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겨울 원산도
김윤한(시인)
공교롭게도 원산도행
배를 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한동안 포근하던 겨울 날씨는 오늘따라 무척 추웠다. 썰렁한 대합실을 빠져 나와 여객 부두 맞은편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뜨거운 생선묵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추운 겨울에 이렇게 무작정 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직 잘 보지를 못했다. 더구나 연인들끼리는 몰라도 이렇게 추운 날 아들 녀석과 그것도 산이 아닌, 전혀 연고도 없는 섬을 찾아가는 건 쉽사리 말로 설명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아들 녀석이 지금 중학교 3학년이니까 이렇게 섬 여행을 다닌 지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고 첫 여름 방학 때 서해에 있는 위도를 가게 된 것이 섬 여행의 시발이었다.
소란한 육지를 벗어나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름 없는 섬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부자간의 진한 핏줄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 뒤로 해마다 방학이면 인천 앞바다나 목포 앞바다의 이름 없는 섬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아내도 함께 왔으면 더 좋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아내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1박 이상의 코스는 불가능했다. 또한 아내는 원래 다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원산도를 가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섬을 가려면 당연히 서해 쪽으로 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이곳 대천항까지 오게 됐고 부두에 와 보니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출항하는 배가 원산도 행이었다.
"아버지, 시간 다 됐는데요."
아들 녀석이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게 구석 벽에 걸린 벽시계가 벌써 오후 네 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배 시간이 십 분 밖에 남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는 찬바람을 가르며 원산도행 배에 올랐다.
"뿌우-" 고동을 울리며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운 탓에 승객들은 모두 히터 가까운 마루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몇몇은 낯선 충청도 억양으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관 소리에 섞여 연신 파도 위로 흩어지곤 했다. 배가 가볍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창 밖에는 검푸른 바다도 함께 출렁거리고 있었다.
항구를 떠난 지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멀리 앞쪽에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느 섬들이 다 그렇듯 부두 옆으로는 한 무리의 솔숲들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해풍과 파도에 닳은 바위 언덕이 비스듬히 지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마을버스를 탔다. 이제 남은 일은 오늘밤을 보내야 할 숙소를 구하는 일, 마을 군데군데 민박이라고 써 붙인 집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름 해수욕철도 아닌 이상 비싼 기름을 때 가며 방을 지피고 있을 릴도 없는 이상 방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이윽고 버스가 마을에 닿았다. 마을 앞쪽에는 철 지난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쪽에는 지난여름 피서객들로 시끌벅적 했을 수십 채의 방갈로가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돌아 나가자 겨울 섬, 겨울 해수욕장에는 무섭도록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건만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다만 갈매기식당, 부산식당, 달빛노래방 같은 간판들만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맨 끝집 무지개식당이라고 쓰여진 문을 밀쳤다. 식당 안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밀창을 빼꼼히 열며 수염이 덥수룩한 한 사내가 우리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민박 좀 할까 하는데요."
분위기가 워낙 가라앉은 터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그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을 꺼내고는 방 안쪽을 향해 무어라 이야기를 하더니 잠시 후 그 사내는 가스 난로에 불을 붙이며 자리를 권했다. 워낙 추웠던 터라 우리 부자는 벽에 붙어 있는 가스난로 바로 아래에 웅크리고 앉았다.
"불을 안 때 놔서... 방 지필려믄 한참 걸릴 테니 기다리셔얄 거구만요."
그리고 그 사내는 방에 불을 지피러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주인여자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먼지 앉은 탁자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주인 여자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멀끄러니 올려다보았다. 무슨 가요 프로그램이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가 위해 식당 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벽에는 반쯤은 벗은 여자가 소주 모델로 붙어 있었고 건너편 벽면에는 영업허가증인 듯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괜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으로 가서 그 액자를 살폈다. 영업 허가증, 그것 역시 먼지가 보얗게 쌓여 있었다. 상호... 무지개 식당, 먼지 낀 영업허가증을 살피다가 하마터면 까무라칠 뻔했다. 성명… 서진숙… 서진숙이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 허가증에 붙은 사진을 찬찬히 살폈다.
아, 유난히 둥근 눈, 갸름한 얼굴, 도톰한 입술, 전에 끼지 않던 안경을 끼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 사진의 주인공은 서진숙이 틀림없었다. 이 서해의 외딴 섬까지 와서 서진숙을 만나게 되다니... 그 엄청난 우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평행선 사이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한 면내에서 자랐다. 그래서 국민학교도 중학교도 같이 다녔다. 서진숙은 외모뿐만 아니라 유난히 그림도 잘 그려서 교내 그림대회 때마다 상을 타곤 했다. 나도 그림에는 약간 소질이 있어서 늘상 그림반에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생대회에 대비해 매일 방과후에 남아서 함께 사생 연습을 했지만 마지막에 대회에 나가는 건 항상 진숙이였다.
