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다시 답사길에 오른다. 먼저 보문동에 있는 미소선덕사라는 작은 사찰을 찾았다. 이곳에는 원래 [보문동사지3], 혹은 [보문동강선마을사지]라고 불린 절터가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보문동 952-4번지에 해당하는데 낭산마애삼존상이 있는 중생사 입구를 왼쪽에 두고 얕은 고개를 넘어가면 된다. 절집 앞에 주차공간이 있지만 가는 길은 매우 비좁다. 이 절집에 사찰건립 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석불좌상이 있다기에 찾아갔지만 볼 수 없었다. 민가형의 대웅전이 보이는데 강아지들이 열심히 짖어대자 스님이 요사에서 나온다. 석불 뵙기를 청했는데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지만 ‘누가 연구한다고 해서 강원도로 보냈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10D3451C05DB10E)
어제 황룡사지까지 가서도 찾지 못했던 황룡사지 서편사지, 혹은 구황동사지 2(구황동 772)의 당간지주를 보기 위해 다시 황룡사지로 간다. 항상 분황사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처음으로 황룡사지 안에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 봤다. 이 절터는 황룡사지와 동서로 나란히 있으므로 황룡사지 주차장은 곧 이 절터의 주차장이 되기도 한다. 이 절터는 1990년 발굴조사와 정비를 했으며,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EEA3451C05DB223)
사지와 황룡사지의 경계가 되는 도로변에는 초석과 장대석 등 다양한 치석재가 놓여 있고 돌담 너머로 남향하고 있는 건물지와 탑지가 정비되어 있다. 건물지는 토단으로 형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군데군데 기단석이 노출되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12DA3451C05DB30D)
남쪽부터 중문-쌍탑-금당-강당이 놓이고 주변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배치로 사역의 전체 크기는 45*70m이다. 강당지의 동서양측에는 넓은 단이 조성되어 있어 강당과 동서회랑을 연결하는 방형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역 중앙에 위치한 금당지 좌우에서 뻗어 나온 익랑은 동서회랑과 만나고 있다. 남회랑은 일정한 폭으로 동서회랑과 만나고 있어 여타 유구에서 보이는 별도의 중문지 관련 기단이 없고, 전체적으로 2.8m 간격으로 총 12*2칸을 형성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153653451C05DB431)
강당지와 남회랑지 사이에 있는 쌍탑지 중 동탑지에는 옥개석, 탑신석, 갑석, 지대석이 각 1매씩 있고 서탑지에는 옥개석 1매가 있다. 동편 회랑지와 담장 사이에는 당간지주석 1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사역과 남쪽 경작지 경계에서 7개의 쐐기흔이 있는 석재가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두께 1.0cm 내외의 종선문 와편과 경질토편이 소량 확인되고 있다.
동탑지에는 총4매의 탑재가 있는데 토단 모서리에 갑석과 지대석이 겹쳐진 형태로 있고 토단 위에 옥개석과 탑신석이 있다. 갑석과 지대석은 모서리 부분으로, 갑석은 전체크기가 97*84*21cm이고 내림마루가 약하게 표현되어 있다. 옥개석은 전체 크기 165*152*46cm이고 4단의 옥개받침과 2단의 탑신괴임이 있다. 파손되지 않은 모서리에서 풍탁공이 확인된다. 탑신석은 전체 크기 98*98*94cm이고 각 면에는 폭 15.5cm의 우주와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6E33451C05DB61E)
당간지주석은 전체크기가 60*25*257cm로 간공 상부는 결실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9563451C05DB712)
경주문화원과 경주경찰서는 거의 마주하고 있다시피 해 그 사이 이면도로에 주차하고 먼저 문화원으로 들어갔다. 배반동 4거리로 신축, 이전해가기 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이 있었던 곳이라 하는데 그때 가져가지 않은 초석(礎石), 장대석(長臺石), 연화대석(蓮花臺石) 등 몇몇 석조부재들이 정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 부러진 간주석과 하대석만 남은 석등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79D83451C05DB81A)
사실 모르고 들어왔는데 문화원 본관 건물 뒤쪽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66호 경주동부동은행나무(慶州東部洞銀杏나무)가 서 있었다. 이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9m, 둘레 6.66m이다. 자라나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약 3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모두 암나무로서 결실량이 풍부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267333551C05DBA1D)
이 나무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경주부 동헌을 지을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34C243551C05DBC2B)
경주경찰서 정원에도 많은 불교 석조유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유적총람에는 이곳에 있는 석조물들을 여러 항목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경주 동부동사방불탑신석(慶州東部洞四方佛塔身石)’은 경주시 현곡면의 소현재 서편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이 있다. 아래 삼층석탑을 설명할 때 소개한다.] 옮겨 올 당시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복원해 놓았다. 탑신석의 각 면에 우주(隅柱)를 새겨 놓았고 각 면의 가운데에 불상을 새겨 놓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165543B51C05E1829)
이 위에 올려놓은 탑신석은 ‘경주동부동감실불탑신석(慶州東部洞龕室佛塔身石)’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입실 2리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탑신의 한 면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1구의 불상을 새겨 놓았다.[두 부재는 이전에 다녀오신 분의 사진을 보면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겹쳐 쌓아놓았다. 비지정문화재이다 보니 제한 없이 이동이 되는 것 같은데 이런 문제들 때문이라도 원칙이 필요할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0233B51C05E1907)
