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구 부산진역앞 버스정류소에는 '수정가로 공원'이 있고 그기에는 청마 유치환의 '바위'라는
시비가 있다
<바위>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노(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데로
억년비정(億年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저도
소리하지않는 바위가 되리라.
필자의 주거지가 지척간에 있어서 자주보게되는 싯구인데 글을 볼때마다 가슴이 출렁인다
얼마나 심연에 부대끼면 이렇게 먼 세계를 노래했을까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애락에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되겠노라고---
필자는 오랫동안의 숙제를 여기다 관련지어 보게된다
불교의 현실관은 괴롭다는데에 있다. 인생은 괴롭다는것인데--생로병사가 그러하고--
사랑하는것 과의 이별이 그러하고, 크-- 사람보고 싶은것도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은 집착과 갈애로부터 있는것이고 집착과 갈애는 무명(無明)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근본뿌리인 무명을 없에면 괴로움이 소멸되고 탐욕의 불길이 꺼진 마음이 고요한
상태인 열반(涅槃)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오랜 고민 끝에 무명이란 것이 오욕칠정(五慾七情)이라고 정리했다
또한 오욕칠정은 인간의 근본 바탕인바 어쩔수 없는것이 라고
이 ‘바위’라는 시는 바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에 물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얼마나 어려우면 인생을 달관한 청마가 죽어서 바위가 되리라고--
'바위' 시에 대한 문학시평에는 '세속적인 고뇌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있다'고 나와있다.
필자의 답대로라면 어쩔수 없는것-- 세속적인 고뇌 따로있고 이상적인 고뇌가 따로없다.
그렇다면 '머무름없이 마음을내라 (應無所住 而生起心)'--- 허어 - 자꾸 어려워진다.
유치환 시인에 대해서 좀 살펴 보기로 하자.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1908~1967)은 경남 거제 출신으로 동래고보를 졸
업했으며
22세 때 권재순 여사와 결혼. 1931년 문단에 등단했다.
교편은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에서 잡기 시작해 1952년 함양 안의중학교
때 처음으로 교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경주 대구 등지를 거쳐 1963년 7월 부산 경남여고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이듬해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1965년 영도 남여상(현 부산영상예술고)으로 옮긴 뒤 60세 때인 1967년 동구
좌천동 봉생병원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바로 위에 언급한 수정동 가로공원의 바위시비가 있는 주위이다.
청마는 교가도 많이 지었다.
통영초등 통영고 통영여고 거제둔덕중 대구여고(1962~63)와 부산고 동래고 등등. 시비는 국내에서 가
장많다
만인의 연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까 부산에도 5개의 시비가 있다
에덴공원과 동래고의 '깃발', 남여상과 부산진역 앞 수정가로공원의 '바위, 용두산공원의
그리움'.
통영에서 청마의 발자취는 통영중앙우체국에서 가장 많이 묻어난다.
마흔을 바라보던 청마는 아홉 살 연하의 시조 시인 정운 이영도(丁芸 李永道 1916~1976)
에게 20여 년간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는데 5년여 이 우체국을 이용했다
.
청마는 잘 나가는 시인 겸 통영여중 교사였으며, 경북 청도가 고향인 문재와 미모를 갖춘
정운은 남편과 사별 후 딸 하나를 둔 과부였다
통영 그의 언니집에 머물렀던 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였다.
정운은 처음 수예점을 운영하다 이후 청마가 근무하던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1946년
쯤 되였을듯)
퇴근 후에도 수예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정운을 보기 위해 청마는 수예점이 훤히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쓰고 또 썼다.
'
청마의 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뭍같이 까딱않는 정운에게 향한 사랑의 절규였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행복(幸福)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을 받는 정운은 어땟을까? 마냥 행복에 겨웠을까요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년동안 5천여통의 편지를 계속 보냈고
정운은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후에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다
* 이영도(1916~1976) : 호 정운(丁芸). 경북 청도 출생. 1945년 대구의 동인지 《죽순(竹筍)》에 시조 《제야(除夜)》를 발표함으로써 문재(文才)를 인정받았고, 그후 계속 시조를 발표했다. 부산 남성여고와 마산 성지여고(55년)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부산여자대학(지금의 신라대학교)에도 출강하였으며(56년) 부산어린이회관 운영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64년)
청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정운은 이렇게 나타냈다
<탑(塔) >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지금 통영의 '청마거리'엔 정운도 청마도 없지만 당시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아 있다.
정운이 운영한 수예점과 그의 언니가 운영하던 약방 '박애당'은 우체국에서 바로 보이는 옷가게 '시선집중'터다.
또 청마의 집필장인 영산장과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2000년 폐원)이 있던 충무교회는 우체국에서 세병관 방향으로 불과 5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영주차장은 두 사람이 가끔씩 찾던 옛 봉래극장 터다.
청마와 정운이 함께 근무한 통영여중은 충무교회에서 서문고개 방향으로 200m쯤 떨어진 붉은색 벽돌건물이다.
청마문학관은 청마거리에서 차로 10분 거리. 이곳에서는 청마의 유품과 각종 문헌자료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정운이 펴낸 서간시집 '사랑하였으므로…'와 '이영도 평전' 등 정운에 관한 자료와 사진도 있다.
이상은 국제신문의 기사를 중심으로 가감하여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필자는 청마의 사랑에 대하여 궁금했다
왜냐하면 청마는 마냥 그리워 하기만 하다가 사랑은 가져보지도 못하고 마는게 아닌가 해서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이러면 글은 더 풍부할지 몰라도 애타게 그리던 마음 어디다 뭍을까
이들의 사랑은 아무래도 초창기인 통영여중 재직시에 가장 절절한것같다.
영혼을 불살라 사랑한 여인. 곁에 있어도 부족하여 눈물겹도록 보고픈 사랑말이다.
두사람의 20년은 지역적으로 반쯤은 떨어저 있은것 같고 반쯤은 가깝게 있은 것 같다
사랑의 여정에는 희노애락이 동반했으리--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또한 괴로움이 따랐으리라
1958년 경주 제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제자가 ‘선생님 사랑이 무었입니까?’라고 질문을 했고
청마는 ‘사랑이란 어처구니 없는 것’ 이라 했는데-- ---그랬기에 애련에 물들지 않겠다고 하였는지도---
ㅎㅎ 훗날 나훈아의 노래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하지 않았던가
청마는 술을 무척 좋아했고 주량도 대단했던 듯-- 교통사고 나던 날도 몆차례 마셨다나--
술이 웬수다
정운은 얼마나 슬퍼했으며 또 그 작은 가슴에 얼마나 벅찾을까
님없는 거리를 걷고 싶지않아서 서울로 훌훌히 떠난지도--- '부산이여 안녕'이라고--
첫댓글 홍시님께서 주신 좋은글 감동먹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통영에갔을때 청마문학관 들러서 감상했어요..통영에는 문학과예술이 모두 살아있더군요.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그 가시같은 글귀가 나올수 없겠지요?
진정 사랑은 하는것이 받는것보다 더 행복할까요?
아직 홍시는 사랑하는거랑 받는거랑 어떤건지 확실히 몰라요유경님ㅎㅎ나훈아님 노래가사중에는 사랑은 주는것이라카던디요ㅎ
@홍시 가사는 그렇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거 아잉교
@단비 주거니 받거니는 술잔 아녀요
사랑하믄 행복한 건 당연한 거 아입니까얼굴도 이뻐지고
글구
남자는 멀꿈해지고
고래요 경험보다 큰 스승은 없다 카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