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31.화)
거미줄의 옥구슬
김하임
거미는 제 몸의 단백질을 뽑아내 그물을 만든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이 영롱하나 해가 뜨면 모두 사라지고 제 그물을 걷어내거나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거미줄에 걸려든 곤충은 움직일 수 없다. 잡아 먹히거나 운 좋게 금새 줄이 끊어지게 되면 살 수 있을까. 사람으로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 거미줄 같은 기준에 맞춰가며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거미인지, 거미줄에 걸린 벌레인지 가끔 혼돈된다. 레이다 망 같아서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가기 힘드나 용케 죽지 않고 사는 것도 신기하다.
흔히 “남들이 보면~”이라는 타인의 평판에 맞추려고 삶을 기성복처럼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직장이나 외부에서 조신하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 내 위 선배들은 요즈음 나오는 오만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이 이상형인 것은 현모양처의 대표적 이미지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임당은 재주가 남달랐고 독특한 작품을 후대에 남긴 개성이 강한 분이었다. 남성 중심의 시대적 거미줄에서 자기 몫을 해낸 훌륭한 분이나, 우리 모두 그렇게 살 능력은 없다.
예전의 남성스러움은 권위적일수록 멋지게 보였나 보다. 조부와 아버지의 기대가 자신들의 표상이 된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남학생은 검은색 교복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게 깎은 빡빡머리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개성이나 창의력과는 한참 동떨어진다. 여학생은 녹말가루를 풀어 수녀원의 옷처럼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카라를 달고, 귀밑 일 센치로 자른 단발머리를 해야 했다. 오래전 영화 ‘팔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추억의 사진관에서 찍던 흑백사진처럼 남은 추억이다. 세월은 퇴색하는 만큼 힘들던 기억조차 그리워진다.
꿈에서 보는 거미줄은 복잡하게 얽힌 대인 관계를 상징한다고 하여 흉몽이라고 간주한다. 촘촘하고 선명한 거미줄은 돕는 손길로 해석해 길몽이란다. 팔에 걸면 팔찌, 목에 걸면 목걸이가 되는 건 삶에서 그쯤이야 늘 엇박자 나듯 반복되는 것이니 개의치 않을 일이다. 직장인 학교는 한 반에 50명이 반으로 줄어 25명이 되어 이상적인 학생 수가 되었는데 아이들은 거칠어졌다. 과거의 열정으로 가르쳤다가는 깜짝할 사이에 고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거미줄에 맺힌 아침 이슬이 떠오르는 태양 앞에 부서지듯 나도 몸이 스러지고 있었다.
내게 일렁이던 갈등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박꽃의 청초함과 한 낮의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의 강인함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는가. 나는 왜 너처럼 될 수 없는가. 기도하면 되려나. 얼마나 도를 닦아야 가능할까.’ 꼬리를 달고 이어지는 생각은 피곤한 육체를 더 힘들게 했다. 명예퇴직을 생각했으나 신청할 시기를 놓쳐 한 학기를 기다려야 했다. 뒷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방학에 힘들어 하면서 새로운 강의를 찾아 공부한 것이 성격유형이었다.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배우며 학급의 아이들이 갖은 개성과 버릇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육 개월 후 명예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에니어그램이란 성격유형을 공부하는 시간이 오 년이 계속되었다. 그사이 강사 자격증을 취득 후 학부모, 기관, 단체, 학교등 재능기부와 연수 강사도 했다.
에니어그램이란 중세기 수도사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현대에 이르러 심리학의 한 부분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란 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성격을 나누는 아홉 개의 유형은 저마다의 특성이 다르고 독특했다. 아마 우리반 아이들이 펼치는 화려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그러할 것이다. 심도 있게 들어갈수록 세밀하게 분류가 나누어지며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무의식 세계가 드러난다.
성격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본연의 기질이 있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외부의 시선에 맞추어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꽃이라면 박꽃도 해바라기도 아닌 하나뿐인 꽃이고 해가 떠오르면 거미줄에 맺힌 사라지는 아침이슬에서 옥구슬로 발견하는 건 자신밖에 없다. 그것도 감성이다.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펼친 레이다에서 풀잎을 오가며 베틀 없이 자신의 몸에서 실을 엮어가는 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에의 실이나 거미의 실이나 모두 고운 비단이었고 나도 비단을 엮는 사람인 것을 이해하게 되니 자유로워졌다.
첫댓글 비단을 엮는 사람, 멋 있어요.