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의 첫걸음은 우리가 먼저 한식을 알고 사랑하고 아끼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생활 모습은 물론 삶의 철학도 녹아 있지요. <에쎈> 창간 13주년 특별기획으로 한식을 새롭게 조명해봅니다.
- ▲ 뚜껑밥그릇 3만원, 귀 달린 국그릇 2만6천원, 오각종지 1만2천원, 전접시 중간 사이즈 1만6천원, 전접시 작은 사이즈 1만원. 모두 문지영 작가의 반상기세트. 이도.
천해의 자연으로 부터 얻은 식재료 조상의 멋이 깃듯 음식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형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산과 들과 강이 조화를 이뤄 철따라 땅과 바다에서 나는 식품이 매우 다양하다. 또한 지역적 특색이 강해 그 지역에서만 나는 식재료와 고유의 조리법으로 만든 향토음식이 발달했다. 향토음식은 지리적, 기후적 특성에 의해 생산된 지역 특산물로 만들어지고 오늘날까지 조리방식이 전해져오므로 한식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보다 귀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다양한 조리방식으로 즐겼다. 철마다 우리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자연으로부터 얻고 풍류를 즐겼던 시절식 풍습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멋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한식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채식 위주의 저지방식 식단 때문이다. 선조들은 동물성 지방을 거의 쓰지 않는 대신 깨와 잣, 호두, 은행 등의 견과류를 고명이나 한과로 즐겨 식물성 지방과 비타민, 무기질을 보충했다. 그 가운데 깨의 활약만 봐도 옛 선인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다. 흰깨, 흑임자, 들깨 등을 볶아서 빻거나 기름을 짜서 이용하고 죽을 끓이거나 떡고물로 활용했으며 나물을 무칠 때도 깨소금과 기름을 넣어 맛과 영양을 더했다. 조상들은 양념이란 말을 ‘약념(藥念)’이라 쓰며, 조미료를 쓸 때도 몸에 이로운 약이 되도록 염두에 두었다.
반상의 오색의 과학을 올리다
요즘은 세계화 추세에 따라 코스로 내기도 하지만 한식 반상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과 김치 그리고 반찬을 한데 차리는 상차림이다. 음식을 놓는 자리에도 서양의 테이블세팅 못지않은 까다로운 원칙이 있다. 이른바 첩수로, 찬의 가짓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반상으로 나뉜다. 첩수로 헤아리는 반찬은 반드시 재료나 조리법을 다르게 생채, 숙채, 구이, 조림 등으로 냈다.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의 색상도 유심히 살펴보면 대체로 3~5가지가 어울려 있다. 그 색은 대체로 흰색, 빨간색, 푸른색, 노란색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색으로 붉은색 양념이나 노란색의 고기류, 싱싱한 녹색 채소가 대표적이다. 붉은색은 육류의 단백질, 노랑은 지방, 녹색은 미네랄 성분으로 이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영양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물론 식욕을 당기는 효과도 배가된다.
- ▲ 구름 모양 접시 9만원, 밥과 죽이 담긴 백색 뚜껑그릇 1개 5만원, 크림색 뚜껑그릇 1개 3만원. 모두 김선미 작가 작품. 리유.
밥한식의 바탕이 되다
흔히 한국 사람은 ‘밥 힘’으로 산다고 말한다. 밥은 한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밥’이라는 한 단어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고사는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다. 밥은 빛깔도 하얗고 특별한 맛이나 향도 없을 뿐더러 영양도 탄수화물이 대부분이지만, 명실상부한 우리 음식의 밑바탕이다. 국, 찌개, 김치와 찬을 저마다의 조리법으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것도 이 모든 것의 맛을 아우르는 밥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흰쌀밥이 고혈압, 당뇨 등 대사증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과다한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소음인 체질이 많은 한국인에게는 밀 가공식품 섭취보다는 쌀밥이 더 이롭고, 함께 곁들이는 음식들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쌀밥이 권장되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밥 문화를 살펴보면 흰쌀이 바탕이 되는 다양한 영양밥이 있는데 이 역시 좋은 해법이 될 것이다. 조상들은 예부터 쌀에 보리, 팥, 콩, 찹쌀, 차조, 기장, 수수, 옥수수 등 곡식을 넣어 잡곡밥으로 즐기거나 밤, 감자, 고구마 등의 전분질 식품을 넣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했다. 그 밖에 무, 송이버섯, 콩나물, 죽순, 산나물 등의 제철 채소를 넣거나 굴, 조개, 홍합 등 해산물을 넣어 즐겼다. 맛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꾀한 것이 한식의 밥 문화다.
