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 글에서 詩語(시어)라는 단어를 보았다.
詩心도 보았다. 詩聖도 보았다.
나는 잔머리가 파다닥 돌기 시작했다.
시에서만 시어를 쓸 거여? 아녀.
소설에는 '소설어', 평론에는 '평론어', 산문에는 '산문어', 수필에는 '수필어', 비평에는 '비평어' 등이 있어야 한다고.
文(문)에는 '문어'가 있드시 문학에는 '문학어'도 있어야 한다고.
도대체 어떤 단어가 詩語일까?
어떤 단어는 詩語이고, 어떤 단어는 詩語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국어사전이 있을까 싶다.
詩語가 아닌 단어는 非詩語라고 하는가?
詩心을 활용하면 다른 문학에도 조어가 가능하겠다.
소설은 '小說心', 수필은 '隨筆心, 평론에는 評論心, 산문에는 '散文心', 시조에는 '詩調心' 잡문에는 '雜文心' 등이 잔뜩 있을 것 같다.
생활글 쓰는 나는 生活語라는 단어들이 별도로 있는지를 모르겠다.
생활글, 산문글도 아닌 잡글을 쓸 때에는 雜語, 잡문에는 '雜文語' 단어가 있는가?
생활글에는 '生活心', 잡글에는 '잡글心'이라고 하는가?
詩聖(시성)도 있다.
聖스러운 것은 시에만 있는가?
소설에는 小說聖, 수필에는 隨筆聖, 평론에는 評論聖, 동시에는 童詩聖, 시조에는 詩調聖 등도 있을까?
무엇인가 이상하다.
詩라고 해서 지나치게 우아하게, 격조높게, 관념적, 현학적, 추상적으로 작문한다는 느낌도 든다.
날마다 생활하면서 쓰는 글인 생활글, 일기글, 잡글 쓰는 사람은 고상하지 못하고, 우아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격조도 높지 못하고... 등이 숱하게 이어질 것 같다.
알맹이는 없으면서 장황하게 허세만 부리는 말과 글을 가리키는 "현학적"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나는 단어 공부 더 해야겠다.
표준국어대백과사전이 나한테 없는 게 죄이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추가로 재발행하지도 못하는 아국 정부의 국립국어원도 그렇다.
초판 발간 이후 18년이 넘도록 재간도 못한다.
큰사전이 있어야 만이 문학어가 어떤 것인지, 비문학어가 어떤 것인지를 비교해서 골라내야 할 터인데...
2.
'잊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김석종 외 3인이 쓴 책이 무척이나 정겹다.
사라져가는 옛말들이 구수하다.
부뚜막, 가마솥, 누릉지, 아궁이, 부지깽이, 지게, 작대기, 구럭, 조새, 이엉, 사카린, 구루마 엿장수, 아이스께기, 대한뉴스, 요강, 똥지게, 푸대종이, 조개탄, 삼발이, 사금파리, 고두밥, 술도감, 보리개떡, 지우산, 용천뱅이, 보릿고개, 등잔, 허깨비, 이엉, 용마루, 가마니, 금줄, 땅꾼, 포대기, 시발택시, 물꼬싸움, 둠벙, 어레미, 멱, 봉초, 장도칼, 장꽝, 꼴, 망태, 도리깨, 당원, 오재미, 삼태미, 눈가래, 솔가리, 고주배기, 삭정이, 장판, 풍구, 바리깡, 몸빼바지, 바지랑대, 못자리, ...
아래 말은 '박민순 시인' 댓글에 들어 있기에 조심스럽게 여기에 수록했다
정겨운 우리말이기에.
수수께끼, 술래잡기, 싸립문, 골방, 다락, 시렁, 이삭줍기,
깡기리, 가이샹, 다마치기, 자치기, 골마루, 대청, 사랑방,
인두, 조청, 쑥개떡, 미나리꽝, 나마리(잠자리의 사투리),
횃대(긴 장대를 잘라 두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 놓고 옷을 거는 막대),
보리피리, 방죽, 똥장군, 뒷간, 삘기, 장아찌, 술도가, 술지게미 등등...
나도 조금만 보태자. 땅, 곳 이름과 물품으로....
구랫논, 큰뜸, 작은뜸, 너덜재빼기, 담불백이, 금구데기, 두렁배미, 논배미, 뭇(짚토매), 새암배미, 물꼬, 못자리, 재빼기, 매봉재, 벼름박, 새논, 가논, 섶밭, 안말, 고랑, 밭고랑, 달구질, 수리조합, 호롱기/호롱태, 도리깨, 솜틀집, 곳간, 다락방, 부뚜막, 등상, 설강/살강, 반자, 찬장, 뜰팡, 뜰, 골방, 웃방, 미닫이, 처마, 툇마루, 창호지, 쇠죽, 고린장, 돌칼, 장독대, 쇠외양간, 헛간, ...
등이 한없이 이어질 게다.
이런 말들은 내 자식(1978 ~ 1986년생) 넷은 모른다.
