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推敲)가 명품(名品)을 만든다
이도현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글짓기 과정은 대체로 구상(構想), 표현(表現), 퇴고(推敲)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이 세 단계가 모두 중요하지만 본고에서는 퇴고단계에서 그 요령을 간략하게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여러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말하지만 자신은 소같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쓰고, 고치고, 저미고, 붙여 봐도 한동안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미비한 것만 같은 것이 시가 아니던가. ‘만들면’ ‘퇴고’로 고치면서 군더더기 없이 그리움을 우주의 이치로 순하게 끌어올린 절창(絶唱)이 되었다.”고 술회한다.
이와 같이 끝없는 퇴고가 未堂 서정주 시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고치고 다시 고쳐도 未完이니 자기 호를 ‘未堂’(덜된 집, 미비한 집)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의 운율에 주목하라. 뼈를 울리는 언어의 음색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그만큼 퇴고단계는 중요하다.
작품이 끝나면 몇 번이고 소리를 내서 읽자. 여러 번 낭독할수록 좋다. 이때 읽은 작품에서 감동이 오면 그런대로 괜찮은 작품이요, 감동이 오지 않으면 덜 익은 작품이다. 특히 시조는 운율(韻律)에 맞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가락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엔 작품을 다시 쓰거나 퇴고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다음엔 어법(語法)이나 어순(語順)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리한 도치, 무리한 생략은 삼가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막연하고 감상적인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나 구체적인 이미지가 훨씬 효과적이다. 목이 쉰 독특한 육자백이가락이 우리들 청각에 실감실정(實感實情)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일자사(一字師)’란 말이 있다. 글자 한자를 잘 고치면 스승의 역할을 다한다는 뜻이다. 토씨 하나가 시의 맛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되었다 해서 한번 읽고 투고할 것이 아니요, 몇 번을 소리 내서 읽고 본인 스스로 감동할 때, 쾌재(快哉)를 부를 때 그 때가 비로소 시가 완성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가을 호에도 알찬 그리고 개성이 있는 작품들이 많았으나 몇몇 작품의 경우는 퇴고단계를 거치지 않아 매끄럽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먼저 소시집에 실린 이광호 시인의 작품을 보자.
다듬이 소리 그친 밤 새끼줄을 꼽니다
적은 날 짚을 대고 정성껏 두 손 비벼
새끼줄 고루 나오는 원리래야 단순하죠
시골과 도회라는 두 날을 비비꼬아
민족의 역사라는 새끼줄 사릴라치면
알맞게 사람 사람들 옮겨 삶이 옳지요
소처럼 멍에를 메워 이랴 저랸 못하지만
시골을 이리 비우고 혼자 도시 잘되겠오
젊은 날 새 짚을 대어 옮겨 살 생각 없나요
-이광호의 <새끼를 꼬며>전문
세상이 많이 변했다. 새끼줄 꼬아 이엉 엮어 초가지붕 해 일어 고향을 지키며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광호 시인은 지금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만 집중하는 병리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적은 날을 짚을 대고 정성껏 두 손으로 비비면 새끼줄이 된다 하고, 둘째 수에선 시골과 도회 두 날을 비비꼬아 새끼줄을 사리면 민족의 역사를 이룬다 하고, 마지막 수에서 시골을 이렇게 텅 비우고 도시로만 모이니 그것이 잘 된 일인가? 젊은 날 새 짚을 대어 새끼를 꼬아 시골로 옮겨 살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두 가닥 짚을 꼬아 새끼줄을 꼬는 원리를 시골과 도회로 비유하면서 도시로만 인구가 집중하는 사회현상을 꼬집어 질책한다.
그렇다 지금 시인이 새끼줄을 꼬면서 걱정하듯 텅 비어가는 우리들 모두의 고향을 돌이켜 보고 귀향할 생각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시골과 도회의 두 날을 새끼줄의 두 가닥으로 비유한 상상이 특기할 만하다
다음 이광호 시인의 다른 두 작품을 보자.
(가)
일기를 줄인 낱말 ‘읽’글자 되는 걸까?
글이란 말을 그린 그림의 준말이라
지난 덧 읽어둔 생애 글 그림을 그리다.
-<지난 덧 읽어둔 생애>전문
(나)
아내가 말린 빨래 수증기 구름 됐을까?
저-하늘 쳐다보니 거꾸로 쓴 ‘물’글자
본래는 ‘롬’이었다가 아롱아롱 구‘름’됐지.
