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통신 제 31호♣♧♣ 《홈 씨어터 음향 시스템 완벽완성》

[배미]

♣♧♣거창통신 제 31호♣♧♣

(2016년에 30호로 종 치고 막 내린 ‘The 거창 통신’을 6년 만에 이어 간다.)

《홈 씨어터 음향 시스템 완벽 완성》 ---‘깨톡’으로 주고받은 대화---

안서방,
일신 평강, 집안 화평, 두루 무고한가?


오늘 아침,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할라네.


수년 전 언젠가, 내가 모처럼 집을 비운 며칠 이후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이층 거실에 못 보던 변화가 보이더마. 기존 있던 가구를 싸그리 재배치하고 그 자리에는, 표면을 천연 광택 밤색 나무 무늬로 고급스럽게 처리한 랙, 그 안에 튼실, 중후하게 생겨 먹은 앰프 한 대가 얌전히 놓여 있고, 거실 사방에 있는 책장들 위에는 크고 작은 스피커 여섯 대―고음 중음 스피커 5, 저음 우퍼 1―가 떠억하니 위용을 자랑하고 있더마. 자네는이 일로 나에게 일언반구의 의논도 없었자나. 그러나 저러나, 어허, 이 무신 천지개벽이, 하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새겨져 있는 브랜드도 확인하니 상당히 고가의 물건으로 짐작이 되더마. 거실 전체가 마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A. Mendini)가 심혈을 기우려 론칭했던 이탈리아제 명품 가구를 들여 놓은 듯 화(華)가 나데. 나랑 의논은 없었지만 상황을 보니 손해 본 것 같지는 안터마, 공짜로 고가 장비를 쾌척해 준 자네 인심을 고려하자면.(ㅎ,ㅎ,ㅎ,) 어쨌거나 자네가 다녀간 후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자네가 이 일로 좌고우면하며 겪은 또 다른 일들을 자네 안사람으로부터 몇 마디 전해 듣기도 했네.


자네가 우리 집 음향을 개비하기로 작정한 후, 우리집 거실의 크기를 감안하고 가격도 고려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종합하여, 이 브랜드 저 모델 궁리타가 최적의 물건을 낙점한 후, 들어 옮기고 들어 싣고 대구에서 내 사는 거창까지 차로 운반해 와, 복잡한 메커니즘 세심하게 잘 살펴가며 벽체 내부 공간으로 연결되는, 앰프 발(發), 여섯 개의 스피커에 착(着)하는 얽히고설킨 회선들을 일일이 정리하여 누옥(陋屋) 2층 거실 한가운데 설치하면서 쏟은 정성, 그 은덕을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일방 황송하더라. 음향이 모노면 어떻고 스테레오면 어떠랴, 소리가 2.1 채널이면 어떻고 10.10 채널이면 어떠랴. 그냥 궁궁 울리는 깊은 저음, 상쾌하고 깔끔한 음질 하나만으로도 길 가다 빵빵한 돈지갑 주은 사람마냥 득의만면한데, 비단 위에 또 꽃을 엊는 격으로다, 그 시스템을 입체 음향 5.1 채널로 완벽 구현하려는 자네의 완벽 지향욕, 성취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데. 

딱 들어맞는 보조 부품을 찾아 대구 시내 전자상회, 음향 관련 업소를 반나절여 전전하여 이거다 싶은 놈으로 구입하여 거창으로 다시 넘어 와 시스템에 장착했는데, 불운하게 정상 작동이 안 되어 부품 제조사 고객센터를 전화로 불러 전화통 붙잡고, 일방 그  무슨 황당한 원리로 작동하는 고객 서비스 프로그램---고객 센터 안내자가 내 컴퓨터 안으로 들어와 내 컴퓨터 상태를 살피는---맞다, "원격 서비스"---컴퓨터 모니터 들여다보며, 서고 앉고, 이 장비 저 기능, 이것저것 바꿔가며 반 시간 여에 걸친 장시간 통화를 하였으나, 끝끝내 끝장을 못 보고 회한의 아쉬움으로 다시 대구로 빠꾸하였다가, 어느 날ㅡ부부 동반하여 전라도 쪽에 있는 어느 골프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던가?ㅡ불시에 내 집에 들러, 내같으면 왠수 떵어리 같아 보일 그 기계와 한동안 다투다가 귀갓길에 오르기도 하였지.


아마, 기계치인 내 짐작으로도 워낙 섬세하고 다채로운 기능을 가진 기계라 세팅하는데 그에 비례한 공(功)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한편 자네가 고위 간부로 근무하는 회사 일로, 해외 출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대구↔거창을 수차례 왕복하였던 일, 그럼에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힘든 기색 일절 없이, 어쨌거나 한 번 벌인 일은 끝내 마무리 지으려는! 그 갸륵한 지극정성!! 마음이 극(克)하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세상 이치의 전범(典範)!!! 하나를 보여 주더마!!!! 언뜻 ‘마누라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생각나데. 자네 처인 내 여동생이 자네에게 얼마나 잘 해주면, 그리고 자네들 두 사람 부부지정이 얼마나 도타우면, 제 3자인 나에게까지 이런 뜬금없는 은혜가 미치는지.