문화유적총람에 ‘경주동부동삼층석탑(慶州東部洞三層石塔)’으로 소개된 탑은 앞서 소개한 부재들 바로 옆에 서 있다. 경주경찰서 정문 오른편의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삼층석탑은 경주시 현곡면의 소현재 서편에서 옮겨온 것이다. 여러 매의 장대석 위에 각 면마다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고 사면(四面)에 불상이 새겨진 사방불(四方佛) 탑신석 위에 옥개석 세 점을 올려놓았다. 이 세 점의 옥개석 가운데 두 점은 같은 탑의 것으로 보이며, 2단의 층급 받침을 만들어 놓았다. 다른 한 점의 옥개석은 크기가 작은 편이며 많이 파손된 상태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15563B51C05E1A0D)
하지만 [한국의 사지-대구 경북 Ⅰ]에 소개된 입실리사지(외동읍 입실리 745 일원)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이 탑재들은 모두 입실리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사지에는 두 기의 석탑재가 있었고 이 탑재들이 경찰서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 삼층석탑에 함께 쌓여있는 것 중 2층 옥개석은 다른 사방불 탑신석 탑재의 2층 옥개석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9D13B51C05E1C0B)
경주 경찰서 정원에는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석조물이 여러 점 있다. 또 하대석과 옥개석이 각각 1점씩 남아 있는 폐부도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C9E3B51C05E1D3A)
이어 경주 북부동 추정 주전지(慶州北部洞推定鑄錢址)로 향했다. 하지만 알고 있던 주소 ‘경주시 북부동 80-1’는 검색이 되지 않고 인접지번만 검색되었다. 하지만 해당된지번의 주소지를 지나면서 보니 어디인지 알기 어려웠고, 주차도 마땅치 않아 통과하고 말았다. 이곳에 있는 돌 구조물 중에 당간지주가 있다고 해서 들르려 했는데 결국 다음 기회를 살펴야겠다. 돌아온 뒤 지도를 보니 계림초등학교 인근에 주차하고 내려와도 될 것 같다.
경주에 있는 당간지주 가운데 존재를 알고도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이 몇 있다. 그 가운데 이번 답사에서 황룡사지 당간지주와, 황룡사지 서편사지 당간지주는 만났지만 황복사지와 주전지는 만나지 못했다. 담엄사지로 알려진 오릉 내 당간지주는 땅에 반 이상 파묻혀 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지난 해 답사 때 오릉 내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표암재 내에 있다는 당간지주 역시 지난 해 시도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보지 못했다.
계림초등학교로 향하다보니 사적 제96호 경주읍성(慶州邑城)의 일부가 보인다. 계림초등학교까지 간 뒤 걸어와서 잠시 살펴봤다. 경주읍성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동경통지』에 고려 우왕 4년(1378)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처음 이 성이 만들어진 것은 그 이전의 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현장에 있는 복원정비계획 설명판에는 고려 현종 3년(1012년) 축성되었다고 적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5A333B51C05E1E33)
지금의 읍성은 조선 전기에 다시 짓고,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10년(1632)에 동·서·북문을 만들면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규모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 둘레가 약 1.2㎞, 높이가 약 4m 정도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어 그 문을 통해 출입을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31E823B51C05E1E08)
도시계획으로 경주시가 확장되면서 성이 대부분 헐리고 현재는 동쪽 성벽 약 50m 정도만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4문 가운데 남문인 징례문에 걸려 매일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2007년에 세워진 복원정비계획 설명판에 따르면 2012년까지 605억원을 들여 복원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되어 있으나 요원한 일인 모양이다. 남은 성벽의 북쪽, 계림초등학교 방향은 원래 주차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것 같은데 현재 이곳을 발굴하고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5D773551C05E2025)
계림초등학교에도 석탑이 한 기 있다. 현재 전혀 다른 석재인 기단석 위에 탑신석으로 보이는 부재, 탑신석, 옥개석 등이 쌓여 있다. 2~3기의 석탑재가 혼합된 것이라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112A83551C05E2102)
[인용설명문 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적총람, 한국의 사지-대구경북 Ⅰ]
첫댓글 시나브로님 덕분에 경주 유적지를 새로 한번 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수학여행때 옛 박물관에서 에밀레종을 보았습니다.그리고 가보지를 못했네요
경주 가시면 주로 남산에 오르셨나 봅니다. 찬찬히 시내 유적도 살펴보시게 되겠지요...
외동읍 입실리 745번지는 관음사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선각으로된 관음보살상이 이곳에서 옮겨진 곳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비지정 문화재의 경우는 자료가 워낙 미약하여 잘못된 것은 아마 책자 편집과정에서 일부 잘못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예전 주소지번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경주찰서 탑재의 위치가 달라진 것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지정 문화재들은 위치 변동이 되어도 특별히 제재가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가 많이 발생할 것 입니다.
네, 제가 여러 자료를 조사해서 비교할 능력이나 여건이 되지 않으므로 [한국의 사지] 자료만으로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이 책자의 주장이 다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쥔장님이나 여러 분들 사진을 보니 두 탑재가 각각 놓여 있었는데 한데 쌓아 놓았더군요...
그저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청주...
감사합니다.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다니고 있습니다.
고향의 모든 문화재에 눈을 맞추고 계시는 푸른바다님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미소사 석불?
[한국의 사지]에 사진까지 나와서 찾아보았습니다.
물론 작은 절집이라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요.
절집에 들어서니 멍멍이들이 요란하게 짖어대 몰래 법당을 열어볼 수도 없었고요 ㅎ
지금 없다고 하셨으니 그 말을 믿어야겠지요....
경주시민이여.....
저희 생각에는 복 받은 시민들...
당사자들은 불편하기도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