-<아내가 말린 빨래>전문
작품 (가)에선 ‘일기’를 줄이면 ‘읽’이 되느냐고 묻고, ‘글’이란 말을 그린 ‘그림’의 준말이라 하고, ‘지난 덧 읽어 둔 생애’는 ‘일기(日記)’이니 이는 곧 ‘글 그림’이라 일컫는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한다.
‘지난 덧 읽어둔 생애=일기(日記)=글 그림’이 된다.
작품 (나)에선 ‘아내가 말린 빨래’는 ‘수증기 구름’된 것이 아닌가?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에서 ‘름’자는 거꾸로 쓴 ‘물’자라, 본래는 ‘롬’이었는데 아롱아롱 ‘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정리하면 ‘아내가 말린 빨래’는 수증기구름으로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구름의 ‘름’은 거꾸로 쓴 ‘물’이라는 것이다.
이광호 시인은 25년간 한글 모양에 관한 연구를 계속한 한글학자요, 시인이다. 평소 연구한 한글자모의 모양과 원리를 시조 짓기 소재로 활용하여 거뜬히 작품을 완성했다.
한글의 우수성이 온 세계에 알려진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이러한 때를 같이하여 우리 시조도 한류를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한다. 한글을 소재로 한 시조작품이 많이 생산되어 시조를 세계화함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한 생을 아우르는 삶이란 화두 앞에
비움의 간절함을 저리게 기원하며
내일은 하늘을 보자 합장하는 의미를.
-고현숙의 <기도>전문
고현숙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시간들이다. 참 가볍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 오로지 그것뿐이다.’고 말한다.
한 평생을 아우르는 엄숙한 아니 경건한 화두(話頭)앞에서 시인은 하늘을 바라 자신을 비우고자 간절한 기도를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시작노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우면 가벼워진다.
비움의 철학! 욕심을 버리고 나를 비우면 하늘이 보인다. 나를 죽여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고현숙은 지금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비우면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체험하고 있다. 악기도 비워야 소리를 낸다.
처마 끝에 날을 세워 촘촘히 에워싸고
기세 등등 위풍당당 겨울을 지킨다지만
봄에게 이미 굴복한 오합지졸 패잔병
-김선호의 <고드름>전문
김선호 시인의 <고드름>단수이다. 한겨울 날씨가 차가울수록 고드름은 무성하다. 초가의 경우는 더욱 기세 등등 위풍당당 겨울을 자랑한다. 그러나 봄이 오면 날씨가 풀려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패잔병이 되어 녹아버리고 만다.
김시인은 우리들 인간사회의 실상을 고드름에 비유하고 있다.
시절을 잘 만나 줄 한번 잘 서면 팔자를 고치나니, 상좌에서 큰 소리 치면서 기세 등등 위풍당당 호기를 부리며 자리를 떨치다가 실각하거나 정권이 바뀌면 추풍낙엽 신세가 되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에서 많이 배웠고, 현실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사람은 오만하지 말고 근본을 지켜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살 일이다.
해맑은 푸른 청춘 한 잎씩 뜯어내어
쪄내고 엮은 사연 행간에 글을 심네
못줄에 박음질 한 삶 파릇파릇 자란다.
-심애경의 <모내기>전문
심애경 시인은 지금 모를 심는 현장에서 논바닥 공간에 글을 심는다. 모내기란 써레질 한 논에 못줄을 띠고 꽃눈을 따라 모를 심는다-요즈음은 이앙기로 심지만-그것을 ‘박음질 한 삶’이라 하였다.
논바닥에 모심는 광경을 ‘원고지 행간’에 글을 심는다, 또는 ‘박음질 한 삶’이라 표현한 것은 신선해 보인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남다른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개성적인 눈이 아닐까?
실직을 당했단다
직장을 잃었단다
아내 알까 두려운데 갈 곳이 없단다
사내가
사내가 운다
앙다문 피눈물로
하늘엔 별도 없고
새끼들만 아른아른
미친년 헤헤거리듯 차라리 껄껄댈까
가장이
가장이 운다
온몸으로 또 운다.
-이진숙의 <어느 실업자 가장>
이진숙의 <어느 실업자 가장> 전문이다. ‘TV 뉴스를 보고’란 부제를 달았다. 어디 TV뉴스뿐인가? 우리 주변엔 이러한 사례가 많다. 가정을 꾸려나가는 가장이 실직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사내가 앙다문 피눈물로 울고, 가장이 온몸으로 울 일이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다. 놀고 있는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을 준다. 이것이 우리 한국의 실상이다. 얼마나 웃지 못 할 역설적인 이야기인가?