1 흰 쌀밥
흰쌀밥 한 그릇에는 수분 65%, 탄수화물 31.7%, 단백질 2.6%, 지방질 0.5%, 섬유질 0.1%의 영양이 담겨 있다. 자체로는 비타민 B₁과 무기성분이 적어 완전식품이라 할 수 없기에 예부터 각종 부식을 함께 섭취해 영양을 보충했다.
조리시간 15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멥쌀 3컵, 밥물 2½컵
1 쌀은 밥을 짓기 약 30분 전에 씻어 물에 불렸다가 건져 물기를 뺀다.
2 두꺼운 솥이나 냄비에 쌀을 담고 밥물을 부어 센 불에 올려 끓인다.
3 한번 끓어오르면 중불로 약하게 줄이고, 쌀알이 퍼지면 불을 아주 약하게 줄여 뜸을 들인다.
2 오곡반(오곡밥)
예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짓고 지난 가을에 간수해둔 마른 채소로 아홉 가지 나물을 곁들여 이웃과 나누어 먹고는 했다. 오곡이란 원래 다섯 가지의 중요한 곡식이라 하여 쌀, 보리, 조, 콩, 기장을 가리키는데, 보통은 각 가정이나 지방의 형편에 따라 곡물을 넣고 오곡밥을 지었다.
조리시간 15min(오곡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멥쌀 2컵, 찹쌀 1컵, 팥 ½컵·밤콩(또는 검은콩)·수수·차조 ½컵씩, 소금 ½큰술, 밥물(팥 삶은 물과 합하여) 4컵, 물 적당량
1 멥쌀과 찹쌀은 밥 짓기 약 30분 전에 씻어 물에 불렸다가 건져 물기를 뺀다.
2 팥은 씻어 냄비에 넣고 충분히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불에 올린다. 끓어오르면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3컵 정도의 물을 부어 팥알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삶아 건진다.
3 밤콩은 물에 불린 후 건지고, 수수는 여러 번 씻어 붉은 물을 우려낸 다음 건진다. 차조는 깨끗이 씻어 건진다.
4 ①의 쌀과 ②의 팥, ③의 콩과 수수를 한데 합한 다음 소금을 넣어 고루 잘 섞고, 여기에 밥물을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인다. 밥이 끓어오르면 차조를 고루 얹고 중불에서 끓인다.
5 쌀알이 퍼지면 불을 아주 약하게 줄여 뜸을 들인 후 위아래를 고루 섞어 그릇에 담는다.
3 콩나물밥
콩나물은 대체로 나물이나 국거리로 많이 쓰이는데, 쌀과 함께 넣어 밥을 지으면 별미다. 콩나물에는 비타민 B₁, B₂, C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육류나 참기름 등과 한데 어울려 일품으로 즐겨도 영양 만점이다.
조리시간 25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쌀 3컵, 콩나물 300g, 쇠고기 100g, 밥물 3½컵
고기양념 간장 2작은술, 다진 파·참기름 1작은술씩, 다진 마늘½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양념장 간장 4큰술, 다진 파·고춧가루 2큰술씩, 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 1큰술씩
1 쌀은 밥 짓기 약 30분전에 씻어 물에 담가 불렸다가 건져 물기를 뺀다.
2 콩나물은 꼬리를 떼고 씻는다.
3 쇠고기는 곱게 채 썰어 고기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재어둔다.
4 솥에 콩나물, 쇠고기, 불린 쌀을 안치고 밥물을 부어 센 불에 올린다. 한번 끓어오르면 불을 중불로 하고 쌀알이 퍼지면 불을 줄여 뜸을 충분히 들인 다음 위아래를 고루 섞어 그릇에 담고 양념장을 곁들인다.
tip 밥 짓는 도중에 뚜껑을 열면 콩나물 비린내가 나므로 주의한다.
