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발생하면 임차인 책임인가???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2E34C563C380F1A)
임차한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의 원인에 따라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불이 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문제이다. 이 때는 임차인 책임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가? 그러면 임차인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도는 없는가? 그런데 화재의 원인이 밝혀진 경우에도 여전히 다툼의 소지는 남아 있다. 가령 천장 속의 전선에서 누전으로 불이 난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이다. 사례를 통해 임대인과 임차인의 책임 범위를 알아보자.
사례1 내가 임차한 공장에서 불 났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A씨는 L씨가 소유하고 있는 공장 250평 중 일부인 60평을 임차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A씨가 임차한 60평을 포함하여 약 80평이 소실되었다. 소방관들이 조사했지만 전기합선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발화지점이나 발화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임대인 L씨는 임차한 건물이 소실되었으니 A씨에게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A씨는 내가 임차한 공장에서 처음 불이 났다는 증거가 없으니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나온다. 그러자 임대인은 그렇다면 당신이 책임 없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서로 입증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임차인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차인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화재의 원인을 모를 경우, 임차인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 하였음을 입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1999.9.21 선고 99다36273판결
임차인의 임차물 반환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임차인이 그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려면 그 이행불능이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이 있으며, 임차건물이 화재로 소훼된 경우에 있어서 그 화재의 발생원인이 불명인 때에도 임차인이 그 책임을 면하려면 그 임차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입증하여야 한다.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는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그렇다면 임차인이 어디까지 해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는가? 다음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사례2 밤중에 아무도 없는 음식점에서 화재가 나면
한밤중 음식점에서 불이나 건물이 소실되었다. 경찰에서 조사했지만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건물주는 음식점 내 냉장고의 전선이 합선되어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임차인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음식점 주인은 임차인으로서 관리상 잘못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퇴근할 때 평상시와 같이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전기 스위치 등을 점검한 후 출입문을 잠그고 나갔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차인이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994.10.14. 선고 94다38182 판결
화재의 원인은 불명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임차건물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함이 상당하다면 비록 임차인이 영업을 마치고 평상시와 같이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전기 조명스위치 등을 점검한 후 출입문을 잠그고 모두 귀가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임차인이 경양식 음식점 경영자로서의 지위에서 나오는 임차건물의 보존에 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 사례.
이와 같이 원인을 모르는 화재가 발생하면, 임차인이 웬만해서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화재가 발생하면 임차인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내거나 화재 전문가들이 원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화재의 원인이 밝혀진 경우, 책임 소재가 어떻게 되는가 알아보자.
사례3 천장의 비닐전선 합선으로 화재 원인이 밝혀진 경우
목조건물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다. 소방서의 조사 결과 현관 천장 부분의 비닐전선에서 합선이 일어나 발화된 사고로 확정하였다. 건물주는 임차인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차인은 천장 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전기배선까지 어떻게 임차인이 관리하느냐고 맞서고 있다.
천장 속의 전기 배선은 임대인 책임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차인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 이유로서, 1)천장 속에 있는 전기배선은 건물의 구조의 일부로서 이를 수리·유지할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으며, 2)임차인이 그 하자를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경우가 아니라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대법원 2000. 7. 4. 선고 99다64384 판결
임차건물이 전기배선의 이상으로 인한 화재로 일부 소훼되어 임차인의 임차목적물반환채무가 일부 이행불능이 되었으나 발화부위인 전기배선이 건물구조의 일부를 이루고 있어 임차인이 전기배선의 이상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그 하자를 수리 유지할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으므로 임차목적물반환채무의 이행불능은 임대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이고 임차인의 임차목적물의 보존에 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결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차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
전기배선 관리 책임을 임차인에게 인정한 경우도 있다
화재의 원인이 사례3과 마찬가지로 전기배선에 있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반대로 임차인에게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다시 말해 임차인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사례3과 다른 점은, 1)전기배선을 임차인이 직접 하였고, 2)전기배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임차인이 미리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대법원 2006.1.13. 선고 2005다51013,51020 판결
임차건물이 건물구조의 일부인 전기배선의 이상으로 인한 화재로 소훼되어 임차인의 임차목적물반환채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당해 임대차가 장기간 계속되었고 화재의 원인이 된 전기배선을 임차인이 직접 하였으며 임차인이 전기배선의 이상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당해 전기배선에 대한 관리는 임차인의 지배관리 영역 내에 있었다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은 전기배선의 하자로 인한 화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의 보존에 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결과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화재보험이 하나의 대안이다
이제 임차인 입장에서 화재 발생시 책임 문제를 한번 정리해보자.
- 우선 화재의 원인을 모르면 입증책임이 임차인에게 있어 웬만해서는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화재 원인을 찾아내도록 모든 방도를 동원해야 한다.
- 원인이 밝혀지더라도 바로 책임을 벗는 것은 아니다. 원인에 대하여 임차인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비로소 면책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화재라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보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물주가 화재보험에 가입했다면 임차인은 따로 가입할 필요가 없죠?
그렇지 않다. 임차인의 과실로 건물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우선 보험회사가 건물주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보험회사는 임차인에게 그 금액을 청구하게 된다. 이를 ‘구상(求償)’ 이라고 한다. 결국 건물주의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 없이 임차인은 별도로 보험에 가입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