자, 만물원리(萬物原理) 대중지정(大中至正)이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만물 변화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일통일달(一統一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와신상담(臥薪嘗膽)에 권토중래(捲土重來), 그 끝 마무리, 마침내 오늘 아침 드디어, 자네 소원이 현실이 되었네. Perfect Realiazation,,,, 간절 기도, 소원 성취 발원이요~~~ 지금 우리 내자와 같이 완벽완성된 기기로 파가니니의 '라 깜파넬라'를 들으며 제대로 갑시이는 감동을 먹고 있다네. 자네가 95% 진척시켜 놓은 일을 내가 우짜다가 '소 뒷걸음 치다가 쥐잡기'식으로 어떤 스위치 하나를 잘못 건드려 나머지 5%가 인테그러티(integrity: 완전체)를 구현하게 된 것이재.


일러 이런 상상을 해보세. 빠듯한 일정에 쫓겨 가며 비싼 비행기 쌁, 비싼 호텔비 들여가며 드뎌 꿈에도 그리던 그 장소, 카네기홀 VVIP 로얄석 한 중간에 옆자리 아내와 함께 뜨윽 버티고 좌정하여, 인물까지 잘 생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봉 끝으로 허공에다 추사 김정희의 일필휘지 붓놀림 붓춤의 빠르기로, 그 천변만화의 곡선을 따라가며 긋는 궤적을 눈썹 높이에서 보며, 베를린 필의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오십명의 오케스트라와 백 명의 합창단원들이 한 울림으로 무궁 천지의 조화를 소리쳐 부르는 합주합창의 클라이막스를 듣는 감동이 얼마나 어마어마하면 이 감동만 할까!


제어판ㅡ하드웨어 및 소리ㅡ오디오 장치 관리ㅡ소리ㅡ재생ㅡ스피커ㅡ(우클릭)ㅡ스피커 구성ㅡ구성 선택ㅡ4채널ㅡ풀 레인지 스피커ㅡ"앞 양쪽 스피커(F)", "서라운드 스피커(S)" 둘 다 선택, 구성 완료,
클릭! 하니,
짜잔~~~!
벼락처럼 음악 소리가 홀 전체를 사통팔달로 휘감더구만!

그러니까 자네가 사왔던 USB SOUND BOXㅡ차후 개선 시도할 때 필요할까 해서 버리지 않고 두었다ㅡ를 거치지 않고도 아예 컴퓨터 자체에서 음원을 서라운드로 분리하여 앰프로 쏘아 주는 원리를 밟은 셈이재. 자네가 처남의 음악 사랑을 십분 이해하여 음향 기계라도 온전하게 해 주자는 자네의 강렬한 열망이 하늘까지 닿아 이 무아지경, 황홀지경이 이루어 졌음이 분명하네.


다시 한 번 고맙네. 지난 번 자네가 빡스띠기로 사왔던 술, 두병 반은 남기라 그랬는데, 다음번 만날 때 남은 그 술로 함께 축배를 듭세!


오늘 103주년 삼일절이네. 뜻 깊은 이날 맞아, 새 봄 새 날 만나는 새 기운, 새 느낌으로 또 다시 용맹정진의 길로 내처 나아가시기를!


(음원 녹음 자체가 서라운드가 아닌 음원이 아닌 것도 있다는 사실도 인지.)

흐뭇한 기분에 베란다로 나가 담배 한 대 피워 무니 또 생각 한 자락 떠올라 다시 깨톡에 적었다.

다음 만나 축배를 들면서 읊을 좋은 詩가 하나 생각났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 『한 잔 먹세 그려』


<원전>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메어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곳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


<현대어 옮김>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꽃잎으로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매 가지고 무덤으로 메고 가거나,
술이 달려있는 비단 장막이 처진 상여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은백양이 우거진 숲에 가기만하면 누런 해, 밝은 달,
가랑비, 함박눈, 회오리바람 불적에 그 누가 한잔 먹자고 하리요.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며 뛰놀 적에는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깨톡상에서 내가 보낸 문자를 상대방이 읽었다는 표시인, 문자 담긴 네모 칸 귀퉁이의 조그만 노란 숫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일언반구 한 줄의 응답도 없었다. 혹시나 역시나, 쉽지 않았을 인생길 걸어오며 깨달은, 과묵과 절제의 미덕을 득하고 체화한, 더불어, 나아가고 멈추는 시중(時中)의 도리를 아는, 얄짤없는 찐국물, 그는 명실상부한 빼박, 갱상도 사나이였다.

(20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