보양죽 효와 예를 올리다
밥과 함께 한식의 기본을 이루는 죽은 엄마 젖을 뗀 후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이다. 농경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곡식으로 만든 최초의 음식으로, 역사를 따지자면 밥보다 앞선다. 밥을 먹는 것보다 소화도 잘되고 영양소도 빠르게 흡수되어 뇌와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까닭에 예부터 건강서에는 아침에 죽을 먹으면 몸에 두루 이롭다는 기록이 많다. 임금의 첫 아침식사인 초조반에 죽을 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죽은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운이 없고 헛헛하거나 몸이 아플 때 부드럽게 끓인 죽은 수월하게 소화되기 때문에 쉽게 기력을 차리도록 도와준다. 죽에는 곡물은 물론 부재료로 채소, 육류, 어패류 등을 다양하게 넣어 별미로 즐기기도 했고 대추, 인삼, 황율 등 약재나 잣, 깨 등의 견과류를 넣어 몸을 보하기도 해 조선시대 문헌만 보아도 수록되어 있는 죽의 종류가 무려 170여 가지에 이른다. 예부터 우리의 속을 달래며 함께 지내온 역사가 깊은 죽은 노인들의 회복식으로 효와 예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1 전복죽
전복을 얇게 저며서 불린 쌀과 함께 쑨 옹근죽(쌀알을 으깨거나 갈지 않고 통으로 쑤는 죽)으로 예부터 별미로 꼽힌다. 전복은 값이 비싼 귀한 재료로 맛과 향이 일품인데 제주도에서 많이 나기 때문에 예부터 제주도의 명물 음식으로 꼽힌다. 전통방식으로는 푸른색 내장은 넣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쌉쌀한 맛이 나고 향이 특이한 것을 즐겨 싱싱한 내장을 그대로 넣어 푸릇하게 죽을 쑤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제철 푸른 채소와 당근을 넣어 색감을 내기도 한다.
조리시간 25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멥쌀 1컵, 전복(껍질째) 200g, 참기름 1~2큰술, 국간장 1큰술, 소금 약간, 물 8컵
1 쌀은 씻어 물에 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다음 건져 물기를 뺀다.
2 전복은 솔로 깨끗이 문질러 씻은 다음 살만 떼어내 얇게 저며 썰고 내장은 씻어둔다.
tip 전복 살은 껍질이 얇은 쪽에 작은칼이나 납작한 숟가락을 넣어 살을 떼어낸다. 어려울 때는 냄비에 전복 껍질을 아래로 놓고 물을 약간 넣어 뚜껑을 덮은 뒤 살짝 쪄내면 쉽게 떨어진다.
3 불린 쌀에 전복 내장을 터트려 반쯤 넣고 양손으로 푸른빛이 배도록 비빈다. 깨도 믹서에 물 1컵을 넣고 곱게 갈아 체에 내린다.
4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③의 쌀을 넣은 다음 볶다가 물을 부어 센 불에 끓인다.
5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하고, 나무주걱으로 가끔 저으면서 잘 어우러질 때까지 서서히 끓인다.
6 쌀알이 퍼지면 전복을 넣어 끓인다. 풀기가 생기면 소금이나 국간장으로 간한다.
tip 파, 마늘, 김, 깨 등을 많이 넣으면 오히려 전복 특유의 맛을 해치게 되므로 양념은 피한다.
2 장국죽
장국죽은 육류와 함께 쑤어 만든 원미죽(쌀알을 굵게 갈아서 쑤는 죽)이다. 맛은 물론 영양적으로도 손색없어 아기의 이유식이나 노인과 회복기 환자의 영양식으로 제격이다. 죽이 거의 다 되었을 때 달걀을 풀어 넣고 반숙 정도로 익혀 먹어도 맛이 잘 어울린다.
조리시간 30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쌀 1컵, 쇠고기(우둔) 100g, 마른 표고버섯(중) 2개, 참기름 1큰술, 국간장(또는 소금) 적당량, 물 7½컵
완자양념 국긴장·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1 쌀은 씻어 물에 2시간 이상 불려 믹서에 물 ½컵을 넣고 반쯤 갈고 체에 내려 앙금물을 밭는다.
2 쇠고기는 곱게 다지고, 마른 표고는 물에 불려 곱게 채 썬다.
3 다진 쇠고기와 채 썬 표고는 완자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고루 무쳐 완자를 빚는다.
4 두꺼운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①의 쌀을 넣고 볶다가 투명해지면서 기름이 전체에 고르게 돌면, 물 7컵을 부어 눋지 않게 가끔 저으면서 끓인다.