서로 자주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사귄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이성적인 그 무엇을 느끼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때까지 서로 간에 이성적인 감정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감정을 나타내기에는 오히려 새삼스럽고 쑥스러웠다.
우리가 살던 시골 면 소재지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던 탓에 우리는 고등학교가 있는 시내에 나와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서로가 학교는 달랐지만 고등학교 때도 우리는 서로 학교 미술부에서 활동했던 탓에 사생대회 같은 미술 모임에서 자주 만났었고 때로 자취방에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우리 사이는 평행선을 끝없이 달리는 철로처럼 좀체 가까워질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도 우리는 그렇게 별 진전 없이 3년여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진숙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11월 하순경이었다. 토요일을 맞아 모처럼 고향집에 들리게 되었는데 면내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 남자애의 입을 통해서였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진숙이 아무 소식도 없이 집을 나갔고 벌써 보름째 소식이 없다는 것, 서울 어디에서 본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제대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진숙이 집을 나가다니… 흔히 누구들처럼 가출을 할 만큼 가정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진숙의 평소 행실이나 성품으로 볼 때 무작정 집을 나갈 만큼 어리석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더 큰 충격은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였다. 당연히 나타나야 할 친구 장영광이 졸업식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장영광은 인근 D여고의 서 모라는 여학생과 함께 그렇고 그런 사이로 부모들의 꾸지람이 무서워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게다가 진숙이 장영광과 알게 된 것은 바로 나 때문이었다. 내가 진숙과 만날 때 나와 친했던 장영광이 함께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연유로 해서 두 사람이 사귀게 되었고 마침내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서진숙이 가출을 하게 된 데는 알게 모르게 내 책임도 크다는 생각을 했었다.
순진한 진숙을 꾀어낸 장영광이 한없이 밉기도 했지만 정작 더 나쁜 건 서진숙이었다. 장영광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일순간에 넘어가 함께 가출을 하게 되었을까? 심한 배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왔다. 이후에는 그들의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현기증을 억지로 참으며 사진에서 눈을 뗐다. 허가증으로는 이 민박집의 주인은 서진숙이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 장영광은 분명히 아니었다. 한없이 궁금했지만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끝내 사진 속의 서진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낯선 이 사람들에게 서진숙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주로 소주를 반병쯤 마신 뒤에야 용기를 내서 낯선 털보 사내에게 허가증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넌지시 물었다.
"아. 예. 우리는 한 달 전에 이사 왔는데 안즉 허가증을 못 바꿔서요."
그리고는 말없이 털보 사내와 여자가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서진숙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아이와 우리 방으로 돌아 온 나는 새벽이 늦도록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서진숙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온갖 물음표가 잠을 쫓으며 뇌리를 돌아 다녔다.
다음날 아침 섬에서 나오는 배는 아침 여덟 시 반에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서둘러 우리의 아침밥을 챙겼다. 밤새도록 일어났던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실수를 무릅쓰고 그 아주머니에게 서진숙에 대해 물었다.
"보름 전에 죽었시유. 참 박복두 하쥬. 남편 죽구 개가했는데. 놈팽이 남편 만나서 한 이태 직싸게 고생만 하다가 위암으루 죽었대요. 이 섬에다 묻어 달래드래요. 저어기 있쥬? 부두로 가는 길목 산자락에 있는 게 아줌씨 무덤이래유"
다시 배가 "뿌우-" 하고 고동을 울렸다. 이윽고 물살을 가르며 배가 회전을 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는 섬을 뒤로하고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원산도의 모습이 이내 섬 모양의 조그마한 수석처럼 작아져 보였다.
섬의 모습이나 분위기는 어느 곳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섬사람의 사는 모습이 그렇고 부두의 모습이 그렇고 섬을 싸고 있는 바다의 무심한 물살이 그랬다. 이제 앞으로는 섬 답사를 그만 둘 생각이다. 어느 섬을 가든 민박집, 밤바다, 파도를 보면 잊혀졌던 쓰린 추억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배가 대천항에 거의 도착한 모양이었다. 바라다 보이는 대천항에는 겨울 내내 잊혀졌던 눈발이 어지럽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여남은 명의 승객들은 다시 어느 섬으론가 떠나기 위해 부둣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