통행금지 시대에서 살았던 아비와 어미인 우리 내외나 아는 단어들이다.
아쉽게도 사라지고,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그라지고 있다.
현대어, 도시아파트어, 신세대문화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이런 토박이 말, 옛말은 詩語가 아닐 게다.
이런 말로 글 쓰면 詩心이 안 날 게다.
이런 말로 글 쓰면 詩聖은 안 나타날 게다.
3.
나는 시를 모른다. 그런 느낌도 모르기에 시어가 어떤 단어인지도 모른다.
나는 딱딱한 교과서로 배웠다. 헌법학, 형법학, 민법학, 국제법, 행정법학을 위시로 정치학, 후진국정치학, 행정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고 이런 분야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던 터라 문학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서 살았다. 물론 대하장편 소설책을 읽었지만 그냥 이야기 정도로만 즐겨했다. 이야기/스토리 , 뜻 중심으로만 이해했다.
퇴직한 지도 10년째. 건달농사 지으면서 나무와 풀, 흙과 비바람을 이해하면서 어린시절 과거의 세상을 더듬기 시작했다. 요즘 생각한다. 이런 생활에서 사는 말(단어)들은 시어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詩語.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예다. 시에는 '향기'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
세상은 온통 향기로운 방향으로 가득 찬 듯 싶다. '香氣'는 한자어이고 우리말로는 '달콤한 냄새 또는 내'이다.
식물의 일생은 오로지 꽃만 피우나 싶다. 아니다. 꽃봉오리를 맺고, 꽃이 피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다. 새벽에 피우고는 아침에 지는 꽃도 있고, 아침에 피었다가 점심 무렵에 지는 것도, 해질녁에 피었다가 다음날 해 뜰 무렵에 지는 것도 많다. 즉 꽃은 불과 몇 시간에서 고작 10일 정도 밖에 피지 못한다. 아름다운 꽃만 일년 내내 피는 것은 아니다.
꽃에서 냄새(내)가 난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지만 무엇인가 달콤하고 달작지근한 냄새는 난다. 때로는 구역질 나서 고개를 틀어야 하는 꽃도 있다.
꽃이 져서 오래되면 썩는다. 썩는 꽃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지고 떨어진 꽃은 추하고 더렵고, 혐오스럽게 마련이다.
꽃이 일년내내 늘 아름답고, 향기나는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서 텃밭농사를 지면서 나무와 풀을 숱하게 보는 나로서는 한자어 '향기'라는 말보다는 우리 말인 '냄새/내'가 훨씬 많다. 나는 한자어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럴까?
텃밭 세 군데에는 나무와 풀이 많다. 내가 얼추 헤아려도 200개 쯤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내가 아는 식물 이름만 이럴진대 내가 모르는 풀 이름은 훨씬 많다. 이들한테는 각각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계절냄새도 다르다. 1월달의 냄새, 2월달의 냄새, 3월달의 냄새 4월달의... 들이 다 다르다.
5월 중하순의 달콤한 아카시 냄새, 6월 초순의 수컷 정액냄새인 밤꽃 등이다.
5월의 송화가루 냄새가 번지듯이 계절마다 달마다 독특한 냄새가 하늘과 땅과 바람 속에 있다.
2018년 1월 초순인 지금, 서울 아파트에서 사는 요즘에는 독특한 냄새를 맡고 산다.
막내아들은 화장품을 엄청나게 얼굴에 바른다. 바른다는 표현보다는 떡칠한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야 할 지독하게 고약한 냄새이다. 하지만 아들한테는 그게 향기일 게다.
詩語가 무엇일까?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그게 무엇인지를 모른다.
밥 먹고 똥 싸고, 힘겹게 일하고, 그럭저럭 꾸질거리면서 사는 농사꾼인 나로서는 이해불능의 그런 말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사는 송파구 잠실 새마을시장에 나가면 허름한 플라스틱 다라(함지박)에 푸성귀 두어 줌을 담았다.
잡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썩어가는 생선(명태 등)을 나무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묵직한 칼로 내리쳐 토막 내어서 파는 장사꾼들이 무척이나 많다. 이들한테서는 문학적인 단어와 문구인 詩語가 떠오를까? 얼마쯤? 어떤 시어들이?
일흔 살인 내가 기억하는 60년 전, 50년 전의 저너머 세상(195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이다.
시골마을 앞뜰에는 구불거리는 논두렁이가 있었고, 논배미가 있었다.
겨울철 잘 멕여서 살 찌운 소 목덜미에 쟁기를 채우고 흙을 갈고, 무논에 써래질해서 논흙을 고르고,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서 늦모도 심고, 세벌 김도 매고, 가을철 낫으로 나락벼를 베고, 지게와 구루마로 볏토매를 지고 나르고, 홀태로 벼 바슴도 하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다 사라진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시어에서 나타날까?
도대체 詩語가 무엇이냐고?
아떤 밀로 써야 詩心이 생기느냐고?
詩聖은 어떤 것이여?
2018.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