5 한번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여 쌀알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서서히 끓이다가 ①의 앙금물을 붓고 ③의 고기완자를 넣고 익힌 다음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간한다.
tip 장국죽은 쇠고기의 양지머리나 사태 등으로 맑은 장국을 만들어서 쌀을 넣고 끓이기도 하고, 쇠고기를 곱게 채 썰어 쌀과 함께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방법도 있다.
3 흑임자죽
검은깨를 곱게 갈아서 갈아 놓은 쌀과 함께 쑨 무리죽(쌀알을 완전히 곱게 갈아 매끄럽게 쑤는 죽)으로 흰깨로 쑤기도 한다. 맛이 담백하고 신장에 특히 좋은 흑임자죽은 조선시대 왕가에서도 초조반으로 가장 즐겼던 죽이다. 검은깨는 한약 명으로 ‘흑지마(黑脂痲)’라고 불리는데,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뿐해지고 늙지 않으며 배고프거나 목이 마르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빠지지 않게 하고 검고 윤기 있게 한다 하여 서민 사이에서도 널리 애용된 명실상부 건강식품이다.
조리시간 30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중
멥쌀 1컵, 흑임자 ¼컵, 소금·설탕 적당량씩, 물 6컵
1 쌀은 씻어 물에 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다음 건져 물기를 뺀다.
2 흑임자는 물에 살살 일어 씻어 물기를 뺀 후 마른 팬에 고소한 향이 나도록 볶는다.
3 믹서에 불린 쌀과 물 2컵을 넣고 아주 곱게 간 다음 고운체에 내린다. 흑임자도 믹서에 물 1컵을 넣고 곱게 갈아 체에 내린다.
4 두꺼운 냄비에 ③의 갈은 쌀과 남은 물 3컵을 부어 센 불에 올리고 나무주걱으로 눋지 않게 젓는다. 약간 따뜻해지면 갈은 흑임자를 조금씩 넣으면서 멍울이 지지 않도록 가끔 저으면서 끓인다.
5 한번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죽이 잘 어우러지도록 서서히 끓인다.
tip 죽은 더울 때에 그릇에 담아내고, 소금이나 설탕을 따로 작은 그릇에 내 기호에 따라 즐기도록 한다.
채식 땅의 기운을 밥상에 올리다
한식 밥상에는 끼니마다 나물이나 채소반찬이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데, 장아찌나 조림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살짝 구워내기도 한다. 밭에서 키우는 채소도 있지만, 산이나 들에서 절로 자라는 산야초 가운데도 식재료는 많다. 특히 봄에는 나무에 순이 돋는 것처럼 우리 몸도 봄에 해당하여 생기를 원하니 자연히 푸른빛이 도는 나무의 싹이나 밭에서 돋는 나물을 먹어야 한다. 제철에 뜯은 나물을 미리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다시 불려 먹기도 하는데, 이는 겨울철에 자칫 부족해질 수 있는 비타민이나 섬유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독성이 있는 채소는 데치고, 영양이 부족한 채소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더하는 등 채소의 성질에 따라 조리법과 양념이 다양하게 발전해온 덕분에 한식은 평범한 일상 차림으로도 든든하고 영양 균형이 잘 맞는 채식 식단을 차릴 수 있다.
비빔밤 그릇에 예술을 담다
흰쌀밥 위에 갖가지 나물과 고기볶음, 튀각 등을 올려 비벼 먹는 비빔밥은 세계인들이 손꼽는 한국의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항공사 기내식으로 채택된 이래 최근에는 각 노선마다 조금씩 다르게 제공되는 비빔밥이 가장 인기 있는 기내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네스 팰트로 등 할리우드 스타가 날씬한 몸매의 비결로 한국의 비빔밥을 꼽으면서 다이어트 웰빙식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비빔밥에는 우선 나물이 여러 가지로 들어간다. 나물거리는 꼭 정해져 있기보다 제철에 가장 흔하고 맛있는 채소로 대개 흰색, 푸른색, 갈색, 붉은색 등 다섯 가지 이상이 쓰인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흰색 나물로는 도라지, 숙주, 콩나물, 무나물 등이 있고, 푸른색 나물로는 오이, 애호박, 시금치, 미나리, 쑥갓 등이 있으며, 갈색 나물로는 고사리, 표고버섯 등이 있다.
