 인터넷에 떠있는 정보를 읽어보고, 악보도 다운받고...그렇게 1년 남짓.
요즘 들어 전 리코더가 두려워 집니다.
알면 알수록 웬지 모를 의무감이 마음을 조여옵니다.
어린 시절 아무런 부담 없이 아무 곡이나 부르고, 그저 심심할 때 친구처럼 느껴지던 리코더가 이젠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때의 그 500원짜리 리코더.
그 리코더에 더 애착이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새로 산 외재 리코더보다, 가냘프고 몇 음에서 음정이 틀리기까지 하는 부족한 그 소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익숙한 소리이기 때문인가요.
요즘들어 더 많이 아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님을 느낍니다.
리코더를 사랑하시는 분들께 비관적인 글로 보였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제 솔직한 심정을 글로 남깁니다.
황모님께서 저번 정팅 때 지나가는 말로 리코더에 대한 얘기 남겨달라고 하셨서 한번 남겨봤어요.
이런 글도 괜찮은지...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