노동 현장엔 외국인 근로자뿐이다. 따라서 한국의 앞날엔 미래가 없다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정자나 기업인, 노동자, 농민, 젊은이들 모두 심각하게 고민하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할 긴박한 시점이다.
이 시인은 이러한 국가적인 당면과제를 작품을 통하여 고발하고 해결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좋은 발상이다.
시뻘건 쇠붙이를 두드리는 굉음소리
다스리고 문지르는 아픔의 고통으로
순교의 마지막 예술 산(山)도 되고 강(江)이 된다.
-장효순의 <대장간에서>전문
장효순 시인은 그의 시작노트에서 ‘글 쓰는 전문가가 아니래도 좋다. 아름다운 가락과 운율에서 절제된 시조 한 수를 얻으면 행복하다. 그래서 시조를 쓴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장효순은 대장간에서 시뻘건 불에 쇠를 두드려 순교하는 정신으로 연장을 만들고 있다. 쇠를 불에 달구어 담금질하는 아픔으로 연장을 만들듯 시조 작품을 치열하게 창작해 내고 있다.
읽고, 생각하고, 지우고, 다시 쓰고, 몇 번을 헤아리고 다듬어 시조 한편을 생산한다. 이것이 담금질의 아픔이요, 천착(穿鑿)의 고뇌다. 드디어 ‘순교의 마지막 예술, 산도 되고 강이 된다’ 는 대목이 일품이다.
앞에서 ‘퇴고가 명품을 만든다’고 하였듯이 치열한 정신으로 두드리고 문지르면 명품을 생산 할 수 있다. 우리가 작품을 생산할 때 장효순 시인처럼 순교자적 정신으로 치열하게 무장할 일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한 삶 기대하며
만나고 헤어짐을 순리로 순응하고
잠잠히 평화로운 안식 맞이하게 하소서.
환송하는 찬양에 천사들 호위 받아
예비 된 처소로 불려가는 내 영혼이
당당히 하나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사랑으로 맺은 인연 훗날 만날 기약하고
영광의 하늘 보좌 거룩한 본향 향해
여정을 잘 마치었노라 선포하게 하소서.
-정순량의 <나이듦의 기도.7>전문
-요한복음 11:25~26
정순량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요한복음 11: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새겨 기도문 한편을 시조로 작성한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의 경우, 육신은 죽어 땅에 들어가지만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영생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지금 화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 만나고 헤어짐을 순리로 순응하고 평화로운 안식이 되도록 하시고, 불려가는 영혼이 하나님 곁에 머물게 하시며, 끝으로 인생 여정을 잘 마치었노라고 선포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앞으로 죽음을 맞이할 참으로 엄숙한 예비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숙연해짐을 함께한다. 이렇게 멋지게 존엄하게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까?
정 시인은 요한복음 말씀처럼 죽어도 죽지 않고 영광의 하늘 보좌 옆에서 시조를 쓰면서 부활의 멋진 삶을 누리리라 믿는다. 남은 하늘 건승건필을 빌어 드린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저 푸른 초원 위를
하아얀 갈기 앞세워 달려가는 말발굽소리.
-추창호의 <파도> 전문
추창호의 <파도>전문이다. 시조는 역시 단수에서 쾌감을 얻는다. 초장에선 숱하게 일고 있는 하얀 파도를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냐고 긴장시키더니 종장에선 갑자기 하아얀 갈기 앞세워 달려가는 말발굽소리로 반전한다. 이것이 시조의 정석이다.
물레질에서 잣는 실을 한번 뽑고, 두 번 뽑고, 세 번째는 어깨 너머로 휘끈 돌려 감는 기법, 곧 초장과 중장은 가락의 반복이요, 종장에서 그 가락을 반전시키는 비법이 곧 시조창작의 전형(典型)적인 기법이다. 이때 의미의 율격 또한 가락에 따라야 한다.
추창호는 이러한 기법을 잘 활용하여 멋진 작품을 생산했다. 특히 종장 ‘하이얀 갈기 앞세워 달려가는 말발굽소리’의 대목은 색깔과 소리를 융합한 공감각적 표현으로 그것도 동영상을 활유시켜 독자들에게 살아서 움직이는 생동감을 주는 가작이다.