채소만 넣고 참기름을 듬뿍 넣어 소박하게 만들어 먹는 비빔밥도 있지만, 격식을 갖춘 전통 비빔밥은 갓 지은 흰쌀밥 위에 정성을 들인 각색 나물과 고기, 생선전, 달걀지단, 다시마튀각을 색색이 얹고 윤기 나는 약고추장을 가운데 얹어 낸다. 한 그릇 안에 산과 들, 바다의 것을 담아낸 것이다. 맛과 영양의 조화를 담아 우주만물의 상생을 표현하고 화합을 기원하는 마음까지 담았으니 비빔밥은 ‘한 그릇의 예술’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조리시간 1hr(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상
흰쌀밥(약간 진밥) 4공기, 쇠고기·도라지·고사리·콩나물 100g씩, 마른 표고버섯 3장, 오이 ½개, 참기름·소금·물 적당량씩
전감 흰살 생선 80g, 달걀물 1개분, 다시마 10㎝ 1장, 밀가루·참기름·고추장(약고추장)·식용유(지짐용) 적당량씩, 소금·흰 후춧가루 약간씩
고기&표고버섯 양념 간장 1큰술, 설탕 ½ 큰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 1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도라지&고사리 양념 국간장·다진 파 2작은술씩, 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 1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콩나물 양념 다진 파·참기름·깨소금 1작은술씩, 다진 마늘 ½작은술, 소금 약간
1 쇠고기는 곱게 다지고, 마른 표고는 불려서 기둥을 떼고 가늘게 채 썬다.
2 고기&표고버섯 양념장을 만들어 반으로 나누고 ①의 쇠고기와 불린 표고를 각각 양념해 팬에 볶는다.
3 오이는 길이로 반 갈라서 어슷하게 썰고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꼭 짠다.
4 도라지는 가늘게 갈라서 소금에 주물러 씻은 후 끓는 물에 데친다. 고사리는 억센 줄기는 다듬고 짧게 끊는다.
5 도라기&고사리 양념장을 만들어 반으로 나누고 ④의 도라지와 고사리를 각각 양념해 볶는다.
6 콩나물은 씻어 냄비에 물 ½컵과 소금을 약간 넣어 뚜껑을 덮어 삶은 분량의 양념으로 무친다.
7 흰살 생선은 얇게 전감으로 떠서 소금, 흰 후춧가루로 밑간한다. 밀가루, 달걀물 순으로 옷을 입혀 전을 부친 다음 1㎝ 폭으로 썰고, 남은 달걀물은 지단을 부쳐 채 썬다.
8 다시마는 기름에 튀겨 잘게 부순다.
9 약간 되게 진 흰쌀밥은 참기름,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②의 쇠고기를 넣어 고루 섞는다. 그 위에 ②~⑧의 나물과 전 등을 색스럽게 조금씩 얹어 내고, 고추장은 따로 담아내 식성에 따라 곁들인다.
발효식품 한국의 깊은맛
음식에서 ‘익었다’라는 표현은 열을 가하여 날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지만 채소, 생선, 곡물, 과일 등이 소금, 당분과 만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어우러져 또 다른 당기는 맛이 되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때 ‘익었다’는 것은 발효가 되어 ‘깊은 맛을 낸다’는 것. 김치나 젓갈, 된장, 간장, 고추장처럼 한식의 바탕이 되는 발효식품들은 금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담그는 음식이지만 자연의 바람과 햇볕 그리고 시간이 힘을 보태서 느리게 완성된다. 세월을 거치면서 원래 식재료에 있던 독성이 모두 이로운 성분으로 바뀌는 ‘숙성’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원래 없던 깊은 맛과 함께 몸에 좋은 균들이 생겨난다. ‘몸에 좋은 깊은 맛’을 지닌 발효음식은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높이고, 식욕을 북돋워 한식이 건강식임을 인정받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1 간장·된장·고추장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간장과 된장은 콩으로 만든 고유한 발효식품으로 한식의 맛을 내는 기본 조미료다. 간장의 ‘간’은 소금의 짠맛을 의미하고 된장의 ‘된’은 되직한 것을 뜻한다. 고추장은 간장, 된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발효식품으로 역시 콩의 단백질이 가득하다.
