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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읽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극속의 소설가가 다시 첫부분을 읽을때 나도 소설의 첫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고, 두개혹은 세개의 엔딩을 읽고 다시 작가의 말을 읽었다. 결혼 초, 아내가 던진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후 사랑에 대한 연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박민규는 밝힌다. 박민규의 아내는 뜬금없이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로부터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글쎄.... 사랑은 단순히 상대의 외모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여자친구가 못생겼으면 사귀지 않았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랑 자주 만날 애인의 얼굴이 어느정도는 이뻤으면 하는게 내 바램이니까 그러나, 그 어느정도라는 기준은 어떤걸까? 과거의 연애행태를 돌아보아도 아주 미인들을 사귄경험은 없던것 같다. 다만 내 눈에 안경이었고, 외모이외에 다른것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박민규의 사랑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으면서도 궂이 그녀의 얼굴을 아주 못생긴 사람으로 설정해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렇게까지 "애뜻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현재진행형의 사랑과 과거 한때의 순수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상당히 다르다. 첫사랑이 애뜻한 것은 그 사랑이 이미 끝났고 기억속에 이쁜 형태로 저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라는 설정을 궂이 넣음으로해서 작가는 사랑을 현실진행형이 아닌 그리움과 아련함의 형태로 포장했어야 했나?
나는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생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사랑이라는것은 변하게 마련이고 변심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제도로써 묶어 두는 걸까? 내가 가진 결혼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제외하고도 누군가랑 함께 오래오래 연인이든 부부이든 관계를 지속하는 커풀의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궁금하다. 그가 가진 그녀에 대한 사랑의 애틋함. 그녀가 가진 그에 대한 애뜻함. 은 그리움의 형태로 느껴진다. 물론 소설속에 반영된, 미가 권력을 장악하고 남의 외모와 스펙에 대해서 시기질투하는 세상속에서 첫번째 결말인 그녀의 독일행은 충분히 와닿는다. 그러나, 그와 그녀가 만약에 만나서 커풀이 되고 추한 얼굴에 대해서 손가락질하고 흉보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담았다면, 사람들을 이 책을 그렇게 애뜻하게 느끼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 소설은 작가가 밝힌 것처럼 사랑에 대한 연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고 말 하는것 같다. 그러나, 삶이라는것을 살아가면서도 사랑이라는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사랑이외에도 중요한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을 온전히 받고 사랑을 온전히 주는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 외에의 요소들도 사람을 살아갈만하게 한다. 그래서, 너무 사랑타령만 해댄 것 같아서 좀 촌스럽게 느껴진다.
요한 그리고 그와 그녀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존재였으며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게 좋은거라는 것에 회의를 가지고 사회로부터 비켜서 있던 존재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그 일정한 패턴에서 비켜나 있는 나에게 그래서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다. 내가 만약에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해줄건가요? 라는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함은 그 대답이 어렵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마치 그 짧은 질문에 대한 너무나 긴 변명같다는 느낌이 든다. 궂이 이렇게 긴 연서형태로 사랑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스펙과 경쟁과 능력이 종용되는 사회에서 그것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삼미~>를 재미있게 읽고 <카스테라>와 <핑퐁>을 재미없게 읽은 나로써는 <삼미~>와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 패턴은 상당히 반갑고 재미있게 느껴졌지만, "궂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 소설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외모이외에도 총체적인 것이 작용한다. 현실과 돈도 무시 못한다. 그걸 궂이 "못생긴 외모"라는 설정을 취하면서 순수한 사랑/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사랑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재미는 있지만, 새롭지는 않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말하는 많은 소설들이 모두 새로울까라는 질문을 해 본다면 이 소설은 또 한편으로 꽤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소설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스스로 사회를 소외시킨 자들의 성장담도 한축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박조건형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양한 시선과 비주류에 대한 관심에 놀라곤 했는데 이번 글만큼은 제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네요. 태생적 한계라고 해야 하나... 여자로 그것도 사회나 남자들이 원하는 기준의 외모가 아닌 여자로 살아 본 경험이 없다면 이 책의 적나라한 현실성을 읽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못생긴 외모을 내세워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하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외모가 무기가 되고 경쟁력이 되는 지금의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간이 나누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케 하고자 하는 박민규 작가의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쓴 글엔 그런 한계가 있는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따로 주장할 말은 없습니다. 왜냐면 제가 여성의 체험을 모르기때문에. 그냥 남자라는 성의 한계내에서(+내가들은 여성들의 이야기+내가 읽은 여성주의 서적) 그렇게 생각해봤을뿐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나도 박민규소설을 재밌게 읽는편인데 궁금해지네.
거짓말님과 건형이처럼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참 좋네^^
닉넴 바꾸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