그대여 한 번쯤은 마음껏 게을러라
듣는 일 보는 일도 멈춘 채 잠만 자라
혹여나 꿈을 꾸어도 보이는 것 잊어라
때로는 사는 일로 때로는 글쓰기로
처절히 휘둘렀던 칼끝의 일필휘지
동백꽃 눈 속에 피듯 그런 꿈을 꾸어라
-함세린의 <1월을 보내며(2019)>전문
함세린 시인은 시조정신이 치열하다. 특히 2019년 1월은 더 뜨거웠나 보다. 너무 부지런했고, 너무 일이 많아 잠도 못 자고, 꿈을 많이 꾸었나 보다.
그래서 첫 수는 모든 행동을 게으르고, 잠만 자고, 꿈을 잊으라고 스스로에게 역설적인 주문을 한다.
둘째 수에선 이러한 역설이 더 뜨겁게, 처절하게 휘두른 칼끝 일필휘지로 단숨에 처리하다가 이제 동백꽃 눈 속에 피듯 겨울 삼동을 인내하면서 신중한 꿈을 꾸라고 자신에게 명령한다.
그렇다. 개구리도 움추렸다가 뛰는 격으로 쉬었다 가자. 성경, 창세기에도 하늘, 땅, 사람 다 만들어 놓고 7일째는 쉬라 하지 않았나? 그래서 안식(安息)은 필요한 것이다. 뛰었으면 쉬었다 가자.
함세린 시인의 어법은 특수하다. 역설적이면서 호흡이 빠르고 치열한 것이 강점이다. 그러나 그 강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첫수에서 초, 중, 종장의 병렬구조와 둘째 수의 일필휘지(一筆揮之)와 같은 언어구사가 때로는 시원스럽게 경(境)을 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시조의 자연스런 호흡과 어법에 무리를 주어 격(格)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음은 가을시조단에 오른 작품들을 보자.
채소밭에 물주려다 깜빡 잊고 방치해둔
분에 심어놓은 시들은 호박꽃 하나
초라한 그 행색 싫어, 뽑아버리고 싶어
거침없이 손을 뻗다 돌아서야 했습니다
꽃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도 눈물이지만
새싹 펴 펼치고 싶은 꿈 하나를 보았기에
세상의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던가요
꽃피고 열매 맺어 사랑받고 싶었을
우리네 인생살이도 저,호박꽃 아닌지요.
-김상선의 <호박꽃> 전문
김상선 시인의 <호박꽃> 전문이다. 호박꽃도 꽃이냐? 라는 말이 있듯이 화자도 분에 심은 호박꽃을 뽑으려 했지만, 둘째 수 중장에서 꽃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과 종장에서 새싹을 펼치고 싶은 꿈 하나를 보았기에 뽑으려던 손을 멈추고 돌아섰다.
특히 마지막 수에서 ‘꽃 피고 열매 맺어 사랑받고 싶었을/ 우리네 인생살이도 저, 호박꽃 아닌지요’ 라고 호박꽃을 우리 인생살이에 비유한다. 볼품 없는 호박꽃이지만 그에게 인격을 주어 호박꽃의 가치를 고양시키고 있는 뜻이 깊은 가작이다.
다만 퇴고 단계에서 다음과 같이 가필 정정하면 어떨까?
첫수 종장에서 ‘싶어’를 ‘싶었다’로, 둘째 수 종장 첫 소절 ‘새싹 펴’를 ‘새싹 을’로 그리고 ‘보았기에’를 ‘보았네’로, 마지막 수 중장 끝에 ‘꽃’을 첨가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 더 멋진 매끄러운 작품(?)이 될 듯싶다.
좋은 작품을 써 놓고도 청탁 날짜에 쫓겨 마무리과정에서 퇴고를 소홀히 할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질 일이다.
새하얀 드레스와 까아만 신사복에
행복을 앞에 두고 다정히 걷고 있다
삶이란 험한 길이라 수월하지 아니하다.
꽃이 핀 길이거나 가시밭길 이거나
두 사람 함께 하면 어딘들 못 이를까
세월이 다 할 때까지 둘이 함께 있어라.
-김은성의 <백년 가약>전문
김은성 시인은 결혼예식장에서 예식을 마치면서 다정하게 걷고 있는 신랑 신부의 행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세월이 다 할 때까지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하고 있다.