2 김치
채소의 비타민과 유산균을 섭취할 수 있는 김치는 지방은 적으며 섬유질이 풍부하다. 김치는 채소가 부족한 겨울철에 비타민을 공급해주던 음식이기도 하다. 질 좋은 배추와 소금, 물, 젓갈, 고추, 마늘 등 김치 안에는 우리 땅에서 나는 한식의 기본 재료가 모두 들어 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백김치나 국물을 함께 먹는 동치미, 나박김치도 산뜻한 맛이 좋다. 배추뿐만 아니라 무, 부추, 오이, 파 등 재료에 따라서 양념과 젓갈을 달리하므로 맛도 가지가지다.
3 장아찌
장아찌는 채소를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오랜 기간 숙성시켜 먹는 음식으로, 제철에 많이 나는 채소류를 된장이나 간장, 막장, 고추장 속에 넣어 오랜 시간을 두고 삭혀 먹는 저장음식의 진수다.
4 젓갈
김치에 넣거나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 쓰이는 젓갈은 어패류를 염장한 것으로, 숙성 중에 생기는 삭은 맛이 별미고, 뼈째 먹을 수 있어 칼슘의 급원 식품이기도 하다. 젓갈류 가운데에서도 주로 새우젓, 조기젓, 황석어젓, 멸치젓은 김치를 담그는 데 많이 쓰고, 찌개나 국의 간을 맞출 때는 새우젓을 주로 쓴다. 나물을 무칠 때는 멸치젓으로 만든 멸장(멸치젓국)을 넣는데 간장만으로 간을 한 것과는 달리 독특한 맛이 있다.
- ▲ 사각접시 14만원, 구름 모양 원형접시 6만원. 모두 김선미 작가 작품. 리유. 화병 8만원. 이윤신 작가 작품. 이도.
약선 잘먹는것이 약보다 낫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은 연근은 장기간 저장이 가능해 서늘한 곳에 저장해두고 즐기기 좋다. 연근전, 연근채 등 반찬과 간식으로 즐기면 열을 내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진정작용이 뛰어나 신경과민이나 스트레스, 우울증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무기질, 비타민 C, 리놀레산, 식이섬유 등은 뼈의 생성을 촉진하고 피부도 건강하게 해준다. 섬유질도 풍부해 소화도 잘된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혈압을 예방하고 간 해독에도 도움이 되니 남녀노소에게 모두 좋은 건강식품이다.
모든 음식이 약의 원리와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原)’ 사상은 한식의 대표적인 철학으로 꼽힌다.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옛 의학서에도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내용이 많다. 곧 먹을거리의 재료가 되어 몸의 이치에 맞게 잘 먹음으로써 약이 되게 하여 건강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다. 선조들은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증상에 효험이 있는 식품을 찾아서 약을 쓰기 전에 음식으로 치유하는 노력을 먼저 했다. 또한 평소 보양과 체력 증진에 효과가 있는 식품을 찾아 즐김으로써 병을 예방했다. 산야의 초근목피와 육류를 재료의 성질에 따라 바르게 다룰 줄 알았으며, 오미(五味: 달고, 시고, 맵고, 짜고, 쓴 맛)를 조절하여 만든 ‘약이 되는 음식’을 즐기며 건강을 첫째 덕목으로 여겼다.
연근전
조리시간 25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하
연근 250g, 밀가루 2큰술, 소금 1작은술, 식용유(지짐용)·물 적당량씩
밀가루즙 밀가루 1컵, 간장·참기름 2작은술씩, 물 ¾컵
초장 간장 2큰술, 식초·물 1큰술씩, 설탕 ½큰술, 잣가루 약간
1 연근은 껍질을 벗겨 0.5㎝ 정도 두께로 썬 다음 넉넉한 물에 삶은 후 찬물에 헹군다.
2 밀가루에 물을 넣고 잘 갠 다음 간장, 참기름을 넣고 잘 섞어 밀가루즙을 만든다.
3 ①의 데쳐낸 연근에 밀가루를 고루 묻힌 후 ②의 밀가루즙에 담갔다 건져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면을 노릇하게 지진 다음 초장을 만들어 곁들인다.
연근채
조리시간 15min(쌀 불리는 시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하
연근 1개(300g), 식초 4큰술, 간장·참기름·설탕 2큰술씩, 꿀 1큰술
1 연근은 껍질을 벗겨 0.3cm 두께로 얇게 썬다. 식초를 넣은 냉수에 담갔다 끓는 물에 넣고 삶은 후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뺀다.
2 간장에 식초, 참기름, 설탕, 꿀을 넣어 고루 섞은 후 삶은 연근을 넣고 버무려 간이 배도록 둔다.
화식 풍류를 즐기다
요즘에는 식탁에 멋을 더하기 위해 꽃을 즐겨 쓰지만 예전에는 먹을거리로 즐겼다. 이를 가리켜 화식문화(花食文化)라 한다. 삼월 삼짇날 먹는 진달래화전은 아직도 남아 있는 화식문화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꽃을 먹는 것은 꽃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영양을 섭취하여 건강을 도모하기 위함이며 꽃이 가진 아름다움, 즉 색채, 향기, 감촉, 계절감 등을 모두 즐기기 위함이다.
네모꽃부꾸미
잔치나 제사 등에 떡을 고여서 담을 때는 장식으로 웃기떡을 올리는데, 주로 찹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지고 꽃을 붙여 모양을 내는 화전이나 부꾸미를 올렸다. 그밖에 꽃을 가장 많이 이용한 음식은 술이다. 옛 조리서를 보면 집집마다 꽃을 넣어 향기가 나는 특별한 술을 담갔다는 이야기가 많다. 두견주, 도화주, 국화주, 개나리주, 매화주, 연화주, 해당화주, 인동꽃주, 송화주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매화, 국화, 귤화, 해당화, 인동꽃, 연꽃, 진달래, 장미꽃 같은 꽃들은 차로도 즐겼다. 꽃 자체를 나물이나 장아찌, 국, 밥으로 해 먹기도 했는데 원추리꽃, 부추꽃, 참등꽃, 치자꽃, 유채꽃, 호박꽃, 솔꽃 등이 대표적이다. 궁중음식에서는 두견화, 호박꽃, 한련화, 국화, 노란 장미, 황화채를 많이 사용했다.
조리시간 20min(소 만드는 25분 제외) 재료분량 4인분 난이도 상
흰색 반죽 찹쌀가루 2컵(소금 넣어 빻은 것), 뜨거운 물 2큰술
녹색 반죽 찹쌀가루 2컵(소금 넣어 빻은 것), 쑥가루 3큰술, 뜨거운 물 2½큰술
황색 반죽 찹쌀가루 2컵(소금 넣어 빻은 것), 치자물 1큰술, 뜨거운 물 2큰술
팥소 붉은팥 2컵, 설탕 ½컵, 물엿(또는 꿀) 2큰술, 소금 1작은술, 계핏가루 약간, 물 적당량 식용꽃잎·식용유 적당량씩
1 흰색 반죽은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넣고 오래 치대어 말랑하게 익반죽하고, 녹색 반죽은 찹쌀가루에 쑥가루를, 황색 반죽은 치자 물을 섞어 같은 방법으로 익반죽한다.
2 각각의 반죽을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 1㎝ 두께로 자른 다음 동글납작하게 타원형을 만든다.
3 붉은팥은 깨끗이 일어 씻어 물을 넉넉히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어오르면 물을 쏟아 버리고 다시 5배의 물(팥 1컵:물 10컵 정도)을 부어 푹 무르게 삶은 다음 고운체에 내린다. 이때 체에 남은 팥 껍질은 버리고, 앙금을 두 겹으로 된 헝겊주머니에 넣어 물기를 짜낸 후 주머니에 남은 팥에 소금과 설탕을 넣어 되직해지도록 볶다가 물엿(꿀)을 넣어 졸인다. 물기가 없어지면 식힌 다음 계핏가루를 넣어 고루 섞어 작게 모양을 빚는다.
4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②의 반죽을 올려 투명해지도록 지진 다음 뒤집어 식용꽃잎을 얹고 설탕을 뿌린 쟁반에 올려 가루를 묻힌다.
5 장식한 면이 아래로 가도록 한 다음 가운데에 ③의 팥소를 놓고 네 면을 가운데로 접어 모양을 잡은 뒤 접은 면이 아래로 가도록 접시 위에 놓는다.
도움말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 www.food.co.kr) 요리 박준희 교육팀장, 오혜임, 정이슬(궁중음식연구원) 그릇협찬 이도(02-722-0756), 리유(김선미 도자기 02-747-3990) 포토그래퍼 최해성 어시스트 강태희 스타일링&에디터 신민주 어시스트 이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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