꽃이 핀 길, 가시밭 길 어느 길이든 두 사람 함께 뜻을 모으면 못 이를 길이 있으랴? 인생행로에 백년가약(百年佳約)처럼 중대한 약속이 또 있을까?
삶이란 험한 길이기에 두 사람 뜻을 모아 세월이 다할 때까지 헤어지지 말고 꼭 함께하라고 화자는 간절히 축원한다.
소낙비 쏟아지니 우산꽃 활짝 핀다
우산은 방패 되어 빗물화살 막아내니
갑자기 닥치는 아픔 미리 막는 높은 지혜
물웅덩이 지날 때는 물폭탄도 막아주고
높은 길 가파르면 지팡이로 몸 기대니
현해탄 거센 파도도 힘 모으면 막으리
-박영숙의 <우산>전문
박영숙 시인의 <우산>이다. 시인은 우산의 효용성(效用性)을 말하고 있다. 첫수에선 소낙비 쏟으면 우산꽃 활짝 펴 방패 되어 막아준다 하고, 둘째 수에선 물웅덩이 지날 때 물폭탄을 막아주고 높은 길, 가파른 길에선 지팡이 역할로 몸을 받쳐주니 현해탄 거센 파도도 막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다. 과거 36년 동안 우리는 뼈아픈 침탈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정중한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으로 외려 큰소리치고 있으니 우리는 저들의 만행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박시인은 그것을 작품 ‘우산’을 통하여 힘을 모으자고 강조한다.
돌풍에 지친 들판 명줄 긴 잡초처럼
밟으면 바로 눕고 오뚝이 일어서듯
한 세상 때를 벗고서 외곬 길을 달렸다.
억울함 몰려오고 웃음꽃 날려 봐도
짓누른 질풍노도 언제나 한결같아
무너져 혼탁한 세상 마음 비운 잡초인생.
-이형식의 <잡초인생>전문
이형식 시인의 <잡초인생>이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아무렇게 자라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잡풀을 말함이다.
잡초는 아무데서나 자란다. 아름다운 곳, 더러운 곳, 높은 곳,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 밟으면 눕고 오뚝이처럼 금시 일어선다. 질풍노도에 짓눌려도 언제나 한결같이 일어서는 풀이 잡초다. 이 시인은 잡초의 생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잡초와도 같은 사람이 ‘잡초인생’이다.
김수영 시인은 그의 시 대표작 ‘풀’에서 “풀이 눕는다/비를 몰고 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고 풀의 설움을 노래한다. 여기서 ‘풀’은 민중이나 힘없는 서민으로 상징된다.
어쩌면 이형식의 ‘잡초인생’과 유사할까? 김수영의 ‘풀’이 서러워 우는 민중이라면 이형식의 ‘잡초’는 한 세상 때를 벗고 외곬 길을 달리며, 혼탁한 세상에 섞이지 않고 마음을 비운 거룩한 자기 길을 가는 잡초인생이다.
이형식의 잡초인생은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아니라 한 세상 때를 벗고 외곬 길을 달리는 거룩한 성자의 길을 가는 그런 잡초인생이다.
촛불도 태극기도 돌아간 새벽에는
비둘기 모여들며 저마다 구국구국
버려진 구호 부스러기 비웃으며 쪼고 있다.
-임만규의 <광장에>전문
광화문 광장은 잠시도 조용할 시간, 조용할 공간이 없다. ‘구국구국’ 비둘기 소리 외침이 언제 잦아지고 사라질까? 걸핏하면 정치인, 노동자, 농민, 사회단체 시위꾼들이 모여들어 난리를 벌인다.
임만규 시인은 이를 걱정하며 풍자(諷刺)하고 있다. 촛불로 세운 정부가 촛불 세례를 받는다. 이를 보다 못해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 시위를 전개한다. 누가 진짜 애국(愛國)하는 사람이며, 구국(救國)하는 사람일까?
민주국가에선 자기 의사나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시국정세를 비판하고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인의 생각이다.
비둘기 모여들어 ‘구국구국’하는 의성어는 일품이며 종장에서 ‘버려진 구호 부스러기 비웃으며 쪼고 있다.’의 풍유는 시위 광장의 널부러진 풍경, 실감실정을 절실하게 묘사하고 있는 가작이다.
못 벗은 미망으로 칠산바다 누비다가
살구꽃 피는 봄날 그물에 걸려들어
고향이 어딘지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르고
포근한 건조조건 해풍의 서해바람
몸을 맡긴 굴비가 마당에 가득하면
볏단이 쌓인 것처럼 배가 절로 부른다
황금색 엷은 회색 선홍빛 지느러미
잘 구운 조기 한상 밥상 위 올라 있어
구미가 절로 당기니 젓가락질 바쁘다.
-장영규의 <영광굴비>전문
장영규 시인의 영광굴비 전문이다. 침이 꿀꺽 넘어갈듯 구미가 당기는 영광굴비 밥상, 한상을 받는다.
첫수에선 살구꽃 피는 봄날, 미망으로 칠산 앞바다를 누비다가 그물에 걸린 조기가 둘째 수에서 집산지 영광으로 모여 서해바람, 간간한 해풍으로 건조된 굴비가 된다. 셋째 수에서 밥상으로 오르는 잘 구워진 굴비밥상 한상 진풍경이 순서대로 잘 묘사된 작품이다.
살구꽃 피는 봄날에 잘 구워진 굴비 밥상, 한상을 못 받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우리 <시조문학>독자들은 이참에 장영규 시인이 선물하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영광굴비 밥상, 한상을 받자.
여기서 ‘한상 밥상’을 ‘밥상 한상’으로 어순을 바꾸면 어떨까? 함께 생각해 보자.
신선이 동굴이랴 동굴 곧 신선이랴
환영을 보았으되 환영 아닌 실체로고
해탈이 되고나서야 색즉시공 공시색
선녀가 화했으랴 스님이 변했으랴
나 또한 신선 되어 몽환 속을 헤매다
꼬집어 아픈 후에야 사바인 줄 알고녀
-한상철의 <환선굴(幻仙窟) 일기>네 수중 두 수
한상철 시인의 <환선굴 일기>첫째와 둘째 수이다. 시조의 정형과 의미가 철저하게 조화된 잘 된 작품이다.
환선굴은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동굴이다. 화자는 지금 이 굴속에서 황홀경에 취해 자신이 신선이 되는 몽환 속에 헤매고 있다.
첫수에선 신선이 동굴인가, 동굴이 신선인가 환영(幻影)-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임-을 보았으되 그것은 환영이 아니고 실체였다. 곧 해탈(解脫)-속세를 벗어남-이 되고서야 색즉시공 공시색(色卽是空 空是色)-유형의 만물은 일시적인 모습일 뿐 모두 공(空)이라는-이라는 것이다.
둘째 수에선 선녀인지, 스님인지 나 또한 신선되어 꿈속을 헤매다가 스스로를 꼬집어 본 후에야 사바(娑婆)-인간세상-인 줄을 알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시인이 동굴 속 선계(仙界)에 빠져 꿈속을 헤매다가 자기를 꼬집어 본 후에야 비로소 현세(現世)임을 지각하는 경지이다. 그러기에 해탈, 색즉시공, 사바 등의 불가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화자는 이러한 용어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 무리 없이 문장을 어렵지 않게 구성하고 있다. 노련한 솜씨다.
다음엔 단시조 특집에 실린 작품 몇 편을 골라 보았다.
갈증에 물을 켜도 자꾸만 목이 타듯
사랑에 목이 타면 저토록 붉은 걸까
바람도 바람을 놓고 황홀경에 젖는다.
-김옥중의 <꽃무릇>전문
김옥중의 단수 <꽃무릇>이다.
꽃무릇도 상사화(相思花)의 일종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사화는 분홍색인데 꽃무릇은 진홍색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애절한 사연에서 유래한 꽃이다.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목이타면 저토록 붉게 타는 것일까? 바람도 잠시 멈추고 황홀경에 젖는다고 한다.
‘바람도 바람을 놓고’는 무슨 뜻인가? 지나가는 바람자락도 황홀경에 빠져 잠시 멈추었음이라. ‘바람도 잠시 멈추고’를 김옥중은 ‘바람도 바람을 놓고’라 하였다. 한 굽 높은 발상이다. 얼마나 황홀하면 바람도 정신을 놓았을까? 이것이 시조의 묘미요, 맛이다.
어느 한땐 살맛나게 온몸으로 받은 갈채
화려한 축복 속에 마음을 들썩였다
끝내는 물색도 없이 추락하는 빈 그림자.
유준호의 <꽃다발>전문
유준호의 <꽃다발> 단수이다.
꽃다발은 축하와 환희, 갈채의 상징이다. 꽃다발을 받으면서 우리들은 기뻐하고 때로는 감격한다. 형형색색의 향기 짙은 꽃다발을 받으면서 온몸으로 받은 갈채와 화려한 축복은 마음까지 들썩였다.
그러나 그런 갈채와 축복의 시간도 오래가지 못하고 추락한다. 좋은 자리,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겸손할 일이다. 오만하고 힘주다간 꺾이기 마련이다. 발 한 번 헛디디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종장에서 ‘끝내는 물색도 없이 추락하는 빈 그림자’이니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하라고 일침을 놓는다.
‘추락하는 빈 그림자!’ 얼마나 허무한 끝장인가? 그것도 명사로 뚝 끊어 놓으니 더 허전하기만 하다.
하늘 길 6천마일 그려보던 목축의 나라
푸른 초지 지평선에 소떼, 양떼 평화롭다
비 온 뒤 쌍무지개 질러 지상낙원 여기라지.
-박용하의 <뉴질랜드 북섬에서>전문
박용하 시인은 지금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여 먼지 하나 볼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일년 내내 자동차 세차를 하지 않는 나라라고 그 나라 국민들은 자랑한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평원이 전개되고 푸른 초원위엔 소떼, 양떼만이 한가롭게 누워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지상낙원이라 일컫는다.
비온 뒤 쌍무지개를 띄워 지상낙원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 뉴질랜드! 멋진 기행시조 한수를 감상한다.
남이 지어주고 남들이 불러준다
누군가가 호명하면 대답만 할 뿐인데
그 무게 받아내는 건 천지간에 나 혼자.
-유해자의 <이름>전문
유해자 시인의 작품 <이름>이다.
이름은 대개의 경우 부모나 작명가가 지어준다. 한번 이름이 지어져서 호적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부르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게 마련이다. 동사무소 호적부에 등재된 이름으로 평생을 부르다가 죽어서 묘비명에 까지 가지고 가는 이름 석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기에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곧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니 어찌 한평생을 살면서 욕되게 살까?
유시인은 종장에서 ‘그 무게 받아내는 건 천지간에 나 혼자’라고 묻고 대답한다. 여기서 ‘그 무게’는 무엇을 말함인가? 누군가가 호명하면 대답하는 자기 이름값이다. 천근이요, 만근인 소중한 자기만의 이름값이다.
명예(名譽)란 이름을 걸고 행하여 얻은 영광과 존엄을 말한다. ‘그 무게’가 곧 명예다. 그러니 한번 뿐인 우리 인생, 어찌 헛되게 살까. 오명(汚名)을 남기지 말고 ‘내 무게’를 내가 지켜 살겠다는 조용한 의지를 함의하고 있다.
나라가 뒤숭숭한 줄 꼬맹이도 알았는지
엉덩일 하늘로 들고 다리 밑으로 세상 보네
거꾸로 세상을 보니 어떤가요 아가씨.
-조경순의 <까꿍>전문
조경순 시인의 <까꿍>전문이다.
‘까꿍’이란 갓난아기를 웃는 얼굴을 짓게 하기위하여 쓰는 수단이다. 나라가 하도 뒤숭숭하니 걱정이다. 꼬맹이도 이를 알았나 보다. 엉덩일 하늘로 들고 다리 밑으로 세상을 본다 하였다.
세상이 바로 도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돌아간다. 시계가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가고 있다. ‘까꿍’을 해서라도 무능한 짓거리들을 바르게 돌려놓아야 한다.
이러다간 국가안위도, 나라살림도, 국제외교도, 사회정의도 모두 무너지고 쪽박 차게 될 모양새다.
조경순은 이런 세상을 풍자(諷刺)하면서 바로 잡고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모두가 ‘까꿍’을 연발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이상 가을호에 수록된 54명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특기할 만큼 새로운 것들이 있어 좋았다.
한글 모양, 한글 자모의 원리를 소재로 한 것, 민감한 시사문제, 보람을 심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잡초인생,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묘사한 것, 기도와 신앙생활을 통한 명상적인 작품, 치열하게 전개한 시정신 등이 눈길을 끌었다. 별 인기 없는 호박꽃에서 뜨거운 눈물과 꿈을 발견, 그것을 인생살이에 환치한 작품 등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다만 이러한 좋은 작품들이 좀 더 다듬고 살폈어야 할 퇴고과정을 그냥 지나친 사례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퇴고가 명품을 만든다는 원리를 다시 한 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